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 022
‘에잇! 모르겠다!’
해석할 길이 없는 소설 속 구절들은 내버려 두고, 나는 냅다 혀를 쭉 뻗었다.
애초에 내가 하려는 것은 키스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체액 주입이었다.
내 혀에는 당연히 내 침이 묻어 있을 테고, 침이 묻은 혀가 대충 테오도르의 입안에서 뒹굴뒹굴하면, 그의 침과 섞여서 그가 먹겠지.
꼭 삼키지 않더라도, 내 침이 그 안에 있기만 하면 입 안은 점막이니 흡수가 될 것이다.
부디 내 이론이 맞기를 바라며, 나는 혀로 테오도르의 입 안쪽의 여린 살을 훑어 올렸다. 혀로 느껴지는 매끄러운 살의 느낌이 매우 묘했다.
내 짧은 혀가 닿을 수 있을 만큼 위로 올라갔음을 느끼자, 이제 다시 아래로 쓸어 내려오려 더 안쪽 깊은 곳까지 닿으려 노력했다.
내가 최대한 구석구석 핥아야 조금이라도 더 빨리 테오도르가 내 체액을 흡수할 수 있을 테니까.
혀를 더 깊이 밀어 넣자, 아까 내가 핥았던 테오도르의 송곳니에 혀의 중간쯤이 긁혔다. 단단한 치아에 혀가 긁히는 감각 역시, 뭔가 묘했다.
소설 속에서 말하는 ‘아찔한 감각’이라고 하기에는 좀 부족했고, ‘쾌감’이라고 말하기에는 아주 한참 모자랐다.
하지만 보통의 평범한 느낌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내 본능의 어딘가에 웅크리고 있는 감각을 미묘하게 툭툭 건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어?’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알 수 없는 그 감각에 내가 의문을 표할 때였다.
단단한 무언가가 갑자기 내 허리를 옭아맸다. 놀라 눈을 번쩍 떴지만, 테오도르의 얼굴이 너무 가까웠던 터라 내 시야는 가로막혀 있었다.
사실 갑작스러워서 놀랐을 뿐이지, 그게 무엇인지는 분명했다. 이 방 안에 있는 사람은 나와 테오도르밖에 없으니 그건 분명 테오도르의 팔이었다.
내 허리를 붙든 테오도르는 그대로 나를 자신의 쪽으로 끌어당겼다.
테오도르는 소파에 앉아 있었고, 나는 그 앞에서 허리를 숙이고, 얼굴만 맞붙은 자세였다.
그 상태에서 테오도르가 끌어당기자, 내가 갈 곳은 한곳 뿐이었다.
한쪽 다리를 테오도르의 허벅지와 허벅지 사이의 빈 곳에 밀어 넣자, 나를 당기는 테오도르의 힘에 자연스럽게 무릎이 꺾였다.
그리고 허리는 테오도르의 배에 바싹 붙여졌고, 가슴은 어깨쯤에 얹어졌다.
한 손으로는 내 허리를 단단히 끌어안은 테오도르가 다른 한 손으로 내 뒤통수를 붙들었다.
“으읏…….”
숨이 모자랐던 걸까? 잠시 입술과 입술이 떨어진 순간, 내 입에서는 나도 모르게 작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 소리에 반응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타이밍이 그랬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테오도르는 각도를 달리하며 입을 더욱 크게 벌렸다.
마치 나를 잡아먹으려는 것처럼.
그리고 아까 내가 그랬던 것처럼, 테오도르의 혀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
그가 부디 내 타액을 마음껏 흡수하기를 바라며, 나는 기꺼이 입을 벌려 테오도르를 환영했다.
나와는 달리 테오도르는 자신의 혀를 내 입천장에 먼저 가져다 대었다.
넓고 두꺼운 혀가 힘을 실어 피부를 짓누르자 뭔가 묵직한 느낌이었다. 안쪽으로 들어올수록, 혀는 더욱 단단해졌고 그 끝은 뾰족해졌다.
입천장의 단단한 부분을 지나, 여리고 부드러운 살점에 이르자 그것은 더욱 명확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테오도르는 아직도 부족하다는 듯, 제 혀를 더 들이밀었다.
이러다가 테오도르의 혀가 내 목구멍까지 닿아 숨이 막혀버리는 것이 아닐까 더럭 겁이 났다.
주춤거리며 고개를 약간 뒤로 빼려 했지만, 내 뒤통수를 잡은 테오도르의 손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손에 힘을 줘서 내 머리를 단단히 붙들고, 더욱 크게 입을 벌렸다.
퇴로를 차단당한 나는 그저 고스란히 테오도르의 혀를 느끼며 꼼짝없이 갇혀 있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가만히 있자, 오히려 테오도르는 손의 힘을 느슨하게 하더니 부드럽게 혀를 뒤로 물렸다.
“아……!”
속았다. 테오도르의 물러나는 것 같은 행동은 페이크였다.
뒤로 물러나는 척을 하던 테오도르의 혀는 그대로 각도를 달리하며 이번에는 아래에 있는 내 혀를 세게 짓눌렀다.
갑자기 당한 습격에 놀란 나는 작은 비명을 질렀다. 아니, 그건 비명과는 좀 달랐다. 내 귀에 들린 그것은 비명보다는 신음에 가까웠다.
‘내가 신음을 냈다고?’
당황스러움에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나는 더 당황스러운 사실을 깨달았다.
‘나 대체 언제 눈을 감았던 거지?’
나는 분명 조금 전에 테오도르가 나를 끌어안았을 때, 놀라서 눈을 떴었다.
그런데 눈을 뜨고 있는 상태에서는 다시 눈을 뜰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니, 조금 전에 내가 눈을 뜬 것은 어느 사이엔가 내가 눈을 감고 있었음을 의미했다.
