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37화 (37/169)

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 037

“라뽀끼?”

클레어의 고개가 갸우뚱했다. 그걸 보며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게 뭔데?”

클레어는 정말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라는 듯한 표정을 했고, 라볶이를 발음하는 것도 어설펐다.

그래! 역시나! 라면도 없는 세계인데, 라볶이를 어떻게 알겠어?

바로 이거였다! 게다가 대충 머릿속으로 그려본 레시피로는 필요한 재료도 다 있었다.

“그럼 혹시, 스볶이는?”

“그건 또 뭔데?”

혹시나 해서 물었지만, 역시나!

클레어의 전혀 모른다는 표정에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스파게티 면을 소스에 볶아서 만드는 요리야.”

“그럼 그냥 스파게티 아니야?”

클레어는 점심 메뉴인 토마토스파게티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니. 좀 달라.”

“뭐가?”

“…… 설명하기는 좀 어려운데, 어쨌든 달라.”

클레어는 둘의 차이를 무척 궁금해하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나도 모르니까 설명할 수 없었다.

“클레어! 주방장님은 어디 계셔?”

“글쎄? 식사를 다 하셨으면, 자기 방에서 쉬고 계시지 않으실까?”

“고마워!”

클레어의 말에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마음이 급했다.

“아, 스파게티는 다 먹고 가야지.”

나는 도로 자리에 앉았다.

아무리 급해도 밥은 먹어야지.

* * *

“티타임…… 이지 않나?”

테오도르는 내가 내민 접시를 보고 조용히 의문을 표했다.

“앗! 차도 있습니다.”

나는 아직 살짝 덜 우러난 찻주전자를 테오도르에게 들어 보였다. 오늘은 무난한 홍차였다.

“그럼 이건?”

“다과……입니다.”

“식사로 보이는데?”

“물론,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요.”

그렇게 보일 수도 있는 게 아니라, 내가 테오도르에게 내민 것은 누가 봐도 식사였다.

로제 떡볶이!…… 의 떡을 내가 만들 수는 없으니, 로제 라볶이!……도 내가 라면을 만들 수 없으니, 여기서 흔히 볼 수 있는 스파게티 면을 이용한, 이름하여 로제 스볶이! 였다.

주방장님의 특제 토마토소스와 역시나 특제 크림소스를 넣어서 로제 소스를 만든 다음, 고추장 대신 고춧가루를 넣었다.

그리고 떡볶이는 역시 매콤달콤해야 하니까 설탕을 팍팍! 그리고 몸에 좋은 꿀도 한 스푼 듬뿍.

어묵을 넣으면 참 좋겠지만, 없으니까 비슷한 해산물인 쫄깃쫄깃한 오징어를 대체해서 넣었다.

그리하여 특제 스볶이 완성!

“스파게티같긴 한데, 색깔이 좀 특이하군?”

“제가 살던 동네의 특식입니다.”

정확하게는 전생에 살던 동네의 특식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래?”

데운 우유와는 달리 테오도르는 거부하지 않고 포크를 들었다. 그가 스볶이를 집어 입가로 가져가는 순간, 내 가슴은 터질 듯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틀림없이 맛있다고 하겠지?’

로판 소설을 보면 다들 그랬다.

‘또 해달라고 하면 어쩌지?’

재료는 충분히 더 있었다. 아! 오징어는 다 쓴 것 같은데, 다음번에는 베이컨을 넣어 볼까?

‘너무 맛있다고 막 전속 요리사가 되어달라고 그러고, 나한테 집착하게 되고 그러면 곤란한데!’

곤란하긴 하지만, 약간 기대가 되기도 하…….

“못 먹겠어.”

“네?”

내가 방금 뭔가 잘못된 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데?

“맛이 이상하군.”

인상을 찌푸리며 포크를 내려놓는 테오도르를 보며 나는 그야말로 당황했다.

그럴 리가 없는데? 로판 소설 속에서는 이런 것 만들어주면 다들 좋아하던데!

여주가 K푸드를 만들면 막 황홀한 맛이라고 하고, 엄청 맛있다고 하고, 더 만들어달라고 마구 조르는 것이 로판 소설의 법칙이 아니던가?

“마, 마, 맛이 이상하다고요?”

얼마나 당황했던지 나는 말까지 더듬었다.

“일단 너무 맵고,”

그야 고춧가루가 들어갔으니까 맵겠지. 떡볶이는 원래 매운 음식이고?

“하지만 설탕이 들어가서 그렇게 맵지는 않을 텐데요?”

“그것도 이상해. 매우면서 달아.”

이럴 수가! 단짠은 최고의 조합이 아니던가?

“거기다가 은근하게 꿀 향이 나면서 비린내도 동시에 나고 있어서…….”

테오도르는 적당한 단어를 찾는 듯 잠시 망설였다. 그러다 마침내 적당한 단어를 찾은 것인지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보았다.

“…….”

뭔가 말을 하려는 듯 입을 벌렸던 테오도르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도로 입을 다물어버렸다.

마치, 너무 솔직한 감상은 내가 너무 상처받을 것 같아서 못하겠다는 듯이.

“이제 차를 주겠어?”

“……네.”

* * *

“윽!”

내가 먹어봐도 스볶이는 맛이 없었다. 아니, 그냥 맛이 없다는 말은 아주 점잖은 표현이었다.

테오도르의 말대로 매웠고, 그러면서 달았고, 오묘하게 비린내가 났으며, 비주얼과 어울리지 않는 꿀 향은 역겹기까지 했다.

맛있는 주방장님의 소스를 베이스로 했고, 싱싱한 오징어와 귀한 꿀까지 넣었는데 어째서 이런 맛이 나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생각해보니, 나 요리 못했지…….”

