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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92화 (92/169)

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 092

“그게 당신 계획이군요?”

손에 힘이 저절로 들어가 주먹이 쥐어졌다. 그리고 뱃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거리며 목구멍으로 솟아오르려고 하고 있었다.

“날 지하 감옥에 가둬서 테오도르의 광증을 더 심하게 만들려는 거죠? 그래서 테오도르가 견디지 못하고 죽거나, 자기 형처럼 카르오 대공이 죽이라고 명령하게 만들려는 거죠?”

대공비는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저 슬쩍 미소 지었을 뿐이었다. 자기 계획을 알아낸 내가 퍽 기특하다는 듯이.

“내가 그렇게 둘 것 같아?”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몸을 홱 틀어 옆방과 연결된 문을 쳐다보았다.

훌륭한 저택의 중요한 사람이 쓰는 방의 문답게 그 문은 아주 두껍고 튼튼해 보였다.

하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살짝 뒤로 물러서서 닫힌 문을 노려보았다.

“하? 지금 문을 부수려는 거니? 그게 가당키나 하다고 생각해? 멍청하긴.”

대공비가 나를 비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내 몸을 그대로 문에 들이박았다.

“시간 낭비를 해서 날 도와주려는 거라면 아주 기특…… 꺄악!”

대공비의 입에서 비명이 나온 것과 동시에 부딪힌 몸에서 얼얼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내 몸은 그대로 앞으로 쓰려졌다.

“마, 말도 안 돼. 이, 이게 대체…… 무슨…….”

뒤통수에서 대공비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문에 부딪힐 때 질끈 감았던 눈을 번쩍 떴다. 부서진 문의 잔해 속에서 나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순간, 찌르는 듯한 고통이 다리에서 느껴졌다. 아래를 내려다보자 손가락 정도 굵기의 나무 파편 하나가 허벅지에 박혀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옆으로 붉은 피가 점점 배어 나오는 것 역시.

하지만 나는 그것에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아직 문이 하나 더 남아 있었다.

“아, 안돼!”

내 눈이 남은 문에 향해있는 것을 본 대공비는 경악했다.

고개를 돌리자, 부서진 문의 파편에 맞기라도 한 것인지 한쪽 뺨에 피를 흘리고 있는 대공비가 나를 향해서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눈을 부릅뜬 채, 허겁지겁 달려오는 그녀의 모습은 조금도 우아하지 않았다. 오히려 없어 보이기까지 했다.

그녀에게서 눈을 홱 돌리고, 나는 문을 바라보았다.

‘저 너머에 테오도르가 있어.’

나는 허벅지에 단단히 힘을 주고, 그대로 문을 향해서 내달렸다.

“안돼애!!”

내 뒤편에서 대공비의 목소리가 비명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문을 향해서 내 몸을 내던졌다.

문은 아까와 똑같이 부서졌다.

“테오도르!”

나는 벌떡 몸을 일으키고, 테오도르를 찾았다.

커튼을 쳐서 어두컴컴한 방은 마치 아무도 없는 것처럼 고요했다. 어떤 움직임도 쉽게 보이지 않았다.

드리워진 커튼, 함께 고구마를 구워 먹었던 벽난로, 어려운 제목이 쓰인 책이 놓인 테이블과 의자를 지나, 침대에까지 이르렀을 때, 나는 비로소 웅크려진 형체를 발견했다.

그것은 이전에 욕실에서 나쁜 놈의 습격을 당했던 내게 테오도르가 덮어주었던 담요였다.

“테오도르!”

내가 그의 이름을 부르자 담요가 움찔 떨렸다. 그리고 그 담요 안, 웅크린 어둠 속에서 붉은빛 두 개가 천천히 떠올랐다.

“괜찮아요, 테오도르 님. 나예요.”

나는 그를 안심시키려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천천히 담요가 걷히고, 테오도르가 모습을 드러냈다.

붉은 눈과 입술을 비집고 나온 송곳니, 잡아 뜯은 것인지 군데군데 단추가 사라진 셔츠, 그리고 날카로운 손톱.

테오도르는 완연한 광증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히이익!”

내 뒤쪽에서 비명이 들렸다.

“괴, 괴, 괴물!”

혐오감과 두려움이 가득 베인 목소리로 대공비가 소리치는 것이 들렸다. 그 목소리와 단어에 테오도르가 몸을 굳히는 것이 보였다.

황급히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또 세게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대공비가 내 방의 문을 열고 달아난 모양이었다.

그러든가 말든가 나는 오로지 테오도르만을 바라보았다.

“아니야.”

테오도르의 날카로운 송곳니가 제 입술을 깨물려는 찰나였다. 나는 또렷한 목소리로 테오도르에게 말했다.

“괴물이 아니에요.”

천천히 테오도르를 향해서 다가갔다.

괴물이 아니었다. 테오도르였다.

어떻게 변한다고 해도, 테오도르는 테오도르일 뿐이었다.

“여전히 상냥하고, 다정한, 테오도르 님이에요.”

푹신한 침대가 내 무릎에 닿자, 나는 그대로 그 위에 무릎을 대었다. 아찔한 통증이 허벅지에서 느껴졌지만, 나는 무시했다.

