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 110
내가 방금 무슨 소리를 들은 거지?
“내 취향은 너야.”
내가 멍하니 눈만 깜박이며 그를 쳐다보자, 테오도르는 다시 한번 쐐기를 박듯이 말했다.
내가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네 취향은 내가 아는데요?
네 취향은 한 줌밖에 되지 않는 허리와 부러질 듯 가는 팔다리, 가학성을 부추기는 애처로운 눈, 그리고 얼굴과 어울리지 않게 이상하게 색정적으로 느껴지는 입술 아니었나요?
저기서 내가 부합되는 내용은 하나도 없었다.
“저를 안심시켜 주려고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그야…… 제가 보통의 남자들이 바라는 이상형은 아니니까요.”
“보통의 눈 낮은 남자 따위와 난 달라.”
너무도 확고한 테오도르의 대답에 이제 나까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너야말로 네 취향은 내가 아니라고 알고 있는데?”
본격적으로 앉아서 이 주제에 관해서 토론해보자는 듯, 테오도르는 방 안으로 걸어들어와 의자의 등받이를 툭툭 쳤다.
“네? 그걸 어떻게…….”
테오도르가 그걸 어떻게 알았나 싶어 나도 모르게 되물으려다가 나는 얼른 입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테오도르의 미간에는 깊은 주름이 박혀버렸다.
나는 조용히 그것을 못 본 척을 하며 의자에 앉았다.
“인스트에게 들었어. 키가 2m에 몸무게는 100㎏이 넘는 사람이 네 이상형이라고 말이야. 왜 사람이 아니라 거인이 이상형인 거지?”
내 맞은편의 앉은 테오도르가 조곤조곤 다시 말을 이었다. 아니다. 조곤조곤히 내 이상형을 깠다.
“아니, 거인이 아니라 그냥 좀 듬직한 사람을 좋아하는 건데요.”
“그래서 인스트를 좋아했던 건가?”
“네?”
“인스트가 그러더군. 네 고백을 아주 점잖게 거절했다고 말이야.”
“네에에?”
“네가 말한 기준에는 못 미치겠지만, 인스트도 꽤 건장한 편이긴 하지. 인간치고는 말이야.”
“아니, 아니, 아니! 잠시만요. 일단 정정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요!”
나는 다급하게 테오도르의 말을 막았다.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차이는 것도 억울한데, 이게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기까지 하다니 최악이잖아!
“제 취향이 근육남과이긴 하지만, 인스트 님을 짝사랑한 적은 없었어요.”
“……본인 입으로 거절했다고 말하던데?”
“그래요. 맞아요. 제가 차이긴 했죠. 하지만 고백한 적이 없어요! 좋아한 적도 없고요!”
“좋아한 적도 없고, 고백한 적도 없는데, 어떻게 차이는 거지?”
“제 말이요!”
흥분한 나머지 나는 책상을 짚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저는 분명히 안 좋아한다고 말했어요! 제 취향에 미달이라고도 말했어요! 하지만 번번이! 자꾸! 인스트 님이 절 찬다고요!”
내 말에 강한 느낌표가 붙을 때마다 점점 몸이 앞으로 기울여졌다. 말을 마쳤을 때 내 몸은 거의 테이블에 반쯤 엎드린 자세였다.
그 기세에 테오도르는 조금 놀란 듯했다.
“좋아. 그럼 그 건은 인스트의 자아 비대증이자 자의식 과잉, 그리고 과대망상이라고 하고 넘어가도록 하지.”
내가 너무 발끈해서일까? 테오도르는 생각보다 쉽게 넘어갔다.
나는 한 건 해결했다는 생각에 한숨을 내쉬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 뒤에 더 심한 오해가 나올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하고 말이다.
“애초에 모든 사람이 자기 취향대로만 살 수는 없고, 이상형과 반드시 사귀는 것도 아니잖아요.”
나는 내 취향이 테오도르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 미안해져서 변명처럼 중얼거렸다.
취향에도 불구하고 난 지금 테오도르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었다.
물론, 테오도르가 취향을 뛰어넘는 미모를 가지고 있기도 했고.
“그래서 에뮬을 좋아한 건가?”
이게…… 무슨 소리지?
“이번에는 발끈하지 않는군.”
너무 당황스러워서 내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그를 쳐다보자, 테오도르는 싸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마치, 내가 정곡을 찔려서 아무 말 못 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사람이 너무 당황스러우면 말이 안 나오는 법이거든요.”
“왜? 사실을 들켜서 당황스러운가?”
“아뇨. 너무 허무맹랑해서 당황스러운 건데요. 어떻게 제가 에뮬 오빠를 좋아한다고 생각하실 수가 있으세요? 전혀 제 취향이 아닌데요.”
“조금 전에 모든 사람이 자기 이상형과 결혼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 건 너였어.”
“저는 결혼까지 말하지는 않았어요. 그냥 연애만 말한 건데요.”
“그자와의 연애는 생각한 건가?”
“아, 아뇨! 그냥 보통 사람들이 그렇다고요.”
“말은 왜 더듬지?”
“제가요?”
“그래. 방금 더듬었잖아.”
“제가 말을 더듬었다면, 당황스러워서 그랬을걸요.”
“뭐가 당황스럽지? 정곡을 찔린 건가?”
뭔가 대화가 도돌이표가 된 것 같았다.
