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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41화 (41/169)

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 041

차 시중에 쓸 허브를 따기 위해서 뒤뜰 텃밭으로 가는 길이었다.

“응?”

난생 처음보는 광경에 나는 저절로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휘우우우웅~ 탕!”

경쾌하게 바람을 가로지른 화살이 호쾌한 소리를 내며 나무에 걸린 과녁을 꿰뚫는 광경이었다.

그 모습이 어쩐지 멋있어서 나도 모르게 홀린 듯이 다가가고 말았다.

“인스트는 활도 쏠 줄 아는구나?”

그는 소설에서 기사로 나오긴 했지만, 활을 쏘는 모습은커녕 검을 쓰는 장면도 나오지 않았다.

그의 존재감은 여주가 도망치려는 것을 도와주려고 했을 때와 그걸 들켜서 남주에게 잔혹하게 죽임을 당하는 장면에서만 나타났다.

뭐, 소설 속 직업이라는 것이 다 그런 것 아니겠는가?

여주가 위험할 때만 검을 휘두르는 기사, 늘 서류를 본다고 하는데 무슨 서류인지는 적혀 있지 않은 황제, 돈은 안 벌고 만날 돈을 쓰기만 하는 상인 같은 것.

어차피 남주의 직업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영앤 리치, 톨앤 핸썸이지.

내 취향인 2미터 금육남이 마이너라는 것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었다. 자고로 남자는 힘인데!

“뭐야? 너였어?”

팽팽하게 당겼던 활시위를 느슨하게 만들며, 인스트가 이쪽을 쳐다보았다.

“앗! 죄송해요! 방해됐나요?”

그가 활을 내리는 것을 보자, 내가 연습을 방해했나 싶어서 얼른 사과했다.

“활 쏘는 걸 보는 건 처음이라서 저도 모르게 멈추어 서버렸네요. 인스트 님께서 검을 잘 쓰신다는 것은 익히 들었지만, 활까지 잘 쏘신다는 건 몰랐어요.”

괜히 하던 일을 멈추게 만든 것이 미안해서 그 대신이라도 할 겸 나는 얼른 인스트에게 칭찬의 말을 건넸다.

조금 전 활을 쏘는 모습이 진짜 멋있기도 했다.

“활은 기사의 기본 소양이지. 원거리 습격을 대비할 수 있는 데다가, 귀족들에게 사냥은 필수나 다름없으니까 말이야.”

“그렇군요.”

“뭐, 그렇다고 나처럼 둘 다 잘하기는 어렵긴 하지. 특히나 검에 특출한 재능을 가지고 있으면서, 이렇게 활 솜씨까지 좋기는 더더욱 어렵지.”

뭔가 이야기가 이상하게 흘러가는 듯한데?

“더군다나 활은 기술적인 부분도 있지만, 약간의 떨림만으로도 과녁을 빗나갈 수 있어서 나같이 몸과 마음이 다 단련되지 않은 사람이라면 쏠 수 없지.”

……인스트 원래 이런 캐릭터였나? 지난 번에도 좀 느끼긴 했지만, 이렇게 자기애가 심한 줄 전혀 몰랐다.

“그러니까, 네가 지나가다가 너도 모르게 홀린 듯이 발걸음을 멈춘 것도 이해는 해.”

아니, 그렇게까지 홀린 적은 없는데요?

“새삼스럽게 또 나한테 반한 것은 아니겠지?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내 취향은……. 뭐야? 그 표정은?”

“제 표정이 어떤데요?”

“할 말은 많지만, 꾹 참고 있다는 표정인데.”

인스트는 들고 있던 활을 나무 덤불 위에 자연스럽게 올려놓으며, 부자연스럽게 인상을 찌푸렸다.

난 정말 얼굴에 티가 많이 나는 타입인가보다.

“할 말이 있으면 하지 그래?”

“아하하하하. 아니에요.”

“전에 봤을 땐, 하고 싶은 말 다 하더니 오늘은 왜 참는 거지? 내가 귀족이라서 그래?”

