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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74화 (74/169)

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 074

마구 뛰는 내 심장 소리를 테오도르가 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말이라도 해야 해!

“그럼 대공님께서는 어디에 관심이 있으신데요?”

테오도르가 잡아놓은 자세를 유지하려고 애쓰며, 나는 질문 던졌다.

내 오른손을 가지런히 왼손에 포개놓은 테오도르가 잠시 가만히 있더니 그의 손가락이 슬쩍 내 손등을 톡톡 두드렸다.

“카르오 대공이 관심이 있는 건, 명예, 권력, 남의 이목, 뭐 그런 것들이야.”

대담을 마친 테오도르는 숙였던 허리를 펴고, 다시 아까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바로 붓을 들고 뭔가를 슥슥 그리기 시작했다.

“그럼 대공비 님께서 알아차리실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 사람은 별채에 한 번도 온 적 없어. 별채 응접실에 뭐가 있는지도 모를 거야. 주먹만 한 다이아몬드를 여기에 전시해놓은 것이 아닌 이상은.”

제법 심각한 얼굴로 테오도르는 그림을 그려나갔다.

“애초에 값이 나가고, 관심이 가는 것이라면 별채에 보내지 않았겠지. 본채에 두거나 자기 금고에 보관했겠지. 여기 응접실에 있는 건, 늙은 노부인의 초상화나 아무도 다를 수 없는 활 같은 것들이야.

겉은 그럴듯하지만, 쓸모는 없는 것들. 하지만 버리기엔 곤란한 것들.”

이상했다. 그렇게 말하는 테오도르의 목소리가 어쩐지 자조적이고, 슬프게 들렸다.

마치, 자신 또한 별채에 버려진 물건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 그래도 그 활은 엄청 좋은 거였는데요? 인스트 님이 엄청 좋은 거라고 하셨어요. 아마 그 시기의 제일 훌륭한 무기 장인이 만든 물건일 거라고, 지금 기술로 만든 활에도 전혀 뒤지지 않는다고 하셨어요. 오늘내일 중으로 상점가에 가서 새 줄을 사 와서 줄 가는 법을 알려주신다고, 그러면 정말 좋은 활이 될 거라고 하셨어요.”

속사포처럼 내 입에서 저절로 말이 튀어나왔다.

마치 그 활이 아주 좋은 물건이라는 것을 내가 증명하면, 테오도르도 스스로가 쓸모없어서 버려진 물건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 활이 마음에 들어?”

“네! 당연하죠.”

“다행이군.”

내 마음이 통한 걸까? 딱딱하게 굳어 있던 테오도르의 얼굴이 살짝 부드럽게 풀어졌다.

그는 부드럽게 변한 그 얼굴로 나를 한번 보고,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정말 이게 들키지 않을까 걱정스럽긴 했지만, 어쨌든 나는 테오도르가 정해준 자세를 유지하려고 애썼다.

문제는 가만히 있는다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이었다.

‘발가락이 간지러운 것 같은데?’

신발 안에서 발을 꼼지락거려보지만, 가려움은 시원스럽게 사라지지 않았다.

‘어, 엉덩이도 간지러운 것 같고?’

왜 갑자기 엉덩이가 간지러운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랬다. 심지어 발가락보다 더 참을 수 없이 간지러웠다.

어쩔 수 없이 최대한 티 나지 않게 엉덩이를 움찔거리며 소파에 마찰시켜 간지러움을 해소하려고 했다.

“가만히 있어.”

하지만 내가 움직이는 것을 눈치챈, 테오도르의 날카로운 말에 움찔거리던 내 엉덩이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가만히, 가만히, 가만히!’

하지만 너무 힘들었다. 몸은 고정한 채, 눈만 데굴데굴 굴리고 있으려니 좁은 어딘가에 갇혀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차라리 스쾃 100번에 팔굽혀펴기 100번, 무한 왕복달리기를 하는 편이 나았다. 적어도 그건 엉덩이는 긁을 수 있을 테니까.

“레나티스.”

나를 힐끗 본 테오도르가 내 이름을 불렀다.

“가, 가만히 있을게요.”

테오도르의 호명에 급하게 대답하며, 흐느적거리던 몸을 다시 꼿꼿이 세웠다.

“아, 그게 아니고. 이렇게 널 자세히 보고 있으니까 갑자기 궁금한 게 생겨서 말이야.”

테오도르의 시선은 어느새 내가 아니라 다시 캔버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팔레트를 들고 제법 심각한 얼굴로 붓질을 하는 테오도르는 근사한 예술가처럼 …….

“너도 네가 귀엽다는 건 알지?”

귀여웠…… 어?

“네?”

“아. 역시 아는구나?”

“아, 아뇨! 잘못 들은 것 같아서 되물은 건데요? 지금 저한테 뭐라고 하셨어요?”

“네가 귀여운 것, 너도 알고 있냐고.”

“전혀 모르는 일인데요.”

“아, 그럼 귀여운 게 아니라, 예쁘다고 알고 있는 건가?”

“네? 설마요?”

더 어이없는 질문에 나는 펄쩍 뛰며 대답했다.

“왜? 사람들이 말해줬을 텐데?”

“뭘요?”

“네가 귀엽다고.”

“전혀요.”

“예쁘다고.”

“그럴 리가요.”

“왜지?”

그걸 저한테 물어보시면 안 되죠?

테오도르는 제법 심각한 표정으로 이제껏 내가 예쁘고 귀엽다는 소리를 듣지 못한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이 날 쳐다보고 있었다.

“이상하네. 다들 눈이 아니라 단추를 달고 사는 건가.”

심지어 매우 진지한 목소리로 다른 사람들의 시력을 의심하기까지 했다.

