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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34화 (34/169)

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 034

그야말로 앗! 하는 사이에 뱅그르르 시선이 돌았다.

물이 쏟아지는 찻주전자에서, 불이 꺼진 벽난로로, 아마도 비타하우스의 정원을 그린 듯한 벽에 걸린 그림으로, 그리고 마지막에는 천장이었다.

아니다.

제일 마지막에 보인 것은 내 발이었다. 천장을 향해서 뻗어 올린 발은 잠시 후 툭, 떨어졌다.

발이 떨어진 뒤에도 나는 잠시 멍하니 있었다. 아직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찻물이 쏟아졌고, 다칠 뻔했는데 뭔가 날 끌어당겼지? 그래서 그쪽으로 넘어졌고, 나는 지금…… 누워있네?

“아…….”

꼬리에 꼬리를 문 생각은 마침내 그 뭔가가 테오도르일 것이라는 생각에 닿았다. 당연한 소리였다. 방안에는 나와 테오도르밖에 없었으니까.

나는 천천히 고개를 숙여 내 배에 있는 것을 쳐다보았다. 손이었다. 힘을 꽉 줘서 손등의 핏줄과 팔의 힘줄이 도드라진, 남자의 손.

‘그렇다면?’

내 등에서 느껴지는, 내가 지금 드러누워 있는, 소파와는 확연히 다르게 단단하면서도 물컹한 것은…… 설마……?

나는 고개를 돌려 내 위쪽을 쳐다보려고 했다. 하지만 내가 올빼미도 아닌데, 내 머리 위에 있는 것을 그런 식으로 확인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어? 어어? 엇?”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 보지만, 보이는 것은 그저 어깨였다. 조금 전까지 테오도르가 입은 것을 본 셔츠와 똑같은 것을 걸치고 있는 어깨.

“으아아앗!”

좀 더 상황이 분명해지자,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소파에 쓰러진 테오도르의 위에 쓰러져 있었고, 그 자세로는 쉽게 일어날 수가 없었다.

짚고 일어나려고 손을 아래로 내리자 테오도르의 탄탄한 허벅지에 닿았다. 그것도 상당히 은밀한 위치의 허벅지에.

그제야 내 허벅지의 아래에 테오도르의 허벅지가 있고, 내 엉덩이 아래에 그의 아랫배가 찰싹 맞닿아 있는 것을 깨달았다.

“으앗! 죄송합니다.”

얼른 사과하고 이번에는 좀 더 위로 손을 올렸다. 아래에는 테오도르가 있을 테니 옆을 짚었다.

그러자 이번에 닿은 것은 테오도르의 허리였다. 그것도 쓰러지면서 셔츠가 말려 올라가기라도 한 것인지 매끈한 맨살의.

“으아아앗! 고의가 아니었어요!”

진짜였다. 내가 제정신으로 감히 그의 허리를, 그것도 맨손으로 맨살을 잡을 리가 없지 않은가?

“계속 이러고 있는 건 고의인가?”

나지막하게 내 정수리에서 테오도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요. 설마요! 이게 고의일 리가요!

이번에는 그럼 위를! 손을 최대한 위로 뻗쳐 올리자, 드디어 테오도르가 아니라 소파가 만져졌다.

됐다!

자 그럼, 여기를 짚고 일어날…… 수가 없잖아! 내가 서커스단원도 아니고 갑자기 한 손으로 뒤돌기를 하며 일어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니, 이건 서커스단원이라고 해도 불가능한 자세였다.

“아니, 잠깐, 이게, 일어나기가!”

나는 버둥거리며 아무 곳에도 손을 짚지 않고 일어나려고 애썼다. 다시 말하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다리를 옆으로 돌려, 엉덩이로 내 아래에 있는 테오도르를 짓누르며 일어날 수도 없었다.

‘안 되겠다. 그냥 소파에서 굴러떨어지는 수밖에 없어.’

나는 사람처럼 일어나기를 포기했다. 조금 쪽팔리긴 했지만, 계속 이렇게 있을 수는 없었으니까.

그렇게 결심하고, 막 옆으로 몸을 굴려 떨어지려는 데…….

“잠깐, 그대로 있어 봐.”

갑자기 테오도르가 내 허리를 두르고 있던 손에 힘을 꽉 주었다.

“네?”

이대로 있으라고요? 이 자세로요?

내가 제대로 들은 것이 맞나 싶어서 몸을 비틀어 어떻게든 테오도르를 쳐다보려고 했다.

아무래도 눈을 맞추고, 얼굴을 쳐다보면서 말하는 것이 상대방의 의사를 더 정확하게 알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으읏…….”

하지만 내가 움직이자, 갑자기 낮은 신음이 위에서 들려왔다.

“가만히 있으라니까.”

더불어 낮고 위협적인 목소리까지.

“어, 어디가 안 좋으세요?”

“네가 가만히 있으면 괜찮아.”

“네?”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내가 가만히 있으면, 왜 테오도르가 괜찮아지는 거지?

“…….”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일단은 그가 시키는 대로 하는 수 밖에 없었다.

나는 그저 눈을 또르르 굴려 천장의 화려한 샹들리에를 쳐다보았다. 그야말로 가만히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건 테오도르도 마찬가지였다.

“…….”

“…….”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방에는 그저 조용한 침묵만이 떠돌 뿐이었다.

아니다. 다른 소리가 있었다.

두근, 두근, 두근.

‘테오도르의 심장 소리가 들려.’

나보다 키가 큰 테오도르였다. 아래에는 내 등허리와 테오도르의 배가 맞닿아 있었지만, 내 머리는 테오도르의 어깨쯤에 닿아 있었다.