“전혀 아닙니다. 애초에 에뮬 오빠는 아스텔라 언니의 예비 남편이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제가 곧 형부 될 사람을 좋아하겠어요?”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니까 그렇겠지. 나만 해도 널 좋아하게 될 생각은 없었어.”
“저도 딱히 테오도르 님을 좋아하게 될 생각은 없었긴 해요.”
“뭐?”
테오도르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자기가 했던 말이랑 똑같은 말인데 왜 저러는지 모르겠네.
“제가 애초에 테오도르 님을 꼬시려고 이 저택에 들어온 게 아니잖아요. 그런 목적이었으면, 전 꽃뱀이겠죠.”
나는 어깨까지 으쓱이며 부연 설명을 했지만, 테오도르는 여전히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찌푸린 인상을 펴지 않았다.
“어쨌든, 전 에뮬 오빠를 이성적으로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오히려 아스텔라 언니의 짝으로도 탐탁지 않아 했다고요. 에뮬 오빠는 솔직히, 너무 연약해 보여요. 든든하지 못하다고요.”
“하지만 이전에 모든 일이 끝나면, 이제껏 모은 돈과 퇴직금까지 챙겨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고 싶다고 하지 않았나?”
“네. 제가 그렇게 말하긴 했죠.”
“그럼 그 남자는 또 따로 있는 건가?”
“그 사람은 여자인데요.”
“…… 네가 편견이 없는 편인 줄은 알았지만, 내가 여자까지 상대해야 하는 줄은…….”
“아, 아뇨!”
형부를 짝사랑하는 처제에 이어서, 금단의 사랑을 꿈꾸는 사람이 될 위기에 처하자, 나는 황급히 테오도르의 말을 막았다.
“제가 말한 사랑하는 사람은 저희 언니를 말한 거였어요.”
“……뭐?”
“제가 열심히 돈을 모은 이유는 아스텔라 언니 때문이라고요. 돈을 많이 벌어서 언니랑 행복하게 사는 게 제 꿈이었거든요.”
“그럼 이전에 편지는 왜 에뮬에게 보낸 거지?”
“그야 에뮬 오빠네 집으로 보냈으니까요. 랑시드 아주머니가 에뮬 오빠에게 편지를 전달하면, 에뮬 오빠가 아스텔라 언니에게 전해주기를 바란 거죠.”
“그럼 어제 소개를 할 때, 왜 그자를 언니의 연인이라고 소개하는 것을 망설인 거지? 가슴이 아파서 그런 게 아니었나?”
“적절한 호칭을 찾지 못했을 뿐이었어요. 떨어져 있는 동안 언니가 이미 결혼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연인이라고 소개를 해야 할지, 남편이라고 소개를 해야 할지 고민했던 거였어요.”
“그럼 아침에 사이좋은 두 사람을 아련하게 쳐다보고 있었던 건…….”
“제가 먹던 포크로 준 소시지라서요. 아스텔라 언니는 상관없지만, 에뮬 오빠는 그렇게까지 친한 사이는 아니라서 좀 찜찜했거든요. 그리고 전혀 아련하게 쳐다보지 않았어요.”
“그럼 네가 사랑한다는 사람이…….”
“아스텔라 언니입니다.”
내 대답에 테오도르는 잠시 멍하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뭔가 생각이 잘 정리되지 않는 듯한 표정이었다. 혹은, 이제까지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같은 표정이기도 했다.
“이제 제 차례죠?”
“뭐?”
“왜 아스텔라 언니를 처음 봤을 때, 그렇게 빤히 쳐다보셨어요?”
나는 테오도르가 그러라고 말하기도 전에 질문했다.
“아스텔라 언니는 예쁘니까 자기도 모르게 눈이 갈 수도 있긴 하지만, 제가 옆에 있는데도 홀린 듯이 언니를 쳐다보셨잖아요.”
“그야, 신기했으니까.”
“신기요?”
“너랑 닮았더군.”
“말도 안 돼요. 전 언니랑 닮았다는 이야기를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는데요. 머리카락 색깔만 빼고요.”
“무슨 소리야? 분명히 풍기는 분위기는 다르지만, 하나하나 뜯어보면 분명 닮았는데. 눈매도 좀 닮았고, 오뚝하고 귀여운 코는 아주 똑같았어. 그래서 신기해서 본 거였어. 과연 자매긴 하군, 하고.”
“그럼 방은 왜 굳이 2개를 준비하신 거죠? 에뮬 오빠랑 아스텔라 언니가 같은 방을 쓰는 것이 질투가 나서 그러신 것 아닌가요?”
“그건 맞아.”
역시!
“내가 아니라 네가 질투할까 봐 그런 거였지.”
“네?”
“나는 네가 에뮬을 좋아한다고 생각했으니까.”
“전혀 아닌데요!”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했어.”
“그, 그럼 아스텔라 언니가 산책하지 말라고 했을 때, 순순히 들어주신 건…….”
“옳은 말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분명 의사가 가벼운 산책은 좋다고 했지만, 어느 정도가 가벼운 산책인지 불분명하니까 조심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
“아스텔라 언니에게 유독 친절하고, 부드럽게 대하신 건 뭔가요?”
“네 언니니까.”
대답은 간결했다.
“이전에 네가 그랬잖아. 네 언니가 널 키우다시피 했다고. 널 키워준 사람이고, 네 가족인데 당연히 친절하게 대해야지.”
너무나 상식적인 대답이었다. 그래서 나는 할 말을 잃고야 말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내 취향은 너야.”
말 없는 나를 향해 테오도르가 다시 한번, 쐐기를 박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