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 117
“테오도……르?”
내 이름을 부른 사람은 테오도르였다. 일그러진 얼굴의.
내가 그의 이름을 부른 순간, 테오도르는 긴 다리로 성큼성큼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대로 와락 나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나는 그 포옹에 불안감을 느꼈다.
그것은 애정에서 오는 포옹도, 그리움에서 오는 포옹도 아니었다.
두려움에, 불안감에, 떠는 아이가 사람의 품이 그리워 달려와 안기는 것 같은 포옹이었다.
나를 안은 채 살짝 떨리는 테오도르의 팔이, 그리고 그의 어깨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테오도르는 지금 나를 안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에게 안긴 것이었다.
“나를 사랑해?”
그리고 이어진 테오도르의 질문에 심장이 쿵- 하고 발치에 떨어지는 것 같았다.
왜 이런 당연한 질문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카르오 대공과의 만남에서 분명 무슨 일이 있었던 것만은 확실했다.
“당연하죠.”
나는 테오도르를 마주 안으며 대답했다. 그의 등을 쓸어내리며, 토닥이며, 테오도르를 붙잡아 흔들고 있는 불안감이 떨어져 나가기를 바랐다.
“당신을 사랑해요. 다른 누구도 아닌 테오도르 님을 정말로 좋아하고, 사랑하고 있어요.”
내 온전한 대답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테오도르의 떨림이 멎었다. 천천히 몸을 떼어낸 테오도르가 나를 바라보았다.
몸의 떨림은 멎었을지언정, 그의 눈동자는 아직 불안하게 떨리고 있었다.
“내가 테오도르 드 카르오가 아니더라도?”
테오도르의 질문을 나는 단박에 이해하지 못했다. 테오도르가 테오도르가 아니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카르오 가문의 후계자가 아니더라도 나를 좋아하겠어? 이런 큰 저택을 가지고 있지 않고, 너에게 예쁜 드레스도 맛있는 음식을 사줄 수 없더라도? 아니, 내가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하더라도, 나를 사랑할 수 있겠어?”
내가 곧바로 대답하지 않자, 불안감이 더욱 높아진 것인지 테오도르는 흔들리는 눈빛과 불안정한 목소리로 말을 쏟아냈다.
그제야 나는 테오도르가 말한 자신이 테오도르 드 카르오가 아니더라도 자신을 사랑하겠냐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차렸다.
“당연하죠.”
그래서 대답했다.
“오히려 더 좋을 것 같은데요?”
“더 좋다고?”
“네.”
나는 테오도르의 팔에 내 손을 얹으며, 그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
“테오도르 님이 카르오 대공가의 후계자가 아니라면, 저 같은 평민 여자와 결혼할 수 있을 테니까요.”
내 말에 테오도르는 살짝 눈을 크게 떴다. 마치 내가 그런 말을 할 줄은 전혀 몰랐다는 듯이.
놀란 테오도르의 표정을 똑바로 바라보며,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이어갔다.
“저는 테오도르 님과 매일 같은 침대에서 잠이 들고, 같은 아침 햇살을 받으며 눈 뜨고 싶어요. 사소한 현재를 나누고, 미래를 함께 꿈꾸고 싶어요.”
“그런 생각을 했었어? 나와의 미래를?”
테오도르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내게 물었다.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레나티스…….”
내 작은 고갯짓에 테오도르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눈가가 어느새 촉촉해져 있었다.
“넌 대체 얼마만큼 내게 감동을 줄 작정이지?”
테오도르는 팔을 벌려 나를 감싸 안았다. 그는 이제 떨지 않았다. 두려움도, 불안함도 없었다.
테오도르의 품은 그저 따뜻했다.
“나는 그저 지금, 이 순간만으로도 좋았어. 네가 날 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감히 미래까지 꿈꿔본 적이 없어. 아니, 내게 행복한 미래가 있을 거라는 생각조차 해본 적 없어.”
조용한 속삭임이 내 머리 위에서 울렸다.
“너를 만나기 전에는.”
마지막의 말 뒤에 매달려 있던 울음을 테오도르가 삼켜내는 것이 느껴졌다.
“레나티스.”
부드러움 울림이었다.
“너를 사랑해. 내 목숨이 다할 때까지.”
테오도르의 목소리가 방안 가득히 울려 퍼졌다.
내 머리카락 한올 한올을, 내 피부 하나하나를 어루만지는 것 같은 그 부드러운 목소리에 나는 눈을 감았다.
잠시 테오도르의 온기에 몸을 맡겼던 나는 나를 떼어내는 테오도르의 몸짓에 아쉬운 듯 몸을 떼어냈다.
“레나티스.”
테오도르가 내게서 몸을 떼어낸 이유는 내게 할 말이 있어서인 듯했다. 진중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는 눈빛이 할 말이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분명 뭔가 중요한 말일 듯싶어서, 나는 살짝 긴장한 채로 테오도르를 바라보았다.
“난 앞으로 널 위해서 살아.”
나를 똑바로 바라본 채, 테오도르는 말했다.
뭔가 중요한 말을 하리라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무거운 말이라는 것은 몰랐기에 나는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널 만나기 전의 내 인생은 그저 괴물이 되기만을 기다리는 하루하루였어. 하지만 이제는 달라.”
