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 061
내가 요즘 테오도르가 좀 이상하다고 말했던가?
“…….”
오늘의 테오도르 역시도 이상했다. 차 시중을 들기 위해서 방에 들어가자 평소와는 다르게 책을 읽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아주 부담스러운 시선으로.
그리고 내가 차를 우리고, 기다리고, 찻잔에 따를 때까지도 그 부담스러운 시선은 줄곧 나를 향해있었다.
“왜 그렇게 보세요?”
“예뻐서.”
확실히…… 이상했다.
“리본이.”
“아!”
그제야 나는 테오도르가 보던 것이 내가 아니라 그가 선물해준 노란색 리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리본이 내 머리에 달려 있으니, 당연히 나를 쳐다보는 것처럼 보였다.
“네. 예쁘죠?”
리본 칭찬에 우쭐해진 나는 활짝 웃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리본의 좌우를 잡아당겨 모양을 다시 바로잡았다. 내 솜씨에서는 이게 최선이었다.
“귀여워.”
“네. 맞아요. 노란색이라서 귀엽기도 해요.”
“네가.”
“…….”
나는 할 말을 잃고야 말았다. 어디 있는지 다시 찾아야 했지만, 나는 당황스러워서 그러지 못하고 눈만 깜박였다.
테오도르가 이상했다.
“빨갛고, 귀엽네.”
“노란색 리본인데요?”
“네 얼굴.”
“…….”
진짜, 진짜, 이상했다.
빤히 나를 쳐다보며 알 수 없는 멘트를 해대는 테오도르를 어떤 낯으로 대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테오도르의 말을 들어봐선, 이미 빨개진 것은 확실했지만.
‘진짜, 나 좋아하나?’
꿈속의 테오도르가 한 말이 자꾸만 머릿속에서 빙빙 떠올랐다.
‘그렇지만 난 테오도르의 취향이 아닐 텐데?’
힐끗, 테오도르를 쳐다보았다. 그는 여전히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자주 집요한 시선으로.
‘아니, 19금 피폐물의 미친 집착 남주가 날 좋아하게 되면 내 인생은 망하는 거 아닌가?’
이제 머릿속에서 테오도르의 말이 빙빙 도는 것이 아니라, 그냥 돌아버릴 것 같았다.
“이상해.”
“네?”
정신없어 죽겠는데, 테오도르는 또 짧은 말을 한마디 툭 내뱉었다.
그냥 저 입을 틀어막아 버리는 게 나의 정신건강에 좋을 것 같았지만, 하녀 주제에 그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나는 그저 멍청하게 더 이야기해 보라는 듯이 ‘네?’라고 말해버렸다.
“기분이 이상해.”
“기분이 어떠신대요?”
묻고 싶지 않았지만, 물었다. 혹시나 기분이 그냥 기분이 아닐 수도 있으니, 테오도르의 치료제로서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테오도르의 섬세하게 긴 손이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 손은 그의 왼쪽 가슴에 안착했다.
“두근거리는 것 같은데?”
“심장이요?”
“그래.”
테오도르는 짐짓 진지한 눈빛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나는 매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심장은 원래 두근거리는 것 아닌가요?”
“…….”
“원래는 두근거리지 않으셨어요? 그게 더 큰 일인 것 같은데. 아! 아니면, 혹시 오늘따라 너무 심하게 두근거리시나요? 그것도 큰일인 거 같긴 하네요. 조지 할아버지가 심장이 너무 심하게 쿵쾅거린다고 하시다가 며칠 뒤에 돌아가셨거든요.”
나는 심각한 어조로 테오도르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의 눈빛이 아주 살짝 흔들리는 것이 내 눈에 보였다. 테오도르도 본인 건강이 염려스럽긴 한 모양이었다.
“오르디 님을 불러올까요? 아니면 의사 선생님을 모셔오라고 할까요? 아! 일단 차를 치울까요? 따뜻한 차가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만들어서 심장이 더 두근거릴지도 몰라요.”
“아니, 아니. 그게 아니야.”
내가 황급히 앞에 있는 차를 치우려고 하자, 테오도르가 그런 내 손을 덥석 잡았다. 갑자기 느껴진 온기에 눈이 저절로 동그랗게 떠졌다.
“레나티스.”
그리고 진지한 음성으로 테오도르가 내 이름을 불렀다.
“……미칠 것 같아.”
나지막한 속삭임.
어쩐지 안타까운 기분이 들게 만드는 테오도르의 속삭임에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거기다가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는 테오도르의 눈빛은 어딘지 모르게 애잔함이 있었다.
눈가가 살짝 붉은 것이, 어딘지 모르게 애처로운 느낌마저 들었다.
거기다가 방금 내 이름을 부른, 미칠 것 같다고 말한 붉은 입술을 더하면, 내 입술이 괜히 바싹 마르는 것이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테오도르 님…….”
나는 조용히 내 손을 잡은 테오도르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테오도르의 얼굴에 설핏 미소가 걸리는 듯했다.
“열이 있으신 것 같아요!”
아까 테오도르가 내 손목을 잡았을 때는 긴가민가했는데, 내 손으로 직접 그의 손을 붙잡아보니 확실했다.
거기다가 그의 눈이 어딘지 모르게 애처로워 보이는 것도, 목소리가 살짝 떨리는 것도, 입술이 평소보다 더 붉은 것도, 열이 있어서 그런 것이라면, 전부 말이 되는 소리였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제가 얼른 가서 오르디 님을 모셔올게요.”
“뭐? 아니, 이건 열이 나는 게 아니라…….”
