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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56화 (56/169)

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 056

이상했다. 늘 하던 훈련이었고, 오늘이라고 별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테오도르가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이상하게 몸이 삐거덕대는 느낌이었다.

오른손잡이면서 자연스럽게 왼손으로 활을 잡았다가 뭔가 이상한 것을 깨닫고 허둥지둥 손을 바꿔 잡는다거나, 왠지 모르게 발이 어색한 느낌이라 몇 번이나 자세를 다시 한다거나.

“아니, 발 간격을 좀 더 벌려.”

인스트가 보기에도 내 자세가 이상했는지 지적했다. 그의 말대로 발 간격을 조금 더 벌려보지만, 여전히 뭔가 어색했다.

무릎이 제자리에 있지 않은 느낌. 혹은 팔꿈치가 어딘가 어긋나 있는 것 같은 느낌.

“앞으로 더.”

보다 못한 인스트가 자기 발을 내 발과 발 사이로 밀어 넣더니 한쪽 발을 툭툭 찼다.

그가 말한 발을 앞쪽으로 조금 더 옮기자 그제야 무릎이 제자리를 찾았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팔은 어딘지 모르게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었다.

“테오도르 님이 보고 있어서 긴장했어?”

슬쩍 다가온 인스트가 살그머니 귓가에 속삭였다. 내가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인스트가 단박에 알아차릴 정도로 지금 내 자세가 그렇게 엉망인가 싶어서 저절로 울상이 되었다. 이제껏 배운 것이 한순간에 몽땅 날아가 버린 걸까?

“……네.”

나는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것보다 더 작게 대답했다. 내 대답을 들은 인스트가 억지로 웃음을 참는 듯 입꼬리가 씰룩였다.

그는 지금 상황이 그저 재밌는 모양이었지만, 난 아니었다. 솔직히 말해서 조급했다.

테오도르의 말은 내가 진짜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보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그럼 혹시나, 그의 눈에 내가 재능이 없어 보인다면? 궁술훈련은 그만해도 좋겠다고 말할지도 몰랐다.

난 아직 활쏘기를 배운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아기 궁수였다. 이제야 겨우 활이 과녁 안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지금에 와서 그만둔다면 너무 억울했다!

심지어 인스트는 내가 진도가 엄청 빠른 편이라고까지 했는데!

“자, 어깨에 힘을 좀 빼고.”

인스트의 손이 이번에는 내 어깨를 툭툭 쳤다. 그제야 내가 힘을 잔뜩 주고 있어서 어깨가 하늘만큼 솟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크게 숨을 한번 들이쉬었다가 내뱉어봐.”

“후우~ 하아~.”

숨을 내뱉으며 힘을 빼자 어깨가 아래로 내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허리를 너무 틀었어.”

인스트의 손이 내 허리를 감쌌다. 살짝 힘을 줘서 옆으로 손을 틀자, 내 허리도 함께 살짝 돌아갔다.

아주 미묘한 정도의 각도였는데, 신기하게도 팔꿈치가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간다는 감이 왔다.

“그리고, 고개가…….”

허리에 있던 인스트의 손이 위로 올라오며 막 내 두 뺨을 감싸려는 순간이었다.

“대체 언제 쏘는데?”

짜증 섞인 목소리에 내 고개는 과녁 쪽이 아니라 테오도르 쪽으로 돌아갔다.

팔짱을 낀 테오도르가 매우 아니꼽다는 표정을 하고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기껏 참관하겠다고 왔는데, 쏘라는 활은 안 쏘고 자세만 한참을 잡고 있으니 지겨운 모양이었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꼭 애인이 바람피운 현장이라도 잡은 사람처럼 저렇게 도끼눈을 뜨고 쳐다볼 필요는 없지 않나?

“지, 지금 곧이요.”

나는 당황하며 다시 몸을 돌려 과녁을 바라보았다. 얼른 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이, 인스트 님…….”

테오도르를 쳐다본다고 기껏 잡은 자세가 이미 흐트러져버렸다.

거기다가 테오도르의 짜증에 머릿속은 더 엉망진창이 되어서 내 사지를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어깨가 다시 솟았잖아. 너도 참 어지간하네. 자자, 긴장을 좀 풀고, 고개를…….”

“인스트!”

인스트가 다시 내 자세를 바로잡아주려는 순간, 옆에서 다시 순도 높은 짜증이 섞인 목소리가 날아왔다.

“말로 해도 될 것 같은데! 왜 굳이, 꼭, 그렇게!”

테오도르는 무시무시한 얼굴로 이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오며, 마치 심판에게 항의하는 선수처럼 인스트에게 소리쳤다.

“쏘, 쏠게요!”

내가 빨리 쏘지 못해서 인스트가 테오도르에게 욕을 먹는다는 생각에 나는 재빨리 과녁을 겨눴다.

여전히 무릎은 삐걱거렸고, 어깨뼈는 어딘지 모르게 불편했으며, 팔꿈치가 튀어나온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어쨌든 지금은 쏴야 했다. 테오도르가 더 성질을 내기 전에.

-슈팟!

활 끝을 정확하게 놓았는지 확신이 들지 않았지만, 급하게 활을 놓았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화살은 날아갔다.

“……아.”

