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 036
“어머, 어머!”
“어머나!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야!”
삼삼오오 모여서 구경을 하던 사람들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오랜만에 보는 반응이었다. 우리 마을 사람들은 처음에는 꼬맹이가 힘도 세다며 신기해했지만, 나중에는 내가 커다란 자루를 옮겨도, 아름드리나무를 들어도, 그냥 그러려니 했다.
“클레어?”
나는 이제 숫자를 세라는 뜻으로 클레어의 이름을 불렀다. 내 힘을 자주 보던 클레어 마저도 한 손으로 도끼를 치켜든 나를 보고는 입만 떡 벌리고 있었다.
“아, 으, 으응!”
내 부름에 정신을 차린 클레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시선을 건물 안쪽으로 돌렸다.
조금 전, 노아 아저씨가 장작을 팰 때와 마찬가지로 방에 걸려있는 시계로 1분을 재려는 것이었다.
“시작!”
클레어가 들고 있던 손을 내리며 시작 신호를 주자, 나는 재빨리 한 손으로 나무 하나를 집어 올렸다.
그리고 그걸 받침대에 올려놓자마자 다른 손에 든 도끼로 그것을 냅다 내리쳤다.
“우오옷!”
“세상에!”
깨끗이 쪼개긴 장작을 보며 사람들은 다시 놀라워했다.
사람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반으로 쪼개진 나무를 다시 올렸고, 그것을 다시 반으로 쪼갰다. 이제는 나무가 아니라 장작이라고 불러야했다.
그 뒤에는 그저 반복 행동이었다.
머리도, 요령도 필요치 않았다. 그저 한 손으로 나무를 놓고, 한 손으로 도끼를 찍어 내리면 되는 것이었다.
정말로, 진짜로, 그리 힘든 일이 아니었다.
“28개!”
벌써 1분이 지났나? 클레어의 외침에 나는 휘두르려는 도끼를 멈췄다.
“너, 너, 너, 뭐야?”
노아 아저씨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내게 손가락질을 하고 있었다.
“아, 아저씨도 제 이름을 모르셨구나. 저는 레나티스 그라티아라고 해요.”
“이름을 묻는 게 아니잖아! 여자애가 무슨 힘이! 아니, 여자애가 저 큰 도끼를 한 손으로 이렇게 휘두른다는 게 말이 돼?”
“제가 힘이 좀 세거든요.”
“힘이 좀 센 수준이 아니잖아!”
“맞아요. 겸손하게 말씀드린 거고, 사실은 제가 힘이 많이 세거든요.”
“아니, 그 말이 아니라!”
노아 아저씨는 답답하다는 듯이 손을 휘두르며 무슨 말을 하려고 했지만, 나도 더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어떻게 그렇게 힘이 세냐고 물어보면, 이유야 나도 몰랐다. 그냥 날 때부터 그랬다고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어쨌든, 이제 약속 지키실 거죠?”
“뭐?”
“이제 제가 무슨 일을 하든 딴지 걸지 않겠다고 한 거요.”
“그, 그건…….”
“그리고 다른 사람들 입단속도요.”
나는 주변들 둘러보며 말했다.
음……. 노아 아저씨가 따로 더 입단속을 할 것도 없을 것 같았다. 사람들은 이미 웅성거리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마 저 힘 때문에 오르디 님이 저 아이를 뽑았나 봐.”
“그런가 봐. 저런 힘 센 애를 어디서 데려왔지?”
“마녀는 원래 힘이 센가?”
“그런가? 근데 마녀는 맞긴 한 거야? 힘 센 거 말고는 평범해 보이는데? 평소에도 그냥 보통 여자애 같던데 말이야.”
“그렇지? 좀 많이 먹어서 그렇지, 그냥 평범하더라고.”
“클레어 말로는 애도 착하대.”
반은 칭찬이었고, 반은 칭찬인가? 싶은 말이었다.
