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 099
“세상에! 갑자기 이게 무슨 변고인지 모르겠어!”
클레어의 호들갑에 나도 모르게 시선을 다른 곳으로 향했다.
클레어가 말하는 변고가 사실은 변고가 아니고, 말 못 할 사연이 있는 죽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참 세상일 모를 일이야. 그런 치정 살인은 신문에서나 나오는 일인 줄 알았는데, 내가 일하는 저택에서 일어나다니!”
“그러게.”
“안 그래도 장례식 준비로 손발이 다 닳을 것 같은데, 여기저기 사방에서 무슨 일이냐고 꼬치꼬치 캐묻는 통에 더 바쁘지 뭐야? 입단속 단단히 하라고 하지만, 이미 아는 사람은 다 알더라고.”
“그래. 맞아.”
나는 적당히 맞장구를 치며 음식을 삼켰다. 아침을 먹으러 내려오길 잘했다고 생각하면서.
어제는 테오도르와 함께 온종일 테오도르의 침실에서 식사도 하고 뒹굴뒹굴했다.
오늘 아침에도 테오도르는 그러자고 했지만, 나는 정중히 사양하고 식당으로 내려온 참이었다.
내가 며칠째 보이지 않으면, 클레어가 걱정할 거고, 그러면 내 방으로 찾아올 거고, 그러면 부서진 문을 보게 될 거고, 그 꼴을 보고는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지 않을 수가 없을 테니까.
그리고 당연히 나는 적절한 대답을 할 수가 없겠지.
‘차라리 내가 내려와서 사건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알아볼 겸 얼굴을 비추는 게 낫지.’
모든 일은 카르오 대공이 말한 대로 되어 있었다.
카르오 대공비가 수족처럼 부렸던 그 호위 기사는 알고 보니, 그녀가 결혼하기 전부터 그녀의 호위 기사였던 사람이었다.
대공비가 결혼을 한 이후에도 줄곧 그녀의 곁을 지켰던 터라, 그가 대공비를 오래전부터 사모하고 있었다는 이야기에 더욱 힘이 실렸다.
그리하여 그가 오랜 외사랑을 대공비에게 참다못해 고백하였으나 대공비가 매몰차게 거절하자, 끝내 그가 그녀를 죽이고 자신 또한 자살했다는 이야기가 사람들 사이에 퍼져 있었다.
웃긴 것은, 평소 대공비가 저택의 고용인들을 매우 혹독하게 대했다는 것이었다.
조금이라도 잘못을 하면 신랄한 폭언을 퍼붓고, 그 호위 기사의 손을 빌려 매질도 서슴지 않았다고 했다.
전에 그…… 아……. 또 이름이 기억이 안 나네. 어쩌고저쩌고하는 백작 영애가 자기 하녀를 시켜 날 때렸듯이 말이다.
어쨌든, 그런 대공비의 행실 탓에 그녀가 호위 기사의 고백을 그저 좋게 거절한 것이 아니라, 매우 모욕감을 주며 거절했을 것이라고 추측했고, 그래서 그 손버릇 나쁜 호위 기사가 살인을 택한 것이 아니겠냐는 매우 그럴듯한 소문이 이미 퍼졌다는 것이었다.
‘자업자득인 걸까?’
만약 대공비가 평소에 상냥한 사람이었다면, 또 그 호위 기사가 고용인들을 때리는 것에 주저함이 있었다면, 카르오 대공이 아무리 그럴듯한 소문을 퍼트렸더라도 사람들이 믿지 못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제법 그럴듯한 두 사람의 관계에, 대공비의 성격, 호위 기사의 폭력이 더해져, 두 사람의 죽음에 대한 진실은 아주 완벽하게 가려지고 말았다.
‘아니, 어쩌면 그런 것마저도 다 노리고 그런 계략을 꾸민 걸까?’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무서운 사람…….’
이 모든 일을 꾸민 사람이 카르오 대공이라는 것을 떠올리자 오싹해졌다.
‘어떻게 자기 부인을, 그것도 20년이 넘게 같이 살고, 자기 아들까지 낳은 사람을 그렇게 죽일 수가 있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나 냉혹하고, 잔인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하긴, 이전에도 자기 아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했지?’
나는 이미 20년 전에 죽은 테오도르의 형을 떠올렸다.
‘자기 가족에게까지 그러니,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라면…….’
생각의 꼬리는 아버지와 어머니에게까지 닿았다. 그러자 우울감이 어디선가 와락 나를 덮쳐왔다.
“그런데, 레나티스.”
“응?”
아주 다행히, 내 기분이 완전히 바닥을 치기 전에 명랑한 클레어의 목소리가 나를 끄집어 올렸다.
“그 다리는 어떻게 된 거야?”
클레어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내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오르디에게 부탁해서 새로운 하녀복을 받았고, 상처는 당연히 치마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지팡이를 짚고, 절뚝이는 것을 클레어는 이미 본 뒤였다.
“좀 다쳤어.”
“어떻게?”
“어쩌다 보니까.”
나는 애매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상처의 사연은 당연히 클레어에게 털어놓을 수 없었다.
