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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26화 (26/169)

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 026

“왜 네가 들어오지?”

웨건을 끌고 들어오는 리타를 보며, 테오도르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가 싫었던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기대했던 얼굴은 아니었다.

“레나티스 양이 몸이 좋지 않다고 해서요.”

“몸이 좋지 않다고?”

테오도르가 굳이 리타가 한 말을 되물은 것은 그녀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서나 믿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그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다.

‘왜 몸이 좋지 않지? 이번에는 상처를 내지도 않았는데. 광증을 가라앉히는 것 자체가 기력을 쇠하게 만드는 일인가? 아니면 키스를 너무 오래 한 것이 몸에 무리가 갔나? 그게 힘든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애는 작고 약해 보였으니까.’

지금 테오도르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은 그가 깨어난 이후 줄곧 생각해온 것들의 일부였다.

또한, 레나티스를 마주하게 되면 물어볼까 생각했던 것들이기도 했다.

설마 이렇게 얼굴을 보지 못하게 될지는 전혀 모르고서.

분명 지난번에는 멀쩡했던 레나티스였다. 오히려 너무 멀쩡해서 테오도르가 의심했을 만큼.

그런데 오히려 이번에는 털끝 하나 다치게 하지 않았는데 몸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테오도르로선 이상할 수밖에 없었다.

“저도 오르디에게 전해들은 거라, 그 아이가 어떻게 아픈지는 잘 모르겠네요.”

그녀는 카르오 대공가에서도 테오도르의 증상을 아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어린 테오도르를 키운 유모였으며, 테오도르를 따라 별채로 옮긴 뒤 지금은 별채의 일을 총괄하는 가정부가 되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그래서 그녀는 테오도르의 광증이 발병했다는 이야기에 단숨에 그의 방으로 달려왔었다.

이미 기절한 테오도르를 오르디와 인스트가 침대에 누이는 것을 지켜보고, 멍해 보이는 레나티스를 방으로 데려다준 것도 리타였다.

“아, 하지만 테오도르 님 탓은 아닐 거예요. 어제 일 직후에는 그 아이가 매우 멀쩡한 걸 제 눈으로 보았거든요.”

테오도르가 살짝 인상을 찌푸린 것을 본 리타가 얼른 덧붙였다.

어렸을 때부터 그를 지켜봐 온 그녀는 테오도르가 책임감과 걱정이 많은 성격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만약, 레나티스가 자신 때문에 아프다면 분명 자책하리라는 것을 알기에 말한 것이었다.

“그래?”

하지만 자신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듣고도 테오도르의 인상은 아주 조금 펴졌을 뿐이었다. 그의 미간은 여전히 찌푸려진 채였다.

“그리고 꾀병도 아닐 거예요.”

리타가 테오도르의 성격에 대해서 아는 것이 또 하나 있다면, 그가 의심 많은 성격이라는 것이었다.

예민하면서도 무심했고, 까칠하면서도 너그러웠다.

그것들이 어떻게 공존하는지는 아리송했지만, 어쨌든 리타가 아는 테오도르는 그러했다.

예를 들면, 아침 식사에 자신이 싫어하는 음식이 나오면 인상을 찌푸렸고, 그 냄새를 맡는 것도 싫다는 듯이 식사를 거부했다.

하지만 그 메뉴를 만든 주방장이나, 내온 하인을 탓하지는 않았다.

모시기 어렵다면 한없이 어렵고, 쉽다면 한없이 쉬운 분.

그게 테오도르였다.

“그걸 어떻게 알지?”

퉁명스러운 테오도르의 목소리에 리타는 ‘거봐, 내 말이 맞지?’라고 말하고 싶었다. 누구에게 말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제법 기특하고, 근성 있는 애더라고요.”

빙그레 웃으며 리타는 레나티스를 평가했다.

“차를 우리는 것이 쉬워 보이지만, 깊게 파고들면 어렵거든요. 차 종류에 따라 물의 양이나 온도, 시간에 예민하니까요. 외울 것이 제법 많답니다.”

리타의 목소리와 함께 향긋한 허브차의 향기가 방안 가득히 퍼져나갔다.

리타는 어제의 일로 테오도르의 신경이 곤두섰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늘은 릴렉스 효과가 있는 허브차를 준비했다.

“사실, 처음에는 그리 똘똘해 보이지는 않아서 큰 기대는 없었어요. 그런데 기본적인 것 몇 가지와 레시피 몇 개를 외워보라고 말했더니, 그다음 날 전부 외워왔더라고요. 눈이 좀 퀭한 것이 아마 밤새 외운 것 같았어요.”

리타의 머릿속에 그날의 레나티스가 떠올랐다.

오밀조밀하게 귀엽게 생긴 레나티스의 얼굴에 산발이 된 분홍색 머리와 퀭한 눈이 퍽 어울려서 리타는 웃음을 꾹꾹 눌러 참았다.

그러다 레나티스가 조금 더듬거렸긴 하지만, 제가 일러둔 레시피를 하루 만에 다 외워 온 것을 보곤 저절로 웃음기가 사라졌다.

대신, 새가 집을 지어도 괜찮을 것처럼 엉클어진 분홍색 머리를 쓰다듬으려 손이 뻗어나가는 것을 참아야 했다.