테오도르는 내 손을 꼭 붙잡았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살고 싶어.”
테오도르의 뜨거운 진심이 그의 입술에서 흘러나왔다.
“너와 함께 살고 싶어, 레나티스.”
그 어떤 미사여구보다, 그저 나와 함께 살고 싶다는 그 담백한 고백이 내 마음을 두드렸다.
“저도요.”
나는 내 손을 잡은 테오도르의 손을 꽉 붙잡았다.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의 손도, 이 순간도.
“테오도르 님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나는 테오도르가 말한 미래에 조금 더 살을 붙여서 말했다. 그저 피폐한 삶을 살아야 했던 남자는 해피엔딩에 대해서 잘 모를 테니까.
우리 사이에 다정하고도 뜨거운 시선이 오갔다.
마치 정해진 운명인 양, 테오도르는 천천히 내게 다가왔고, 나는 정해진 순서처럼 살포시 눈을 감았다.
곧이어 내가 기대한 것이 내 입술에 닿았다. 이제는 익숙해져 버린 테오도르의 입술이었다.
마치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것처럼, 테오도르는 그저 입술과 입술만을 맞붙인 채 멈춰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좋았다.
테오도르의 입술로 그의 온기가 전해졌고, 작은 틈 사이로 그의 숨결이 느껴졌다.
그 부드러운 온기로, 작은 숨소리로, 테오도르가 내 곁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이 느껴져 좋았다.
내가 입술로 안온함을 느끼는 사이에, 살짝 테오도르의 입술이 벌어졌다.
그러다 닿아 있던 내 입술도 저절로 함께 벌어졌다.
벌어진 틈 사이로 테오도르의 숨결이 불어온다 싶더니, 그의 입술이 더 크게 벌어지며 내 입술을 덮었다.
그리고 벌어진 내 입 안으로 테오도르의 혀가 미끄러지듯 들어왔다.
내 이를 긁으며 들어오는 테오도르의 혀에 나는 조금 더 입술을 벌렸다. 공간이 넓어졌음에도 테오도르는 급하게 굴지 않았다.
그는 느릿하고도 섬세하게 내 입안을 훑고, 바닥에 납작 웅크리고 있던 내 혀를 톡톡 건드렸다.
살포시 내가 혀를 일으키자, 테오도르는 기다렸다는 듯이 내 혀를 옭아매었다.
한 번도 도망간 적이 없건만, 마치 다시는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테오도르는 강하게 나를 붙들었다.
혀뿌리까지 아릿해지는 느낌에 나도 모르게 흠칫하면, 그제야 그는 느슨히 나를 풀어 주었다.
그렇다고 결코, 온전히 놓아주는 것은 아니었다.
“흐…….”
비벼지는 혀에, 그 질척임에, 나도 모르게 목구멍에서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당장 그의 손을 잡고 침대로 이끌고 싶었다.
“작작 해라.”
이 산통을 깨는 아니꼬움 가득한 목소리가 아니었더라면, 그랬을 것이다.
“스기엔!”
나는 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번쩍 눈을 뜨며 목소리의 주인공의 이름을 불렀다.
눈앞에 아마 지금 내 표정도 저렇지 않을까 싶은, 깜짝 놀라고 동시에 당황한 표정의 테오도르가 보였다.
나는 고개를 돌려 침대 쪽을 쳐다보았다. 지겨워죽겠다는 듯한 표정의 스기엔이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맞다! 원래 방에 스기엔이 같이 있었는데, 테오도르가 갑자기 들어온 거였지!
상황이 너무 급하게 돌아가자, 스기엔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 미안해. 네가 방에 있다는 걸 깜박했어.”
나는 매우 겸연쩍어하며 스기엔에게 다가가며 사과했다.
그리고 그 순간, 내 뒤쪽에서 테오도르의 너무 놀라서 오히려 놀라지 않은 것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게…… 뭐지?”
고개를 휙 돌리자, 자신이 지금 보고 있는 것을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의 테오도르가 있었다.
아니, 믿을 수 없는 게 맞지! 스기엔은 이 세계에 없는 존재이니까! 이 세계 사람인 테오도르는 지금 처음 봤잖아! 내가 스기엔에게 테오도르를 만나보라고 권유하려고 하긴 했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는데!
적어도 먼저 충분히 언급하고, 충분히 설명한 다음에, 아주 천천히 마음의 준비를 한 다음에 서로 만나게 해주려고 했다고!
“아, 저기, 그게, 이건…….”
“‘이건’이라니! 위대하신 고위 마족 님에게!”
“으아앗! 스기엔! 그만해!”
안 그래도 이상한 생명체에게 놀란 테오도르에게 마족 같은 위험한 단어를 들이대지 말란 말이야!
“그러니까, 소개해 드릴게요. 이쪽은 제가 일전에 아주 얼핏 말한 적이 있는…….”
“이 몸은 위대하신 고위 마족이신 스기엔 님이시다!”
스기엔은 이전에 내게 했던 대로 씨알도 먹히지 않을 만큼 뻔뻔한 자기소개를 테오도르에게 그대로 했다.
“뭐?”
당연히 테오도르는 그 이야기를 전혀 믿지 않는 듯했고, 아까보다 더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스기엔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두 사람의, 아니지. 두 생명체의 첫 만남은 망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