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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55화 (55/169)

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 055

나도 모르게 쉰 한숨에서 아스텔라 언니가 내 상처를 어루만져 주면서 했던 행동이 떠올랐다.

이런 비싼 연고 같은 건 당연히 우리 집에 없었지만, 산에서 자라는 약초 같은 걸 내 상처에 얹어 주었다.

내가 아프다고, 따갑다고 칭얼거리면, 언니는 내 상처를 호호 불어주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하면 아픔이 덜했다. 무슨 원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랬다. 꼭 언니의 숨결이 아픔을 후후 불어서 날려버린 것처럼 덜 아팠다.

그래서 나도 언니가 다치면 서툰 솜씨로 약초를 짓이겨 붙이고, 호호 불어주곤 했었다.

그러면 언니는 환하게 웃으며, 금방 다 나을 것 같다고 말했었다.

“호~. 호~.”

나는 언니가 나에게 해주었던 것처럼 테오도르의 상처에 숨을 불어넣었다.

빨갛게 부은 상처가 빨리 가라앉기를 바라며. 벌써 붉어진 멍이 빨리 사라지기를 바라며.

내가 상처를 불어주자, 테오도르의 감은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그 정도로 세게 불지는 않은 것 같은데.

“괜찮으세요?”

“좀…… 괜찮아진 것 같아.”

조금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테오도르가 대답했다.

다행이었다. 이게 우리 자매에게만 통하는 방법이 아니어서.

“빨리 나으시면 좋겠네요.”

불투명한 연고가 투명해질 때까지, 살살 테오도르의 얼굴을 문지르며 말했다.

테오도르의 속눈썹이 대답이라도 하듯, 파르르 떨렸다.

* * *

“레나티스!”

노크에 문을 열자, 클레어가 내 이름을 부르며 와락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복도에서 경비를 서고 있던, 그러니까…… 병사님? 기사님? 사병님? 음…… 호칭을 모르겠다.

어쨌든 경비를 서고 있던 남자분이 그런 클레어를 보곤 당황하며 내 쪽으로 막 뛰어오려 했다.

“괘, 괜찮아요. 제 친구예요.”

나는 얼른 손을 들어 그분들이 괜한 뜀박질을 하지 않도록 제지했다.

“방에 들어올래?”

“응, 응!”

그렇게 대답은 했지만, 클레어는 내 목을 감고 있는 팔을 풀지 않았다. 여전히 나를 꽉 껴안은 채, 고개만 끄덕였을 뿐이었다.

할 수 없지.

나는 클레어의 허리를 손으로 감싸고, 허리를 뒤로 젖혀 그녀를 사뿐히 들어 올린 다음에 뒷걸음질로 함께 방으로 들어왔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은 나 말고, 너한테 있었잖아!”

고개를 번쩍 치켜든 클레어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글썽했다.

“미친 변태 놈이 욕실에서 너한테 덤벼들었다며?”

뭔가 디테일한 내용이 달라진 것 같긴 했지만, 결론적으로는 클레어의 말이 맞긴 했다.

“아, 응. 어제 그랬었어.”

“완전 눈이 뒤집힌 미친놈이었다며?”

눈은 꽤 정상적이었던 것 같았는데? 오히려 꽤 이성적으로 돈 계산을 한 것 같아서 더 재수가 없었다. 심지어 내 몸값이 너무 저렴해서 열받기까지 했었지.

“하필이면 사람 없을 때! 무서웠지? 어디 다치지는 않았어? 왜 나한테 말 안했어!”

그제야 클레어는 날 붙든 손을 놓고,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나서 나를 살펴보았다.

“괜찮아. 좀 놀라긴 했지만, 몸은 멀쩡해.”

나는 괜히 손을 붕붕 흔들어 보이며, 나의 건재함을 과시했다.

“다행이야! 내가 그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하던 일도 다 내팽개치고 달려왔다고.”

