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 019
“너 놀린다고 거짓말한 것 아니야?”
독 요리라는 말에 스기엔은 단박에 인상을 찌푸렸다.
“독을 먹으면 죽는다는 건 상식이라고.”
“그렇지만 독주머니나, 독 있는 부위를 제거하면 먹을 수 있대. 그러니까 전갈의 꼬리를 떼고 튀긴다거나 해서!”
“그걸 왜 굳이 튀겨먹는다는 건데?”
“맛있으니까?”
“으엑! 그딴 게 맛있다고? 인간이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야.”
스기엔은 진심으로 더러워죽겠다는 표정으로 통통한 몸을 부르르 흔들었다.
“스기엔은 몬스터면서 너무 모험심이 없어! 야생의 몬스터라면 막 귀뚜라미도 먹고, 뱀도 잡아먹고, 흙탕물도 생존을 위해서 마시고 그래야 하는 것 아니야?”
“뭔 소리야? 난 야생의 몬스터가 아니라 위대하신 고위 마족이라고!”
“네~ 네~. 위대하신 고대 슬라임이시죠.”
“슬라임 아니라니까!”
오늘도 스기엔은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했다. 인정하면 편할 텐데, 왜 저렇게 젤리 몸체에 핏대를 세우며 부정하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말이야. 참 이상하긴 했어.”
내가 베개를 베고 눕자, 이제는 당연하다는 듯이 스기엔이 겨드랑이 사이로 파고들었다.
“뭐가?”
내 팔과 몸통 사이에 동그랗게 자리를 잡은 스기엔이 물어는 보지만, 관심은 없다는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테오도르 님이랑 이야기하는데 엄청 편했어. 귀족인데 그렇게 어렵지도 않고, 무섭지도 않고.”
“그래?”
역시나, 스기엔은 내 대답을 듣고도 그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이제는 졸린다는 듯 하품까지 길게 이었다. 그래서 스기엔에게 더 말하지 못했다.
테오도르와의 그 대화가 퍽, 재미있었노라고.
* * *
“좋아. 할 수 있다.”
나는 테오도르의 방문 앞에서 스스로를 격려했다.
격려가 없으면, 나의 은밀하고 악독한 계획을 실행할 용기를 낼 수 없었다.
뜨겁게 데운 물이 든 주전자의 뚜껑을 조심스럽게 열자, 모락모락 김이 피어올랐다.
리타 아주머니의 배움에 따르면, 더 기다려야 했다. 이 정도라면 물이 너무 뜨거워서 차가 쓰게 우려질 테니까.
하지만 내 계획에는 오히려 이 정도 물 온도가 더 좋았다.
“후유~.”
한숨을 한 번 더 내쉬고, 나는 입 안에 있는 침을 그러모았다.
그랬다. 나의 악독한 계획이란 테오도르 몰래 그의 차에 내 침을 섞는 것이었다.
되도록 테오도르의 위생과 비위를 위해서 눈물을 흘려보려고 노력했지만, 도저히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니 어쩔 수 없었다. 차선 체액인 침을 먹이는 수밖에는. 적어도 땀보다는 낫지 않은가?
거기다가 변하기 전에 미리 체액을 먹이는 것이 통할지 알 수 없으니, 대놓고 귀하신 귀족님에게 ‘제 침 좀 드시겠어요?’라고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진짜 나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짠맛은 나지 않았지.’
입안에 충분히 침이 모이자 나는 주전자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이제 거기다가 침을 뱉고, 미리 주머니에 챙겨온 수저로 물을 한번 젓기만 하면 됐다.
그리고 테오도르가 이 물로 탄 차를 마시면, 완전범죄가 완성됐다.
‘잠깐만, 내 침에서 혹시 무슨 맛이 나지는 않겠지?’
막 침을 뱉으려다, 나는 잠시 멈칫했다. 한 번도 침에서 무슨 맛이 날 것이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내 침은 항상 내가 먹으니 맛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었고, 남의 침은 먹어 본 적이 없으니 알 수 없었다.
‘됐어. 침에서 무슨 맛이나.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말자.’
나는 다시 주전자를 향해서 입을 쭉 내밀었다.
‘그걸 싫어하는 사람은 없지.’
왜일까? 막 침을 뱉으려던 순간, 갑자기 어제 테오도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말을 하면서 슬쩍 보여주었던 미소도.
한번 생각이 났더니 어제의 대화가 고스란히 다시 머릿속에서 리플레이되기 시작했다.
어쩐지 따사로웠던 분위기와 차의 은은한 향기, 테오도르의 무심한 듯 부드러웠던 목소리까지.
‘이래도 괜찮나?’
잔잔한 주전자 속 물과 달리 내 마음은 매우 거칠게 흔들리고 있었다. 양심이라는 작은 배가 위태롭게 그 흔들림 속에 떠 있었다.
이건 사실 다 테오도르를 위한 일이었다. 그의 광증이 도지지 않게 하려고 하는 것이었으니까.
‘거짓말.’
그래. 사실은 온전히 테오도르를 위한 일은 아니긴 했다. 내가 아픔을 피하려고 하는 일이니까.
‘하지만 혹시 모르잖아?’
진짜로 미리 체액을 먹여서 광증이 예방된다면, 테오도르에게 좋잖아! 안 미쳐도 되니까!
‘그렇다고 그 사람을 속여도 돼?’
