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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64화 (64/169)

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 064

나는 한 손을 들어 올려, 테오도르의 뺨을 감쌌다. 피가 흐르지 않는 것처럼 차가운 피부가 손으로 느껴졌다.

조금이라도 내 온기가 그에게 전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테오도르가 움찔하더니 이내 내 팔을 잡은 손의 힘을 뺐다.

대신 그의 손은 미끄러져 내려와 내 허리에 안착했다. 잔뜩 힘을 줘서 경직되어 있던 뺨도 조금은 느슨하게 풀렸다.

“곧 괜찮아질 거예요.”

그렇게 해주고 싶었다. 테오도르가 괜찮아지기를 원했다.

잡은 뺨을 내 쪽으로 끌어당기자, 테오도르는 유순한 짐승처럼 기꺼이 내 쪽으로 당겨와 주었다. 까치발을 살짝 들고, 천천히 그런 테오도르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저 무작정 돌진했던 처음과는 달랐다. 천천히 다가간 입술이 부드럽게 테오도르의 입술에 닿은 순간, 나는 그것을 느꼈다.

지금이 나의 첫 키스라고.

내 감정이 테오도르에게 닿은 이 순간이 나의 첫 키스라고.

부드럽게 닿은 입술이 살짝 짓이겨지자, 입술 아래 여린 점막과 점막이 맞닿았다. 매끄러운 촉감에 살짝 가슴이 떨렸다.

천천히 입술을 떼어내고, 들려있던 발뒤꿈치를 바닥에 붙였다. 그리고 눈앞의 테오도르를 응시했다.

여전히 그의 눈은 붉었지만, 아까와는 달리 슬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광증이 발현 중임에도 불구하고 편안해 보였다.

“테오도르.”

작게 이름을 속삭이자, 부름을 받은 기사처럼 테오도르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이미 가까워져 있던 우리의 사이에는 이제 빈 자리가 남아 있지 않았다.

바싹 붙은 허벅지와, 맞닿은 배. 테오도르의 가슴에 살짝 짓눌러진 나의 가슴.

“레나티스.”

마치 내가 자신의 이름을 부른 것에 대한 대답처럼 테오도르가 내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그 호명에 가슴이 떨렸다.

아무나 불렀던 이름이었다. 수천 번을 들었고, 별 감흥 없이 저절로 반응하게 되는 내 이름이었다.

하지만 조금 전의 그 호명은 뭔가 특별했다. 다시는 없을 한순간 같았고, 평범한 내 이름은 너무나도 특별하게 느껴졌다.

마치 내 이름에 새 생명을 얻은 기분이었다.

“……아!”

지금 내 기분이 조금이라도 전해지기를 바라며 테오도르와 눈을 맞추고 있던 순간이었다.

테오도르의 붉은 눈이 일순간 무슨 결심이라도 한 듯 진해지더니, 그의 손이 내 엉덩이 밑으로 가더니 그대로 나를 번쩍 들어 올렸다.

순식간에 높아진 시야에 놀란 것은 한순간이었다. 급작스럽게 부딪혀오는 테오도르의 입술에 그것보다 더 놀랐기 때문이었다.

가볍게 닿았던 나의 키스와는 달리 테오도르의 키스는 다급했다. 마치 억눌러왔던 것을 터트려버리겠다는 듯이 테오도르는 강하게 입술을 부딪쳐왔다.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이고 시작된 키스는 곧이어 방향을 잃었다.

미끄러지듯 들어온 혀에, 강하게 빨아 당기는 압력에, 쉴 새 없이 휘몰아치는 숨결에 정신이 없었다.

어느새 내 등 뒤로 벽이 닿아 있다는 것도, 내 양다리 사이로 테오도르의 다리가 들어와 있다는 것도, 내가 테오도르의 머리를 감싸고 정신없이 그와 입을 맞추고 있다는 것도, 내가 알아차린 것은 그 모든 일이 이미 일어난 뒤의 일이었다.

“흐…… 읏…….”

숨이 가빴다.

그게 조금의 빈틈도 없이 맞닿은 입술 때문인지, 내 작은 숨결과 한 방울의 타액 하나마저도 아까워 죽겠다는 듯이 모조리 삼켜 버리는 테오도르 탓인지는 몰라도.

가빠오는 호흡에 작게 신음을 흘리자, 그제야 테오도르가 잠시 입술을 떼주었다.

“하아…… 하아…….”

내가 숨을 몰아쉬는 사이에도 테오도르는 기다리지 않았다. 그의 입술은 내 턱선을 따라 뒤로 흘러갔다.

“아앗!”

그가 나의 도톰한 귓불을 깨문 순간, 내 신체의 어느 한 부분이 짜르르 울렸다. 그리고 그것은 내 혀끝에서 작은 신음 섞인 목소리로 변했다.

그러자 귓불에 닿은 테오도르의 이가 그의 혀로 변했다. 축축하고 미끈한 것이 귓불에서 귓바퀴를 따라 미끄러져 올라갔다.

그리고 내 몸에서는 오돌토돌한 닭살이 발끝에서부터 위로 오스스 돋아 올라왔다.

“흐아…… 앗!”

테오도르의 혀가 귓구멍을 파고든 순간, 와르르 쏟아지는 소음과 동시에 느껴지는 적막에 나는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쏟아내고 말았다.

그리고 그를 와락 껴안고 말았다.

순식간에 테오도르의 입술은 내 귀를 스치고 지나가 버렸다. 그런데도 그는 아쉬워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입술을 내 머리카락에 파묻었을 뿐이었다.

머리카락들 사이로 테오도르의 코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의 숨과 호흡이 느껴졌다.

그는 아주 느릿하게 움직였다. 마치 내 머리카락 한올 한올에서도 내가 느껴지는 것처럼.