이쯤 되자 날 놀리는 건지, 진심인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

“…….”

내가 심각하게 테오도르의 진심을 고민하는 사이에 테오도르는 아무 말 없이 열심히 붓을 놀리고 있었다.

언뜻 보이는 붓에 붉은색이 보이는 걸 봐선, 내 옷이나 머리카락을 붉은색으로 칠하는 모양이었다.

머리카락도 분홍색으로 칠하지 못 할 테고, 검은색의 메이드 복도 그대로 그릴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

“…….”

나를 진지한 눈빛으로 한 번보고, 다시 그 진지한 표정으로 붓질을 하는 테오도르는 마치 이 작품이 평생의 역작이기를 기대하며 자신의 예술혼을 불태우는 젊은 예술가 같았다.

‘멋있잖아!’

그리고 테오도르의 잘생긴 얼굴은 그런 컨셉마저 어울렸다.

하긴, 잘생긴 얼굴은 안 어울리는 컨셉이 있을 리 없었다. 길바닥의 거지마저도 사연 있어 보이게 만들 얼굴인데.

“저기, 테오도르 님.”

“응.”

테오도르는 붓질을 멈추지 않은 채, 대답했다.

“테오도르 님이야말로 엄청나게 잘생겼어요.”

“알아.”

싱거운 대답이었다.

어쩌면 아까 내게 말했던 것들은 전부 본인이 겪은 실화일지도 몰랐다.

사람들이 대놓고 잘생겼다든가, 멋있다고 하는 말을 들으면서 살기에 충분한 얼굴이었으니까.

“그럼 역시 저보다는 잘생긴 테오도르 님을 그리는 게 낫지 않나요? 거기다가 테오도르 님의 초상화라면 응접실에 있어도 이상하지 않잖아요.”

“싫어.”

이번에도 단답형의 깔끔한 대답이 돌아왔다.

“왜요?”

그래서 나도 아주 단순한 질문을 던졌다.

“초상화를 그리려면 거울을 계속 보고 있어야 하잖아. 내 얼굴을 그렇게 오랜 시간 쳐다보고 싶지 않아.”

“왜요? 전 제가 테오도르 님처럼 생겼으면, 매일 매일 거울을 봐도 싫지 않을 것 같은데요. 와! 이게 내 얼굴이라니! 이렇게 잘생겼다니! 잘생긴 게 최고야!”

나는 마치 내가 테오도르에게 빙의라도 한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자 그림을 그리는 동안 한껏 진지한 표정이었던 테오도르의 얼굴에 살짝 미소가 어렸다.

마치 ‘귀여워 죽겠네.’라고 말하는 것 같은 그 미소에 내 호들갑은 그대로 멈춰버렸다.

“그 말을 그대로 돌려주지. 나는 지금 이렇게 공식적으로 네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는 게 좋아. 눈은 어떻게 생겼는지, 코는 어떻게 생겼는지, 입술은 또 어떤지. 하나하나 훔쳐보고, 내 눈에 새기고, 내 머리에 그리고 있어.”

테오도르의 말에 내 얼굴이 뜨끈하게 달아올랐다.

‘무슨 사랑 고백 같은 말이잖아!’

귀엽다는 말은, 예쁘다는 말은, 그럭저럭 칭찬의 의미라고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내 얼굴 하나하나를 뜯어보고, 자신의 눈과 머리에 새긴다는 말은 그저 빈말이라고 넘어갈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방금 내가 한 말 말이야.”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던 걸까? 테오도로가 캔버스 너머로 나를 바라보며 방금 자신이 했던 말을 되짚었다.

“좀 미친 것 같지 않아?”

“아…….”

“지금 내가 제정신이 맞는 건지 조금 헷갈려.”

나를 빤히 바라보며 하는 테오도르의 말은 어딘지 모르게 뜨거웠다. 그가 든 붓에 묻은 붉은 색 물감처럼.

“네가 보기엔 어때 보여?”

살짝 고개를 옆으로 꺾으며 테오도르가 말했다. 나를 시험해보는 것 같은 질문이었다.

“그, 글쎄요.”

어쩐지 열기를 띠고 있는 테오도르의 눈빛이 부담스러워 나는 황급히 고개를 돌려 버렸다.

“괜찮으신 것 같은데요.”

“고개를 돌리면 안 되지. 넌 지금 모델이잖아.”

테오도르의 말에 어쩔 수 없이 돌렸던 고개를 삐걱거리며 제자리로 돌렸다. 그러자 다시 내 시야에 나를 바라보고 있는 테오도르가 들어왔다.

여전히 희미한 열기를 띤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조금, 아주 조금, 눈이 이상한 것 같기도 해요.”

그건 사실이었다.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래?”

슬쩍, 테오도르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제법 만족스러운 것 같은 미소였다.

“치료가 필요할 정도는 아닌 것 같긴한데…….”

“한데?”

테오도르의 눈이 가늘어지며, 말꼬리를 잡았다.

“뭔가 좀 붉은 것 같기도 하고…….”

테오도르가 들고 있는 붓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전히 붉은색 물감이 묻어 있었다.

피처럼 붉은색.

광증 상태인 테오도르의 눈동자색.

“그래?”

손에 든 붓을 내려놓고, 테오도르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언제 묻은 것인지 그의 손목과 팔뚝에는 붉은색 물감이 묻어 있었다.

“레나티스.”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홀린 듯, 나는 테오도르를 쳐다보고 있었다. 은은한 열기를 띤 보라색 눈동자의 테오도르를.

내가 한 말들이 전부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마, 테오도르도 알고 있을 것이다.

“나를 치료해줘.”

하지만 그는 기꺼이 내게 속아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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