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 067
“여기에 내 입술이 닿았겠지.”
테오도르의 손이 내 오른쪽 귀를 스치고 지나가 그 뒤에 닿았다. 갑작스러운 접촉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눈만 동그랗게 떴을 뿐이었다.
거기에도 어젯밤의 흔적이 남아 있는 줄 나는 몰랐었다.
“그리고 여기에도.”
테오도르의 손이 미끄러지듯, 천천히 아래로 내려왔다.
마치 쓰다듬는 것처럼 귀를 스치고 내려온 손은 목덜미 어딘가에서 멈췄다. 그리고 그의 엄지가 슬쩍 내 목을 문질렀다.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곳에도 어젯밤의 흔적이 남아있는 자리이리라.
“이상한 일이야.”
내 목덜미를 쳐다보고 있던 테오도르가 시선을 올려 나를 쳐다보았다. 선명한 보라색의 눈동자가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테오도르의 눈동자가 붉게 느껴졌다.
“내가 그랬다는 흔적은 이토록 선명하게 남아 있는데, 내 머리에는 그런 기억이 없어.”
“그때는 아프셨으니까, 그럴 수도 있죠.”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에 나는 간신히 입을 뗐다.
“그래?”
내 말을 들은 테오도르는 기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그 아픈 그 새끼의 목을 조르고 싶은 지금 내 심정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네?”
기묘한 미소 뒤에 이어진 테오도르의 말을 이해할 수 없어서 나는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저기요? 그 목, 아마도 당신이랑 공유하는 목일 텐데요?
“말씀하신 그 사람도 테오도르 님이신데요?”
“그게 정말 나라고 생각해? 눈동자 색도 다르고, 인간 같지 않은 손톱에, 괴력을 가졌는데?”
테오도르의 말에 나는 쉽게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다.
광증의 테오도르는 분명 인간 같지 않은 부분이 있긴 했다. 하지만 그게 테오도르가 아닌 것은 아니었다.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그 미친놈이 싫었어. 언제 불쑥 나타날지 모르고, 나타나선 무슨 짓을 할지 모르고, 실체도 없는 주제에 내 인생을 휘두르는 그 새끼가 싫었어.”
그의 보라색 눈동자 위에 얽힌 감정들은 내가 읽어낼 수 없을 정도로 복잡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엔 그 새끼를 죽여버리겠다고까지 생각했어. 내 몸으로 널 만진 주제에 보란 듯이 기억의 파편까지 남겨둔 것을 느끼고는 말이야.”
그 감정들이 하나하나 무언지는 읽어낼 수는 없었지만, 너무나 선명한 감정은 나도 읽어낼 수 있었다.
혐오감.
또 다른 나에 대한 혐오. 그리고 나 스스로에 대한 혐오.
그 둘이 무엇이 다른지 알 수 없었지만, 테오도르에게서는 그 감정을 둘 다 느낄 수 있었다.
이전에도 테오도르가 자신에게 험한 말을 한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선명하게 감정을 드러낸 것은 처음이었다.
“더 싫었던 것은, 그 새끼가 남겨놓은 그 파편으로 인해서 내가 반응했다는 거야. 그 새끼의 목을 조르는 것이 먼저인지, 내 목을 조르는 것이 먼저인지를 고민했을 정도로.”
테오도르의 엄지가 다시 부드럽게 내 목을 문질렀다. 마치 그렇게하면 어제의 자국을 지울 수 있는 것처럼.
내 목을 문지르는 부드러운 손길과 달리 입술에서 나온 말은 잔혹하기 그지없었다.
“알려줘. 내가 어제 너에게 뭘 어떻게 했는지. 그래야 적어도 내가 어떤 목을 먼저 졸라야 할지 알 수 있을 테니까.”
천천히 테오도르의 얼굴이 내게로 다가왔다. 그 자리에 다시 입술을 대어볼 것처럼.
아니다. 다시가 아니었다.
어쩌면 테오도르는 처음이라고 생각할지도 몰랐다. 조금 전에 그는 광증의 자신을 자신과 분리해서 말했으니까.
“테오도르 님.”
나는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테오도르에게 말해야 했다.
‘어제의 그 사람도 당신이었어요. 그래서 기꺼이 제가 입을 맞춘 거예요.’
라고.
또한, 내가 반드시 그의 광증을 낫게 해줄 것이라고도 말해야 했다. 그러니 제발 그렇게 자신을 혐오하지 말라고도 말하고 싶었다.
“테오도르 님? 레나티스?”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오르디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말이다.
그 소리에 테오도르도, 나도, 동시에 동작을 멈췄다.
“쯧.”
테오도르의 혀 차는 소리가 내 목 언저리에서 들려왔다. 덕분에 목덜미에 그의 숨결이 닿자,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오, 오르디 님이 할 말이 있으신 것 같은데요.”
내 입에서 나온 목소리는 약간 잠겨 있었다. 내가 얼마나 긴장하고 있었는지를 확연히 보여주듯이.
“…….”
“제 이름도 부른 걸 보면, 저랑도. 연관이 있나 봐요.”
