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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42화 (42/169)

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 042

“이런 재능을 썩히는 건 불법입니다!”

테오도르에게 단박에 거절당한 인스트가 발끈했던지 잡고 있던 내 손을 뿌리치며 소리쳤다.

그뿐만 아니라 테오도르를 압박하려는 듯이, 앉아 있는 그의 앞으로 다가가 상체를 내밀기까지 했다.

“그게 무슨 법에 걸린다는 거지?”

하지만 테오도르는 전혀 압박감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태연하게 인스트에게 그게 무슨 법이냐고 되물을 따름이었다.

“그게……. 잘은 모르지만, 어쨌든 이런 인재를 하녀로 그냥 두는 건 국가의 엄청난 전력 손실이니까 무슨 무슨 법에 걸릴 게 확실합니다!”

……제가요?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인스트를 쳐다보았지만, 그는 내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고 있었다.

“확실한 것치고는 네 목소리에 그다지 확신이 없는 것 같은데?”

“아, 아닙니다!”

“그리고 이 애는 차를 타는 데에도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거든.”

……제가요?

갑작스러운 테오도르의 말에 휙! 하는 바람 소리를 낼만큼 급하게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지만, 테오도르 역시 전혀 내 쪽을 쳐다보고 있지 않았다.

“차는 아무나 탈 수 있지 않습니까?”

“나더러 아무나 탄 차를 마시라는 거야?”

“이전에 차를 탔던 리타 아주머니가 다시 타면 되지 않습니까? 이 애는 활을 쏘는데 필요한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대단한 힘과 좋은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냥 썩히기는 아까워요.”

“레나티스는 차를 타는데 필요한 민감한 혀와 음식에 대한 무한한 애정도 가지고 있어.”

두 사람 다 본인이 옆에서 듣고 있다는 것을 잊었던가, 철저하게 모른 척하고 있었다.

인스트와 테오도르는 나도 모르는 내 재능을 미친 듯이 높게 평가하고 있었고, 내 얼굴은 점점 붉어지고 있었다.

“조금만 배운다면 아주 좋은 궁수가 될 겁니다. 테오도르 님의 신변을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을 겁니다.”

“너로는 부족한가, 인스트?”

“지금까지는 저 혼자로 괜찮았죠.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은 변하리라는 것을 테오도르 님께서도 아시지 않습니까? 카르오 대공가를 노리는 자들이 많습니다.”

조금 전과는 달리 매우 신중하고, 진지한 얼굴로 인스트는 말했다. 약간은 협박이라고도 볼 수 있을 어투이기까지 했다.

“그래도 안 돼.”

하지만 테오도르는 단호했다. 오히려 이렇게 되자 내가 더 조급해질 정도였다.

자기 신변에 도움이 된다면, 그쪽을 택해야 하는 건 아닌가?

아니, 막말로 차야 아무나 타면 되잖아! 나도 리타 아주머니가 외우라는 것만 달달 외우고 며칠 만에 테오도르의 차 담당이 되었는데!

거기다가 저 별로 혀 예민하지 않아요. 웬만하면 다 맛있는데! 막입이라고요!

“왜요!”

자신의 설득이 전혀 통하지 않자, 인스트는 다시 버럭 화를 내고야 말았다.

“그 애는 아주 중요한 내…….”

거기까지 말하고 테오도르는 멈칫했다. 그리고 그 ‘멈칫’에 괜히 나도 긴장이 되었다.

내가 테오도르의 중요한 무언가라고?

입 안에서 단어를 고르는 듯, 살짝 입술을 벌린 테오도르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신비한 보라색 눈동자가 흔들리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자신도 정확한 답을 모르겠다는 듯이.

그가 모르는 답을 내가 알 리가 없건만, 그는 집요하리만큼 끈질기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뭡니까?”

우리 셋 중에 인내심이 가장 짧은 사람은 인스트였다. 못내 답답하다는 듯, 인스트는 테오도르를 재촉했다.

그제야 테오도르는 날 향한 시선을 거두었다.

하지만 내 시선은 여전히 테오도르를 향해있었다. 정확하게는 그의 입술을 향해있었다.

“이 여자는 나의 아주 중요한…….”

테오도르의 입에서 한 단어, 한 단어가 나올 때마다 입술이 조금씩 말라왔다. 괜히 입술 안쪽의 여린 살을 깨물고, 죄 없는 치맛자락을 배배 꼬아 말아 쥐었다.

“치료제지.”

그리고 테오도르의 입에서 ‘치료제’라는 단어가 나온 순간, 치맛자락을 쥐고 있던 손의 힘이 스르륵 풀렸다.

치료제.

너무나 적절한 단어였다.

테오도르에게 내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를 매우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런데 왜, 나는 갑자기 온몸에 힘이 탁 풀리는 걸까?

“그러니 레나티스는 내가 필요할 때, 옆에 있어야 해.”

“제가 활쏘기 연습을 시킨다고 이 애를 어디로 데려가는 것은 아닙니다. 이 저택 안에서만 훈련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저택 어디?”

“제가 항상 검술훈련을 하는 뒤뜰이요.”

“안돼. 멀어.”

“네?”

“내 방에서 뒤뜰은 너무 멀어.”

