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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103화 (103/169)

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 103

‘일이 왜 이렇게 됐지?’

나는 분명 아침 일찍 일어났는데,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것은 해가 저 나무 꼭대기에 걸릴 때쯤이었다.

정확하게는 두 번째로 몸을 일으킨 것이 말이다.

“왜?”

내가 밖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자, 테오도르가 물었다. 침대를 짚은 내 손을 커다란 자신의 손으로 덮으면서.

‘위험해!’

나는 순간 이대로 붙잡히면 오늘 아침에만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이 세 번째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재빨리 테오도르의 겹쳐진 손을 빼냈다.

동시에 빠릿하게 몸을 굴려 테오도르로부터 떨어졌다.

침대가 어찌나 광활한지 거의 내 팔 길이만큼이나 거리를 벌렸는데도 공간이 남았다.

“시간이 많이 늦었네요.”

“…… 그렇군.”

내가 느낀 것이 맞는다면, 지금 테오도르는 아주 살짝 삐진 것 같았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그와 자주 대화를 하다 보니 똑같아 보이는 목소리에도 약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배고프지 않으세요?”

“……약간.”

앗! 방금은 삐진 게 좀 누그러진 것 같은 목소리였는데? 역시 테오도르도 나처럼 배고픔에는 약한 걸까?

“그럼 일단 식사하고 나서 아까 하던 것을 마저 할까?”

“네?”

나는 당황해서 테오도르를 쳐다보았다.

마저라니요? 우리가 뭔가 덜 끝낸 게 있었나요? 제 생각에는 할 것 다 한 것 같은데요? 심지어 앞뒤로 골고루 하지 않았나요?

“왜 그런 표정이지?”

“그야…….”

이 19금적인 상황을 어떻게 15금 정도의 수위로 설명할 수 있을까?

“낮이잖아요.”

끝내 나는 설명을 포기하고, 상식을 들이댔다.

“그런데?”

하지만 의외로 테오도르는 상식이 통하지 않았다.

“낮에는 일어나서 뭔가 활동적인 걸 해야 하지 않을까요?”

“내 생각엔 매우 활동적인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맞는 말이었다. 매우 활동적이긴 했다. 다만, 너무 활동적이라서 다른 활동을 할 기력이 없어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딱히 할 일도 없지 않아? 다친 다리로는 차 시중도 힘들 테고, 인스트도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아! 있어요!”

맞다! 나는 오늘 할 일이 있었다.

사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테오도르를 찾은 것도 그 말을 하려고 온 것이었다. 어쩌다 보니 할 말은 아직도 못했지만.

“그 다리로 대체 무슨 일을 하려고? 누가 네게 일을 시켰지?”

테오도르는 대번에 인상을 찌푸렸다.

“아, 그런 일은 아니고요.”

내가 몸을 돌려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테오도르가 먼저 침대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번개같이 내 쪽으로 달려와 나를 부축했다.

좀 절뚝이며 걷긴 했지만, 그 정도는 아닌데.

“…….”

하지만 테오도르가 나를 챙겨주는 건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그 정도는 아니지만 부축을 받기로 했다. 히힛.

“어디를 가려고?”

“일단은 제 방에 가서 옷을 좀 갈아입으려고요. 그리고 식사하고 나서, 제가 말한 일을 좀 하려고 하는데요.”

바로 이 시점에서 테오도르의 허락이 필요했다.

“제가 카르오 저택의 서재에서 책을 좀 봐도 될까요?”

“뭐?”

“서재에서 책이요. 찾아보고 싶은 게 좀 있어서요.”

“책?”

“네.”

날 부축해서 걷던 테오도르가 갑자기 우뚝 멈춰 섰다. 덕분에 나도 멈춰 섰다. 방 한가운데에서 멈춰선 테오도르는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내 쪽을 향해서 천천히 손을 뻗어왔다.

뭐, 뭐야? 또?

아무리 남주의 체력은 무한하다지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그렇게 체력소모를 해놓고 또 가능하다고?

잠깐만! 나는 왜 또 눈을 감는 건데? 물론, 기분 좋긴 하지만, 이제는 배도 좀 고프고, 할 일도 있고, 아…… 근데 기분 좋긴 한데…….

“열은 없는 것 같은데.”

복잡한 머릿속은 테오도르의 말로 단박에 정리가 되었다. 눈을 번쩍 뜨자 자못 심각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는 테오도르가 보였다.

나를 향해서 뻗었던 손은 뺨이나 턱이 아니라 내 이마에 가 있었다.

그리고 그건 어떠한 로맨틱한 상황이 아니라 아까 말했듯이 열을 재보기 위한 의학적인 행위였다.

“책을 보겠다고? 정말로?”

아까보다 더 심각한 표정으로 테오도르가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책을 보겠다는 말이 이렇게 심각할 일인가? 내가 열로 인해 헛소리하는 것인가 떠볼 정도로?

이래 봬도 제가 전생에 전자책 책장에 천여 권의 책을 쌓아두고 본 사람인데요! …… 다 19금이긴 하지만. ……가끔은 15금도 있고.

……현생에서는 10권 이하긴 하지만.

“찾아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별로 나한테 플러스 되지 않을 것 같아서 참았다.

“뭘 찾아보고 싶은데? 내게 물어봐. 별채 서재에 있는 책은 거의 다 읽었으니까.”

