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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65화 (65/169)

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 065

“읏!”

새어 나온 것은 신음이었다.

“하아…….”

흘러나온 것은 숨결이었다.

“테, 테오도르…….”

그리고 끝내, 한 방울의 눈물이 흘러내리고야 말았다.

테오도르의 입술은 거칠 것이 없었다. 어느새 그것은 내 목덜미에 있었고, 쇄골에 있었고, 내 귓가에, 그리고 입술에 있었다.

목덜미를 깨물고 빨아들이면, 콱 숨이 막혀버리는 것 같은 느낌과 동시에 아픔과 쾌락이 피어올랐다.

귓가에 숨을 불어넣으면, 세상의 온갖 소리를 빼앗겨버리고 오직 그의 숨결만으로 머릿속이 가득 채워졌다.

함께 나눈 키스는 서로 뒤엉켜 어느 것이 내 혀이고, 어느 것이 테오도르의 타액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정신없이 핥고, 빨아당기고, 또 삼켰다.

입술에서, 목덜미에서, 귓가에서 피어난 감각은 온몸을 내달렸다. 손끝은 저릿했고, 발은 지면을 밀어내기에 바빴고, 허벅지는 떨려왔다.

가장 어지러운 곳은 머릿속이었고, 뱃속 어딘가에서는 뭉근하게 달아오르는 느낌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다.

“아!”

정신없는 와중에 새로운 감각이 느껴졌다. 커다란 테오도르의 손이 부드럽게 내 가슴을 감싸고 있었다.

부드러운 복숭아를 조심스럽게 감싼 듯한 손이었다. 세게 만지면 뭉개질까 봐 걱정된다는 듯이 부드러운 손길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테오도르의 이가 내 빗장뼈를 살짝 아플 정도로 깨물었다.

“으읏!”

한 사람이 동시에 내게 선사하는 너무나 다른 감각에 내 입에서는 또 한 번 신음이 흘러나왔다. 대체 몇 번째인지도 모를 신음이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테오도르의 손은 부드럽게 움직였다.

하지만 그 부드러운 움직임에도 내 몸은 반응했다. 그것을 테오도르의 손의 촉감으로 알 수 있었다.

내가 알아차린 것을 테오도르가 몰랐을 리 없었다. 그의 손바닥이, 손가락이, 집요하게 그곳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내게 있는지도 몰랐던 그곳에 나의 모든 감각이 집중되었다. 그리고 그 감각이 다시 내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발끝이 바싹 오므라들고, 저도 모르게 테오도르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흣…….”

그리고 입술에서는 다시 신음이 새어 나왔고, 눈에는 눈물이 고여왔다.

그것들을 참아내기 위해 입술을 앙다물자, 목구멍에서 나가지 못한 소리가 앓는 소리를 내며 들끓었다.

내 행동에 대한 테오도르의 반응은 재빨랐다. 테오도르의 손은 내 가슴에서 떨어져 나와 찬찬히 아래로 내려갔다.

그것은 마치 물이 흘러내려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그 손에 내 허벅지를 한번 꽉 쥐고, 뒤이어 그의 고개가 마침내 내 빗장뼈의 아래까지 내려갔다. 그의 뜨거운 숨결이 옷 너머로 느껴졌다.

“하아…….”

분명, 의도한 것이었다.

테오도르의 축축한 숨결이 가슴에 닿았다.

“흐읏!”

이미 빳빳하게 서 있던 그곳에 테오도르의 숨이 닿자, 나는 겨우 다물었던 입술을 다시 열 수밖에 없었다.

튀어 오르는 쾌감을 도저히 막아놓을 수 없었다. 목구멍에 머물러 있던 소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밖으로 튀어 나갔다.

그러자 테오도르는 마침내 만족스럽다는 듯이 덥석, 내 가슴을 베어 물었다.

옷감 너머에서도 그의 입술이, 더운 숨결이, 축축한 혀가 느껴졌다.

그래서 눈앞에서 다시금 하얀 번개가 쳤고, 내 몸은 다시 뭍으로 올라온 물고기처럼 파드득 튀어 올랐다.

덜덜 떨리는 허벅지는 이미 테오도르가 붙들고 있었다.

다리에는 이미 힘이 풀린지 오래였지만, 벽과 테오도르 사이에 끼인 채로 주저앉을 수도 없었다.

다른 생각은 할 수 없었다. 나는 그저 테오도르가 주는 감각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만으로도 벅찼다.

그러다 퍼뜩 이성이 돌아온 것은, 테오도르가 제 몸을 아주 잠시 떼어냈기 때문이었다.

거의 젖어버린 가슴의 천에서 뜨거웠던 숨이 사라지고, 타액이 식어가자 점점 차가움이 느껴졌다. 그것이 내 정신을 돌아오게 했다.

‘지금은 뜨겁지만…….’

나중은 차가워질지도 몰랐다.

‘지금은 테오도르가 제정신이 아니잖아.’

나는 아직 내 아래에 있는 테오도르의 고개를 붙잡았다. 지금 내가 그의 고개를 들어 올린다면 보일 것이다.

지금 테오도르의 눈동자가 붉은색인지, 혹은 보라색인지.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난 테오도르를 좋아해.’

그것은 분명했다.

나는 눈을 감고, 테오도르의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내 손이 내 앞에 있을 때, 테오도르의 머리가 내 앞에 있을 때, 그의 입술이 내 입술의 앞에 있을 때, 나는 손을 멈췄다.

눈은 여전히 감은 채였다.

‘하지만 테오도르도 그럴까?’

내 앞에 있는 것은 테오도르였지만, 테오도르가 아니었다.