그러자 클레어는 다시 나를 와락 안았다. 빵이라도 굽다가 달려 온 것인지 클레어에게서는 갓 구운 빵 냄새가 났다.

군침이 꿀꺽 넘어가는 맛있는 냄새라기보다는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는 따스하고 포근한 냄새.

내 뺨을 간질이는 클레어의 머리카락에서, 내 목덜미에 닿은 클레어의 뺨에서 그런 냄새가 났다.

“걱정해줘서 고마워.”

나는 클레어의 등을 토닥였다. 어째 사람이 바뀐 것 같은 위로였지만, 상관없었다.

“그래도 다행이야. 네가 그 자식의 얼굴에 한 방 먹이고, 정강이를 후려 찬 다음에, 엎어치기로 갈비뼈를 부러뜨려 버렸다며?”

…… 응?

앞에도 조금 소문이 변형된 것 같긴 했지만, 이건 좀 변형된 수준이 아닌 것 같은데?

“그 이야기 누구에게 들었어?”

나는 클레어를 내 몸에서 떼어내고 물었다.

“난 세탁실의 소피 언니에게.”

“소피라는 사람은 그 이야기를 누구에게 들었는데?”

“아마도 소피 언니와 친한 지아 언니에게 들었겠지?”

“그런 그 언니는 누구한테 들은 건데?”

“그건 몰라. 지아 언니는 온갖 곳에서 소문을 다 듣고 와서, 온갖 사람들에게 다 이야기해주거든.”

온갖 소문을 온갖 사람들에게 다 퍼트리고 다니는 모습이라니……. 마치 예전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친근했다.

“미친 변태 놈을 물리치다니! 대단해, 레나티스! 멋있어!”

클레어는 환하게 웃으며 내게 쌍 따봉을 날려주었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긴 한데, 내가 그놈을 그렇게 엄청나게 두들겨 팬 건 아니야. 난, 그냥, 엎어치기를 한번 했을 뿐이라고.”

또 소문이 엄청나게 부풀어서 떠돌까 봐 나는 얼른 클레어의 말을 정정했다. 그리고 그녀의 쌍 따봉도 곱게 접어주었다.

“하지만 오늘 아침에 그 망할 놈을 경비대에 넘겨줄 때, 눈탱이가 밤탱이가 되어 있고, 다리를 절뚝거리던데? 그건 소문으로 들은 게 아니라, 내 눈으로 똑똑이 봤어!”

내게 쌍 따봉을 접혀버려서 두 주먹만 꼭 쥔 클레어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주장했다.

“그놈이 너한테 해코지를 한 놈인 줄 알았으면, 나도 달려가서 드롭킥을 날려버리는 건데!”

“그래? 그럼 내가 엎어치기를 할 때, 어딘가에 부딪힌 건가?”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놈이 쓰러진 것을 보고 난 뒤에 냅다 도망가 버렸으니, 상태는 살필 겨를이 없었다.

그래도 얼굴은 분명히 멀쩡했던 것 같은데? 엎어치기니까, 얼굴부터 떨어졌을 리도 없을 테고.

“역시! 레나티스, 네가 해치운 게 맞지?”

“어……. 아마도?”

좀 의아하긴 하지만, 지금 상황에 맞는 답은 역시나 넘어지면서 그놈이 어딘가에 부딪혔다 인 것 같아 갸우뚱거리면서도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멋있어!”

클레어는 다시 한번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레나티스가 최고야!”

“그, 그래. 고마워.”

이러다가 내일은 내가 몬스터 도벌에 성공해서 공주님을 구출할 드래곤원정대로 뽑혔다는 소문이 도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 * *

“공주님이야?”

“푸크헉!”

마흔 다섯 번째의 스쾃을 올라오던 나는 갑작스러운 인스트의 말에 다리에 힘이 풀려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동시에 입에서 나온 신음도 아니고, 감탄사도 아닌 이상한 말은 덤이었다.