별채의 가정부인 그녀가 새로 온 하녀를 칭찬했다는 소문이 돌면, 고달프게 될 것은 레나티스였다.

안 그래도 벌써 저택의 고용인들 사이에서 레나티스에 대해 이런저런 말들이 오가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모두 카르오 대공가에서 일한 지 제법 된 사람들이니 쉽게 입을 놀리지 않을 것임을 알았지만, 어쨌든 조심해서 나쁠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3일 만에 테오도르 님의 차 시중을 온전히 맡기게 된 것이죠. 잘할 줄 알았거든요.”

“그랬군.”

리타의 말을 들은 테오도르의 대답은 그게 다였다. 하지만 찌푸렸던 미간은 이미 반듯하게 펴진 뒤였다.

‘어떻게 저렇게 잘생기셨을까?’

자신이 따라준 차를 마시는 테오도르를 보며, 리타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이제껏 자신이 본 사람 중에서 테오도르는 가장 잘생긴 사람이었다.

오뚝한 콧날이나 우아한 곡선을 그리는 턱도 빼어났지만, 테오도르의 얼굴에서 가장 빛을 발하는 것은 그의 눈이었다.

도드라지게 튀어나온 눈썹뼈 아래에 자리 잡은 쌍꺼풀진 눈은 살짝만 고개를 숙여도 그늘이 드리워졌다.

그 어두움 속에서 보라색의 눈동자는 흡사 드래곤이 숨겨놓은 보물처럼 오묘하게 빛났다.

‘지금은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기에 저렇게 우수에 차 보일까? 뭔가 굉장히 심오하고, 어려운 생각을 하고 계신 것 같은데.’

리타는 골똘히 생각에 잠긴 테오도르를 보며 또 한 번 감탄했다.

‘혀가 어떻게 그렇게 움직였던 거지? 원래 혀가 그렇게 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거였나?’

하지만 리타의 고상한 추측을 배신이라도 하듯, 테오도르는 전혀 다른 생각에 빠져 있었다.

‘게다가 키스라는 게 원래 그렇게 길게 하는 거던가? 아니면, 어제의 내가 이상했던 건가?’

흐릿하고 띄엄띄엄 기억이 나던 지난번과는 달리 이번 광증의 기억은 제법 또렷했다.

아마도 완전히 광증에 잠식되기 전이었던데다가, 조치가 빨라서 그랬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덕분에 테오도르는 그때의 키스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다만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자신이 어떻게 그렇게 키스를 할 수 있었는지였다.

제 혀가 그렇게 움직이는지도, 여자의 몸이라는 것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도 몰랐는데, 자신이 그렇게 행동했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거기다 그렇게 오래 키스에 몰두했다는 것이 신기하기까지 했다.

‘하긴. 어떻게 그게 나겠어?’

의아함은 이내 자조로 변했다.

‘그건 내가 아니라 그냥 괴물이었지.’

테오도르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붉은 눈을 하고, 송곳니와 손톱이 짐승처럼 길게 자라나는 생명체을 인간이라고 볼 수 없었다.

짐승 혹은 괴물.

테오도르는 광증의 자신을 항상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은 괴물에게 잡아먹힌 것이라고.

‘그 애가 구해준 거지.’

잡아 먹혀가는 자신을 괴물의 아가리에서 구해준 것은 레나티스였다.

‘하아…… 테오…… 도르…… 님…….’

테오도르의 머릿속에 달뜬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부르던 레나티스가 선명히 떠올랐다.

발갛게 상기된 얼굴, 애달픈 목소리, 거친 호흡, 뜨거운 숨결, 말캉했던 입술.

이전에 보았던, 그저 귀엽고 당돌한 하녀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색정적이었다.

그리고 그녀를 탐욕스럽게 삼키고 싶었던 자신.

자신의 생생한 기억이 아니라 누군가가 말로 전해주었다면, 테오도르는 절대로 믿지 못했으리라.

‘아프단 말이지.’

어쩌면 당장은 괜찮아 보였을지라도 뒤에 후유증이 생겼을 수도 있었다.

혹은, 레나티스에게는 몇 시간이나 한 키스가 생각보다 중노동일 지도 몰랐다.

건장한 자신과는 달리 그녀는 작고 연약한 여자였으니까.

“리타.”

“네, 테오도르 님. 차를 더 드릴까요?”

“차는 됐어. 그것보다 저녁 식사에 만들었으면 하는 게 있는데.”

“식사에요?”

지난 몇 년간, 테오도르는 뭐가 먹고 싶다고 말을 한 적이 없었다. 그저 나오는 대로 먹었고, 나온 메뉴가 내키지 않으면 먹지 않았다.

그런 그가 저녁 메뉴를 주문하고 싶다고 하니, 리타로썬 당연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후식으로 푸딩을 만들어 줘.”

“푸딩요?”

거기다가 후식 메뉴라니?

그는 원래 단 것을 즐기지 않았다.

“좀 넉넉하게 만들도록 해. 한…… 스무 개 정도.”

그것도 스무 개나? 단 것을 즐기지 않는 테오도르의 푸딩 대량 주문에 리타의 눈은 더욱 커졌다.

“네, 알겠습니다.”

하지만 리타는 순순히 고개를 숙였다.

원래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었다. 거기다가 테오도르는 지금 큰일을 겪고 있지 않은가?

충분히 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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