그리고 내 귀는 테오도르의 가슴께에 있었다.

서로의 체온이 느껴질 만큼 맞닿아 있는 데다가, 조용하다 보니 테오도르의 심장이 뛰는 소리가 선연하게 내 귓가에 울리고 있었다.

두근, 두근, 두근.

마치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내게 알리는 것처럼, 테오도르의 심장이 거세게 뛰고 있었다.

‘이상해. 테오도르의 심장 뛰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까, 내 심장도 막 빨리 뛰는 것 같아.’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이 뛰고 있었다. 내 것도.

“이제 괜찮아.”

드디어 내 허리를 감싸고 있던 테오도르 손의 힘이 풀렸다. 목소리도 뭔지 모르지만 아까보다 훨씬 괜찮게 들렸다.

“아! 네넷!”

그리고 테오도르의 심장 소리에 사로잡혀 있던 나도 얼른 정신을 차렸다.

일어나야지!

나는 아까 마음 먹었던 대로 몸을 잽싸게 옆으로 굴렀고,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지금 뭘 한 거지?”

테오도르는 그야말로 당황스럽다는 시선으로 바닥에서 일어나는 나를 쳐다보았다.

“일어날 방법이 그것밖에 없어서요.”

“아프지 않아?”

“괜찮아요. 엄청 낮은걸요.”

“그래도 바닥에 몸을 그렇게…….”

“앗! 위생상 좀 그렇겠죠? 얼른 나가서 손 씻고, 다른 차를 준비해오겠습니다.”

“아니, 난 위생을 말한 게 아니라……. 하아. 아니야. 됐어.”

테오도르는 무슨 말을 하려다가 그냥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설명하기가 귀찮은 것 같았다. 그게 아니면 뭔가 피곤해졌던가.

“네. 그럼 차를 준비해오겠습니다.”

나는 그대로 웨건을 달달 끌고 방 밖으로 나왔다.

“으아! 심장 터지는 줄 알았어.”

방문을 닫자마자 내 입에서는 그 말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그 말을 하는 지금도 내 심장은 그야말로 터질 듯이 뛰고 있었다. 손으로 꽉 누르고 있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가슴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 * *

“차 준비를 이제 한 거야? 시간이 너무 늦은 것 아닌가?”

복도에서 마주친 오르디가 살짝 눈살을 찌푸린 채 말했다.

“약간의 사고가 있었어요.”

“사고?”

오르디는 더욱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 찌푸린 눈살이 내 앞치마를 향했다.

테오도르가 구해주긴 했지만, 몇 방울의 물까지 피할 수는 없었기에 내 앞치마의 일부분에는 젖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물을 엎지른 건가?”

“결론적으로는 그렇죠.”

굳이 중간과정을 이야기할 필요는 없었다.

내가 테오도르와 같이 소파에 넘어진 것은 아주 작은 사고일 뿐이었고, 굳이 보고하지 않아도 되는 중간과정일 뿐이었다.

“그런데 테오도르 님께서는 우유를 싫어하시나요?”

“우유? 별로 싫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으실걸?”

“오늘 데운 우유를 드렸는데, 좋아하지 않으시더라고요.”

“데운…… 우유?”

오르디는 눈을 몇 번 끔벅이더니, 밖을 바라보았다. 복도의 창문 너머로 여전히 해사한 날씨가 보였다.

그는 잠시 말이 없었다. 왠지 테오도르가 창밖 날씨를 봤을 때랑 비슷한 느낌이었다.

“티타임에 데운 우유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 특히나 오늘 같은 날씨에는.”

“하지만 데운 우유는 몸에 좋잖아요. 영양가도 풍부하고, 밤에 잠도 잘 오게 하고요.”

“그렇긴 하지만 지금은 한낮이고, 오늘은 날씨도 더우니까 말이야. 거기다가 테오도르 님께서는 혼자 자는 게 무서워서 잠 못 이루는 6살 꼬마 도련님도 아니고.”

“네? 아! 저는 그런 뜻은 아니었는데요.”

“그래. 알아, 알아. 테오도르 님을 생각해서 그런 거였겠지.”

사정을 다 들은 오르디의 얼굴에는 어느새 찌푸린 표정은 찾을 수 없었다. 대신 아주 흐뭇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테오도르 님께선 잘 주무시고 계셔. 그 부분에 대해서는 네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야.”

뭐? 테오도르가 잠을 잘 잔다고?

얼마 전에 내 앞에서 꾸벅꾸벅 졸았는데? 거기다가 그날은 누가 봐도 밤새 악몽에 시달린 퀭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물론, 퀭함마저 잘 어울리는 잘생긴 얼굴이었다.

그래서 당연히 테오도르도 피폐물 남주들이 그러하듯, 밤에 악몽을 꾸는 거로 생각했는데, 아니었단 말인가?

소설에서 테오도르의 악몽이나 잠버릇, 수면에 관한 이야기는 없었긴 했다.

아! 혹시 19금 남주의 버프인걸까? 2시간만 자도 체력이 완전 충전이 되는 신체인 거지.

원래 그들은 항상 여주를 기절시키고, 여주가 깨어나기 전에 벌써 깨어 있는 괴물들이니까.

심지어 기진맥진한 여주와는 달리 남주들은 아침부터 쌩쌩했다. 여러모로.

“자, 이미 늦었으니 티타임 준비를 빨리해야지?”

“아, 네!”

오르디의 말에 나는 얼른 현실로 돌아왔다.

오늘 하루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내게는 할 일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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