뭐, 욕만 아니면 됐지, 뭐.
* * *
“흐음…….”
테오도르의 힐링 프로젝트에 또다시 작고 사소한 문제가 생겼다.
“K푸드, 그거 뭐 어떻게 만드는 건데?”
클레어에게 부탁해 들어온 지하 식료품 창고에 내 허망한 목소리가 떠돌았다.
내가 전생에서 가장 자신 있어 했던 요리는 김치볶음밥이었다. 김치볶음밥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는…….
“김치.”
……가 있을 리 없었다. 원래 김치라는 것은 엄마가 할머니 집에 갔다 오면 생기는 것이었다.
“됐어. 김치는 포기하자. K푸드 하면 불고기지!”
하지만 간장이 없다. 간장은 원래 사 먹는 거 아닌가?
“그럼 떡볶이?”
고추장도 없다. 그리고 고추장 역시 사 먹는 거였다.
설사 고추장이 있다고 하더라도, 떡이나 어묵도 내가 만들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기, 김치찌개?”
김치 없다고.
“된장찌개?”
간장, 고추장이 없는데, 된장이 있겠냐고.
“김밥?”
김은 뭐 어떻게 만드는 건데? 단무지는?
“하아…….”
현실의 벽에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뭐 하나? 현실화시킬 방법이 없는데.
현실화하지 못하는 좋은 생각은 그저 망상일 뿐이었다.
“대체 그 로판 여주들은 전생에 뭐 하는 애들이었길래, 여기서 막 떡볶이를 만들고, 오징어볶음을 만들고, 치킨을 튀기고…… 치킨?”
투덜거리다가 불현듯 나온 치킨이라는 말에 바로 이거다 싶었다.
치킨은 여기도 재료가 다 있을 것 같은데?
비타하우스에도 닭을 길렀다. 기르지 않더라도 시장에 가면 달걀과 닭고기는 얼마든지 살 수 있었다. 당연히 밀가루도, 소금도, 기름도 있었다.
심지어 이 세계에서는 비싼 향신료인 후추도 카르오 대공가의 컨트리 하우스답게 갖추고 있었다.
고추장도 없고, 설사 있다고 해도 양념 만들 줄은 모르니 양념치킨은 만들 수 없겠지만, 그래도 프라이드 치킨은 가능할 것 같았다.
“그래! 치킨을 만드는 거야!”
드디어 찾았다! 내가 할 수 있는 K푸드!
* * *
“뭐? 주방을 좀 쓰고 싶다고?”
내 말에 클레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글쎄……. 내가 너에게 그런 허락을 해줄 수 있는 위치는 아니라서…….”
그리고 그다음에는 말끝을 흐렸다.
클레어가 그렇게 말하는 것도 당연히 이해가 갔다. 그녀는 주방의 막내였다.
그것도 굳이 말하자면 주방 소속이긴 하지만, 실은 텃밭 담당이라 주방 소속이라고 하기에도 뭣한.
“주방 사람들은 모두 점심 설거지까지 끝낸 3시부터 저녁 준비를 하는 5시까지는 쉬시기 때문에 주방이 비긴 하지만, 네가 그 시간에 주방을 쓰는 걸 허락해주실지는 모르겠어.”
“그건 내가 어떻게든 할 수 있을거야. 어쨌든, 내가 주방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있긴 있다는 거지?”
먼저 주방장님께 허락을 구하고, 만약 안 된다면 오르디나 리타 아주머니에게 부탁해볼 생각이었다.
“응. 아마도.”
“좋아! 주방장님께 재료도 조금 써도 되는지 함께 여쭤봐야겠다.”
“뭘 만들려고?”
“치킨!”
“치킨? 닭 요리?”
“응.”
“닭에 반죽을 입혀서 튀기는 거야.”
“프라이드 치킨을 하려는 거야?”
“응.”
“그래. 그거 맛있지.”
우리의 대화는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그리고 나는 거기에 위화감을 느꼈다.
