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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102화 (102/169)

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 102

‘몇 시쯤 되었지?’

흐뭇한 광경을 감상하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창문 쪽을 쳐다보았다. 밤에 커튼을 치고 잔 것인지, 커튼으로 바깥이 차단되어 있었다.

‘내가 일어난 지 꽤 됐으니까, 이제 슬슬 테오도르도 일어날 시간이 된 것 같은데…….’

고개를 두리번거려보지만, 시계가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뭐, 적당히 아침이니까 슬슬 테오도르를 깨워도 되지 않을까? 할 말도 있고.’

온종일 테오도르의 자는 얼굴만 보고 있으라고 해도 질리지 않을 만큼 얼굴 감상은 즐거웠지만, 해야 할 일이 있으니 종일 이러고 있을 수는 없었다.

차르르르륵.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커튼을 걷었다. 눈 부신 햇살이 방안으로 쏟아졌다. 오늘 날씨는 아주 화창했다.

“흐음…….”

빛에 예민한 건지, 테오도르는 인상을 슬쩍 찌푸리며 앓는 소리를 냈다. 그러다 슬쩍, 실눈을 뜨는 것이 보였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테오도르 님?”

나는 테오도르를 향해서 밝게 아침 인사를 건넸다.

조금 전까지 실눈을 뜨고 있던 테오도르의 눈이 대번에 커지는 것이 보였다. 아마 테오도르도 오늘 날씨가 너무 좋아서 놀랐나 보다.

“그래. 너도 잘 잤어, 레나티스?”

테오도르의 눈이 다시 실눈이 되었다. 이번에는 눈이 부셔서 찡그리느라 그런 것이 아니라, 웃은 탓이었다.

새하얀 시트와 이불에 쌓여 슬쩍 미소 짓는 부스스한 미남이라.

이쪽도 창문 너머에 만만치 않게 화창했다.

“이리 와 봐.”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 테오도르가 손을 뻗어 나를 불렀다.

“안 일어나시고요?”

“일어나긴 할 텐데, 잠시만.”

아마도 곧 테오도르를 깨우거나, 아침 시중을 들기 위해서, 오르디나 누군가가 올 것 같기는 한데, 잠시만이라니까 괜찮겠지?

나는 별 생각 없이 테오도르의 옆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테오도르는 뻗었던 그 손으로 내 손을 잡더니, 그대로 와락 잡아당겼다.

“앗!”

그대로 몸의 균형을 잃고 앞으로 넘어졌다. 푹신한 침대와 단단한 테오도르의 몸 위로.

그러자 내가 아침에 실컷, 그리고 몰래 감상했던 얼굴이 바로 코앞에 있었다. 눈을 똑똑히 뜬 채로.

“뭐, 뭐예요?”

괜히 얼굴이 붉어져서 말을 더듬었다.

“글쎄?”

테오도르가 몸을 움직였다. 순식간에 테오도르의 상체가 내 위로 드리워졌다.

그는 천천히 몸을 내려 자기 이마를 살며시 내 이마에 붙여왔다.

그러자 내 시야가 테오도르로 가득 차다 못해서, 앞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 되었다.

하지만 별로 앞을 볼 필요는 없었다. 키스는 눈을 감고 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부드럽게 테오도르의 입술이 내 입술을 덮었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내가 가만히 있자, 테오도르는 혀를 밀어 넣으며 내 입술을 벌렸다.

그저 놀랐을 뿐 그 행동이 싫었던 것은 아니었기에, 나는 별 저항 없이 입술을 벌렸다. 그러자 테오도르의 혀가 내 치아를 스치며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테오도르의 손이 그의 혀만큼이나 부드럽게 내 손목을 감아 왔다.

긴 손가락이 부드럽게 손목을 쓸고, 엄지가 손바닥을 문지르며 가로질렀다.

테오도르의 혀가 내 입안의 곳곳을 누비고, 입천장을 따라서 연한 살점까지 다다라 그 부분을 꾹 눌렀을 때, 어느새 테오도르의 손가락과 내 손가락은 서로 얽혀 있었다.

그래서 테오도르가 아찔하게 내 혀를 휘감거나, 녹진한 그의 혀가 내 입안을 자극할 때,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가 깍지를 낀 테오도르의 손을 꽉 잡게 되었다.

그럴 때마다 테오도르는 내 반응이 기껍다는 듯, 그 부분을 더욱 집요하게 자극했다.

견디다 못한 내가 가슴을 들썩이고, 발바닥으로 침대 시트를 밀어낼 때까지.

“하아…….”

테오도르가 잠시 입을 뗀 사이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아침에 하기에는 너무 농밀한 키스였다.

물론, 그렇다고 싫지는 않았다.

“꿈인 줄 알았어.”

내 입술을 부드럽게 핥아 올리며, 테오도르가 속삭였다. 마치 제 입 안에 있던 말을 직접 내게 먹여주는 것 같은 속삭임이었다.

“햇살 속에서 눈부시게 웃고 있는 네 모습이 너무 예뻐서, 꿈인 줄 알았어.”

기나긴 키스로 산소가 부족했던 것 때문인지, 아니면 다시 이어질 키스에 대한 기대감 때문인지, 약간 몽롱했던 나는 테오도르의 말을 온전히 알아듣는 데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네?”

그리고 너무 허황한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되묻고야 말았다.

“햇살 속에서 웃고 있는 네가 너무 눈부시게 예뻐서, 순간 나는 내가 아직 꿈을 꾸고 있는 줄 알았다고.”

