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 091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발이 굳어서, 손이 굳어서, 입술이 굳어서.
움직이지 못했고, 손을 뻗지 못했고, 말을 할 수 없었다.
“바보같이…….”
나는 바보같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테오도르를 그 방에 혼자 내버려 두고 말았다.
“눈이 슬펐어.”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슬픈 테오도르의 눈을 보고야 말았다.
이제는 아득하게까지 느껴지는 지하 감옥에서 본 길 잃은 아이와 같은 눈빛보다 더 애틋한 눈빛이었다. 언젠가 과거를 말하며 아파한 눈빛보다 더했다.
마치 손에 쥐었던 행복이 바스러져 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과 같은 눈이었다.
그리고 그 바스러진 행복이 자신의 손가락 틈 사이로 흘러내리는 것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망연자실한 눈이었다.
“이제까지 내가 한 건 다 헛수고였어.”
뭐가 구원이고, 뭐가 힐링이란 말인가?
지금 테오도르는 나의 치료마저 거부한 채 혼자 저렇게 방에 틀어박혀 있는데.
힐링시켜주겠다며 나대는 멍청한 하녀보다야 차라리 혈액이든 체액이든 그가 필요할 때 공급하는 마녀가 테오도르에게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적어도 그런 관계라면 테오도르가 나를 거부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괜찮을까?”
나는 미어캣처럼 고개를 쭉 빼고 방문을 쳐다보았다. 방문 두 개를 넘으면 테오도르가 있는 침실이었다. 하지만 당연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내 눈에는 굳게 닫힌 문만 보였을 뿐이었다. 그래도 나는 방에 들어온 뒤로 그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혼자 방을 서성이고, 테오도르를 걱정하고, 바보같이 자책하고, 그러다 혹시나 무슨 기척이라도 느낄까 싶어서 조용히 방문을 응시하는 것을 반복했다.
마치 쳇바퀴를 돌리는 다람쥐처럼, 어디에도 가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 소용없는 짓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그것을 반복했다.
“테오도르가 광증을 치료하지 않고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내가 맨 처음에 이곳에 왔을 때, 클레어는 테오도르가 아파서 며칠 동안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정확하게 기간이 얼마나 되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했지만, 사흘은 틀림없이 넘었고 일주일은 분명히 되지 않았었던 것 같다고 했었다.
“그럼 일주일쯤은 괜찮은 걸까?”
나는 테오도르를 처음 만났던 때를 떠올렸다.
하얗게 껍질이 일어난 것과 이를 악물어 생긴 피딱지가 동시에 있던 입술, 부딪히고, 긁힌 상처로 가득했던 피부, 그리고 오로지 고통과 광증만으로 가득했던 눈동자를.
“괜찮을 리 없어!”
애초에 광증이 그렇게 버틸 수 있는 일이라면, 카르오 가에서 나를 찾지 않았을 것이다. 테오도르의 형이 그렇게 미쳐버릴 일도, 어머니가 죽임을 당할 일도 없었겠지.
“안 되겠어. 내가 가봐야겠어.”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문은 잠겨있겠지만, 부수면 그만이었다. 내가 노려보고 있던 커넥팅 룸의 문이든, 복도 밖의 테오도르의 침실 문이든.
뭐, 이왕이면 복도의 문을 부수는 게 나을 거다. 적어도 그건 1개고, 그럼 내가 물어내야 할 문도 1개일 테니까.
“좋아. 부순다!”
나는 그렇게 결심하고 당당하게 문 쪽으로 걸었다. 당연히 복도를 향하는 문 쪽이었다.
“어?”
내가 막 문을 열려는 순간이었다. 손잡이에 닿기도 전에 문이 열렸다.
마녀, 마녀 했더니 정말 마력이라도 생긴 건가 하고 잠시 고민했다. 그렇다면 문을 부수지 않아도 되니까 이득인데?
“레나티스?”
……는 아니었다. 내가 문을 열기 전에 복도에 있던 사람이 먼저 문을 열었던 것이었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의 주인공은 카르오 대공비였다.
“대공비 님! 마침 잘 오셨습니다.”
하지만 카르오 대공비라면, 마력이 아니더라도 카르오 저택 안의 잠긴 문을 모두 열 수 있는 사람이었다.
“테오도르 님의 일을 알고 오신 거죠?”
“어……. 맞아.”
순간 당황하는 듯했던, 대공비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야기는 일단 들어가서 하는 게 어떨까 싶은데?”
“아, 네.”
나는 대공비를 따라 온 하녀와 호위 기사가 복도에 함께 서 있는 것을 그제야 알아차렸다. 그녀가 순간 당황한 까닭은 아마도 그들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대공비는 테오도르의 광증에 대해서 알겠지만, 대공비의 측근들까지 그 사실을 알고 있지는 않을 듯했다.
“어서 들어오세요.”
나는 얼른 문을 활짝 열며, 대공비를 맞이했다.
“밖에서 기다리도록 해.”
역시나 내 예상이 맞았던 것인지, 대공비는 그녀를 따라온 사람들 모두 복도에 남겨두고 홀로 방 안으로 들어왔다.
내가 얼른 문을 닫는 동안 대공비는 안을 쓱 훑어보았다.
구경하는 듯한 시선에서 그녀는 이 방에 처음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테오도르 님의 광증이 발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오신 거죠?”
“그래. 맞아.”
대공비는 나를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테오도르는 제 침실에 있는 모양이지?”
“네. 맞아요.”
“내가 아는 바론, 이 옆 옆 방이 바로 테오도르의 침실이고 말이야.”
“네, 네.”
나는 그녀가 도와주리라는 기대감에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어서 빨리 그녀가 테오도르 침실의 문을 열어주었으면 했다.
