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 101
장례식을 가본 적은 거의 없었다.
조그만 우리 마을은 사람이 적었고, 죽는 사람도 그만큼 적었다. 장례가 치러진 적은 딱 1번뿐이었다.
그것도 내가 아주 어렸을 때였고, 고인은 잘 모르는 할머니였다.
제법 오래 병석에 있던 분으로 아주 가끔 창문 너머를 바라보는 모습을 몇 번 봤을 뿐이었다.
그래도 언니 손에 이끌려 장례식에 참석한 이유는 철딱서니 없게도, 거기에 가면 먹을 게 있다고 해서였다. 그것도 맛있는 것으로.
하지만 정작 장례식에 가서는 제대로 먹지 못했다.
처음 본 시신은 너무나 사람 같으면서도 사람 같지 않아서 무서웠다.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울고 있었고, 가끔 고인과의 추억을 회상하며 웃는 사람에게서도 슬픔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결국, 나는 왠지 모를 무서움에 엉엉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었다.
“앗! 테오도르 님!”
그래서 테오도르가 오면 밝게 반겨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장례식은 슬픈 장소였고, 우울한 곳이었다. 설사 서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가족의 장례식이라면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지 않을 것 같았다.
“오셨어요?”
나는 될 수 있는 한 밝은 목소리로, 그리고 환한 미소로 테오도르를 맞았다.
“…….”
그리고 나를 본 테오도르가 멍해진 것을 보며 얼른 미소를 거두고 입술을 깨물었다.
‘이게 아닌가 봐.’
그래. 아무리 그래도 어머니의 장례식인데 웃는 낯으로 맞이하는 것은 아니었는지도 몰랐다.
특히나, 테오도르는 예법이나 도덕 같은 것을 중요시하며 자란 귀족이니까 더 그럴지도 몰랐다.
“아, 저기. 죄송해요, 테오도르 님. 어머님의 장례식을 치르고 오셨으니 기분이 좋지 않으실 텐데, 제가 눈치 없이…….”
애써 미소를 짓는 테오도르를 보며 나는 조심스럽게 사과의 말을 건넸다.
“아니야.”
착한 테오도르는 다급히 손을 저으며, 내가 실수한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했다.
“확실히 기분이 좀 이상하긴 해.”
조이고 있던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테오도르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테오도르가 이렇게 차려입은 것을 보는 건 오랜만이었다.
예전에 상점가에 갈 때랑 카르오 대공을 처음 보았을 때 멀리서 본 모습 정도였다.
아주 불손하게도, 나는 테오도르의 장례식장 복장이 꽤 근사하다고 생각해버렸다.
“솔직히 말해서 아침에 일어나서도 별생각이 없었어. 씻고, 식사하고, 옷을 차려입을 때도 마찬가지였고.”
테오도르는 의자에 앉았고, 나도 쪼르르 따라가서 그 옆에 앉았다.
혼자 앉을 수 있는 1인용 의자가 있었음에도 굳이 2인용 의자에 앉은 것은 그러라는 뜻이라고 굳게 믿으면서 말이다.
“아마 장례식에 참석해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생각했어. 별 느낌이 없을 거라고 말이야. 그 여자는…… 내 어머니는 나를 싫어했어. 나 역시 마찬가지였고. 심지어 나를 죽이려고까지 했지. 서로 싫어하는 사이이니 죽어도, 장례식에 참석해도, 별 느낌이 없으리라 생각했어.”
“하지만 아니었죠?”
내 질문에 테오도르는 어떻게 알았냐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 시선이 나의 질문에 대한 대답임을 알았다. 별 느낌이 없으리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고.
그리고 나는 테오도르가 한 무언의 질문에 씁쓸한 미소로 답했다.
“저도 아버지의 죽음에 그것과 비슷한 감정을 느꼈으니까요.”
“……!”
테오도르의 입이 살짝 벌어지며, 당황스러운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그리고 약간의 미안함도.
나는 괜찮다는 뜻으로 살짝 미소 지으며 테오도르의 앞으로 한발 다가갔다.
“분명히 싫어해요. 그 사람이 내게 한 짓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죠. 아주 가끔은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었죠. 그 사람이나 나나, 둘 중의 하나는 없어지면 좋겠다고.”
천천히 고개가 기울었다. 그러다 툭, 하고 내 머리가 닿은 곳은 테오도르의 어깨였다.
나는 테오도르의 어깨에 기댄 체, 내 안에 꾹꾹 눌러 담겨 있던 감정을 다시 끄집어냈다.
“그런데 항상 마음 한편으로는 기대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아버지가 바뀌지 않을까? 새사람이 되지 않을까? 그래도 딸인데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조금은 있지 않을까? 아주 약간의 애정이라도 내게 줄 가능성은 없을까?”
헛된 바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사람이 그렇게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랐다.
“그래. 맞아.”
툭, 테오도르의 머리가 내 쪽으로 기대어 왔다.
“몇 번이나 발에 채고도 다시 주인을 보면 꼬리를 흔들고야 마는 강아지처럼 나도 모르게 그쪽을 바라보게 되지. 혹시나, 혹시나, 혹시나…….”
