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 060
예쁘게 머리를 땋아보기도 하고, 땋아서 올림머리도 해보았다. 하지만 손재주 없는 내가 해서 제일 그럴듯한 머리모양이 나오는 것은 높이 묶은 포니테일이었다.
“예쁘다.”
높이 묶은 포니테일에 노란 리본을 묶자, 내 입에서는 저절로 그 소리가 나왔다. 연한 노란색은 내 분홍 머리카락과 정말 잘 어울렸다.
“히힛!”
살짝 고개를 돌리자 리본 꼬리가 나비처럼 춤을 추며 흔들렸다.
“헤헷!”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이번에는 묶은 리본 모양이 나풀나풀 춤을 췄다.
“예쁘당~!”
신이 나서 제자리에서 폴짝 뛰었다. 리본도 나를 따라 위로 팔짝 뛰어올랐다가 아래로 천천히 내려왔다.
그 모습도 예뻐서 나는 얼굴에 저절로 함박웃음이 지어졌다.
“미쳤냐?”
하지만 이런 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스기엔의 평가는 냉정했다.
고개를 돌리자 침대에 삐딱하게 흘러내려서 나를 쳐다보고 있는 스기엔이 보였다.
‘어째 저 표정, 저 말투, 어제 나한테 뭐라고 했던 테오도르와 비슷한데?’
제정신이냐고 말하는 저 말투가 그랬고, 삐딱한 시선도 그랬다. 그 외에는 전혀 비슷한 점이라곤 없었지만.
“지금 몇 시간 동안 머리를 묶었다가, 풀었다가, 다시 묶었다가, 거울 보고 웃었다가, 울었다가. 제정신이야?”
“울지는 않았어.”
“아까 죽겠다고 소리를 지르며 눈물 흘린 건 누군데?”
“아, 그건! 잘못 묶어서 머리카락이 뽑혀서 그랬지!”
“바보 아냐? 자기가 자기 머리카락을 뽑고 울다니?”
“머리 묶기가 얼마나 섬세하고 어려운 작업인데! 거기다가 내 머리는 통제가 어렵단 말이야.”
거의 뽀글거리는 수준의 곱슬머리를 매끈하게 다듬어서 묶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머리카락 한 올 없는 스기엔이 알 리가 없었다.
“자기 몸 하나도 제대로 통제 못 하는 인간들이란. 쯧쯧!”
스기엔은 안타깝다는 듯이 혀를 찼다. 난 어느샌가 몬스터에게 비웃음을 당하는 것이 익숙한 인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언니가 있었다면, 다른 예쁜 머리 스타일도 가능했을 텐데.”
나는 거울을 보며 중얼거렸다.
지금의 포니테일도 마음에 들긴 했지만, 같은 포니테일이라도 언니가 묶어주었다면 더 예쁘게 묶을 수 있었을 거다. 리본도 더 예쁘게 묶을 수 있었을 테고.
아스텔라 언니는 나보다 손재주가 훨씬 좋았다.
곱슬머리가 못생겼다며 징징거리면, 언니는 언제나 정색하며 뻣뻣하기만 하고, 머리도 잘 땋아지지 않는 자기 머리보다 내 곱슬머리가 훨씬 예쁘다고 말해주었었다.
그리고 빗질도 잘되지 않는 내 머리를 물을 묻혀가며 빗질해 주고, 곱게 땋거나 묶어주곤 했었다.
‘우리 레나가 세상에서 제일 예뻐.’라고 말하면서.
“언니는 잘 지낼까?”
그러고 보니 매일 보았던 언니의 얼굴을 못 본 지도 거의 두 달이 다 되었다.
“언니, 보고 싶다…….”
매일매일 보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입 밖으로 그 말을 꺼내자 언니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들었다.
“편지를 써볼까?”
리본을 담아온 예쁜 포장지를 보자 문득 그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언니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두 사람은 에뮬 오빠의 먼 친척이 사는 곳으로 도망을 갈 생각이라고 내게 알려주었다.
아무래도 젊은 남녀 둘이서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정착하는 것은 어려울 테니, 그 친척의 도움을 받을 생각으로.
그러니 에뮬 오빠네 식구들은 지금 두 사람이 어디 있는지 알지도 몰랐다.
언니는 아빠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도망을 택한 것이지만, 에뮬 오빠는 사랑을 위해서 떠난 것이었다.
거기다가 이제 여기에서 내 생활은 제법 안정적이었다. 테오도르의 상태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 생각보다 테오도르는 광증상태에서 훨씬 빠르게 진정했고, 평소에도 친절했다.
언니에게 나는 여기에서 잘 지내고 있다고 양심의 가책 없이 말할 수도 있었다.
“밑져야 본전이지.”
나는 당장 포장지를 들고 탁자로 갔다. 그냥 하얀 종이가 있긴 했지만, 이 포장지가 더 예뻤다. 오랜만에 언니에게 쓰는 편지인데 예쁜 종이에 쓰고 싶었다.
“뭐 하는 거야?”
조심스럽게 포장지를 해체하고 있으려니, 스기엔이 옆으로 다가와 물었다.
“언니에게 편지를 쓸 거야.”
“왜?”
