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 115
“식당…… 이네요?”
테오도르가 함께 가고 싶다고 한 곳은 식당이었다. 입구에서부터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겨오는.
“지난번에 혼자 왔었는데, 꽤 괜찮아서 너와 함께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거든.”
“그래요?”
테오도르의 말이 옳았다.
카르오 저택의 음식도 아주 맛있었지만, 식당의 음식도 아주 훌륭했다. 전자가 담백하고 매일 먹기에 딱 좋은 음식이었다면, 식당의 음식은 좀 더 화려한 맛이었다.
“맛있어요!”
음식이 하나씩 나오고, 그것을 먹을 때마다 나는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테오도르는 그런 나를 보며 웃었다.
“와아~ 푸딩!”
그리고 마지막 후식이 나왔을 때, 테오도르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좋아하지?”
“네!”
나는 디저트용 스푼을 들며 말했다.
“날 좋아한다고 말하는 거지?”
은근슬쩍 테오도르는 농을 던졌다.
“네. 맞아요.”
그리고 나는 뻔뻔스럽게 농담을 받았다. 테오도르는 내 대답에 살짝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나 역시 웃으며 푸딩을 먹었다. 탱글탱글한 푸딩은 입에서 사르르 녹아내렸다.
“더 먹어.”
테오도르는 자신의 푸딩을 은근슬쩍 내 쪽으로 밀어주었다.
“아니에요. 테오도르 님 드세요. 아주 맛있어요.”
“난 별로 단 걸 좋아하지 않아.”
“왜요? 이렇게 맛있는데?”
그의 말에 나는 되레 놀랐다. 세상에 이걸 싫어하는 사람이 있단 말인가?
이렇게 부드럽고, 달고, 그야말로 입에서 녹아내리는 맛인데!
“글쎄. 왜냐고 물어도 나도 모르겠는데? 취향의 문제가 아닐까?”
‘취향’이라는 말을 하는 테오도르의 목소리에서 짓궂음이 배어 나왔다.
지난번에 내가 말한 내 취향이 그가 아니라는 것에 아직도 마음을 쓰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렇게 안 보였는데, 쪼잔하네!
“진심은 취향을 뛰어넘는 법입니다!”
나는 입에 물었던 스푼을 빼내고 아주 진지하게 대답했다. 앞으로 이 문제가 나올 때마다 시달릴 수는 없었다.
“그래. 네가 싫어하는 책을 스스로 본 것처럼 말이지?”
“필요하다면, 책도 봐야죠.”
“그래서 말인데, 대체 뭘 찾고 있는 거지? 네가 언니와 시간을 보내는 동안 본채의 서재에 가서 네가 원할 법한 책을 몇 권 챙겨두긴 했지만, 네가 말한 게 워낙 모호해서 고르기가 어렵더군.”
“아, 그건……. 음…….”
사실,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나도 정확하게 몰라서 말하기 어려웠다. 애초에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차라리 테오도르에게는 스기엔을 만나게 해주는 것이 좋을지도 몰랐다.
어쩌면 내가 스기엔을 테오도르에게 몇 번 보낸 적이 있으니 테오도르는 스기엔을 얼핏 본 적이 있을지도 몰랐다.
“테오도르 님. 혹시 슬라임…… 이라고 아세요?”
“아니.”
하! 단호한 사람!
“반투명의 말랑말랑하고, 탱글탱글한…….”
“과일 젤리 이름인가?”
눈을 슬쩍 가늘게 뜨며 테오도르가 말했다.
“아뇨. 디저트는 아니고요. 이렇게 통통 뛰어다니는데요.”
“젤 리가 뛰어다닌다고?”
“아뇨. 젤리는 아니고요. 제 머리카락과 비슷한 분홍색이고요, 사실 말도 하거든요?”
“분홍색 말하는 젤리 푸딩?”
테오도르의 미간이 찌푸려져 버렸다.
역시나. 사람들의 머릿속에 아예 개념조차 없는 존재에 대해서 설명한다는 것은 이렇게 어려웠다.
“그걸 슬라임이라고 한다는 건가? 네가 찾는 게 그것에 대한 거고.”
“이름은 스기엔이고, 이런 종족? 생명체? 전체를 말하는 거라면 슬라임이라고 불러요. 어쩌면 다른 이름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요.”
“스기엔?”
슬라임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하던 테오도르가 스기엔의 이름에 반응했다.
“아세요?”
나는 엉덩이를 들썩이며 물었다. 스기엔의 말에 따르면, 이 저택에 산 지 제법 오래되었다고 했다.
지난번에 꼬치꼬치 캐물으니, 테오도르가 쪼끄마할 때도 봤다고 말했다.
어땠냐고, 엄청 귀여웠냐고, 그때는 천사처럼 착했다고 하던데! 라고 호들갑을 떨다가 스기엔이 시끄럽다고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러니까 테오도르도 어느 정도 스기엔의 존재를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아니. 처음 들어 봐. 이상한 이름이군.”
…… 모르는데, 왜 아는 척하시는데요? 순간 설렜잖아요!
“그런데 뭔가, 어디서 들어본 이름 같기도 하군.”
테오도르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이상한 이름을 어디서 들어봤지?”
“혹시 친척 중에 비슷한 이름이 있으신가요?”
“카르오 가문의 아이들은 살아남기가 힘들어서 그다지 친척이라고 불릴 사람이 없어.”
