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28화 (28/169)

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 028

“어제, 푸딩을 먹었어요.”

내가 머리를 쥐어짜서 생각해낸 화제는 바로 푸딩이었다.

“그래?”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던 테오도르가 힐끗, 내 쪽을 쳐다보며 대답했다.

“생각만큼이나 엄청 맛있었어요. 감사합니다.”

“응.”

“그런데 왜 테오도르 님은 하나밖에 안 드셨어요?”

“보통 후식은 하나 정도 먹는 것 아닌가?”

“많이 만들라고 하셨다던데요.”

“…….”

“많이 드시고 싶으셨던 것 아닌가요?”

“…….”

“맛있는 건 원래 많이 먹어도 괜찮지 않나요?”

“난 안 그래.”

“그럼 왜 많이 만들라고…….”

아차! 내가 너무 따져 물었나? 날 쳐다보고 있던 테오도르가 다시 시선을 돌려버렸다.

“하하. 원래 사람이 그럴 때도 있는 거죠. 뭔가 하기 전에는 의욕이 넘치는데, 막상 일이 닥치면 의욕이 팍! 식기도 하고 그렇잖아요?”

“…….”

“그래도 뭔가 많이 드시려는 의욕이 있으셨으니까, 다음에는 실천도 가능하실 거예요.”

“왜 내가 많이 먹으려는 의욕이 있어야 한다는 거지?”

“어…….”

“내가 허약해 보이기라도 한다는 건가?”

“딱히 그런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라고 했지만, 사실은 그런 의미가 많았다. 아무리 제어할 수 없는 광증의 상태가 풀린 직후라고는 하지만, 그렇게 픽픽 기절해서야 튼튼하다고 보기는 어려울 테니까.

“사람이 식욕이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는 거지.”

“네?”

나도 모르게 테오도르의 말에 되묻고 말았다.

“사람이 식욕이 없을 때가 있나요?”

나는 제법 심각했다. 사람이 식욕이 없으면, 큰일 나는 것 아닌가? 그게 얼마나 중요한 욕구인데!

“덥다거나?”

“저는 더우면 시원한 게 먹고 싶던데요.”

“아프다거나?”

“따뜻한 수프나, 달콤한 과일즙 같은 게 먹고 싶죠.”

“…….”

테오도르는 할 말을 잃은 듯했다. 자신이 설명할 수 있는 식욕이 없는 상황은 저런 것인 모양인데, 나는 저럴 때도 식욕이 있다고 했으니까. 오히려 잘 먹고 기력을 회복해야지!

이렇게 되니, 정말로 궁금해졌다.

식욕이 없다는 게 대체 뭘까?

나는 어서 다른 예를 들어보라는 뜻을 담아, 눈을 반짝이며 테오도르를 바라보았다.

“아직 몸이 좋지 않을 텐데, 나가 봐.”

앗! 테오도르가 도망친다!

“네. 그럼 천천히 드세요.”

나는 괜찮았지만, 쓰러졌다 깨어난 테오도르가 피곤할 것 같아 순순히 방을 나왔다.

“어이.”

복도에서 손을 들고 말을 건넨 사람은 인스트였다. 나한테 볼일이 있는 것은 아닐 테고, 아마도 테오도르에게 볼일이 있어서 오는 길인 듯했다.

“괜찮아 보이네.”

고개를 살짝 젖혀 내 뺨을 쳐다본 인스트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마치 넘어진 동네 꼬마 녀석의 무릎을 살펴봐 주는 느낌의 미소였다.

“네. 인스트 님 덕분이죠.”

“뭐, 딱히.”

“아닙니다. 그때는 경황이 없어서 인사를 제대로 못 드렸어요. 정말 감사했습니다.”

“진짜 경황이 없었나 보네. 그때 고맙다고 인사했었어.”

“제가 그랬나요?”

“응.”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누구에게 맞은 것이 오랜만이라서 정말 내가 경황이 없었나 보다.

“그럼 어제는 고마웠고, 오늘은 감사한 것으로 할게요.”

“이상한 계산법이네.”

이상하지만 그 계산법이 싫지는 않았던지, 인스트는 피식 웃어버렸다.

“되도록, 다음부터는 그런 사람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도록 해.”

“그러려고 노력하는 편인데요. 아무래도 쉽지 않네요. 제가 좀 그런 타입인가 봐요.”

“그런 타입?”

“저희 아버지가 말하길, 저는 눈에 거슬리는 타입이라고…….”

“문 앞에서 뭘 그렇게 떠드는 거야? 시끄럽게.”

내가 닫고 나왔던 문이 열리고, 인상을 쓴 테오도르가 나타났다.

* * *

“저희 아버지가 말하길, 저는 눈에 거슬리는 타입이라고…….”

그 말이 딱 맞았다.

테오도르는 방안에서 인스트와 레나티스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부터 거슬린다고 생각했다.

아니, 어쩌면 그 전부터일 수도 있었다. 몸은 괜찮냐고 물었을 때, 레나티스가 옮는 병은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을 때부터.

자신은 그런 이유로 그녀의 안부를 물은 것이 아니었다.

‘둘이 저렇게 서서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친했나?’

그가 알기로는 아니었다. 오히려 분홍 머리카락의 마녀를 찾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사실은 그 마녀가 저주를 건 것이 아니냐며 수상쩍어 한 인스트였다.

테오도르의 광기가 발현되고, 레나티스 덕분에 되돌아왔을 때도 인스트는 그녀를 의심했다.

귀족 집안의 셋째로 태어나, 검만 휘두르며 살아온 테오도르의 호위 기사는 마녀니, 저주니, 하는 것을 믿지 않았다.