내 입에서 허망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음…….”

옆에 선 인스트의 입에서도 난감한 듯한 신음이 새어 나왔다.

내가 쏜 화살이 과녁을 맞추기는커녕, 아주 저 먼 곳으로 날아가 버렸기 때문이었다.

“뭐, 이 상황에서도 비거리는 아주 좋네.”

인스트는 최선을 다해 장점을 찾아서 평을 했다. 평소엔 맞추지 못하면 비거리는 좋아봤자 아무 쓸모 없는 거라고 말했는데 말이다.

내가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멀리 화살을 날리면 늘 이야기했던, 사슴을 쏘려다가 사람을 쏴서 감방 가고 싶냐는 잔소리도 오늘은 하지 않았다.

“…….”

나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아랫입술을 깨물며 테오도르를 쳐다보았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모습을 보였으니, 그가 재능이고 나발이고 다 때려치우라고 말해도 할 말이 없었다.

“…….”

테오도르 역시 내 어이없는 조준에 당황했는지, 화살이 날아간 쪽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며 눈만 깜박이고 있었다.

그런 테오도르의 반응을 보자, 내 고개는 한없이 아래로 수그러들었다.

“그게…….”

“옷 때문이야.”

긴장해서 그런 거라고, 평소에는 이 정도까지 어이없게 쏘지는 않는다고 변명하려고 했다.

아니, 변명이 아니라 그게 사실이었다. 평소라면 명중은 아니더라도 과녁 근처 정도는 갔다.

그런데 내가 변명을 늘어놓기도 전에 테오도르가 매우 확신에 찬 목소리로 저렇게 말했다.

“네?”

뭔가 잘못들은 건가 싶어서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런 불편한 옷을 입고 어떻게 훈련을 하는 거야?”

내가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테오도르는 아주 심각한 표정과 단호한 목소리로 내가 그렇게 활을 쏜 것은 다 옷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야, 이거밖에 없으니까요.”

“왜?”

“왜냐고 물으시면, 이거밖에 없어서 이거밖에 없다고 말씀드리는 건데요.”

오르디가 준 메이드복은 오후에 테오도르의 차 시중을 들 때만 입었고, 훈련하거나 저녁에는 내가 가진 평상복을 입었다.

내가 가진 긴소매 평상복은 딱 두벌이었고, 오늘 입은 옷도 그중에 하나였다.

딱히 불편한 옷은 아니었다. 항상 언니를 따라 일하러 다니고, 집에서도 집안일을 했던 내가 불편한 옷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리 예쁘지는 않지만, 평범하고 적당한 옷이었다.

“셔츠는 좀 작은 것 같고.”

“그런가요?”

나는 내 옷소매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 보니 소매가 조금 짧은 것 같기도 했다.

옷은 어차피 물려받는 것이었기에, 몸만 들어가면 괜찮다고 생각했었다.

“치마보다는 바지가 편할 텐데?”

“바지요?”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테오도르를 보았다. 여자가 바지를 입는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귀족 영애들이 승마할 때는 바지를 입는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있지만, 보통의 여자가 바지를 입는다는 건 들어본 적도 없었다.

적어도 이 세계에서 태어난 이후에는 말이다.

“인스트. 오늘은 이만하도록 해. 복장을 갖추는 게 더 먼저일 것 같으니까.”

“네, 테오도르 님.”

“넌, 날 따라오고.”

여기서 테오도르가 말한 ‘넌’은 당연히 나였다.

“어디를 가는데요?”

“어딜 갈 것 같은데?”

알면 굳이 제가 물어봤겠습니까?

“옷 사러.”

“아, 아뇨. 괜찮아요.”

테오도르의 뒤를 따라가고 있던 걸음이 저절로 우뚝 멈췄다.

“걱정하지 마. 내 그 소중한 은퇴자금을 쓰라고 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런 나를 보며 테오도르가 피식 웃었다.

“그리고 괜찮다는 말 좀 그만해. 내가 괜찮은지 안 괜찮은지는 내 눈으로 보고 판단할 테니까.”

* * *

“와아~.”

지난번에 본 풍경임에도 나는 마차의 창문으로 바깥을 신나게 구경했다.

지나가는 사람은 너무 많았고, 그들의 옷은 모두 화려했다. 거기다가 가게의 진열장에 물건들도 너무 예뻤다.

가끔은 어디서 나는지 알 수 없는 맛있는 냄새가 나기도 했고, 미용실을 지날 때는 꽃향기와는 조금 다른 아주 향기로운 냄새가 나기도 했다.

모두 다 시골에서는 볼 수도, 맡을 수도 없는 냄새였기에 나는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그만 내리지.”

“아, 네.”

얼마나 열심히 구경했던지, 나는 마차가 멈춘 것도 몰랐다. 가장 먼저 인스트가 문을 열고 내리고, 주변을 한번 둘러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

테오도르가 그 신호를 보고 먼저 마차에서 내렸다. 그 뒤를 이어 나도 내리려는 순간이었다.

“?”

먼저 내린 테오도르가 내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잡아.”

내가 가만히 서 있자, 테오도르는 고개를 까딱여 제 손을 가리켰다.

“제가요?”

“그럼, 여기 누가 또 있어?”

테오도르는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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