약간의 단어와 배열이 다르긴 했지만, 테오도르는 조금 전과 똑같은 말을 내 뺨에 키스하며 말했다.

이 황당무계한 찬사에 분명히 붉게 변했을 뺨에.

“자, 잠결에 봤어도 제가 그렇게 예쁘지는 않을걸요?”

“아, 그래. 그건 맞아.”

테오도르는 순순히 내 말에 긍정했다. 너무 쉽게 받아들여서 조금 서운하기까지 했…….

“넌 꿈에서 본 것보다, 실제로 보는 게 더 예쁘거든.”

전혀 서운하지 않았다!

“그리고, 난 그렇게 좋은 꿈을 꾼 적이 없어. 그래서 알았지. 꿈이 아니라는 걸.”

어느새 테오도르의 목소리는 내 귓가에 가 있었다. 귓바퀴를 타고 올라오는 낮은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움찔 떨었다.

그러자 괜찮다는 듯, 손깍지를 낀 테오도르의 손이 내 손을 꼭 잡아 왔다.

“좋은 꿈을 꾼 적이 없어요?”

“그래.”

“한 번도요?”

막 테오도르의 입술이 내 귓바퀴에 닿으려는 찰나에 나는 고개를 홱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살짝 내밀고 있었던 테오도르의 입술에 내 입술이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아깝…… 이 아니고!

“꿈을 안 꾸세요?”

“그건 아니야.”

“그럼…….”

나는 설마설마하며 입을 뗐지만, 차마 뒷말을 이을 용기는 나지 않았다. 내 예상이 맞는다면, 그건 정말 최악이었다.

“꿈을 가끔 꾸긴 하지만, 전부 악몽밖에 없어.”

“하, 하지만, 이전에 오드리 님에게 들었을 때, 테오도르 님은 밤에 아주 잘 주무신다고…… 악몽같은 건 꾸지 않는다고 하셨는데요.”

“내가 어린애도 아닌데, 오르디에게 어젯밤 꾼 꿈에 대해서 짱알거리며 이야기하지 않으니까. 그리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늘 악몽을 꾸는 것은 아니야. 오히려 꿈은 잘 꾸지 않는 편이야. 다만, 이제껏 꾸었던 꿈은 전부 악몽이었어.”

그것이 당연한 일상이라는 듯이 테오도르는 별 표정의 변화도 없이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내 예상이 맞아버리자 가슴이 덜컹했다.

잠이라는 것이, 꿈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건데, 악몽밖에 꾸지 않는다니! 푹 자고 개운하게 일어난 날은 그렇게 컨디션이 좋을 수 없었고, 좋은 꿈을 꾼 날은 온종일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꾸는 꿈은 악몽뿐이라니!

아무리 피폐물 남자주인공이라고 하더라도 이건 너무 심하잖아!

심지어 이건 누가 도와줄 수도 없는 문제였다.

“저를 부르세요!”

나도 모르게 테오도르를 와락 껴안고 말았다.

실상은 테오도르의 머리가 나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데다가, 내 체구가 더 작아 내가 테오도르의 어깨에 얼굴을 기대고 안긴 것 같은 형상이었지만, 적어도 내 심적로는 그랬다.

나는 악몽밖에 꾸지 않는다는 테오도르를 안아주고 싶었다.

“악몽을 꾸면, 절 부르세요. 그럼 제가 테오도르 님을 깨워드릴게요. 아니면 손을 잡고 자 드릴까요? 나쁜 꿈을 꿨을 때, 언니 손을 잡고 다시 잠이 들면 꿈을 이어서 꾸지 않았거든요.”

“…….”

테오도르는 잠시 대답이 없었다.

내 조언이 허무맹랑하다고 생각해서 그럴지도 몰랐다.

꿈이라는 것은 당사자도 조절할 수 없는 것인데, 고작해야 손 좀 잡는다고 악몽을 꾸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지도 몰랐다.

“……그럴까?”

하지만 한 박자 느리게 돌아온 테오도르의 대답은 기분 좋은 긍정을 담고 있었다.

“네 손을 잡고 잠이 들면, 악몽을 꾸지 않을지도 모르지.”

부드러운 입술이 내 이마에 지그시 닿았다.

“넌 언제나 날 구해주니까, 악몽으로부터도 날 구할 수 있을지도 몰라.”

“제가요? 테오도르 님이야말로, 이번에 저를 구해주셨잖아요.”

“그전에 네가 나를 광증에서 구했지. 문까지 부숴가면서 말이야.”

테오도르가 내 콧잔등에 입을 맞췄을 때, 작은 웃음소리가 느껴졌다.

그가 웃는 것이 맞는지 확인하려 고개를 들자, 작은 미소를 머금은 입술이 내 입술에 가벼운 입맞춤을 했다.

“레나티스.”

다시 입술이 닿기 전, 테오도르가 내 이름을 불렀다.

지금부터 키스하려는 사람이 누구인지 분명히 해두려는 것처럼.

“내 인생은 너를 만나고 나서 달라졌어.”

손이 부드럽게 다시 얽혔다. 그리고 테오도르의 시선과 내 시선이 부드럽게 얽히었다.

“하고 싶은 것이 생기고, 가지고 싶은 것이 생기고, 삶은 의미를 찾았어.”

봄바람처럼 가벼이 스치는 목소리였지만, 그 의미는 가을바람처럼 내 가슴을 일렁이게 했다.

“모두 너로 인한 것이야.”

이 모든 말들이 진실이라는 것을 맹세라도 하듯, 테오도르는 진중하게 내 입술에 자신의 입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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