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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114화 (114/169)

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 114

“이제 갈까?”

언니가 탄 마차가 이제 전혀 보이지 않음에도 나는 계속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내가 도무지 그 자리에서 벗어날 생각이 없어 보이자, 테오도르가 슬쩍 말을 붙였다.

“아, 네.”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눈은 여전히 저 먼 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만하자. 이런다고 언니가 다시 돌아올 것도 아니고.’

아직도 미련이 철철 넘치는 눈을 겨우 길에서 떼어냈다. 그리고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이었다.

“그쪽이 아닌데.”

테오도르의 말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아닌 게 아니라 테오도르는 나와 함께 별채 안으로 들어가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이쪽이야.”

테오도르는 슬쩍 고갯짓으로 옆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테오도르가 타고 다니는 마차가 서 있었다.

“어디 가시나요?”

“그래.”

“잘 다녀오세요.”

“너도 같이 갈 예정이야. 그러니까 이제 가자고 했지.”

“아……?”

갑자기 생긴 예정에 나는 눈을 끔벅였다.

“어딜 가시는데요?”

“가보면 알아.”

테오도르는 내가 계속 질문만 하자, 답답했던지 내 손목을 잡아끌어 마차에 태워버렸다. 우리가 타자, 마차는 기다렸다는 듯이 출발했다.

“인스트 님도, 오르디 님도 안 계신 거 같은데요. 마부석에 계시나요?”

나는 외출할 때마다 둘 중에 한 명은 늘 함께였던 것을 기억하고 테오도르에게 물어보았다.

“없어.”

하지만 테오도르 매우 간단하게 그들의 존재를 부정했다.

“네? 그래도 되나요?”

나는 테오도르의 신분을 생각해서 물었다.

“데이트는 2명이 하는 것이니까.”

“데이트요?”

“그래. 데이트.”

돌아온 대답은 여전히 간단했다. 하지만 그 간단한 대답에 내 심장은 괜히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데이트라니! 말만 들어도 설레는 단어였다.

미안, 언니. 언니가 돌아간 것은 슬프지만, 일단은 지금 상황에 내가 좀 집중해야겠어!

* * *

“어서 오십시오.”

테오도르가 나를 데리고 간 곳은 이전에도 방문한 적이 있는 드레스 가게였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방문하고 아무것도 사지 않고 나온 드레스 가게였다.

아니다. 나 몰래 테오도르가 리본을 사서 선물했으니까, 아무것도 안 산 것은 아니었다.

“또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찾으시는 것이 있으실까요?”

두 번째 방문이라서 그런지 점원은 더욱 친절한 태도로 우리를 맞았다.

“이 숙녀분께 어울리는 드레스를 보고 싶은데.”

“그러시군요.”

점원은 드레스라는 말에 방긋 웃으며 내 쪽을 쳐다보았지만, 오히려 내가 당황해서 그녀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테오도르를 바라보았다.

“드레스요?”

“그래.”

“지난번에는 드레스는 안 된다고 하셨잖아요?”

“그땐…… 그때고.”

중간에 살짝 있었던 침묵은 뭘까?

“카르오 저택에서 의식주를 다 해결하고 있다고 네 언니에게 말했잖아. 네가 거짓말쟁이가 되지 않도록 힘쓰는 중이야.”

“거짓말이 아니었는데요.”

“메이드복따위로 네 의복을 해결해주고 싶지 않아.”

“저는 괜찮은데…….”

“괜찮은 것치고는 입이 웃고 있군.”

아차차! 나도 모르게 웃고 말았군?

나는 얼른 표정을 굳히려고 애썼다. 하지만 자꾸 입꼬리가 씰룩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생각해보라! 드레스였다!

빨강, 노랑, 파랑, 어여쁜 색깔에, 하늘하늘하고 나풀거리는 레이스들, 귀여운 리본, 우아하게 주름진 러플, 입기만 해도 공주님이 된 기분이 될 것 같은 드레스!

이걸 마다할 20살 소녀는 없었다!

“그럼,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인가?”

테오도르는 슬쩍 고개를 꺾어 안쪽에 걸린 드레스들을 보는 듯하더니 말했다.

“아, 아뇨! 그때 그 말은 농담이었어요!”

나는 얼굴을 붉히며 테오도르를 말렸다. 그 농담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을 줄이야.

“좋아, 그럼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 봐.”

그렇게 말하고 테오도르는 돌아섰다. 그리고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한 장소인 듯한 곳에 앉았다.

내게 느긋하게 고르라는 듯이 테오도르는 긴 다리를 꼬고 앉아서 자연스럽게 옆에 놓여 있던 신문을 집어 들었다.

“어떤 스타일을 찾고 계시는가요?”

“아, 저기, 그게…….”

점원이 다가와 물었지만, 나는 곧바로 대답할 수가 없었다.

찾는 스타일이 없는걸요…….

드레스를 사는 것은 처음이었다. 아니, 옷을 사려고 고르는 것 자체가 처음이었다.

나의 첫 새 옷은 오르디가 준 메이드복이었고, 첫 쇼핑은 내 의지가 아니라 테오도르가 고른 훈련용 남성복이었다.

내게 어울리는 옷이 뭔지, 어떤 것을 골라야 하는지, 한번도 옷을 사본 적이 없는 내가 알 턱이 없었다.

“손님께서는 귀여운 인상이시니까, 귀여운 디자인은 어떠세요? 요즘에는 이런 리본이 달린 드레스가 잘 나간답니다.”