“아뇨. 그런 건 아녜요.”

“그럼 지난번에 내가 백마 탄 왕자님처럼 짜잔~ 하고 나타나서 널 구해줘서?”

“그건 아니…….”

“혹시, 새삼스럽게 다시 반한 건 아니겠지? 그래서 쑥스러워하는 건?”

“…….”

“아! 혹시 지난번에 내가 널 차서 그런…….”

고백도 안 했는데 왜 내가 매번 차이는 거야! 더는 못 참겠다!

“과녁에서 좀 빗나갔는데요! 정중앙이 아닌데요! 오늘은 마음이 좀 삐뚤어지셨나 봐요! 그렇게 막, 엄청난 천재는 아니신 것 같아요!”

점점 자신만의 세계로 날아가고 있는 인스트의 발언을 참지 못하고, 나는 결국 폭주하듯이 내 안에 있던 말을 쏟아내고야 말았다.

“어?”

내 발언에 인스트는 당황하고 말았다. 입을 살짝 헤~ 벌리고 눈을 깜박이던 인스트는 고개를 돌려 과녁을 바라보았다.

“저 정도면 잘 맞춘 거지!”

그리고 금방 발끈, 화를 냈다. 아무래도 내가 그의 자존심을 건드린 모양이었다.

“저 정도로 맞추는 게 쉬운 일인지 알아?”

심지어 과녁을 손가락질하며 내 쪽으로 상체를 들이밀기까지 했다.

“물론 어렵겠죠. 하지만 지금 화살이 정중앙에 있지 않은 건 사실이잖아요.”

“잘 봐! 저 과녁이 사람 머리라고 생각해보라고, 그럼 저 화살이 미간을 꿰뚫지는 않았겠지만, 귀가 잘려 나갔을 거라고!”

“하지만 사람은 귀 잘린 거 정도로는 죽지 않아요.”

내 말에 인스트는 입을 떡 벌렸다.

“귀여운 얼굴로 무슨 말을 그렇게 살벌하게 해?”

“인스트 님이 사람 머리에 비유하셨으니까, 저도 사람이라는 가정하에 말씀드린 거예요.”

“사람이라면, 귀가 잘려 나가면 보통 다 전의를 상실하게 되어 있어. 거기다가 네가 몰라서 그러는 것 같은데, 보통 사람은 그냥 활시위를 당기는 것도 힘들어한다고. 이 정도 맞추는 것도 보통이 아니야.”

그게 그렇게 힘든가? 보기에는 그렇게 힘들어 보이지 않는데.

“사람들이 활을 쏘는 게 민첩성이나 고도의 기술력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은 힘이 기본으로 있어야 한다고. 나무를 힘으로 휘게 할 정도로 당긴다는 게 얼마나 힘든…….”

“별로 안 힘든대요.”

나는 인스트가 아까 내려놓았던 활을 집어다가 그대로 시위를 잡아당겼다. 조금 빡빡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어?”

인스트는 다시 한번 당황하며 나를 한번, 활을 한번 쳐다보았다.

“이, 이상하네? 보통은 성인 남자도 활을 처음 잡았을 땐, 활시위 당기는게 생각보다 힘들다고 하는데?”

“아, 혹시 더 당겨야 하나요?”

내가 덜 당겨서 별로 힘들지 않은 것인가 싶어서 나는 좀 더 활시위를 뒤로 당겼다.

“아, 아니. 그만! 부러져! 이런 좋은 활은 구하기도 힘들다고!”

인스트가 기겁하는 걸 보니,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머쓱해져서 당겼던 활을 놓았다. 그리고 인스트에게 활을 돌려주려고 했다.

“너 잠깐 이쪽으로 와볼래?”

하지만 인스트는 활을 건네받는 대신, 나를 데려다가 조금 전까지 자신이 서서 활을 쏘았던 자리에 서게 했다.