테오도르가 아무 말이 없자, 나는 다시 그에 말을 건넸다.
“아무래도 오르디의 목이 먼저인 것 같군.”
그제야 작은 한숨과 함께 내게서 몸을 떼어낸 테오도르가 중얼거렸다.
먼저 뭘 하겠다는 건지 테오도르는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걸 유추하고야 말았다.
‘오르디의 목을 졸라버리겠다는 거겠지?’
분명 농담으로 들려야 하는 이야기가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 것은 내가 소설 속 테오도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사람인지 알고 있어서였다.
그리고 조금 전의 테오도르의 발언들은, 소설 속 남주의 언행과 매우 유사했다.
어디 보자. 소설 속에서 남주의 최측근인 시종이나 집사가 봉변당한 적이 있었나?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무슨 일이야?”
아주 다행히, 테오도르는 문을 열자 보인 오르디를 보자마자 목을 조르지는 않았다. 그저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용건을 물었을 뿐이었다.
“급한 일이야?”
“그리 급한 일은 아닙니다만…….”
“그럼 나중에 와.”
그리 급한 일은 아니라는 오르디의 말에 테오도르는 그의 면전에서 문을 닫아버리려고 했다.
솔직히, 나는 다행이었다. 적어도 목이 졸리지는 않았으니까.
“레나티스 양을 찾아온 사람이 있습니다.”
“저를요?”
오르디의 용건은 나였다.
“누군데?”
“갑작스러운 방문객이라 아직 그건 파악하지 못했습니다만, 레나티스 양의 가족이라고 하더군요.”
테오도르의 질문에 오르디가 대답했다. 그 대답에 번개같이 내 머릿속을 스치는 것이 있었다.
‘언니가 편지를 보고 찾아왔나 봐!’
에뮬 오빠의 이름으로 보내긴 했지만, 실상은 언니에게 보낸 그 편지에 내가 카르오 대공가의 별채 하녀로 고용되어 아주 잘 지내고 있다고 적었었다.
편지가 언니에게까지 잘 도착할지 어떨지 걱정이었는데, 무사히 잘 도착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내가 걱정된 언니가 날 찾아온 듯했다.
“어떻게 할까요?”
오르디는 나를 한번 쳐다본 뒤에 테오도르에게 물었다. 아무래도 별채의 주인은 테오도르이고, 언니는 외부인이니 그에게 묻는 모양이었다.
“…….”
테오도르는 바로 대답하는 대신 나를 쳐다보았다. 오랜만에 언니를 만난다는 흥분으로 눈을 반짝이고 있는.
“응접실로 모셔.”
“아, 응접실로요?”
오드리는 테오도르의 말에 조금 당황한 듯했다. 나도 응접실을 한번 본 적이 있는데, 그야말로 화려했다.
구경을 시켜준 클레어의 말로는 본채의 응접실은 더 휘황찬란하다고 했다.
본래 응접실은 손님 초대의 용도라서 다른 귀족 저택도 다 그렇다고 했다.
언니는 갑작스러운 불청객인데다가 응접실로 모실만한 신분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테오도르는 언니를 응접실로 모시라고 한…….
아니, 잠깐! 이거 괜찮나?
나는 번개같이 고개를 돌려 테오도르를 쳐다보았다.
조금 전에 그가 한 대사는 심상치 않았다. 테오도르는 이제껏 내게 다정한 모습만 보여주었다.
뭐, 상냥하고 다정한 말투인 적은 없었지만, 어쨌든 피폐물 남주의 모습 따위는 보여준 적이 없었다.
하지만 목을 조르느니, 미친 새끼니 하는 거친 단어는 가끔 불쑥불쑥 튀어나오곤 했다.
조금 전에도 오르디의 목을 졸라버리겠다는 말이 내게는 진심으로 들릴 정도였다.
그런 테오도르를 아스텔라 언니와 만나게 한다?
‘절대 안 돼!!’
나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테오도르와 아스텔라 언니를 만나게 할 수 없었다. 그건 명확한 잘못된 만남이었다.
만약에 테오도르가 아스텔라 언니를 보고, 소설에서처럼 좋아하게 되고, 집착하게 된다면…….
‘읏!’
갑자기 한쪽 가슴이 아려와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레나티스?”
내가 인상을 찌푸리는 것을 본, 테오도르가 내 이름을 부르며 얼른 내 쪽으로 다가왔다.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그런 테오도르의 얼굴을 본 순간, 더욱 가슴이 아려왔다.
‘왜?’
왜 가슴이 이렇게 아픈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날 걱정하는 테오도르의 얼굴을 보자 왈칵 눈물이 날 것 같았고, 가슴이 욱신거리듯 아팠다.
“아직 몸이 좋지 않은 모양이군. 손님은 만나지 않는 편이…….”
“아, 아뇨. 괜찮아요.”
나는 황급히 고개를 내저었다. 지금 언니를 돌려보내면,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몰랐다. 난 지금 언니가 어디서 살고 있는지도 몰랐다.
‘아주, 잠깐, 얼굴만 보면 괜찮을 거야.’
달콤한 유혹이었다.
“만나고 싶어요.”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