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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39화 (39/169)

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 039

벌써 다섯 번째 시도였다.

“아, 거, 참!”

내 입에서는 탄식이 나왔다. 불이 잘 붙지 않았다. 클레어 말로는 노아 아저씨가 그때 이후로 약간 멍해서 장작의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다고 했다.

어떻게 겨우겨우 불씨는 붙었는데, 탈 것처럼 하다가 이내 불길이 사그라들어버렸다.

“장작이 덜 마른 건가?”

어제 비가 오긴 했다. 그래서 오늘 고구마를 캘 때 땅이 물러서 내가 엄청난 수확량을 자랑했지.

“에잉~. 군고구마 먹기에는 딱 좋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고.”

불이 붙을락 말락, 꺼질락 말락 하는, 장작과 숯 중간쯤 되는 벽난로의 나무 상태를 보며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오늘의 머릿속은 뭐든지 고구마로 연결되는 모양이었다.

“밥 먹은 지 얼마 안 되지 않았나?”

뒤쪽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턱을 괴고 나를 쳐다보고 있는 테오도르가 보였다.

언제부터 저렇게 쳐다보고 있었던 거지?

“네 머릿속에는 온통 먹을 것 생각밖에 없는 모양이야?”

“가끔 다른 생각도 하는데요.”

“가끔? 보통은 가끔 먹을 걸 생각하고, 대부분 다른 생각을 할걸?”

그의 말에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원래 일어나서는 아침을 생각하고, 오전 중에는 점심 메뉴를 생각하고, 오후는 저녁 메뉴에 대한 기대로 하루를 보내고, 잠들기 전에는 내일 뭐 먹지?를 생각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어떻게 가끔만 먹을 걸 생각할 수가 있지? 다른 것을 생각할 게 뭐가 그렇게 많다고?

“……됐어.”

약간의 침묵 뒤에 테오도르는 내게 그만 고민해도 된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래서, 뭐가 먹고 싶다고?”

“먹고 싶다고 말한 것은 아니고, 그냥 이 불이면 군고구마 먹기에 적당하다고 말했어요.”

“군고구마? 고구마를 구워 먹는 건가?”

“네. 맞아요.”

“오늘 저녁에 나오지 않았나? 분명 스테이크 옆에 가니쉬로 나왔던 것 같은데?”

“앗! 그거랑은 달라요.”

“뭐가 다르지?”

“그건 고구마 오븐구이요, 제가 말한 건 군고구마거든요.”

“고구마구이와 군고구마가 다른 거라는 건가? 똑같이 고구마를 구운 건데?”

테오도르는 이해가 어렵다는 듯이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엄청 달라요. 군고구마는 이런 불에다가 직접 고구마를 넣어서 구워서 먹는 거예요.”

“불에 직접? 타지 않나?”

“겉이 좀 탈 수도 있긴 하지만, 요령껏 잘하면 그렇게 타지 않아요.”

아무래도 테오도르는 군고구마를 먹어본 적이 없는 모양이었다. 하긴, 우아한 귀족이 겉면이 탄 고구마를 호호 불어가며 손으로 벗겨 먹을 리는 없겠지.

“군고구마로 먹으면, 고구마가 더 달고 맛있어요!”

“그렇군.”

테오도르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전혀 알겠다는 표정은 아니었다. 그야말로 ‘그렇군.’의 표정이었다.

꼴깍.

하지만 나는 머릿속으로 이미 노란 군고구마의 속살을 상상해버렸고, 침이 꼴깍 나와버렸다.

“……먹고 싶군.”

“네?”

“그 군고구마라는 것 말이야, 먹어보고 싶다고.”

전혀 뭘 먹고 싶은 표정이 아닌 얼굴로 테오도르는 말했다.

뭐, 하지만 생각이 얼굴에 잘 드러나지 않는 사람도 있는 법이지.

“아, 그럼 준비해올까요?”

테오도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표정에서는 군고구마에 대한 열정은 보이지 않았다.

괜찮다. 그 열정은 나에게 있으니까!

* * *

“그렇게 하면 확실히 새까맣게 타지는 않겠군.”

고구마에 젖은 종이를 감싸는 나를 보며 테오도르가 중얼거렸다.

예전에 언니와 함께 먹을 때는 이런 방법이 필요 없었다.

보통은 다 캐고 남은 밭에서 주인의 허락을 받아, 공짜로 캔 자잘한 것들이 우리의 몫이었기에 금방 익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가끔 큰 고구마나 감자가 생기면 좀 더 오래 구워야 하니, 언니가 쓰던 방법이었다.

“맛있겠다.”

아예 불은 꺼져버린 장작 아래에 고구마를 묻으며 나는 중얼거렸다.

“아직 생고구마일 테니, 진정해.”

“생고구마도 맛있는 건 맛있는 거 아세요? 약간 텁텁하긴 하지만, 아삭하고 은은한 단맛이 있어요.”

“고구마를…… 생으로?”

“네!”

“그래. 채소이니…… 생으로 먹을 수도 있겠군.”

입으로는 그렇게 이야기했지만, 별로 이해한 표정은 아니었다.

“혹시 채소 말고도 생으로 막 먹는 건 아니겠지?”

“네? 어떤 거요?”

“그러니까 혹시 고기나 생선 같은…….”

“고기나 생선도 생으로 먹나요?”

그러고 보니, 전생에서는 그런 것도 생으로 먹었던 것 같았다.

회나 초밥, 육회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것들이었다. 그렇게 치면 고기나 생선도 생으로 먹을 수 있을 것 같…….

“그러지 마.”

“네?”

“그런 건 생으로 먹을 생각하지 말라고. 배탈 나니까.”

매우 단호한 표정과 말투로 테오도르는 내게 말했다.