“그럼 친구분 중에?”
“난 친구 없어.”
“그럼 뭔가 유명인 중에 그런 분이 있으신 게…….”
“차라리 그쪽이 확률이 높겠군.”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는 테오도르를 보며 나는 또 잡착해졌다. 친구는 없고, 친척은 다 죽었다니…….
“혹시 본채 서재에도 네가 원하는 책이 없다면, 제국 도서관이 이 근처에 있어. 희귀한 고서도 많고, 구하기 어려운 외국 서적도 많은 편이지. 내가 몇 가지 외국어는 할 수 있으니, 원하면 옆에서 해석해줄 수도…….”
도서관에 관해서 설명하던 테오도르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더니 마침내 사라졌다.
“왜 그런 눈으로 날 보고 있지?”
그리고 조금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날 보고 있었다.
“역시 푸딩을 드셔야겠어요!”
“뭐? 왜?”
“우울할 때, 단것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거든요!”
“난 별로 우울하지 않은데?”
테오도르는 부정했지만,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단호한 표정으로 친구가 없다고 말하고, 무심한 표정으로 친척은 죽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어떻게 밝고 명랑하겠냐고!
거기다가…… 거기다가…… 아주 어쩌면, 내가 테오도르의 아이를 낳게 된다면, 그 아이도 그렇게 자랄 수도 있었다.
그런 건 절대로 싫었다.
“그리고 내 기분을 좋게 만드는 단 것은 따로 있거든.”
내 속마음을 모르는 테오도르는 그렇게 말하며 설핏 웃었다. 그리고 그 웃음기 어린 얼굴이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그다음에 무엇이 이어질지 아는 나는 눈을 감았다. 말캉하고 부드러운 것이 입술에 닿았다.
살짝 입술을 벌리자 페퍼민트 차의 향기가 내 입안으로 들어왔다.
내가 마신 것이 아니었다. 테오도르가 마신 차였다.
입술에서, 혀끝에서, 아주 오랫동안 페퍼민트 차의 향기가 맴돌았다.
테오도르의 입술과 혀에는 조금 전에 내가 먹었던 푸딩의 맛이 옮아갔으리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네 말이 맞아.”
입술을 떼어낸 테오도르가 말했다.
“단 것은 기분을 좋게 만드는군.”
테오도르는 다시 한번, 살짝 내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눌러 베이비 키스를 했다.
* * *
그 뒤로 우리는 한 마흔다섯 번 정도 뽀뽀를 했던 것 같다. 물론, 사람이 없는 장소에서만 그랬다.
식당의 룸에서는 당연히 우리 둘뿐이었기에 쪽, 골목길을 걷다가 주위를 둘러보고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쪽, 그리고 돌아오는 마차에서 쪽, 쪽, 쪽.
누가 보면 닭살 커플이라고 욕을 했겠지만,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으면 욕도 못 하는 거지, 뭐.
“다 왔나 봐요.”
마차의 덜컹거림이 사라지고, 창밖의 풍경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고 내가 말했다.
“그렇군.”
말은 그렇게 했지만, 테오도르는 잡은 내 손을 놓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손을 놓지 않으면 당연히 마차에서 내릴 수가 없었다.
“내려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지.”
테오도르는 내 말이 다 맞는다고 말하면서도, 행동에 옮길 생각은 없어 보였다.
오히려 내 손을 더 꼭 잡고, 내 어깨 위에 자기 머리를 얹었다.
문제는 나 역시 내려야 한다는 상식과는 별도로 지금 순간이 너무 좋아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마차의 창문으로는 바람이 솔솔 들어오고 있었고, 테오도르의 백단향이 가까이에서 풍겨왔다.
닿은 부분에서 느껴지는 테오도르의 온기도, 잡은 손의 촉감도, 내 어깨에 기댄 테오도르 머리의 무게감까지, 모든 것이 너무나 좋았다.
방에서 자주 둘이서만 있긴 했지만, 이런 좁은 공간에서 같이 붙어 있는 것은 또 다른 뭔가 아늑한 느낌이었다.
“저기, 근데, 저희가 계속 이러고 있으면 민폐이지 않을까요? 마부도 우리가 내리길 기다리고 있을 테고, 테오도르 님이 돌아오시면 으레 고용인들도 마중을 나와 있고 하니까, 밖에 누군가 기다리고 있을 텐데요.”
“그럴지도.”
테오도르는 여전히 내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예 이대로 한숨 자고 싶다는 듯이 눈을 감기까지 했다. 아무래도 이대로는 끝이 나지 않을 성싶었다.
“방에 가서 차를 마실까요?”
“차 마시고 싶어?”
“네. 마침 차 마실 시간이잖아요. 오랜만에 테오도르 님에게 제가 차를 우려드리고 싶어요.”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아뇨. 제가 하고 싶어서요.”
“네가 정 하고 싶다면야.”
테오도르는 못이기는 척, 몸을 일으켰다. 성공이었다.
“테오도르 님.”
역시나 예상대로 마차의 문을 열자 기다리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오르디였다. 뭔가 심각하고 긴장된 표정의.
“무슨 일이 있나?”
“카르오 대공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카르오 대공이?”
조금 전까지 그저 부드럽고, 나긋나긋하기만 했던 테오도르의 인상이 대번에 굳어졌다.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