마치…… 마치…… 내가 테오도르의 키스에 완전히 빠져있었던 것처럼!
‘이러면 안 되는 것 아닌가?’
이건 명백히 치료 행위였다. 광증의 테오도르를 낫게 하기 위해서 내 체액을 나누어주는 중이었다.
적어도 내 입장에서는 그랬고, 그래야만 했다.
“읏!”
순간, 찌릿한 아픔이 혀끝에서 느껴졌다. 딴생각하지 말고 지금의 상황에 집중하라는 듯이 테오도르가 내 혀를 깨문 것이었다.
놀란 내 혀가 오그라들며 안으로 도망치려 하자, 그것도 용서할 수 없는 행위라는 듯, 테오도르의 혀가 쫓아왔다.
도망칠 곳은 없었다. 그러니 붙잡히는 수밖에 없었다.
.
.
.
“흐읏…….”
비음 섞인 신음이 들려왔다.
“하아…….”
들이마시는 숨소리가 야했다.
“흣!”
화들짝 놀란 듯, 짧게 들린 비명도 마찬가지였다.
방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숨소리와 간간이 들리는 신음은 전부 야하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전부 내 것이었다.
‘뭐지?’
이미 어지러운 머릿속에서 나는 또 하나의 의문을 추가했다.
‘이건 뭐야?’
방금 무언가 짜르르한 느낌이 내 뱃속의 어딘가를 건드렸다.
그건 조금 전에 발끝이 저절로 오그라드는 느낌과는 좀 달랐다. 저도 모르게 테오도르의 어깨를 꽉 붙들게 했던 기묘한 부유감과도 달랐다.
그 감각이 뭔지 내가 알아내기도 전에 갑작스럽게 느껴졌던 그것은 아지랑이처럼 서서히 존재가 옅어지더니, 사라지려 하고 있었다. 나는 그게 아쉬웠다.
마치 까마득한 낭떠러지에 서 있는 것과 비슷했다. 위험한 것을 알지만, 이상하게도 계속 그 근처를 서성이게 되는.
“읏!”
내 아쉬움을 알아차린 것일까?
테오도르가 제 혀를 내 혀에 세차게 문지르며, 호흡을 가득 빨아올렸다. 그러자 사라지려던 그 감각이 다시 피어올랐다.
배꼽 아래였다. 그곳에서 찌르르한 느낌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그곳에 힘을 주었다. 그 감각이 도망가지 못하게 붙드는 것처럼.
“흐읏…….”
내 것이 아닌 것만 같은 신음을 흘렸다. 그리고 내 타액이 함께 흘러내렸다.
‘테오도르…….’
엉망진창인 머릿속에서 내게 키스하고 있는 상대방이 누구인지 생각났다. 그리고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도.
정신없는 와중이었지만, 내 입술이 테오도르의 입술 위에 있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 말은 내 타액을 착실하게 테오도르가 받아먹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니, 어쩌면 누가 위고 누가 아래인지는 중요하지 않을는지도 몰랐다.
테오도르와 나는 뒤엉킨 혀가 누구의 것인지 모를 정도로 격렬한 키스를 나누고 있었다.
“흐읏!”
혀뿌리가 아릴 정도로 테오도르가 세게 내 혀를 빨아당기자, 다시금 감각이 배꼽을 때렸다. 신음과 함께 타액이 다시 흘러내렸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테오도르는 아래에서 그것을 꿀떡, 받아 삼켰다. 그의 입술이 살짝 닫히고, 그의 목울대가 크게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하아…….”
“후…….”
그리고 두 입술이 떨어지며 동시에 숨을 내뱉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나는 몸을 뒤로 물렸다.
내 시야에 처음 들어온 것은 테오도르의 입술이었다.
타액으로 촉촉이 젖은 입술은 살짝 벌어져 있었고, 아직 거친 호흡을 내뱉고 있었다. 내 마음에 들었던 송곳니는 지금 보이지 않았다.
날카로운 턱이 그다음에 눈에 들어왔고, 조금 더 뒤로 가자 턱만큼이나 날카로운 테오도르의 콧날이 보였다.
그리고 조금 더 멀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테오도르의 눈이 보였다. 나를 응시하고 있는 눈동자는 분명한 보라색이었다.
‘돌아…… 온 건가?’
그렇지만, 보통의 테오도르와는 무언가 달랐다.
평소 무심한 표정으로 책을 넘기던 그 눈빛이 아니었다. 가끔 내게 무심히 잡담을 건네던 남자와도 달랐다.
내게 자신이 망친 옷에 대해 보상을 하겠다며 호의를 베풀던 남자와도 달랐다.
분명 현재 테오도르가 정상적인 상태라는 것을 의미하는 보라색 눈동자였지만, 어떠한 감정으로 가득 들어차 있는 테오도르의 눈동자는 어딘지 모르게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뭐지?’
그 감정이 무엇인지 붙잡아보려던 순간이었다.
나에게 그 감정을 알려주지 않으려는 것처럼 테오도르의 눈이 스르륵 감겼다. 그리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꼬꾸라지기 시작했다.
“으아앗!”
그야말로 엉겁결에 나는 테오도르를 거의 껴안듯이 받아냈다.
만약 내가 피했다면, 조금 전에 봤던 테오도르의 날카로운 콧날이 테이블에 부딪혀서 처참하게 깨졌을 것이다.
“테오도르 님?”
“…….”
그를 떠받친 채 이름을 불러보았지만, 대답은 없었다.
“또 기절인가 보네.”
대답 대신 들려온 새근거리는 숨소리에 나는 그가 또 기절했음을 알았다.
아무래도 정신이 돌아오는 과정 중에 기절은 필수요소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