왜 이렇게 자연스럽지? 자연스러우면 안 되는 것 아닌가? 분명 클레어가 ‘닭을 튀긴다고?’라고 말하거나, ‘그게 뭐야?’라고 물어봤어야 하는 것 아닌가?
왜냐하면, 치킨은 K푸드잖아? 클레어는 몰라야 정상일 텐데?
아니, 잠깐만. 애초에 프라이드 치킨이라는 단어를 말한 것도 내가 아니라 클레어잖아?
“저기, 클레어?”
“응?”
“프라이드 치킨을 아는 거야?”
“당연히 알지.”
오히려 클레어는 그것도 모르는 사람이 있냐는 듯이 물었고, 당황한 것은 나였다.
“어, 어떻게? 먹어봤어?”
“응.”
클레어는 고개를 끄덕였다.
“테오도르 님이 튀긴 음식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으셔서 주방장님이 자주 하시진 않지만, 가끔은 튀김 요리도 하시거든.”
“가끔 나온다고? 프라이드 치킨이?”
“응. 얼마 전에는 대구 튀김도 나왔잖아. 그거 맛있었지?”
클레어의 말에 기억이 났다. 엄청나게 큰 대구가 들어왔다며, 주방장님께서 휘시 앤 칩스를 만드신 것이.
좀 식었는데도 정말 맛있었던 기억까지 났다. 심지어 내가 먹어본 생선 중에서 제일 맛있다고까지 말했었는데, 그걸 잊고 있었다니!
“그럼 테오도르 님도…… 드셔 보셨겠네?”
“당연하지. 그런 고급메뉴는 테오도르 님이 남기셔야 먹을 수 있는 메뉴잖아. 내가 먹어봤다는 건, 당연히 테오도르 님이 드셔보셨다는 거지.”
이번에도 클레어는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절망했다.
나는 왜 한국에만 치킨이 있다고 생각 한 거지? 닭을 튀겨서 먹는 건 온 세계가 할 수 있었다. 심지어 지금 이 세계에서도!
물론, 이 세계에서는 K푸드식의 양념치킨은 없었을 것이다. 양념치킨을 먹어본 적도 없고, 어떻게 만드는 지도 모를 테니까.
문제는…….
‘그 양념 나도 못 만든다고! 고추장 없다고! 물엿도 없잖아! 아니, 있어도 어떻게 조합하는 건지 나도 몰라! 치킨은 원래 사 먹는 거라고!!’
나는 속으로 울부짖었다.
“뭔지 모르겠지만, 힘내.”
클레어가 토닥토닥 내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 * *
“그래! 바로 이거야!”
여전히 K푸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던 나는, 점심으로 나온 스파게티를 보고 소리쳤다.
“저기, 레나티스. 방금 노아 아저씨가 깜짝 놀라신 거 같으니까 목소리 좀 낮추면 안 될까?”
조용히 속삭이는 클레어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아닌 게 아니라 이제는 이름을 외운 노아 아저씨가 포크를 들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응? 왜 저러시지?
“그때 너에게 진 이후로 조그만 소리만 나도 저렇게 깜짝깜짝 놀라셔.”
아까보다 더 낮은 목소리로 클레어가 내 귓가에 속삭였다.
그 말에 자세히 보자 아저씨의 포크 아래로 스파게티 면발이 떨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아마도 먹던 중에 내가 큰 소리를 내자 깜짝 놀라서 떨어뜨린 모양이었다.
“그리고 분홍색만 보면 기겁을 하신대.”
그건 상관없지 않으려나? 저 아저씨는 어차피 분홍색이 어울리시지도 않을 것 같은데.
“그건 그렇고 또 뭐가 바로 그건데?”
“아이디어가 하나 생각나서.”
“아이디어? 무슨 아이디어?”
“있잖아, 클레어. 혹시 라볶이라고 들어봤어?”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클레어의 대답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