그대로 무릎걸음으로 테오도르에게 다가갔다.

분명 힘들 텐데 날 덮치지도, 다가오지도 못하고 있는, 상냥하고 다정한 테오도르에게.

“테오도르 님.”

“크으……!”

내가 담요 속으로 손을 뻗으려 하자, 테오도르는 목구멍에서 끓어오르는 듯한 위협적인 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 소리는 내게 위협으로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에게 다가오면 위험하다는 경고를 보내는 상냥한 목소리로 들렸을 뿐이었다.

“도…… 망가.”

내가 물러서지 않자, 마침내 테오도르는 입을 열었다.

평소 테오도르의 목소리와는 달랐다. 날카로운 송곳니 때문인지 어딘지 불분명한 발음이었고, 듣기 좋은 중저음이었던 목소리는 그것보다 훨씬 낮고 거칠었다.

“난 괴물이야……. 널 다치게 만들고 말 거야…….”

거짓말이었다.

“널 죽일지도…… 몰라.”

저렇게 슬픈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사람이 날 해칠 리 없었다. 자기가 저렇게 고통을 받고 있으면서 내 걱정을 하는 사람이 날 죽일 수 있을 리 없었다.

“나는 테오도르 님을 믿어요.”

나는 웃으며 손을 다시 내밀었다.

“테오도르 님이 나를 다치게 할 리가 없어요.”

소리가 멈췄다. 테오도르의 붉은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렇죠?”

그리고 내 손이 테오도르의 뺨에 닿았다. 그러자 테오도르가 놀라며 다급히 제 몸을 뒤로 물렸다.

상냥한 사람.

다정한 남자.

겉모습은 변했지만, 속은 다정하고 상냥한 테오도르 그대로라는 것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자 저절로 미소가 흘러나왔다.

“부탁할게요.”

다시 무릎을 앞으로 내딛자, 내 앞에 침대가 아래로 꺼졌다. 허벅지에서 짜르르한 아픔이 느껴졌지만, 나는 얼굴에 띤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내가 당신을 도울 수 있게 해줘요.”

나는 그야말로 테오도르에게 부탁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내가 할 수 있게 도와줘요.”

어쩌면, 부탁이 아니라 애원일지도 몰랐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가 하게 도와주세요.”

나는 다시 한 걸음을 내디뎠다.

이제는 아까보다 더 가까이 테오도르에게 다갈 수 있었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도 테오도르의 모습이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자신의 손톱에 긁힌 듯, 피맺힌 붉은 선이 테오도르의 목에서 보였다.

어디론가 달아나 버린 단추 때문에 벌어진 셔츠 사이로 역시나 날카로운 것에 긁힌 상처가 보였다.

잇자국이 선명한 주먹도, 흔들리는 눈빛도, 거친 숨이 새어 나오는 입술도, 모두 보였다.

나의 테오도르가 보였다.

“다쳤…… 어?”

그리고 테오도르도 비로소 내가 선명히 보였던 모양이었다. 그는 내 허벅지에 박힌 나무 파편과 피를 발견하고 물었다.

“다친, 거야? 레나티스?”

“그래요.”

나는 상처를 숨기지 않았다.

“다쳤어요. 그러니까 날 거부하지 말아요. 테오도르 님이 도망간다면 난 쫓아갈 거고, 그러면 상처가 더 벌어질지도 몰라요.”

오히려 내 상처가 테오도르의 큰 약점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용했다.

“안돼. 레나티스…….”

“제발요.”

“레나티스, 제발…….”

“제발…… 그대로 있어요.”

우리는 서로에게 빌고, 애원했다.

제발 도망가라고.

제발 도망가지 말라고.

“제발요…….”

그리고 상냥한 테오도르는 끝내 내게 져주고야 말았다.

내가 손을 뻗어도, 테오도르는 도망가지 않았다. 내 손이 자신의 뺨을 감싸도 몸을 뒤로 물리지 않았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나는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입술에 내 입술을 가져다 댔다.

혀를 살그머니 내밀어 그의 입술을 핥자, 오래되지 않은 상처에서 비릿한 피 맛이 느껴졌다. 천천히 그의 상처를 핥아, 그 상처로 나의 타액이 스며들기를 바랐다.

하지만 이내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 좀 더 닿고 싶었다. 좀 더 많은 것을 테오도르에게 주고 싶었다.

나는 입술을 벌려 테오도르의 입술 틈 사이로 나를 밀어 넣었다. 메마른 입술을 지나고, 날카로운 송곳니를 스쳐 지났다.

파르르 떨리는 그의 뺨이 손으로 느껴졌고, 이내 내 혀가 그 안으로 들어간 것 또한 느껴졌다.

나는 마치 상처받은 새끼를 핥는 어미처럼 테오도르의 입술을 핥았고, 그의 송곳니를 핥았고, 그의 혀를 핥았다.

구석구석 남김없이 핥고 나서야 입술을 떼어냈다.

붉은 눈의 테오도르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도망가지 말아 달라는 내 부탁에 이렇게 얌전히 나를 기다려주고 있었다.

아직이었다.

나는 다시 테오도르의 입술에 내 입술을 겹쳤다.

이렇게 상냥한 괴물이라면, 나는 괴물의 신부가 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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