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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75화 (75/169)

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 075

그것은 첫 키스였다.

적어도 제정신인 테오도르와의 키스는 처음이었다.

“하아…….”

“후우…….”

한숨과도 같은 숨소리가 동시에 나온 까닭은 이제껏 숨 쉴 틈도 없이 입술을 맞부딪히고 있었던 탓이었다.

그래서 더욱 알았다. 이제껏 내가 키스를 했던 테오도르도 테오도르였다는 것을. 광증의 테오도르든, 똑바른 정신의 테오도르든, 모두 테오도르였다.

그의 키스는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한결같이 조급했다.

마치 지금, 이 순간만을 오래도록 기다려온 사람처럼, 내일이 없이 사는 사람처럼, 급박했다.

“레나티스.”

테오도르가 내 이름을 부를 때, 살짝 입술과 입술이 스쳤다.

그 작은 마찰이 안타까워 나도 모르게 조금 더 테오도르의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스쳤던 그 입술이 내 입술에 닿았다.

말캉했고, 보드라웠고, 촉촉한 그것은 딱 내가 찾던 바로 그것이었다.

내가 잘못 들은 것이 아니라면 테오도르의 목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곧 터져 나올 것 같지만, 간신히 참는 것 같은 웃음소리였다.

어쩌면 그 웃음소리는 내가 벌써 삼켜버렸을 수도 있었다.

나는 이미 테오도르의 입술을 파고들어 그의 타액과 숨결을 샅샅이 훑어 냉큼 삼키고 있었다.

어쩌면 키스에 조급한 것은 테오도르가 아니라 나일지도 몰랐다.

“레나티스?”

다시 이어진 키스가 다시 끊어졌다. 살짝 떨어진 입술과 입술 사이의 간격은 여전히 좁았다. 조금만 다가서면 언제든 다시 닿을 수 있는 거리였다.

“지금은 어때?”

아마도 조금 전에 입술을 떼었을 때, 테오도르는 이 질문을 하려고 했던 것 같았다.

내가 성급하게 그의 입술을 다시 막아버리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하지만 이 질문에는 오류가 하나 있었다.

지금 테오도르의 얼굴은 내게 너무 가까웠다. 그의 얼굴이 보일 리 없었고, 눈동자 색은 당연히 확인할 수 없었다.

테오도르도 분명히 그 사실을 알고 있을 터였다. 그도 내 얼굴이 똑똑히 보이지 않을 테니까.

“어…….”

하지만 나는 굳이 그 눈동자 색을 확인하려 테오도르와 바싹 붙어있는 몸을 떼려고 하지 않았다. 고개를 뒤로 젖힌다든가 하지도 않았다.

지금 테오도르의 눈 색이 어떤지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는 듯이 뒷말을 끌었을 뿐이었다.

“아직…… 인 것 같아요.”

입술에 테오도르의 것인지 내 것인지 모를 침을 잔뜩 바르고 거짓말을 했다.

“조금 더, 치료가 필요한 것 같아요.”

보지도 않는, 확인하지도 못한, 테오도르의 눈 색이 아직 정상이 아니라고 말이다.

“그래. 네 말이 옳아.”

그리고 테오도르는 내 거짓말이 아주 마음에 든 것 같았다.

떨어져 있다고 말하기엔 너무 가까웠던 입술이 더욱 바싹 다가왔다. 그의 체온이 느껴질 만큼이었고, 그의 숨결이 내 입술에 닿을 만큼이었다.

그래서 알 수 있었다.

그의 목소리와 입술에 만족이라는 단어가 나른하게 걸려있다는 것을. 그의 목에서 다시 웃음소리가 보글보글 끓어올랐다는 것을.

“난 아직 제정신으로 돌아오지 않았어.”

이제 입술과 입술이 완벽하게 닿았다.

어차피 앞을 볼 수 없었던 눈은 숫제 감아버렸다. 어차피 테오도르의 입술을 느끼는 데에 시각은 필요하지 않았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그의 입술을 느낄 촉각과 그의 타액을 맛볼 미각, 그리고 내 것인 듯 남의 것인 듯 들리는 아련한 숨소리를 들을 청각뿐이었다.

“나에겐 네가 필요해.”

아니다. 정정한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테오도르였다.

오직, 한 사람만이 내게 필요했다.

* * *

“굉장해! 레나티스! 이번에는 괴한을 무찔렀다며?”

이건…… 또…… 무슨 소리지?

저녁 식사 시간에 눈을 반짝이며 날 쳐다보는 클레어를 보며 나는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그것도 응접실에 있는 전설의 활로 괴한을 쾅! 쏘아버렸다지?”

테오도르의 조상님이 썼다는 활이 언제부터 전설의 활이 된 거지? 아니, 그건 그렇다 치고, 어떻게 하면 활을 쾅! 하고 쏠 수 있는 거지?

“그런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어?”

“정원사 마손 아저씨에게!”

“정원사 마손 아저씨는 어디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는데?”

“아마 세탁실의 소피 언니에게 들었을 거야. 이건 비밀인데, 사실 마손 아저씨랑 소피 언니는 사귀는 사이거든. 나이 차이는 좀 나지만, 제법 괜찮은 커플이라고 나는 생각해.”

“그렇구나. 그런데 소피 언니는 그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을까?”

“아마도 지아 언니에게 들었겠지? 저택의 모든 소문은 지아 언니를 통해서 오가니까. 내가 소피 언니와 지아 언니가 절친이라고 이야기했었나?”