으아아아! 미치겠네! 하나만 하라고, 하나만! 양심 없이 침을 뱉던가, 양심을 챙기고 침을 삼키던가!
둘 중에 결론을 내리라고! 레나티스 그라티아!
“밖에 누구지?”
별안간 문 안쪽에서 테오도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문밖의 기척을 느낀 모양이었다.
“읍!”
고개를 번쩍 들고, 뭐라고 대답을 하려는 순간이었다. 내 입 안에 침이 가득 고여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대로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어쩌지?
그래. 어쩔 수 없지.
“저, 저예요! 레나티스요!”
입 안에 있던 침을 꿀꺽 삼키고, 나는 대답했다.
어느덧 김이 모락모락 나던 차 주전자에서는 은은하게 김이 올라오고 있을 뿐이었다. 차를 마시기에 아주 적당한 온도라는 뜻이었다.
웨건을 밀고 방으로 들어가자, 어제와 똑같은 자세로 똑같은 시집을 들고 있는 테오도르가 보였다.
“오후 티타임입니다.”
아무것도 안 섞은 순순한 차랍니다.
……흑흑.
* * *
“내일, 파블로 백작가의 영애께서 방문하신다고 합니다.”
테오도르는 오르디의 말을 흘려들으며, 책장을 넘겼다.
파블로 백작 영애가 누군지는 알고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어머니인 카르오 대공비의 담소 상대였지만, 실질적으로는 테오도르의 혼약자 후보 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카르오 대공비의 담소 상대는 한둘이 아니었고, 테오도르의 혼약자 후보 역시 그러했다.
세간의 말로는 대공비의 최근 교류로 보아 세 명 정로도 후보가 좁혀졌다는 말도 있었다.
하지만 정작 테오도르는 그 세 명이 누군지 전혀 몰랐으며, 그에 대해서 전혀 관심도 없었다.
“대공비님과 점심을 드신 후, 테오도르 님과 티타임이 예정되어 있으니 미리 준비하시라는 전언입니다.”
오르디가 굳이 파블로 영애의 방문을 이야기한 시점에서 테오도르가 이미 눈치챈 이야기였다.
황궁 다음가는 규모라는 카르오 대공가의 저택인 만큼, 대지와 건물이 매우 넓었다.
본채와 별채의 거리도 그만큼이나 멀었고, 가운데에는 작은 숲이라고 해도 좋을 커다란 정원까지 있었다.
본채에서 누가 다녀간다 해도 별채에서는 그것을 알아차릴 수도 없을 정도였다.
그러니 카르오 대공비가 자신을 이곳에 보내버린 것 아니겠는가? 제 눈에 띄지 않도록.
“누구로부터?”
누군지는 뻔하지만, 테오도르는 굳이 물었다.
“대공비님으로부터의 전언입니다.”
테오도르가 예상했던 대답이었다.
‘그렇게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더니, 참 알뜰살뜰하게도 잘 써먹으시는군요. 제가 이대로 죽으면, 영혼결혼식이라도 올려서 썩은 시체도 팔아먹으시겠습니다.’
테오도르는 속으로 한껏 제 어머니를 조롱했다.
“미리 내가 뭘 준비해야하지? 깨끗하게 목욕하고, 백작 영애가 오면 은밀하게 침실로 안내하면 되는 건가? 혈통 좋은 종마처럼 말이야.”
시니컬한 테오도르의 말에 오르디는 난색을 보였지만, 테오도르는 괘념치 않았다.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이 아니라, 그저 비웃음이었다. 오르디가 아니라 자신의 처지에 관한 비웃음.
카르오 대공비에게 자신은 아들이 아니었다. 자신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 비싼 값에 팔 수 있는 종마였다.
‘아니, 종마정도라도 되면 다행인가?’
테오도르는 속으로 자신의 비웃음을 비웃었다.
카르오 대공은 자신을 팔아치울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저 허수아비처럼 세워두면 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알았다.
아니, 어쩌면 카르오 대공비보다 더 간절하게 테오도르의 죽음을 바라는 사람은 카르오 대공일 수도 있었다.
장례식이라든가, 조의를 표하는 손님, 그리고 앞으로 후계자 자리는 어떻게 할 거냐는 귀찮은 참견들만 조금 견뎌낸다면, 평생을 무탈하게 보낼 수 있을 테니까.
거기다가 그 귀찮은 뒤치다꺼리도 이미 한번 해본 것이니, 두 번째는 더욱 수월할 수도 있었다.
적어도 카르오의 후계자가 미쳐 날뛰다 사람을 죽였다는 것을 수습보다는 훨씬 간단하리라.
“저어……. 혹시 테오도르 님께서 정 내키지 않으신다면…….”
“왜? 네가 대신 앉아서 그 영애와 차라도 마시게?”
테오도르는 위로 곁눈질하며 오르디에게 물었다. 융통성 없는 테오도르의 시종은 그의 말에 당황한 듯, 눈을 깜박였다.
더 무서운 사실은 테오도르가 명령한다면, 오르디는 기꺼이 그 명령마저도 수행할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시키는 대로 준비해.”
다시 책에 눈길을 주며 테오도르는 말했다.
상관없었다. 누구와 차를 마시든, 결혼하든, 잠자리하든.
살아 있는 것이 복수이기에, 자신이 숨 쉬는 것이 델마에게 괴로움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리고 죽음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직접 목격했기에 죽지 못했다
죽지 못해서 살아 있었다.
테오도르에게 삶의 의미는 그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