“제가 그 생각하고 있는 줄 어떻게 아셨어요?”

“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얼굴에 다 보이니까.”

테오도르는 아스텔라 언니와 똑같이 말했다.

“레나, 무슨 속상한 일이라도 있어?”

“아, 아니야.”

“아니긴. 네 얼굴에 무슨 일이 있다고 다 쓰여 있는데.”

“내 얼굴에?”

“그래.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언니도 그랬다. 언제나 내 얼굴과 내 표정만 보고도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고민이 있는지 다 알아맞혔었다.

“왜?”

“네?”

테오도르의 목소리에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왜 갑자기 멍해진 거야?”

“아, 다른 생각을 좀 했어요.”

“무슨 생각?”

“갑자기 생각난 사람이 있어서요.”

언니를 생각하자, 나도 모르게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착하고 예쁜, 나의 아스텔라 언니. 세상에서 내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

“좋아하는 사람인가?”

“네?”

“그 갑자기 생각난 사람이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냐고.”

“어떻게 아셨어요? 그것도 제 얼굴에 쓰여 있어요?”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테오도르를 쳐다보았다. 아무리 내가 얼굴에 티가 나는 편이라곤 하지만, 아스텔라 언니도 이렇게 구체적으로 맞춘 적은 없었는데?

“응. 쓰여있어.”

“어머, 좀 부끄럽네요.”

마치 머릿속의 생각이 다 들킨 것만 같아서 나는 부끄러워졌다. 앞으로 테오도르 앞에서는 비밀 같은 건 생각도 하지 말아야겠다.

내가 전생을 각성한 사람이라던가, 받은 월급은 서랍 제일 깊숙한 곳에 팬티 안에 넣어뒀다거나 하는 것들.

“저기, 혹시 지금은 제가 무슨 생각하는지 아시겠어요?”

나는 제법 진지한 표정을 하고 테오도르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테오도르는 무신경하게 나를 한번 쓱 보더니, 다시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래. 아무리 남주라도 그렇게 사람의 생각을 꿰뚫어 볼 수는…….

“군고구마 맛있겠다?”

헐! 대박적!

너무 놀라 입술을 틀어막으려던 나는 재빨리 이마를 틀어막았다.

“그건 뭐 하는 거지?”

“이렇게 하면 제 생각이 안 보이실까 해서요.”

“그럴 것 같나?”

“아, 아니요.”

“풋!”

순순한 내 실토에 테오도르의 입에서 바람 빠진 소리가 났다.

“흠! 아닐 것 같으면, 그 손을 치우지 그래?”

“네.”

“내가 군고구마 생각을 할 것 같다고 생각한 건, 저 안에서 익은 고구마 냄새가 나서야.”

테오도르의 말을 듣고 나니 과연 그랬다. 나는 의식하지 못했는데, 내 코는 이미 냄새를 맡고 뇌가 반응한 모양이었다.

“그럼 건져볼까요?”

얼른 장갑을 끼고 부지깽이로 불을 뒤적여, 집게로 고구마를 덜어냈다.

감쌌던 종이는 어느새 홀랑 타버리고 거뭇거뭇한 그을음이 묻은 모양이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웠다.

“와!”

양쪽을 손으로 잡고 천천히 반으로 가르자, 살짝 반투명한 노란 군고구마 특유의 속살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걸 보자 저절로 군침이 꼴깍 삼켜졌다.

“자, 어서 드셔보세요.”

살살 껍질과 탄 부분을 벗겨내어 테오도르에게 내밀자, 그는 갑자기 주변을 둘러보았다.

“뭐 찾으세요?”

“접시와 포크는 어딨지?”

“이건 손으로 먹는 건데요?”

“뭐?”

“손에 들고 먹는 거라고요.”

“…….”

내 말에 테오도르는 잠시 패닉에 빠진 사람처럼 얼어붙어선, 나를 쳐다보았다.

“저기, 혹시, 손으로 음식을 드셔보신 적이 없나요?”

“없어.”

단 1초의 생각도 필요치 않다는 듯, 테오도르는 단박에 대답했다. 역시나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란 귀한 대공가의 도련님다웠다.

“아, 그럼 제가 얼른 가서 접시랑 포크랑 나이프랑 또…… 냅킨이랑…….”

“아니, 됐어.”

한 번도 테오도르가 식사하는 건 본적이 없었다. 뭘 준비해야 할지 늘어놓는 중에 그가 내 말을 끊었다.

“손으로 먹는 거라니까, 손으로 먹어보지.”

“괜찮으시겠어요?”

“당연하지.”

앞에 놓인 장갑을 끼고, 테오도르는 매우 비장하게 내 손에 있던 군고구마를 받아들었다.

“뜨거우니까 조심하세요.”

그에게 건네기 전에, 나는 다시 한번 고구마를 후후 불었다. 혹시나 아무것도 모르고 테오도르가 덥석 입에 넣었다가 입천장이 홀라당 까지면 곤란하니까.

“너도 먹지 그래.”

“아, 저는 괜찮습니다.”

“입가에 침…….”

“꺅! 흘렀어요?”

나는 얼른 손으로 입가를 훔쳤다.

“…… 흐르기 전에 그냥 먹지 그래?”

“아, 아니에요. 저는 진짜 괜찮…….”

꼬르르르륵.

내 입은 사양했지만, 염치없는 내 배는 테오도르의 제의에 덥석 대답하고 말았다.

“네 배는 괜찮지 않다는데?”

테오도르가 슬쩍 시선을 내려 내 배를 쳐다보았다.

“잘 먹겠습니다.”

나는 조용히 고구마를 까기 시작했다.

“맛있네.”

군고구마를 한입 베어 먹은 테오도르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리고 그의 얼굴에는 슬쩍 미소가 어려있었다.

역시, 맛있는 음식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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