이건 테오도르의 비밀과 대공비 죽음의 비밀과 호위 기사 죽음의 비밀과 우리 집안의 비밀이 얼기설기 섞인 사연의 상처였다.
“또 나쁜 놈을 혼내준 거야?”
“음…… 비슷해.”
내가 직접적으로 혼내 준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된 셈이었다.
“우와! 대단해, 레나티스!”
클레어는 반짝반짝 눈을 빛내며, 나를 바라보았다. 입안에 씹던 감자가 보일 정도로 입도 떡 벌리고 있었다.
“아니, 뭐,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고.”
나는 조용히 클레어의 턱을 올려주며 말했다. 사실이 아닌 걸로 칭찬을 받으려니 민망했다.
“대단한 게 아니긴! 완전 대단하지!”
“에이, 아니야.”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레나티스가 제일 강하고, 제일 겸손한 것 같아.”
“진짜 아니야. 나보다 인스트님이 훨씬 강하고, 또 저택에 있는 기사님들이 나보다 훨씬 강할걸?”
“하지만 나쁜 놈들을 혼내주는 건 늘 레나티스잖아? 레나티스가 제일 멋있어!”
“어휴! 이러다가 진짜 내가 드래곤 원정대에 참가해서 공주님을 구하러 간다고 소문나겠다.”
나는 손사래를 치며 클레어의 말을 부정했다.
“레나티스도 참! 또 엉뚱한 이야기를 하네. 세상에 드래곤이 어딨어?”
“왜? 사람들이 모르는 아주 먼 곳에 있을 수도 있지.”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내 방에는 슬라임이 있는데, 저 깊은 숲속에는 웨어울프가 있고, 아주 먼 고성에는 드래곤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은가?
“말도 안 돼! 우리 일곱 살짜리 조카도 그런 이야기는 이제 안 믿어. 이번에 빠진 이도 배게 밑에 두지 않는걸? 덕분에 언니는 돈이 굳었다며 좋아했지만.”
클레어는 까르르 웃으면서 입에 있는 감자를 씹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클레어의 행동에 나는 아주 미묘하게 이상한 것을 느꼈다.
“그래? 요즘 애들은 이빨 요정 같은 건 믿지 않는 모양이야?”
“응. 다 컸대.”
“드래곤도 없다고 하고 말이지?”
“그렇다니깐. 예전엔 장래 희망이 드래곤이라고까지 했던 애인데.”
“그럼…….”
질문을 하려는 내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웨어 울프나, 트롤 같은 건?”
“응?”
“아니면 슬라임같은 것도 믿지 않아?”
포크로 완두콩을 집으려 애쓰던 클레어가 고개를 돌렸다.
“그게 뭔데?”
내가 무슨 질문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듯이 클레어는 나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몬스터 같은 것 말이야.”
나는 어쩌면, 아주 어쩌면, 클레어가 평범한 하녀라서 그런 것을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귀족 저택의 주방에서 일하는 평범한 하녀는 몬스터의 자세한 이름은 모를 수도 있었다.
“사람이 아닌, 그러니까, 커다란 마물이나 괴물 같은 것. 그러니까…… 어…….”
점점 나는 횡설수설하고 있었다. 몬스터를 모르는 사람에게 몬스터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뭐야! 레나티스, 밤에 무슨 꿈이라도 꾼 거야?”
클레어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내가 아주 황당한 말을 했다는 듯이 해맑게 웃었다.
그런 순진무구한 클레어의 표정에 나는 공포로 얼어붙고 말았다.
내가 믿었던 세계관이 와르르 무너지고 있었다.
* * *
나는 조심스럽게 내 방문을 열었다. 며칠 비웠던 방은 조용히 나를 맞이 했다. 부서진 문의 자리에는 임시로 커튼을 막아놓은 것이 보였다.
“스기엔?”
나는 조심스럽게 내 방에 사는 내 친구의 이름을 불렀다.
“…….”
하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저절로 마른침이 꼴깍 삼켜졌다.
이제까지 내가 헛것을 본 건가? 그럴 리가 없었다.
나는 분명히 이 저택에 온 첫날, 지하 감옥에서 스기엔과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쭉 함께 지냈다.
과일을 먹는 스기엔을 분명히 보았고, 말랑말랑한 스기엔의 감촉도 분명히 느꼈다.
‘하지만, 이 세계는 몬스터가 없다잖아.’
내가 전생에 보았던 로맨스 판타지 소설 중에서는 종종 몬스터나 이종족이 나오는 소설도 있었다.
그리고 애초에 <카르오의 인형>은 남주는 광증의 저주를 받았고, 여주는 체액으로 그 광증을 치료하는 마녀라는 설정이었다.
저주와 마녀가 있으니 몬스터가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지금 내가 사는 세계 역시 몬스터가 존재하는 세계관이라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클레어는 내가 당연하게 믿었던 그 사실을 부정했다. 그런 것은 없다고, 이 세계는 그저 평범한 세계라고.
‘그럼 스기엔은 뭐지?’
알 수 없었다. 혼란스러웠다.
어쩌면, 이제까지 헛것을 보고, 헛것과 대화하고, 헛것과 친구를 맺은 것일 수도 있었다.
“스기엔!”
나는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존재의 이름을 힘껏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