“보고 싶으니까.”
“그럼 보러 가면 되잖아?”
“그러면 더 좋긴 하지만, 지금 내 사정으로는 그게 좀 어렵거든.”
“인간들이란, 참 피곤하게도 사는군.”
스기엔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러니까 침대 위의 폭신한 내 베개로.
최근에 스기엔은 배게 위에 눕는 걸 좋아했다. 베개가 두 개라서 망정이지, 하나밖에 없었다면 나는 배게 아래에서 쭈그리고 자야 했을 거다.
반듯하게 펴진 포장지는 접힌 선이 좀 있긴 했지만, 여전히 색깔은 예뻤다.
한참을 펜을 쥐고 고민하다, 나는 마침내 글을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아스텔라 언니에게.
편지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 * *
“편지?”
테오도르는 오르디가 말한 한 단어를 잡아냈다. 평의한 단어였으나, 이질적인 단어였다. 적어도 테오도르에게는 그랬다.
“네. 레나티스 양이 제게 편지를 한 통 맡겼습니다. 자신은 저택에서 나갈 수 없으니, 대신 부쳐달라고요.”
“어디의 누구에게?”
“받는 주소로 봐선 이전에 살던 그 마을로 가는 편지 같았습니다.”
“언니에게 보내는 편지인가 보군.”
테오도르는 레나티스가 종종 이야기를 꺼내는 언니를 떠올렸다.
오르디가 그곳에 갔을 때 언니는 보지 못했다고 했지만, 그녀에게 언니가 있는 것은 분명했다. 그것도 매우 사이가 좋은.
언니 이야기를 꺼낼 때면 언제나 레나티스의 표정이 밝아지는 것을 보며,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자매의 사이가 좋다는 것을 테오도르는 알 수 있었다.
오히려 언니를 그렇게 좋아하는 레나티스가 이제껏 한 번도 언니에게 연락하지 않았다는 것이 더 의외였다.
“음……. 제가 그리 심각한 편견을 가진 사람은 아닙니다만, 에뮬이라는 이름은 여성의 이름은 아니리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에뮬?”
테오도르는 자신의 예상이 빗나갔을 뿐만이 아니라, 레나티스가 남자에게 편지를 썼다는 것이 당황스러웠다.
“그럼 아버지에게 편지를 쓴 건가?”
분명 오르디에게 레나티스의 아버지는 망나니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것도 자기 딸을 때리는 개망나니.
보통 사람이라면 그런 아버지에게 편지를 쓰는 일 따위는 없겠지만, 착한 레나티스라면 개망나니 아버지에게 편지를 쓸 수도 있을 거 같았다.
그녀는 미친놈인 자신에게도 손을 내밀어준 사람이었다. 그러니 자신과 피가 섞인 미친놈이라면 더 쉽게 손을 내밀지도 몰랐다.
“아뇨, 성이 그라치아가 아닌 것을 봐선, 아버지도 아닌 것 같습니다. 에뮬 랑시드 라고 받는 사람이 되어 있군요.”
“에뮬 랑시드?”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그리고 그 이름을 듣는 동시에 테오도르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듣는 것만으로 기분이 나쁜, 자신은 선천적으로 그 이름을 싫어하게 태어난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 편지를 뜯어볼까요?”
오르디는 테오도르의 인상이 심상치 않아 보이자,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아닌 게 아니라, 오르디는 이미 품속에 레나티스의 편지를 챙겨온 참이었다. 그리고 그 편지를 뜯어볼 용의도 있었다.
남의 사적인 편지를 훔쳐본다는 것은 물론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는 일이었지만, 레나티스는 테오도르의 광증을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런 기색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혹시나 레나티스가 향수병이라도 느껴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거나 하면 곤란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그럴 계획이라도 세우고 있다면 더욱 곤란했다.
그래서 오르디는 레나티스의 사생활을 침해하더라도,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는 것이 안전하리라고 생각했다.
“아니. 됐어.”
하지만 테오도르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저 입술을 꾹 다물었을 뿐이었다.
‘그자의 이름이 에뮬 랑시드였군.’
테오도르는 지금 레나티스가 편지를 쓴 상대가 그녀가 말했던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오해해버리고 말았다.
사랑해마지않는, 망나니 같은 아버지를 제외하면 유일한 혈육이나 다름없는 언니에게도 아직 연락을 취한 적이 없는 레나티스였다.
그런 그녀가 처음으로 편지를 쓴 남자라면 그렇게 오해하는 것도 당연했다.
레나티스가 테오도르를 떠나 같이 살고 싶어 하는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이 바로 ‘에뮬 랑시드’라고.
“하지만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슨 만약의 경우?”
테오도르는 오르디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오히려 퉁명스럽게 되물었다. 오르디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이 매우 불경하고, 재수 없다는 듯이.
“그러니까…….”
테오도르의 태도에 오르디는 자신이 생각한 바를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그러니까, 혹여, 아주 만약에, 레나티스가 이 남자를 만나러 몰래 저택에서 달아나기라도 하면 어쩌냐는.
“도망칠 수 없어, 그 애는.”
하지만 오르디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테오도르는 그에게 대답했다.
“아무 데도 못 가.”
내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