테오도르를 설득해서 문을 열게 만들던지, 열쇠를 가지고 와서 강제로 열던지, 방법은 상관없었다.
내 목적은 오로지 저 문을 열고, 내가 테오도르의 고통을 덜게 할 수 있는 것뿐이었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테오도르는 지금 제 침실에서 혼자 미쳐있다는 거지?”
뭔가 말투가 싸늘하게 바뀐 것 같았다. 조금 전까지 온화하게 웃고 있던 대공비의 표정도 뭔가 바뀐 것 같았다.
뱃속이 흑심으로 가득 찬 것만 같은 미소가 아지랑이처럼 대공비의 얼굴에 피어올랐다가 사라졌다.
“그런데 넌 왜 여기 있지?”
“아, 그게…….”
“네 할 일은 분명 테오도르의 광증을 치료하는 것 아니었나?”
“네. 맞아요. 그래서 제가 대공비 님께 부탁하고 싶은 것이…….”
“그런데 테오도르가 혼자 침실에서 미쳐 날뛰고 있다면, 넌 직무유기 아니니?”
“…….”
대공비는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할 때마다 듣지 않고 끊어냈다. 지금의 상황을 알려면 내 설명이 필요한데도, 그녀는 오로지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녀가 풍기는 묘한 위화감이 어디서 나왔는지 알아차렸다.
‘미쳐 날뛰고’
방금 그녀가 한 말이었다.
통제 불가능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가여운 자기 아들에게 하는 말 치고는 너무나 자비 없는 말이었다.
우아한 귀족 영애의 입에서 나오기엔 너무나 상스러운 말이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그 말을 하며, 대공비는 아주 즐거워했다. 마치…… 마치…… 자기가 딱 바랐던 상황이었다는 듯이!
“저는…… 그래서…… 대공비 님께 부탁을 드리려…….”
당황스러움에도 불구하고 나는 더듬더듬 말을 이어나가려고 노력했다. 내가 느끼고 있는 나쁜 예감이 틀리기를 바랐다.
내 눈앞에 있는 대공비가 테오도르를 구하는 데 도움을 주기를, 제발, 제발 바랐다.
“카르오의 안주인이 된 도리로, 집안을 훌륭하게 통솔하기 위해서 나는 네게 벌을 내릴 수밖에 없구나.”
여전히 내 말을 무시하며, 여전히 그녀는 자신이 할 말만을 했다.
나이에 비해서 지나치게 젊고 아름다웠던 얼굴은 내게 벌을 내리겠다고 말하는 순간, 더욱 환하게 빛났다.
“무슨 벌을 내리는 게 좋을까?”
그녀는 찬찬히 내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
“종아리를 때려 줄까? 하얀 살결에 예쁜 붉은 줄을 새겨도 꽤 괜찮은 모양이 된단다. 아니면 사흘간 굶은 건 어떠니? 네 통통한 몸을 위해서라도 그건 아주 좋은 벌일 것 같은데.”
잔인한 말을 서슴지 않는 그녀는 정말로 순수하게 기뻐 보였다.
“아니면…….”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니었다. 대공비는 눈을 반짝이다 못해서 동공까지 확장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다음에 자신의 할 말에 스스로 흥분한 것이 확연하게 보였다.
“지하실에서 네 행동을 반성하는 것이 어떠니?”
어찌나 흥분했던지 마지막 목소리는 떨리기까지 했다.
“안 돼요!”
나는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깜깜한 지하 감옥에 가둬지는 것은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사흘간 굶는 것에 비하면 가벼운 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광증이 발현된 테오도르를 두고 지하 감옥으로 갈 수는 없었다. 지금 테오도르에게는 내가 필요했다.
“지하 감옥이든, 굶는 것이든 다 괜찮아요. 제가 잘못이 있다면 기꺼이 벌을 받을 수 있어요.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테오도르가 아프잖아요!”
나는 테오도르가 있을 문 너머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파? 그걸 아프다고 표현하니? 세상에 어떤 사람이 아프다고 그렇게 변해?”
내 말이 가당치도 않다는 듯이 대공비는 코웃음을 쳤다.
“짐승처럼 이가 자라는 병이라니, 들어본 적도 없어. 거기다가 그 흉측한 붉은 눈이라니! 그건 병이 아니라, 괴물이야.”
조금 전까지 환하게 빛나던 대공비의 얼굴이 싸늘하게 바뀌었다.
“반드시 죽여야만 하는 괴물.”
대공비는 그 단어가 제 입 안에 있는 것도 혐오스럽다는 듯이 내뱉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요? 테오도르는 당신 아들이잖아요.”
“닥쳐! 누가 아들이야! 그런 괴물 따위…… 그 괴물은!!”
거의 발작적으로 몸을 파르르 떨며 대공비는 내 말을 부정했다.
나를 노려보는 눈이 얼마나 무서웠던지, 그녀야말로 눈빛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괴물처럼 보였다.
“……그래. 네 말이 맞아. 내가 그 괴물을 낳았지.”
자신이 지금 미친 사람처럼 보인다는 것을 깨달은 것인지, 소리치느라 내 쪽으로 숙였던 몸을 별안간 꼿꼿하게 세우며 대공비는 말했다.
마치, 무서운 숲속의 괴물에서 다시 아름답고 우아한 귀족 아가씨로 되돌아간 것 같은 모양새였다.
“그러니, 내가 그 괴물을 다시 깊은 심연으로 돌려보내려는 거야.”
대공비는 그것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도 되는 것처럼 말했다. 하지만 그건 그냥 살인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자기 아들을, 테오도르를 죽이겠다고 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