“어디서 무슨 말을 들으신 거예요?”

정말로 내가 공주님을 구하는 드래곤원정대에 포함되었다는 소문이라도 돌고 있는 건가?

“어디서 무슨 말을 들은 게 아니라, 네가 알고 보면 어디의 숨겨진 공주님인가 해서 어제 테오도르 님의 행동을 보면 그런 의혹이 충분히…….”

말을 하던 인스트가 갑자기 말을 멈췄다. 지금부터가 중요한 말일 거 같은데!

“테오도르 님이 왜요? 뭘 어떻게 했는데요.”

“그게…….”

저 먼 쪽을 쳐다보던 인스트가 말을 할 듯하다가 더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아니, 저기 뭐가 있는데?

나는 고개를 휙 돌려 인스트가 본 쪽을 보았다. 그곳에는 우리 화제의 인물이 있었다.

“테오도르 님?”

그랬다. 테오도르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본인이 여기로 오고 있으니, 인스트가 입을 다문 것이었다. 뒷담화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본인 없는 데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고 하면 좋아할 사람은 없을 테니까.

아니, 잠깐. 난 아직 내용을 못 들어서 뒷담화인지 아닌지도 모르잖아?

혹시 인스트가 할 말이 테오도르의 험담이었을까? 숨겨진 공주님 대하듯이 했다는 행동이 뭘까?

내가 전생에 읽은 소설들에서는 보통 숨겨진 공주는 꼭꼭 숨기 위해서 신전 같은 데로 갔다가 성 기사나 신관과 성스러운 섹…….

다, 다른 이야기 없나? 그래! 신전 말고 타국으로 팔려 가듯이 시집가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것도 꼭 보면 야만인이라고 불리는 이국적인 나라로. 그곳에서 이국의 왕과 야만적이면서도 황홀한 이국적인 섹…….

그게 아니면, 혐관도 있었다. 망국의 공주가 자신의 나라를 망하게 만든 제국의 왕에게 노예로 끌려가서 진짜 노예처럼 섹……. 아, 아니면 자기 부모를 죽인 장군이나 공작같은 사람을 혐오하면서도 즐기는 섹…….

아니! 왜 이야기가 전부다 기승전떡이냐고요!

왜인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전생에 읽었던 책이 전부 그런 내용이니까요…….

“내가 방해를 했나?”

“아, 아뇨!”

테오도르의 목소리에 나는 퍼뜩 현실로 돌아왔다.

“인스트. 연습을 너무 혹독하게 시키는 것 아닌가? 레나티스의 얼굴이 빨갛군.”

“네? 아직 그렇게 많이 시키지는 않았는데요. 오히려 어제 쉬었으니 조금 천천히 몸을 달아오르게 만들고 있었는데?”

인스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 안색을 살폈다.

“아, 하하하하…….”

나는 다른 이유때문에 얼굴이 빨개졌다고는 차마 말하지 못하고, 그저 어색하게 웃으며 손으로 얼굴에 부채질할 뿐이었다.

“그런데 여긴 어쩐 일이세요?”

나는 주제를 내 빨개진 얼굴에서 다른 것으로 돌리기 위해서 테오도르에게 질문했다. 화제를 돌리는 데에는 역시 질문이 최고지!

“아아. 참관을 좀 할까 해서.”

“참관요? 뭘요?”

“네 훈련.”

테오도르는 정확하게 내게 손가락질하면서 말했다.

“생각해보니 활에 재능에 있다는 이야기만 들었지, 내 눈으로 본 적은 없더군. 그리고 인스트에게 널 맡겨놓기만 했지, 어떻게 훈련하고 있는지도 본적 없고. 내가 허락한 훈련이니, 어느 정도 내 눈으로 확인을 해둬야 할 것 같아서.”

테오도르는 제법 구체적인 이유를 제시했다. 약간 학부모적인 냄새가 풍기긴 했지만.

“자, 해봐.”

갑자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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