어째서 이 중요한 사실이 지금 생각난 걸까?

나는 요리를 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 우리 집의 요리사는 아스텔라 언니였다.

나는 굳이 말하자면, 요리사 보조로 채소를 다듬거나 불을 때거나, 간을 보는 역할이었다.

거기다 전생까지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그다지 요리를 한 기억은 없었다. 집에 있는 김치에 참치나 햄을 넣어서 볶는 김치볶음밥 정도가 내 최선이었다.

맛있는 음식에 대한 기억은 외식이거나 엄마가 해준 음식이었다.

“그러고 보니, 전생에는 엄마가 있었네.”

꼴도 보기 싫은 스볶이를 옆으로 밀쳐두고, 나는 좀 더 전생을 떠올렸다.

전생의 엄마는 어린이집 교사로 착하고, 좋은 사람이었다. 눈썹이 짙었고, 쌍꺼풀은 더 짙었다.

그리고 한쪽에만 보조개가 있어서, 웃을 때는 한쪽만 옴폭하게 패였다.

혼난 기억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좋은 기억들이 더 많이 남아 있었다.

그저 기억만 있을 뿐, 그게 진짜 나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래도 엄마에 대해서 떠올리면, 그저 좋은 느낌이 들었다.

“우리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하지만 이번 생에서의 엄마를 떠올리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아스텔라 언니의 말로는 착하고, 상냥했고, 나를 정말로 예뻐했다고 했다. 내게 젖을 물릴 때의 엄마는 정말로 천사 같았다고 했다.

“분홍 머리였다고 했지?”

나는 머릿속에서 분홍 머리를 떠올렸다. 나같이 부스스한 곱슬머리는 싫어서, 내 멋대로 아스텔라 언니같이 찰랑찰랑한 머리카락으로 상상했다.

“그리고…….”

끝이었다.

전생까지 기억하는 나였지만, 엄마에 대한 기억은 없었다.

“뭐, 상관없어. 난 아스텔라 언니가 있는걸?”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도 어쩐지 어깨가 무거운 것은 왜일까?

* * *

“물을 좀 가져다줘.”

“네, 테오도르 님.”

잠자리를 정리하다 불린 하녀는 얼른 하던 일을 멈추고 물병을 집어 들었다. 병은 이미 텅 비어 있었다.

그녀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저녁에 이 병 가득히 물을 가져다드렸었다. 보통은 내일 아침이 되어도 물은 절반도 비워지지 않았었다.

그런데 오늘은 벌써 한 병을 다 드시고, 물을 더 찾으신다니?

‘저녁을 짜게 드셨나?’

자신도 이미 저녁을 먹었지만, 별로 짠 음식은 없었다. 오히려 저녁 메뉴치고는 가벼운 메뉴였다.

테오도르가 물을 찾는 이유는 저녁 메뉴 때문이 아니었다.

이 저택에서 오직 테오도르 혼자 먹은, 레나티스가 만든 스볶이라는 처음 들어본 메뉴 때문이었다.

‘정말 이상한 맛이었어.’

그리고 동시에 다시 들어보고 싶지도, 먹어보고 싶지도 않은 메뉴이기도 했다.

‘진짜 이상한 여자애야.’

테오도르는 그걸 만든 레나티스를 떠올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피식 웃었다.

그따위 음식을 들이밀며,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자신이 맛있다고 말하기를 기대하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 기억났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테오도르가 맛에 대해 평가를 하려고 하자, 떨린다는 듯이 작게 침을 꼴깍 삼키기까지 했다.

‘맛도 안 본 건가?’

안 본 게 분명했다. 맛을 봤다면 감히 테오도르에게 그따위 것을 내밀지도 못했을 것이고, 감히 기대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그래도 귀엽긴 했지.’

자신이 맛이 없다고 했을 때, 풀 죽었던 레나티스의 표정이 생각이 났다. 그럴 리가 없다는 부정과 당황스러움, 그리고 끝끝내 실망한 표정까지.

다채롭게 변해가는 레나티스의 얼굴은 그야말로 재미있는 광경이었다. 봐도 봐도 질리지 않을 정도로.

그래서일까?

‘보고 싶군.’

테오도르는 문득 레나티스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늦은 시간이니 이미 잠자리에 들었을지, 그게 아니라면 혼자 또 무슨 이상한 일을 꾸미고 있을지.

“훗…….”

이번에는 테오도르의 입에서 작게 웃음소리가 나와버렸다. 그 소리를 들은 테오도르의 얼굴이 굳어졌다.

‘넌 이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어.’

그리고 스산한 목소리가 테오도르의 귓가에 울렸다. 분명 꿈이었고, 분명 환청인 것을 알고 있었지만, 테오도르는 그 목소리에 사로잡혀 꼼짝할 수 없었다.

‘보고 싶어서 뭘 어쩔 건데?’

그래봤자, 괴물과 마녀였다.

‘귀여워서 네가 뭘 어떻게 할 수 있는데?’

고작해야 눈이 돌아서 허겁지겁 레나티스의 입술을 탐하고, 그녀의 피나 빨아먹겠지.

그 꿈이 테오도르의 진정한 악몽인 이유는, 그것이 악몽이 아니라 현몽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테오도르의 손에 묻었던 그 붉은 피가 레나티스의 것일 수도 있었다.

그의 형이 자신의 마녀를 죽였듯, 자신 역시 마녀를 죽일 수 있다는 것을 테오도르는 알았다.

“괴물 따위가 감히…….”

중얼거리는 목소리는 공허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