머뭇머뭇하고 있는 내게 점원은 웃으면서 먼저 드레스 하나를 꺼내 권했다. 그녀의 말대로 리본이 달린 귀여운 드레스였다.

“저기…….”

나는 그 옷을 받아들기 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 드레스가 이 리본에 잘 어울릴까요?”

나는 눈동자를 또르르 위로 올려서, 내가 지금 한 리본과 지금 이 드레스가 어울릴지 전문가인 점원에게 물었다.

“아! 저희 가게에서 사가신 리본이군요.”

“그걸 기억하세요?”

“물론이죠.”

점원은 방긋 웃으면서 말했다.

“저쪽 남성분께서 선물하신 리본이죠?”

“네. 맞아요.”

“들어오시자마자 매우 급하게 ‘저것! 빨리! 포장!’이라고 말씀하셨답니다.”

마치 작은 비밀이라도 알려주는 것처럼 점원은 내 쪽으로 상체를 내밀며 작게 속삭였다.

순간, 내 머릿속에 테오도르가 긴 다리로 저벅저벅 이쪽을 향해서 걸어오며 ‘저것! 빨리! 포장!’이라고 말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그러자 내 얼굴에서 저절로 미소가 나왔다.

어쩐지 우스웠고, 어쩐지 재밌었다. 동시에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제가 포장을 하는 동안에 얼마나 뚫어지게 쳐다보시던지, 긴장해서 혼났답니다.”

“어머, 죄송해요.”

“아니에요. 그런 의도로 말씀드린 것은 아니고, 그만큼 인상적이었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한 거였어요. 그런 상황이 없어도, 충분히 인상적인 손님이시긴 하지만요.”

내 사과에 점원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제 의견을 물어보신다면, 네. 그 리본과 아주 잘 어울릴 거예요.”

그리고 내 앞에 드레스를 대어 보이며, 힘주어서 말했다. 그녀의 말에 나는 드레스를 받아 들고, 탈의실로 향했다.

.

.

.

“어, 어때요?”

신문을 읽고 있는 테오도르의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그러자 테오도르의 고개가 내 쪽으로 돌아왔다.

잠시 테오도르의 눈이 커지는 것 같더니, 이내 곱게 접혔다.

기분 좋은 호선을 그린 입술이 그가 지금의 내 모습을 마음에 들어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점원의 말대로 추천한 연두색의 드레스는 노란 리본과 잘 어울렸다. 그리고 리본뿐만이 아니라 나와도 잘 어울렸다.

드레스에 달린 리본은 너무 과하지 않게 적절하게 달려있어서 포인트가 되어 주었고, 맞춤옷도 아니었는데, 내 몸에 꼭 맞았다.

가슴이 조금 끼는 것 같긴 했지만, 이런 타이트한 옷이 처음이라 그럴 수도 있었다.

“예쁜데?”

숫제 자리에서 일어나며 테오도르가 말했다. 그가 내 쪽으로 손을 뻗자, 나도 모르게 그의 손 위에 내 손을 얹었다.

이게 옷이 만드는 매너인 걸까? 메이드복이었다면 테오도르가 손을 내밀면 포크와 손수건 중에 무엇을 찾으시는 건가 진지하게 고민했을 텐데 말이다.

“이대로 무도회에 가도 손색이 없겠어.”

“저는 춤출 줄 모르는데요?”

내 말에 테오도르가 빙긋 웃었다. 그리고 내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나도 마찬가지야.”

내 귀에 입술을 가져다 댄 테오도르가 속삭였다.

귀족인 테오도르가 사교댄스를 모른다는 말이 믿기지 않아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쳐다보았다.

“뭐, 배우긴 했지. 하지만 실제로 춰본 적은 한 번도 없거든.”

내가 왜 쳐다보는지 안다는 듯, 테오도르는 대답했다.

어렸을 때부터 별채에 거의 갇혀서 생활했다고 하니 그럴 법도 했다. 새삼스럽게 어린 테오도르가 가엽게 여겨져 나는 가슴이 아팠다.

“자, 갈까?”

어느새 테오도르는 점원에게 수표책을 써주고 와서, 다시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다시 그의 손 위에 내 손을 얹었다.

순간, 이건 옷에 따른 매너가 아니라 그냥 내가 강아지가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의 ‘손!’ 하면, 내미는 수준인 것 같은데…….

“어딜 가는데요?”

“너랑 같이 가보고 싶은 곳이 있었거든.”

가게를 나선 테오도르는 가볍게 걸었다. 나 역시 테오도르와 발걸음을 맞춰서 걸었다.

이런 드레스를 입고 거리를 걷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 나도 모르게 주위를 의식해서 힐끗거리며 쳐다보게 되었다.

이크! 저 남자랑 눈이 마주쳐버렸네!

“안돼, 레나티스.”

민망해서 얼른 고개를 돌리려고 했는데, 나보다 테오도르가 더 빨랐다. 그의 손이 가볍게 내 턱을 쥐더니, 고개를 돌려 자신을 쳐다보게 했다.

“데이트 중에는 다른 남자를 쳐다보면 안 되지.”

“네? 그런 게 아니라…….”

“물론, 데이트 중이 아니라 평소에도 다른 남자는 쳐다보면 안 되고.”

그렇게 말하는 테오도르는 분명히 웃고 있었지만, 눈에는 웃음기라고는 없었다.

저 발언은 분명 진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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