여기서 보니 과녁이 한층 더 잘 보였고, 인스트가 쏘았던 화살이 그렇게까지 삐뚠 것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얼추 사람의 귀가 아니라 광대뼈 정도는 맞춘 건 아니려나 싶었다.

“쏴봐.”

인스트는 내게 화살을 건네며 말했다.

“네?”

“한번 쏴 보라고.”

“저 활 쏠 줄 모르는데요. 아까 그러셨잖아요. 기술도 있어야 하고, 마음의 안정도 중요하고, 교양적인, 뭐 그런 거라고요.”

“그건 그냥 잘난 척한 거고, 일단 쏴봐.”

인스트의 재촉에 어쩔 수 없이 나는 아까 보았던 인스트의 자세를 흉내 내며 활시위를 겨누었다.

하지만 정확하게 어디를 겨누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대충 가운데를 노리면 되지 않을까?’

나름대로 신중하게 화살촉이 가운데 가게끔 조준을 한 뒤, 활시위를 살짝 더 당긴 다음 그대로 손을 놓았다.

“어?”

내 손 안에서 화살이 날아가는 것은 뭔가 이상한 느낌이었다. 내가 쏜 화살이 날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더 그랬다.

마치 내가 하나의 바람을 일으키고, 그것이 하나의 형체가 되어 날아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신선하고, 새로웠다.

“아!”

하지만 결과는 기분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나는 분명 정중앙을 노렸다고 생각했는데, 화살은 과녁이 아니라 그게 걸려 있던 나무 기둥에 박히고 말았다.

“말씀하신 대로 쉬운 게 아니네요. 제가 아까 했던 말은…….”

나는 인스트에게 아까 빗맞혔다고 했던 말을 취소하려고 했다. 그의 말대로 그 정도라면 거의 맞췄다고 해도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인스트가 덥석! 내 손을 붙잡는 바람에 그 말을 취소할 수 없었다.

아니, 너무도 심각하고 진지한 얼굴로 인스트가 날 쳐다보자 놀라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너!”

“네?”

“내 제자가 돼라!”

……네?

* * *

“테오도르 님!”

내 손을 붙든 인스트가 그대로 문을 박차고 들어간 곳은 테오도르의 방이었다.

조용히 독서를 하던 중에 방해를 받은 테오도르는 당연히 인상을 찌푸린 채 우리를 맞이했다.

“이 애를 절 주십시오!”

“……뭐라고?”

테오도르의 인상이 더욱 찌푸려졌다. 앞뒤를 떼고 갑자기 사람을 달라고 하면, 당연히 그럴 것이다. 테오도르가 무슨 악덕 노예상도 아닌데 말이다.

“이 아이, 그냥 평범한 애가 아닙니다.”

“그건 알아.”

흥분한 인스트와 침착하게 받아치는 테오도르 사이에서 나는 또 심장이 덜컥 바닥으로 떨어지는 기분을 느꼈다.

내가 평범한 애가 아니라는 것을 인스트가 어떻게 안거지? 거기다가 테오도르는 이미 알고 있다고? 언제? 어떻게?

그럼 두 사람 다 여기가 소설 속 세계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건가? 그건 또 언제, 어떻게?

“활에 엄청난 재능이 있습니다!”

“마녀잖아.”

“저도 갑자기 깨닫게 된 거라서!”

세 사람의 입에서 각기 다른 소리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그리고 또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활?”

“마녀, 그거 진짜 확실한 겁니까?”

“…….”

테오도르와 인스트는 서로에게 되물었고, 나는 조용히 침묵을 지켰다. 내 발언에 주목하는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일단…….”

힐끗, 테오도르의 시선이 나와 인스트의 사이를 향했다. 다짜고짜 나를 끌고 온 인스트는 아직도 내 손목을 붙든 채였다.

“무슨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뭔가 이상했던지, 지긋이 인스트의 손을 쳐다보며 테오도르가 말을 이어갔다.

“안돼.”

아무래도 오늘의 테오도르는 기분이 좋지 않은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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