“몬스터에 관한 책이요. 아니면, 괴수나, 신비한 동물이나, 여하튼 뭐 그런 책이요.”

“…….”

테오도르는 다시 말이 없어졌다. 그리고 다시 한번 손을 올려 내 이마를 짚었다.

그의 행동이 이해되긴 했다. 몬스터가 없는 세계관에서 갑자기 몬스터에 관한 책을 찾으니 이상한 애라고 생각될 것이다.

하지만 전생에도 현실에는 그런 것들이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에 관한 책은 있었다. 몬스터도, 흑마술도, 예언책도 있었다.

그 내용이 정확한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존재했고, 여기서도 존재한다면 참고가 될 것 같았다.

“네가 말하는 책은 없지만, 괴담 집 같은 것이라면 있어. 유령이나 귀신 이야기 같은 것들도 몇 개 있고.”

열이 없다는 것을 재차 확인하고, 내가 진지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자, 마침내 테오도르는 내가 진짜 그 분야의 책을 읽기를 원한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럼 그거라도 좀 읽어봐도 될까요?”

“얼마든지. 일단은 씻고, 옷을 갈아입고, 식사하고 나서 말이야.”

“좋아요.”

“빨리 책을 보고 싶다면 시간을 단축해야겠지?”

살짝 내 이마에 입을 맞추며 테오도르가 말했다. 나의 19금 마스터의 촉이 이다음에 테오도르가 할 말을 재빨리 유추해냈다.

“같이 씻는 건 안 돼요.”

가벼웠던 테오도르의 발이 또 우뚝 멈춰 섰다.

“어떻게 알았지?”

매우 의아한 표정이었다.

“그냥요. 어쨌든 안 돼요.”

“왜?”

“결론적으로는 그게 더 오래 걸릴 테니까요.”

같이 씻었다가, 그냥 씻기만 하고 끝나는 소설을 본 적이 없었다.

거기다가 옷을 갈아입다가도, 식사하다가도 일은 언제든지 진행될 수 있었다.

옷장 안, 욕실, 창문 앞, 식탁 위. 어느 곳이라도 가능했다.

하지만 그렇게 시간을 지체하다가는 서재에 도착하는 건 깜깜한 밤이 될 수도 있었다.

“이따가 봬요. 그러니까 각자 씻고 옷을 갈아입고 나서, 여기서요.”

나는 테오도르의 부축에서 벗어나 내 방으로 가는 커튼을 열어젖혔다.

“아! 식사는 3인분 같은 2인분으로요. 제가 배가 아주 고프거든요.”

커튼을 닫기 전, 나는 식사 주문까지 마쳤다. 테오도르는 아직 할 말이 남은 것 같았지만, 나는 재빨리 커튼을 쳐버렸다.

그렇지 않으면 테오도르가 말하는 것에 내가 또 홀려 버릴 테니까.

닫힌 커튼 너머로 큭큭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테오도르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뭐가 그렇게 재밌는 거지?

* * *

서재는 넓었고, 책은 많았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책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일단 네가 말한 것과 유사한 책은 이 정도인데, 네가 보는 동안 비슷한 책이 더 있는지 내가 찾아보도록 할게.”

테오도르는 능숙하게 책을 몇 권 빼서 내게 건네주었다.

“와~ 이렇게 많은 책 중에서 어떻게 그렇게 빨리 찾으세요?”

“별채 서재의 책 분류는 내가 해놓았거든. 어차피 이용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까.”

“그럼 제가 1호 손님인가요?”

“말하자면 그렇지.”

피식 웃으며 테오도르가 대답했다.

“더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 손님.”

“네.”

나는 킥킥 웃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책장을 펼쳤다.

처음 잡은 책은 귀신과 유령의 종류가 잔뜩 나와 있는 책이었다.

대륙 곳곳을 돌아다니며 취재했다는 작가는 그림 실력도 꽤 좋아서 자신이 들은 귀신의 인상착의도 제법 상세하게 책에 실어놓았다.

이건 뭐, 그림만 봐도 되겠네. 슬라임이 나오는지, 나오지 않는지만 보면 되니까.

나는 후루룩 책을 넘겼다. 하지만 아쉽게도 슬라임과 비슷한 귀신은 없었다.

동그란 귀신이 하나 있긴 했지만, 그건 통통 튀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희미한 빛을 내며 허공을 둥둥 떠다니는 귀신이었다.

‘좋아! 다음 책!’

나는 1권을 가볍게 해치운 것에 뿌듯해하며 다음 책을 집어 들었다. 이 속도라면 오늘 중으로 책을 다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얼른 책장을 열자, 이번에는 빡빡한 글자들이 나를 반겼다. 나는 그 글자들이 별로 반갑지 않았지만 말이다.

‘작가가 누구지? 음…… 미우사르으? 이 작가는 그림을 잘못 그리나 보네.’

나는 그림 없이 글자만 있는 것에 아쉬워하며, 글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는 A산자락에 위치한 B마을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예로부터 B마을은 화전으로 밭을 일궜다.

산짐승을 잡거나, 산에서 나는 열매들을 채취하기도 했지만, 주요 식량은 거의 화전에 의지했다.

그러던 어느 해, 봄이었다. 비가 오지 않았다. 가뭄이 들었다.

농작물이 마르기 시작했다. 젖먹이 아기를 키우고 있는 과부 아네시아의 밭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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