“원래 본인은 자기 열을 못 느낄 수 있어요. 거기다가 막 기분도 이상하다면서요.”
“잠깐만, 레나티스. 내가 그렇게 말한 건…….”
“조금만 기다리세요. 저 달리기 엄청 빠른 것 아시죠?”
나는 테오도르의 손을 억지로 떼어내고, 얼른 밖으로 뛰어나갔다.
.
.
.
“미열이 아주 조금 있긴 한데, 그리 걱정할 정도는 아닌 것 같네요. 혈압도…… 정상이고, 맥박도…… 정상이네요.”
오르디는 아주 진지하게 테오도르의 상태를 살폈다.
그리고 옆에서 손을 모아쥐고 기다리고 있던 나는, 테오도르가 별 이상이 없다는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다행이네요.”
“뭐가 다행이라는 거야?”
물고 있던 체온계를 빼낸 테오도르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진단이 내려진 것만으로도 벌써 몸이 나은 건지, 눈이 촉촉하다든가 목소리가 괜히 떨린다든가 하는 증상도 벌써 사라진 것 같았다.
“테오도르 님이 많이 아프신 게 아니라니까요.”
내 대답에 테오도르의 찌푸려져 있던 미간이 살짝 펴졌다.
“내가 아플까 봐 걱정했어?”
“당연하죠.”
“흠.”
테오도르는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고개를 슬쩍 돌리곤 슬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괜찮다고 하시니, 전 이만 나가볼게요.”
테오도르와 그에게 잔소리하는 오르디를 뒤로한 채, 나는 이미 식어버린 찻잔을 정리해서 왜건을 밀고 나왔다.
“…….”
방문을 닫고 나온 내 얼굴에서는 단박에 표정이 사라졌다.
“어떻게 하지?”
왜건을 밀고 복도에서 두어 걸음이나 갔을까?
다리에 힘이 풀려서 나는 복도에 그대로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나는 순박한 시골 처녀이긴 했지만, 바보는 아니었다. 심지어 전생에는 수많은 로맨스 소설을 본 사람이기도 했다.
조금 전에 날 향했던 테오도르의 목소리가, 눈빛이, 그 말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지 않았다.
“어떻게 하지?”
아무래도, 테오도르가 날 좋아하는 것 같다.
* * *
19금 피폐물의 미친 집착 남주가 자신을 좋아하는 것 같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고르시오.
1번. 도망친다.
“좋은 꼴 못 보지.”
애초에 성공한 것도 본 적이 없었다. 설사 당시에는 잘 도망친다고 하더라도, 결국에는 잡히긴 마련이었다. 괜히 집착남주가 집착남주가 아니었다.
거기다가 내가 도망갔다가, 대신 아스텔라 언니가 잡혀 오기라도 하면? 그래서 지금 억지로 돌려놓은 이야기가 원래의 소설처럼 돌아가기라도 한다면?
도망은 절대로 옳은 선택지가 아니었다.
2번. 받아들인다.
“좋은 결말이 없지.”
적어도 내가 본 19금 피폐물의 가장 행복한 결말이란, 메리 베드 엔딩이었다.
애초에 피폐물이라고 정의된 이상, 해피엔딩 따위는 기대하지 말아야 했다.
심장이 찢어지는 것 같은 아릿함과 극한의 쾌락이 동시에 공존하는 것이 바로 19금 피폐물이었다.
독자로 엿보기에는 최상이지만, 내가 직접 당한다면 최악이었다.
지금의 테오도르는 19금 피폐물의 남자 주인공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순한 맛이었지만, 그렇다고 내가 원했던 힐링물의 주인공이라고도 할 수 없었다.
아직은 안심할 수 없는 상태였다.
3번. 모르는 척한다.
“가능한가?”
오늘, 테오도르가 내게 귀엽다고 말하자마자 빨개진 내 얼굴이었다.
귀는 못 들은 척하고, 머리로는 모르는 척을 한다고 해도, 내 신체 반응까지 통제할 수는 없었다.
심지어 오늘처럼 테오도르가 아련한 눈빛으로 날 쳐다보며, 나를 원한다고 생각하면, 벌써 얼굴이 뜨거워지고 뱃속이 간질간질한 느낌이었다.
“아니, 그 얼굴로 그 눈빛을 하는건 반칙이잖아.”
사실, 남자 주인공의 존재들이 원래 사기에 가까운 캐릭터이긴 했다. 끝내주는 배경에, 끝내주는 얼굴.
그리고 비상한 머리와 순간을 놓치지 않는 번뜩이는 눈치까지.
내가 이미 눈치챘다는 것을 눈치챌 뿐만 아니라, 내가 어떤 상태인지까지 금방 알아차릴 것이 뻔했다.
“아, 어쩌지…….”
나는 그대로 침대에 벌러덩 드러누워 버렸다. 머리가 아팠다.
-똑똑.
“네, 넷!”
갑자기 들린 노크에 나는 다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혹시나 테오도르일까 싶어서 황급히 머리를 매만지기까지 했다.
동시에 조금 전까지 테오도르 때문에 고민해놓고 잘 보이겠다고 머리를 만지는 나에게 자괴감을 느꼈다.
“리타 아주머니?”
문을 열자, 그 자리에는 테오도르가 아닌 리타 아주머니가 서 있었다.
“레나티스. 널 좀 보자는 사람이 있어.”
그렇게 말하는 리타 아주머니의 얼굴에는 이제껏 그녀에게서 본 적 없는 긴장감이 어려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