테오도르의 비유는 슬플 정도로 적절했다.
그들은 끝끝내 애정의 부스러기 한 톨도 주지 않고, 그렇게 떠났다. 어쩌면 우리는, 테오도르는, 나는, 마지막까지 버림받은 것인지도 몰랐다.
그리고 우습게도, 완벽하게 버림받은 이 순간이 마침내 완전히 벗어난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미워하지만, 온전히 미워하지 못한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심정은 참으로 복잡하고도 미묘했다.
무어라고 설명하기 힘든 이 감정은 직접 겪은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테오도르와 나는 똑같은 처지였기에 누구보다도 서로의 감정을 이해하고 있었다.
슬프지만, 슬프지만은 않은.
기쁘지만, 기쁘지만은 않은.
“…….”
“…….”
조용히 눈을 감았다.
테오도르의 백단향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의 온기가 피부로 전해졌다.
따스했다. 몸도, 마음도.
* * *
이건 분명 악몽이었다.
‘다, 답답해…….’
나는 산사태에 휩쓸려 몸이 커다란 바위와 엄청난 흙에 파묻혔다. 온몸은 꼼짝할 수 없었고, 특히나 가슴이 답답해서 숨쉬기가 힘들었다.
‘아, 안돼…… 죽을 것…….’
아무리 애를 써도 숨이 반쯤밖에 들어오지 않는 것 같았고, 가슴은 무언가에 짓눌린 것처럼 답답했다.
괴로움에 몸을 흔들다가, 문득 눈을 뜨자 매우 평화로운 방안 광경이 보였다.
“어?”
당황한 목소리가 내 입속에서 저절로 새어 나왔다.
“꿈?”
그리고 매우 현실적이고 합당한 결론을 내렸다. 내가 산사태에 휩쓸린 것이 꿈이었다는.
“무게감이 분명 진짜 같았는데.”
아침부터 재수 없는 꿈을 꾸었다고 생각하며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꿈속에서처럼 무언가가 내 몸을 짓누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뭐야? 아직 잠에서 덜 깼…….”
그리고 고개를 들어 그것의 정체를 확인한 순간,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반투명한 분홍색의 무언가가 내 시야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뭐, 그래도 반투명한 재질이다 보니 몸체 너머로 볼 건 다 보이긴 했지만.
“스기엔?”
나는 조용히 내 가슴을 짓누르고 있는 커다란 분홍색 덩어리의 이름을 불렀다.
“…….”
하지만 곤히 잠든 것인지 스기엔은 대답이 없었다. 손가락으로 몸체를 쿡쿡 찔러보지만, 마찬가지였다.
“어쩔 수 없지, 뭐.”
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양쪽으로 스기엔을 잡아다 옆으로 살며시 내려놓았다. 그제야 숨통이 트였다.
“푸아아~.”
내가 자기를 내려놓은 것을 전혀 모르는지, 스기엔은 코까지 골면서 잘도 잤다.
“…… 이렇게 보면, 그냥 평범한 슬라임인데 말이야.”
평범한 슬라임이라는 말은 뭐가 이상하긴 하지만, 적어도 존재하지 않는 존재라는 형이상학적인 표현보다는 평범했다.
“넌 어떤 존재인 거야?”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자, 대답이라도 하듯이 아침 햇살을 받은 스기엔의 몸이 반짝거렸다.
너무도 평화로운 모습에 나는 잠시 스기엔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의문을 잊고…….
“크하아아아아~.”
…… 그냥 존재의 의미를 잊는 게 나은 게 아닐까?
아기같이 포동포동한 몸에 어울리지 않는 스기엔의 아저씨 같은 코골이 소리를 들으며 나는 잠시 방금 내가 느낀 평화로운 아침에 대한 감상이 퇴색되는 것을 느꼈다.
“아! 이 느낌을 정화할 만한 게 있지!”
나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리고 스기엔이 자는 침대에서 내려왔다.
내가 부숴놓은 문은 아직 커튼이 쳐져 있는 상태였다.
수리공의 말로는 문이 무슨 소가 들이받은 것처럼 부서진 상태라 고치는 것은 불가능하고, 새로 문을 짜야 한다고 했다.
카르오 저택에 어울리는 최고급 자재로, 현재의 인테리어에 어울리는 세련되면서도 고풍스러운 디자인으로 오르디는 주문했고, 그런 문은 하루 이틀 만에 뚝딱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새로운 문이 완성되기 전까지 당분간은 계속 커튼이 쳐져 있을 예정이었다.
‘어휴, 오늘도 잘생겼네.’
덕분에 나는 이렇게 살금살금, 약간 절뚝거리는 까치발로 소리도 없이 커튼을 젖히고 테오도르의 침실로 갈 수 있었다.
그리고 침대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자는 테오도르의 잘생긴 얼굴을 흐뭇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눈 뜬 테오도르에게 투표한 나였지만, 아무래도 눈 감은 테오도르도 포기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것도 잘생겼으니까.
거기다가…….
‘헤헷. 내 남친 잘생겼당~.’
쓸데없는 뿌듯함이 가슴속에 차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