“그럼 훈련장을 옮기면…….”

“네 기합 소리가 시끄러워서 뒤뜰에 검술 훈련장을 마련한 걸 텐데?”

“그럼 다른 장소를 잘 찾아보겠습니다.”

“그리고 컨디션 훈련도 중요해. 혹시 필요할 때, 과로로 쓰러진다거나 하면 안 되니까.”

“그것도 제가 잘 조절하겠습니다. 너무 과하게 훈련을 시키지 않도록 하지요. 레나티스의 업무를 빼달라고도 제가 말해보겠습니다.”

“그건 월권 아닌가? 고용인의 관리는 엄연히 오르디의 일인데, 내 호위 기사인 네가 레나티스의 일을 마음대로 휘두르는 건?”

인스트가 무슨 말을 해도 테오도르는 그저 안된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인스트 또한, 테오도르가 무슨 말을 해도 계속 내게 훈련을 시키고 싶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나는 그저 그들의 옆에 오도카니 서서 두 사람의 끝없는 말싸움을 듣고 있을 뿐이었다.

“저기…….”

아무래도 쉽게 끝날 거 같지 않자,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붙였다.

한창 열을 내고 있던 두 사람,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점점 더 열정적으로 주장을 하는 인스트와 그가 그럴수록 더욱 차갑게 맞받아치고 있는 테오도르가 동시에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저는 먼저 나가봐도 될까요? 오늘 차 시중에 쓸 허브를 따러 가야 하거든요. 그리고 클레어의 부탁으로 감자랑 당근 캐는 걸 도와주기로 했거든요.”

“지금 감자가 중요해? 이건 네 인생이 걸린 일이라고!”

인스트는 답답하다는 듯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평생을 하녀로 살고 싶은 거야? 아니면, 네 재능을 발휘해서 궁수로 살고 싶어?”

“어…….”

“이 애는 그냥 보통 하녀가 아니라는 걸 너도 알잖아. 그리고 평생 하녀로 살지도 않을 거야.”

내가 인스트의 말에 빨리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자, 그걸 보고 있던 테오도르가 슬쩍 끼어들었다.

“전에 말했었지? 모든 일이 끝나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돌아갈 거라고.”

무언가 이상했다.

테오도르의 말은 분명 내가 이전에 한 말이 맞았다. 그의 광증이 끝나면, 여기서 번 돈으로 언니에게 돌아갈 생각인 것도 맞았다.

그건 보통의 사람이라면 다들 세울 법한 인생 계획이었다.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벌어서, 사랑하는 사람이랑 같이 여생을 보낸다는 평범하고도 행복한 꿈이었다.

그런데 참으로 기묘하게도 테오도르의 입에서 나의 그 계획이 흘러나온 순간, 그것은 매우 파렴치한 배신같이 느껴졌다.

‘뭐지? 괜한 원망이 느껴지는 저 눈빛 때문인가? 아니면 섭섭하다는 기색의 입매? 아니, 역시 미묘하게 짜증을 내는 것 같은 목소리가…….’

왜 그렇게 느껴지는지 분석하려다, 갑자기 그냥 내 착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노후 계획에 테오도르가 불만을 가질 리가 없었다.

내가 중간에 도망을 가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가 정상이 되면 나도 정상적으로 퇴직하겠다는 건데, 문제가 없지 않은가?

‘그냥 인스트랑 아웅다웅하는 동안의 짜증이 내게도 묻어난 거겠지.’

나는 테오도르를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기로 했다.

“아니! 이 일을 평생 할 것도 아니면, 더더욱 그렇죠! 이 빛나는 재능을 왜 썩힌단 말입니까?”

“재능을 썩히는 게 아니라, 다른 쪽에도 재능이 있는 거라고. 거기다가 내 광증을 해결할 사람은 레나티스밖에 없어.”

“그러니까, 제 말은, 테오도르 님이 꼭 필요하지 않을 때는 제가 궁술을 좀 가르치고, 필요할 때는 돌려보내 드리면 되지 않습니까?”

이제 인스트는 거의 애걸복걸이었다. 장난감 가게 앞에서 투정을 부리는 아이처럼 그는 짜증 반, 애원 반으로 테오도르에게 제안했다.

그런 인스트를 심기 불편한 표정으로 보고 있던 테오도르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날 쳐다보았다.

“넌 어쩌고 싶은데?”

그리고 질문을 툭, 던졌다.

“제 의사도 있었나요?”

“당연하지. 네 일이잖아.”

이제까지 그 당연한 제 의사가 없는 것처럼 행동하신 것은 두 분이었습니다만?

“음……. 저는…….”

내가 입을 열자, 갑자기 인스트와 테오도르가 진지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서로 자기가 권한 일을 하라고 눈빛으로 소리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매우 심하게 부담스러웠다.

“60초 후에 공개해도 될까요?”

부담감과 압박감에 결정이 어려워 조심스럽게 양해를 구한 것이었건만, 두 남자의 얼굴에서 동시에 짜증이 느껴졌다.

그렇지만,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요!

“아, 알았어요. 그냥 지금 대답할게요.”

다시 테오도르와 인스트가 내게 집중했다. 부담감에 입술이 잘 떨어지지 않았지만,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는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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