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 021
“…….”
내게 무슨 말을 하려던 백작영애는 갑자기 입술을 꾹 다물었다. 무슨 말을 하려던건지 정확히는 몰라도, 분명히 험한 말이었을 것이다.
“테오도르 님.”
대신 그녀는 조용하고, 침착한 목소리로 테오도르를 불렀다. 아마 그녀가 험한 말을 참은 이유도 테오도르였을 것이다.
그의 앞에서 험한 말을 하고 싶지 않았거나, 그런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거나.
그래서 자신이 직접 무슨 말을 하기보다 테오도르를 부른 것이리라 짐작했다. 자기 대신 이 버릇없는 하녀를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면서.
하지만 문제는, 테오도르의 귓구멍은 지금 막혀 있는 상태였다.
광증의 상태에서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이미 지하 감옥에서의 체험으로 알고 있었다.
“테오도르 님은 지금 몸이 좋지 않으셔서 대답이 어려우십니다. 그러니, 이만 돌아가 주세요.”
나는 아까보다 더욱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자 테오도르만큼이나 그녀의 입이 꽉 다물어지는 것이 보였다.
입을 꾹 다물고, 나를 노려보며, 그녀는 잠시 생각하는 듯했다.
이쯤 되면 테오도르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그녀도 깨닫긴 했을 것이다.
조금 전까지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던 그가, 이렇게 하녀가 무례한 짓을 저지르는데도 가만히 있으니 말이다.
“다음에.”
그리고 마침내, 생각을 끝낸 백작 영애의 입이 열렸다.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테오도르 님.”
얼굴에는 차가운 냉기가 감돌고, 기분이 상한 것이 한눈에 보였지만, 그녀는 귀족적인 예의와 우아한 자태를 잃지 않았다.
드레스 자락을 살짝 잡고 일어나 사뿐사뿐 방을 나서는 모습 역시 쫓겨나듯 나가는 것이 아니라, 나비처럼 아름다웠다.
“테오도르 님!”
백작 영애가 나가고, 문이 온전히 꼭 닫히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나는 재빨리 뒤를 돌았다.
테오도르의 이마에서는 땀이 비 오듯 흐르고 있었고, 그 아래의 눈동자는 아까보다 더욱 진한 붉은 빛을 띠고 있었다.
또한, 이제는 손만 떨고 있는 것이 아니라 팔과 어깨까지 들썩이며 떨고 있었다.
“당장 오르디 님을 불러…….”
오르디를 불러오겠다는 말로 테오도르를 안심시켜려던 나는 그게 전혀 안심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곤 말을 멈췄다.
오르디를 불러온 들, 그가 할 일은 나를 찾는 것이었을 테니까.
지금 테오도르에게 필요한 것은 나였다. 정확하게는 나의 체액.
“테오도르 님, 조금만 참으세요. 네?”
테오도르를 달래며, 손은 원래 그에게 주려던 찻잔을 찾았다. 따른 지 좀 된 차이니, 지금쯤이면 벌컥벌컥 마신대도 입안이 데일 염려는 없을 것이다.
거기에 얼른 내가 침을 뱉고, 또 얼른 테오도르에게 마시라고 하면…… 아니지. 지금은 무슨 말을 해도 듣지 못하는 것 같으니까, 말로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입에 들이부어야겠다.
찻잔을 손에 쥐고, 얼른 내 입으로 가져다 대려는 순간이었다.
“아앗!”
분명 무릎을 꼭 붙들고 있던 테오도르의 손이 어느새 내 쪽으로 뻗어와 내 손목을 움켜쥐었다.
들고 있던 찻잔은 내 입가에 다다르기 전에 공중에서 멈춰 버렸다.
“테, 테오도르 님?”
당황한 내가 테오도르를 바라본 순간, 그는 강렬한 붉은 눈으로 내 시선마저도 빼앗아버렸다.
그저 순수한 욕망과 집착만이 가득 들어찬 테오도르의 눈은 마치 세공되지 않은 보석과 같이 빛나고 있었다.
“…….”
“…….”
넘친 찻잔의 차가 내 손을 따라 흘렀다. 내 손목을 쥔 테오도르의 손에 잠시 고였던 차는 다시 그 아래로 미끄러져 갔다.
눈으로 보지 않아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따뜻했던 차가 내 손과 팔을 타고 흘러내리며 점점 식어가는 것도, 내 손을 쥔 테오도르의 뜨거운 체온도, 그리고 순간적으로 자라난 그의 손톱이 내 여린 살갗을 찔러대는 것도, 모두 느껴졌다.
마치 시간이 멈춘 세상에 오롯이 테오도르와 나만 존재하는 것처럼.
“하…….”
세상을 깨뜨린 것은 테오도르의 거친 숨소리였다. 억눌린 무언가를 토해내듯 테오도르가 입을 열고 가쁜 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 나는 보고야 말았다. 비죽이 튀어나온 테오도르의 송곳니를.
‘늦었어! 물리겠어!’
이곳에 온 첫날, 테오도르에게 물렸던 그 아픔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렇게 물리지 않으려고 했는데, 빌어먹을 양심이라는 놈 때문에 이 순간이 오고야 말았다. 진작에 테오도르의 차에 침을 뱉었어야 했는데!
‘아니야. 아직 늦지 않았어.’
테오도르는 내 손목을 아플 정도로 쥐고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조금만 나를 잡아당기거나,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얼마든지 나를 물고 피를 취할 수 있을 거리였다. 하지만 테오도르는 그저 거칠게 호흡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직은.