그런 그가 복도에 서서 레나티스와 웃으며 대화를 하고 있다는 게 테오도르에게는 영 거슬렸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그것보다 더 거슬리는 것은, 자신이 시정잡배처럼 바깥의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것이었다.

‘안 되겠어.’

결국, 테오도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자기 아버지가 자신을 거슬려 했다는 이야기를 하던 레나티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테오도르를 쳐다보았다.

그가 갑자기 나타난 불청객이라도 되는 것처럼.

‘거슬려.’

그 표정이 또 테오도르의 마음에 거슬렸다. 마치 손톱 아래에 있는 거스러미 같았다.

피를 볼지라도 확 잡아 뜯어버리고 싶은, 그러지 않고서는 못 견딜 것만 같은 느낌.

하지만 눈앞에 있는 레나티스는 그렇게 제거해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테오도르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지 않는 쪽을 택했다.

“나한테 할 말이 있다고 하지 않았어?”

테오도르의 시선에 걸린 인스트를 보며, 날카롭게 추궁했다.

“네. 맞습니다. 그래서 막 들어가려던…….”

“그럼 빨리 들어와.”

그 말만을 남기고 테오도르는 홱 돌아섰다. 어쩐지 둘이 있는 꼴이 보기 싫었다.

“네, 알겠습니다.”

갑작스럽게 짜증을 내는 테오도르 때문에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인스트는 군말 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뒤를 돌아 방문을 닫는 순간, 그 틈새로 인사를 한다고 고개를 숙이는 레나티스가 보였다.

분홍색 머리카락이 와르르 쏟아져 내려 그녀의 얼굴이 가려지자, 인스트는 자기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재밌는 애였다.

“뭘 그렇게 웃어?”

그리고 테오도르는 그 인스트의 미소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것 또한 어쩐지 거슬렸다.

“아닙니다.”

테오도르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파악한 인스트는 얼른 얼굴에서 미소를 지워냈다. 여전히 인상을 쓴 채, 테오도르는 소파에 털썩 앉았다.

마시다 만 차와 읽다가 덮어둔 책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테오도르는 인스트를 쳐다보았다. 어서 할 말이나 하라는 듯이.

“별채쪽 경비를 좀 더 강화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찾아뵙자고 했습니다.”

“사병 배치 권한은 카르오 대공에게 있어.”

테오도르는 아버지라는 말 대신, 카르오 대공이라고 지칭했다.

“그건 알고 있습니다만, 저는 테오도르 님의 호위무사이니까요. 지휘체계에 따라 건의드리는 겁니다.”

“그럼 지휘체계에 따라 내 선에서 네 건의는 묵살하도록 하지. 별채가 본채보다 경계가 허술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곳도 카르오 대공가야. 배치된 사병 수가 절대 적지 않아. 거기다가 갑자기 옆 공국에서 정복 전쟁을 한답시고 쳐들어오지도 않을 것이고, 정신 나간 게 아니고야 감히 여길 털겠다는 간 큰 도적놈도 없을 테니 쓸데없이 사병을 늘릴 필요는 없어.”

“하지만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야하지 않겠습니까?”

“네가 말하는 만약의 경우가 뭔데? 지난 10년간 일어나지 않은 그 만약이 뭔지 이야기나 들어보지. 그게 아니라면,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길 바라는 거야?”

인스트의 제안에 테오도르는 어지간히 삐딱한 태도를 보였다.

“아무 일도 없기를 바라서 경계를 좀 더 엄중히 하자는 말을 드리는 겁니다. 어제 허가받지 않은 외부인이 별채의 뒤뜰에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적어도 저는 보고 받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외부인?”

인스트의 말에 테오도르의 미간이 구겨졌다.

“네. 파블로 백작 영애라고 자신을 소개하더군요.”

“어제라고? 그제가 아니라?”

“네. 어제였습니다.”

“그 여자가 초대를 받은 것은 그제였어. 내가 쓰러진 그 날.”

“네. 알고 있습니다. 그날은 저도 보고를 받았으니까요. 본채에는 몇 번 방문한 적이 있는 분이라는 것도 알고 있고요.”

인스트의 말에 테오도르는 그가 사람이나 날짜를 착각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했다. 하지만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그녀가 왜 어제 별채에 있었던 거지?”

테오도르는 어제 온종일 자신의 방에서만 머물렀다. 그녀가 방문한다는 소식을 놓쳤을 리 없었다.

“레나티스를, 그분의 표현대로 하자면 버릇없는 하녀를 교육하고 있었습니다.”

“……뭐?”

테오도르의 입에서 한 박자 늦게 대답이 나왔다. 그의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것들이 서로 짜 맞춰 들어가느라 바빠서였다.

갑자기 일어난 광증이었다.

그것을 통제하는 것만으로도 급급했던 테오도르는 주변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치맛자락이 어느 순간부터 시야에 보이지 않는 것을 알아차렸다.

테오도르는 그것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녀가 어디로 갔는지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레나티스로 꽉 차 있었기 때문에 다른 생각은 전혀 할 수 없었다.

레나티스의 향기, 레나티스의 숨결, 레나티스의 피부.

그리고 들끓어 오르는 테오도르의 욕망.

“그 교육이라는 게, 매질이었나?”

레나티스가 어제 차 시중을 들지 못한 것과 오늘 뺨이 조금 부어 있던 것도 생각났다. 조금 전, 그녀가 인스트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한 것까지.

“네. 맞습니다.”

인스트의 간결한 긍정에 테오도르는 저도 모르게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알 수 없는 분노와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그 영애, 이름이 뭐라고?”

테오도르는 벌써 이름도, 얼굴도 잊은 그 여자의 이름을 물었다.

“플리케 드 파블로 백작 영애입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녀의 이름을 외웠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