클레어도 자세한 출처는 모르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지아라는 이름은 이전에도 나온 이름이었다. 카르오 저택의 모든 소문은 그 지아라는 사람에게 흘러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굉장해, 레나티스! 인스트 님에게 활을 배운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네가 괴한을 물리칠 수 있을 정도로 활을 잘 쏠 줄 몰랐어! 어떻게 한 거야?”

“그게 말하자면 긴데…….”

나는 머릿속으로 어디서부터 클레어에게 설명해야 할지 생각했다.

내가 왜 테오도르와 함께 점심을 먹고 있었는지……는 패스. 그럼 그 괴한이 사실은 우리 아버지고 내가 아버지에게 비밀로 하고 저택에 오게 되었는지…… 는 말할 수 없겠고, 내가 언니에게 직접 연락을 못 한 이유도…… 패스.

아니, 남는 게 없는데?

“어쩌다 보니까 그렇게 됐어.”

그냥 시작을 안 하는 게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대단해, 레나티스! 멋있어!”

그래서 결론적으로 클레어는 더욱 눈을 빛내며 나를 쳐다보게 되었다.

“빵 더 먹을래? 더 가져다줄까? 아니면 과일을 더 먹을래? 너 남을 과일을 방에 싸가서 먹을 정도로 좋아하잖아.”

“아니, 괜찮……, 그럼 과일만 조금 더 먹을까?”

사양하려다 과일은 방에 싸가서 스기엔에게 줘야겠다는 생각에 금방 말을 바꿨다.

지난번에 나무 열매를 잘 먹었다고 말하자 스기엔이 그러면 그 열 배에 달하는 제물로 은혜를 갚으라고 말했었다. 분홍색 얼굴을 붉게 물들이면서.

후후훗- 귀엽기도 하지.

“내가 가져다줄게!”

클레어는 총총걸음으로 사라졌다가 이내 접시 한가득 과일을 들고 나타났다.

아무리 나라도 저렇게 많이는 못 먹을 것 같은데…….

“많이 먹어!”

하지만 함박웃음과 함께 과일 접시를 내미는 클레어에게 사양할 수는 없었다.

“그래. 고마워.”

어쩔 수 없지, 뭐. 내가 다 먹어야지, 뭐. 이건 정말 클레어의 정성을 봐서 어쩔 수 없이 내가 먹는 거였다.

어쩔 수 없는 일인데 입꼬리가 자꾸 올라가는 건, 그냥 반사신경 때문일 뿐이었다. 진짜다!

“다음에 또 변태나 괴한이 나타나면 물리쳐야 하니까, 많이 먹고 힘내야지.”

“에이~ 여기 경비병님들이 얼마나 많은데, 내가 나설 자리까지 있겠어?”

“하지만 이제까지는 네가 나섰잖아?”

“그건 내가 나섰다기보다는 우연히……. 하하하!”

차마 사실은 내가 나선 게 아니라고 내가 얽혀있는 문제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애초 그 변태는 변태가 아니고 나를 노린 거였고, 괴한은 괴한이 아니라 나를 찾아온 아버지였다고 말하기엔 설명이 너무 복잡해지니까.

“그런데, 클레어. 그 마손 아저씨에게 뭐라고 이야기를 들은 거야?”

“뭐, 그냥 평범하게 별채에 엄청나게 난폭한 괴한이 나타나서 막 응접실을 다 때려 부수는데, 네가 짠~ 하고 나타나서 활을 콰콰콰쾅! 쏴서, 그 괴한을 물리쳤다고 하던데?”

그게 어딜 봐서 평범한 거야?

그리고 이번에는 활을 그냥 쾅! 도 아니고 콰콰콰쾅! 하고 쐈다고? 대체 활을 어떻게 쏘면 그렇게 대포처럼 쏘는 건데?

“그랬구나.”

하지만 의문은 곱게 접어두었다.

“그런데 클레어. 저기, 있잖아. 소문은 좀 부풀기 마련이라서, 전부 다 믿으면 안 돼.”

“에이! 당연하지! 나, 그렇게 막 소문을 다 믿고 그러진 않아.”

활짝 웃는 클레어의 모습을 보며 나도 조금 안심이 되었다.

“네가 활을 열다섯 발 쏘아서 그 괴한의 정수리에 다 맞춰서 고슴도치로 만들어줬다는 이야기는 나도 좀 믿기 어렵더라고.”

뭐?

“그래도 사람인데 한 발 정도는 빗나갔지?”

클레어는 해맑게 웃으며 물었고, 나는 입을 쩍 벌리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아무리 소문이라지만 너무 부풀려졌잖아!

“클레어. 잘 들어.”

나는 클레어의 양어깨에 손을 얹고,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

“나는 그 괴한에게 딱 한 발 쐈고, 그 한 발도 빗나가서 귀에 맞았어.”

“뭐? 정말?”

되묻는 클레어의 눈은 땡그랬다. 마치 내 이야기가 더 허무맹랑한 소리라는 것처럼.

“그래. 그러니까 소문을 너무 믿지 마.”

나는 클레어의 어깨를 토닥이며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진짜 이런 식으로 소문이 난다면, 내가 공주님을 구출하러 용사님과 함께 드래곤을 잡으러 간다는 소문도 곧 나겠어.”

“에이~ 설마!”

내 한숨 섞인 중얼거림에 클레어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런 걸 믿는 사람이 어딨어? 애도 아니고.”

방금 내가 사람을 고슴도치로 만들었다는 소문을 매우 진지하게 믿었던 사람이 말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클레어는 믿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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