테오도르는 나를 원했지만, 그건 그의 영혼이 아니라 그의 광증이 나를 원하는 것이었다.

아니. 꼭 아니어도 괜찮았다. 그저 분홍 머리의 여자이기만 하면 그 누구라도 괜찮았을 것이다.

소설 속에서 ‘테오도르’가 ‘아스텔라’를 원한 것처럼.

나는 테오도르의 입술에 내 입을 맞췄다. 하지만 이번엔 키스가 아니었다. 그저 체액을 옮긴 것이었다.

타액과 약간의 눈물을.

* * *

눈을 번쩍 뜬 순간, 번뜩이는 깨달음이 내 머리를 스쳤다.

‘늦었다!’

평소보다 환한 햇살이, 어쩐지 더욱 깊게 느껴지는 공복감이 나의 깨달음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번개같이 고개를 돌려 벽난로 위에 놓인 시계를 바라보았다. 무슨 무슨 장인이 만들었을 법한 고풍스러운 탁상시계가 우아하게 내가 늦잠을 잤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아침 식사 시간은 벌써 지났고, 곧 인스트와 약속한 훈련 시간이었다.

“우와아아아악!”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그대로 뛰어내렸다. 동시에 잠옷을 벗어젖히고, 손을 뻗어 옷장 문을 열었다.

차곡차곡 개어져 있는 셔츠 중에 하나를 손에 집히는 대로 끄집어내고, 연이어 바지도 하나 집어 들었다. 문을 닫을 시간 따위는 없었다.

“으아아아아!!”

나는 소리를 지르며 바지에 팔을 꿰는 것과 동시에 셔츠에 발을 끼워 넣었다.

“아니잖아!!”

깡깡이 발로 셔츠를 벗고, 팔에 끼워진 바지는 냅다 바닥에 내팽개쳤다.

“으아! 바보야! 다시 주워야 하잖아!”

나는 나 자신에게 버럭 화를 내며, 허리를 굽혀 방금 내팽개친 옷을 주워 들어서 입었다. 급하게 신발을 꿰어 신고, 복도를 달려가며 눈곱을 뗐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복도를 지키고 선 사병들에게 연이어 인사를 급하게 건네고, 야단법석으로 뻗친 머리카락을 손으로 급하게 모았다.

어제저녁은 정신이 없어서 머리를 다 말리지도 못하고 잠들어버린 탓에 머리가 더 제멋대로 뻗쳐 있었다.

“늦었잖아.”

뒤뜰에서 먼저 몸을 풀고 있던 인스트는 내게 뭐라고 한마디를 던지기는 했지만, 그리 화가 난 음성은 아니었다.

오히려 놀려먹을 거리가 하나 생겨서 기쁜 듯, 목소리에서 웃음기가 가득 묻어 나왔다.

“죄송…… 하아, 하아…… 합니, 합니…… 흐아아! 다아하…… 하…….”

뭐라고 변명을 하고 싶었지만, 변명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그럴 숨도 없었다.

내방에서부터 뒤뜰까지는 그리 멀지는 않았지만, 단숨에 뛰어오기에 가까운 거리도 아니었다.

나는 도착하자마자 허리를 90도를 꺾은 채, 땅바닥을 바라보며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숨을 몰아쉬었다.

“늦잠이라도 잤어?”

“네. 방금 일어나버렸어요.”

조금 진정이 되자 나는 고개를 들어 인스트를 쳐다보았다.

“어제 테오도르 님 때문에 고생했다는 이야기 들었어. 오늘 하루쯤은 쉬어도…….”

웃는 낯으로 이야기를 하던 인스트의 얼굴이 갑자기 딱딱하게 굳었다. 조곤조곤 말하고 있던 입도 얼어붙더니, 이내 천천히 벌어졌다.

“너…….”

날 쳐다보는 인스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크, 얼굴에 침 자국이라도 있는 걸까? 눈곱은 뗐지만, 그쪽은 미처 체크하지 못했는데!

“아, 그게, 방금 일어나서 세수를 못 하고 와서요. 보기 싫으시면 얼른 세수하고 올까요?”

“그게, 세수한다고 없어질 게 아닐 것 같은데?”

나한테 말하고 있는 게 분명한데, 내가 아니라 다른 곳을 쳐다보며 인스트가 말했다.

“네?”

세수한다고 없어질 게 아니라니? 아! 혹시, 얼굴에 배게 자국이 찍힌 걸까?

나는 손을 들어 먼저 입가를 더듬었다. 말라붙은 침 자국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 역시 베개 자국인가 싶어서 손을 더 위로 올렸다. 하지만 피부는 매끈했다. 올록볼록한 느낌은 없었다.

그럼 인스트는 뭘 보고 그러는 거지?

“일단은…….”

인스트는 갑자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나무에 걸쳐놓은 수건을 발견하곤 그쪽으로 걸어갔다.

“이걸로 가리는 게 좋겠네.”

인스트는 아직 땀을 닦지 않아 보송보송한 수건을 내 목에 두르더니, 마치 그게 스카프라도 되는 것처럼 묶어주었다.

그리고 내가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그러고 있는 인스트의 얼굴이 조금 붉어져 있었다.

“아……!”

인스트의 행동에 그제야 깨달았다. 그가 뭘 가리려고 하고 있는지.

테오도르가 그야말로 물고, 빨고, 핥았던, 내 목덜미에, 키스 마크가 남은 것이 틀림없었다.

“죄, 죄송합니다.”

얼굴로 화르르 열이 올랐다. 묻지도, 궁금하지도 않았던 인스트에게 강제로 설명하고 있었던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어제 테오도르와 내가 무슨 일을 벌였는지.

“너…….”

이제야 다시 나를 쳐다보며 인스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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