천천히 움직인 테오도르는 어느새 눈가에 닿아 있었다. 그의 숨결에 내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아니, 어쩌면 그의 숨결에 떨린 것이 아닐지도 몰랐다. 그저 이다음에 다가올 무언가 때문에 내 몸이 저절로 떨린 것일 수도 있었다.

“하아…….”

테오도르는 뱃속 가득한 곳에서 밀려 나온 것 같은 숨을 쉬었다.

조금 전의 다급한 키스를 한 사람이 낸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애달프고, 안타까운 숨소리였다.

마치 아직 오아시스를 만나지 못한 사막의 여행자와 같았다. 그는 아직 목이 말랐다.

사막을 기는 뱀처럼 테오도르의 입술이 내 얼굴 위에서 헤맸다. 내 속눈썹에 닿고, 내 코에 닿고, 내 뺨에 닿았고, 또 내 이마에, 또 코끝에.

마치 내 얼굴 모든 곳에 빠짐없이 닿으려는 사람처럼 테오도르는 내 얼굴을 헤맸다. 그동안 나도 점점 애가 닳아 올랐다.

그가 원하는 오아시스가 어디 있는지 나는 알고 있었다. 그의 목마름을 해결해줄 수 있는 샘이 있는 곳으로 그를 인도하고 싶었다.

나는 성에서 얌전히 기다리는 공주가 아니라, 용사의 동료가 되고 싶었다. 함께 세상을 구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가 내 코끝에 입을 맞추고 고개를 들어 올린 순간, 고개를 내밀어 그의 입술에 내 입술을 부딪쳤다.

“……!”

테오도르가 놀란 듯, 그의 입술이 멈칫하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그의 입술 안으로 내 혀를 밀어 넣었다.

‘당신의 세상을 구하고 싶어.’

내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했다.

길 잃은 아이에게 손을 잡아주고 싶었다. 슬픈 눈에서 그것을 걷어내 주고 싶었다. 가여운 피폐물 남주에게 힐링을 주고 싶었다.

나는 테오도르에게 그렇게 해주고 싶었다.

“……!”

내 마음이 통한 걸까? 잠시 멈칫했던 테오도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만히 멈춰있던 그의 혀가 내 혀를 천천히 옭아매기 시작했다.

아주 천천히, 아주 느릿했지만, 확실한 움직임이었다.

습한 숨결이 저절로 내뱉어지고, 뜨거운 숨결이 목구멍으로 꿀떡꿀떡 넘어갔다.

바싹 맞붙어진 입술과 입술 사이에는 작은 먼지 하나도 들어갈 틈이 없었다.

삼키는 타액과 삼켜지는 타액. 뒤엉키는 혀와 입술. 그와 나.

하나의 존재.

“하아…….”

“후우…….”

잠시 입술이 떼어진 순간, 더운 숨결이 동시에 내뱉어졌다. 그제야 나는 내가 어느새 눈을 감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눈앞에 테오도르가 있었다.

여전히 붉은 눈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눈은 또 달라져 있었다.

처음의 붉은 눈이 슬펐다면, 그리고 중간에 봤던 눈이 편안해 보였다면, 지금 나를 바라보고 있는 테오도르의 눈은 뭐랄까…….

‘욕망.’

마치 수천 년간 인간의 욕망을 흡수하고 자라난 보석처럼, 테오도르의 눈은 탐욕과 정복욕으로 붉게 빛나고 있었다.

“…….”

나를 바라보고 있던 테오도르의 고개가 살짝 꺾인다 싶더니 그대로 내 쪽으로 다가왔다. 이번에는 입술이 아니었다.

“아!”

테오도르의 입술이 닿은 것은 내 목덜미였다.

부드럽게 닿은 테오도르의 입술이 느껴진다고 생각한 순간, 미끈한 촉감이 느껴졌다. 그의 혀가 내 목을 핥아 올렸다.

그리고 옮겨간 자리를 다시 입술로 부드럽게 짓눌렀다. 그리고 다시 축축한 숨결과 혀가 느껴졌다. 부드러운 그 행위에 스르륵 다시 눈이 감겨오는 순간이었다.

“읏!”

예기치 못한 아픔에 눈이 다시 번쩍 떠졌다.

조금 전까지 부드럽기 짝이 없었던 그 입술에 별안간 단단하게 모이고, 뱀처럼 미끄러웠던 혀가 거세게 내 살점을 짓누르며, 목덜미를 빨아올린 까닭이었다.

분명한 아픔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달콤한 쾌락이기도 했다.

“으읏!”

연이은 그 아픔에, 또 동시에 밀려오는 쾌락에, 내 입술에서는 저절로 비음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분명 테오도르의 입술은 목덜미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저절로 발이 곱아들고, 닿은 적 없는 뱃속 어딘가가 찌르르 울려왔다.

처음 느껴보는 감각에 당황한 나머지 이미 잡고 있었던 테오도르의 팔과 몸을 더욱 꽉 붙들었다.

그러자 테오도르의 혀가 다시 부드럽게 내 목덜미를 쓸었다.

아직도 찌릿한 감각이 남아 있는 바로 그 자리였다. 아픔과 쾌락과 부드러움과 짜릿함이 동시에 존재했다.

쏟아지는 감각들을 한꺼번에 받아내느라 정신이 없어 테오도르의 머리가 다른 쪽으로 옮겨간 것도 몰랐다.

“아!”

또 한차례의 번개 같은 느낌이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몸이 저절로 펄쩍 튀어 올랐다. 그러자 테오도르의 손이 더욱 단단하게 내 허리를 붙들었다.

마치, 아직 더 남아 있으니 가만히 있으라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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