“으…….”
다시 한번 거친 숨소리와 신음이 테오도르의 입술에서 밀려 나왔다. 그리고 뿌드득 하고 이가는 소리 역시 그의 입에서 들렸다.
그는 아직도 버티고 있었다. 광증에 자신의 몸이 지배당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불현듯, 나는 다시 테오도르가 가엾어졌다.
파들파들 떨리는 몸이, 제 몸을 뺏기지 않으려고 안간힘쓰는 것이, 거역할 수 없는 저주에 맞서 외로이 홀로 싸우고 있는 것이.
“테오도르.”
생각은 한순간이었다. 또한, 행동 또한 한순간이었다.
나는 테오도르를 향해서 몸을 굽혔다. 정확하게는, 테오도르의 입술을 향해서 고개를 숙였다.
말캉한 것이 내 입술에 닿자, 나는 내가 제대로 방향을 찾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것이 테오도르의 입술이라는 것도 알았다.
또한, 이것이 나의 첫 키스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다음은…… 어떻게 해야 하지?’
순진한 첫키스의 소녀는 고민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언니와 노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재밌고, 신나는 시골 소녀였다.
우리 동네에는 내 이상형에 근접한 남자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연애는커녕 남자 손도 한번 못 잡아본, 그야말로 순진무구한 소녀였다.
하지만 이론적인 지식은 있었다. 정확하게는 고상한 독서 취향을 가진 전생의 내가 읽은 무수한 19금 소설에서 본 수많은 이론이.
‘일단 입을 벌려야겠지? 이대로는 테오도르에게 내 체액을 먹일 수 없을 테니까.’
살그머니 입술을 벌리자, 나와 맞붙어 있던 테오도르의 입술이 함께 벌어졌다.
입술보다 더 촉촉하고 미끈한 입안의 피부가 습한 숨결과 함께 느껴졌다.
‘그다음은?’
내가 읽었던 소설에서는 대개 남주들이 상황을 리드했다.
하지만 지금 테오도르는 거의 굳은 상태였다. 아마도 광증을 억누르는 것에 온 힘을 쏟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니 어떻게든 내가 이 상황을 리드해야했다.
슬쩍 혀를 내밀자, 단단한 치아의 벽이 느껴졌다. 낭패였다.
이 벽을 뚫어야 테오도르에게 내 체액을 전달해줄 수 있을 텐데…….
두꺼운 혀가 고른 치열을 훑어내리자, 아찔한 감각이 몸을 타고 흘렀다. 저절로 목구멍에서 앓는 소리가 나오며, 입술이 벌어졌다.
그 틈을 타고 담을 넘는 구렁이처럼 혀가 그녀의 안으로 침입해왔다.
순간, 내 머릿속에서 어느 책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아마도 훌륭한 독서 취향이었던 전생의 내가 읽은 책이겠지.
무슨 책인지는 모르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유용한 구절이었다.
나는 책을 흉내 내 혀를 내밀었다. 그러자 진짜 책처럼 매끈하고 고른 테오도르의 치열이 느껴졌다.
어쩌면 당연하였다. 주인공치고 치열이 매끈하지 않은 이는 없었다. 제대로 된 치과도 없을 텐데, 모두가 이런 것은 역시나 주인공 버프겠지.
나는 책에서 배운 대로 테오도르의 치아를 혀로 천천히 더듬어갔다. 나란한 앞니의 평편한 면을 훑고, 그보다는 조금 작은 이를 혀로 문질렀다.
그리고 아직은 그리 날카롭지 않은, 하지만 틀림없이 사람의 그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뾰족한 송곳니에도 혀를 가져다 대었다.
‘귀여워.’
지금 상황에서 이런 생각을 하는 건 미친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테오도르의 작은 송곳니가 강아지나, 작은 맹수의 것처럼 느껴져 귀여웠다.
어쩌면 지금의 테오도르가 그런 상태여서 그런지도 몰랐다. 머지않아 맹수가 될 테지만, 아직은 덜 자란 어린 맹수.
내 마음에 든 테오도르의 송곳니에는 좀 더 정성을 들였다. 그리고 그다음 치아로 나아가려 하자, 내 혀의 길이가 모자랐다.
분명 소설에서는 치열 구석구석을 핥아 내렸다고 했는데, 주인공 버프가 없는 나는 혀가 좀 짧은 모양이었다.
참 나! 주인공 아닌 사람 서러워서 살겠나?
‘별수 없지.’
나는 혀를 더 뻗기 위해서 입술을 벌리고, 좀 더 테오도르에게 내 입을 더 바싹 붙였다. 그러자 테오도르가 움찔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천천히, 그의 입이 벌어졌다.
‘됐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나는 성급하게 그 틈으로 혀를 들이밀었다.
내 혀가 미끄러져 들어가자, 조금 느슨해졌던 내 손목을 쥔 테오도르의 손에 다시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다음은…….’
나는 또 주춤거리고야 말았다.
머릿속에서는 여러 가지 19금 소설의 구절들이 착실하게 떠오르고 있었지만, 전연령인 내 몸은 그것을 오롯하게 실행하지 못했다.
‘습한 숨은 뭐 어떻게 삼키는 건데? 꿀꺽 삼키면 되는 건가? 아니, 따뜻한 애정은 어떻게 퍼붓는 건데? 아니! 다 떠나서! 있는 건 입술이랑 혀랑 침밖에 없는데 달콤함은 대체 무슨 수로 느끼는 거냐고!’
키스……. 너무 어렵다.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