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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16화 (16/169)

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 016

“아까 그 아이가 그 마녀인 거지?”

“네, 그렇습니다.”

넓은 책상을 가운데 두고 마주 앉은 카르오 대공과 테오도르의 대화는 메마르기 그지없었다.

누군가 본다면 부자의 대화가 아니라 상관과 부관의 대화라고 여김 직했다.

광증의 아들이 자신도 해할까 봐 영지 순방을 핑계로 자리를 피한 아버지와 버림받은 아들의 재회였으니 당연히 그럴 만도 했다.

“의식은 무사히 행한 것이냐?”

“그러니 제가 지금 눈을 똑바로 뜨고, 대공님을 보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삐뚜름한 미소와 함께 테오도르가 대답했다. 불순하다고 할만한 태도였지만, 카르오 대공은 지적하지 않았다.

아들이 자신을 아버지라 부르지 않고, 카르오 대공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은 이미 오래되었으니 지적할 사항이 되지 못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딱히 이 상황을 타개하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는 것이었다.

니제르 드 카르오는 지독하게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카르오 가문의 외동아들로 태어난 그는,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권력을 손에 쥐었다. 그의 손가락은 마법의 지팡이나 다름이 없었다.

어릴 때부터 그의 손가락 하나에 모든 것이 움직였다.

저택의 고용인들뿐만이 아니라, 그의 누이들, 혹여 심사에 거스르면 광증이 발현될까 두려워했던 어머니와 아버지까지.

카르오의 독재자로 자라난 그가 타인에 대한 배려나 이해심을 기르는 것은 어려웠다. 그것은 자신의 아들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애매한 놈이야.’

테오도르에 니제르에 대한 평가는 그러했다.

죽은 제 형인 에멘스에 비하자면, 형편없는 재능을 타고났다. 어렸을 때부터 제 아들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만큼 유약하기도 했다.

고용인들 사이에는 순하고, 천사 같은 도련님이라고 불렸지만, 니제르의 눈에는 잘 울고, 수줍음이 많은데다가, 평범한 학습 능력을 보이는 테오도르는 제 성에 차는 아들이 아니었다.

‘차라리 저놈이 죽고, 에멘스가 살아야 했는데.’

니제르는 테오도르를 볼 때마다 했던 생각을 오늘도 하고야 말았다.

그리고 이기적인 그답게 자신의 그 생각을 눈빛과 표정으로 고스란히 드러냈다.

사실 테오도르는 그런 평가를 받을 만큼 모자라지 않았다. 오히려 또래에 비하면 영특한 편이었다.

다만, 천재나 영재라고 불렸던 제 형과 비교해서 모자랄 뿐이었다.

하지만 이미 에멘스 때문에 높아 있던 니제르의 눈에는 테오도르가 영 마뜩잖은 아들이었다.

만약 테오도르가 자안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델마가 부정을 저지른 것이 아닌가 의심했을 만큼.

‘뭐, 상관없지.’

그리고 이제 니제르는 그 아들이 마뜩잖아하지도 않게 되었다.

어쨌든 현재 카르오의 가주는 자신이었고, 아들은 물려받을 사람이었다.

자신의 의무는 아들에게 무사히 가주 자리를 물려주는 것이었고, 그동안에는 자신의 모든 권리를 누릴 수 있었다.

마침내 아들을 인정한 것이 아니라, 그를 빠르게 포기한 것이었다. 그것도 그 아들이 알아차릴 정도로 확실하게.

니제르의 이기심은 자신의 피붙이에게도, 가문에게도 여전히 유효했다.

그는 오로지 스스로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사람이었다.

“나가보거라.”

카르오의 가주로 그는 후계자의 안위를 확인했다.

그의 의무는 끝났고, 이제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차례였다. 걸리적거리는 앞에 있는 사람은 치워버리고서.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테오도르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여기 앉아 있었던 것은 오로지 자신이 카르오의 후계자였기때문이었다.

먼 곳에서 돌아온 아버지와의 회포를 풀기 위해서도, 그동안 자신에게 있었던 일과 고충을 털어놓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이 마지막으로 뻗은 손마저 잡아주지 않은 남자와 억지로 같은 공간에 있어야 하는 것이 괴로워 당장이라도 박차고 일어나고 싶은 자리였다.

니제르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테오도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지체 없이 문을 열고 나갔다. 그는 되도록 빨리 별채로 되돌아갈 생각이었다.

“…….”

하지만 복도에서 마주친 사람 때문에 테오도르는 그 자리에서 우뚝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

그 사람 역시 마찬가지인 듯했다. 본래 카르오 대공을 찾아온 것인데, 갑작스럽게 테오도르와 마주치게 되자 당황한 듯 보였다.

“아버지와 이야기는 잘 끝났니?”

먼저 침착함을 되찾은 것은 상대방이었다.

“네, 어머니.”

테오도르 역시 무겁게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아이러니였다. 카르오 대공을 나란히 서서 기다리는 동안에는 말 한마디 하지 않던 두 사람이 이제 와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하지만 둘은 이제까지 늘 그랬다. 되도록 서로를 모른 척했고, 맞닥뜨려버린 어쩔 수 없는 순간에만 아는 척을 했다.

‘역시,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나빠…….’

카르오 대공비가 어린 아들을 남기고 병사하자, 젊고 아름다운 백작가의 영애였던 델마는 단박에 그 자리를 꿰찼다.

비록 후처이긴하지만, 황후 다음가는 자리인 카르오 대공비는 그 정도는 충분히 눈감아도 될 만큼 매력적인 자리였다.

델마는 자신이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아들을 낳기만 하면, 전 부인의 아들을 제치고 그 아이를 카르오 가문의 후계자로 만들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원하던 아기를 낳고 나서야 비로소 들은 카르오 가문의 비밀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방금까지 자신이 젖을 물린 이 천사 같은 아이가 자라서는 광인이 된다니! 자신이 낳은 것이 괴물이라니!

그녀는 완벽한 자신의 인생에 오점을 남겼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오점이 자라나는 것을 옆에서 보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괴로워했다.

첫 번째 카르오 대공비가 낳은 아들이자, 테오도르의 이복형, 그리고 그의 미래가 될 에멘스가 첫 번째 광증을 발현하였을 때, 델마의 기분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끔찍했다.

거기다가 에멘스가 결국 사람을 죽일 만큼 폭주하자, 거의 반쯤 미쳐버리고 말았다.

‘넌 내 아들이 아니야! 이 괴물!’

어린 테오도르에게 그녀는 소리쳤다.

‘저리 가! 꺼져! 나가 죽어버리라고!’

형이 살인하는 모습을, 그리고 형이 죽는 광경을 목격해버린, 엄마를 부르며 우는 어린 테오도르에게 그녀는 잘도 모진 말을 쏟아냈다.

그녀를 진정하게 만든 것은, 자신이 여전히 카르오 대공비라는 사실이었다.

비록 괴물을 낳았지만, 그 괴물만 빼면, 델마는 여전히 완벽했다.

여전히 아름다웠고, 주변의 찬사를 받았으며, 나이 든 황후를 대신하는 사교계의 여신이었다.

델마는 정신을 단단히 차렸다. 그리고 테오도르가 10살이 되자마자 그를 별채로 보냈다.

장차 카르오의 이름을 물려받을 아이이니 독립적으로 자라야 한다는 이유를 가져다 붙였다.

테오도르의 가정교사도, 그의 유모 리타와 다른 필요한 고용인들도, 테오도르와 연관이 있는 것이라면 펜 한 자루까지 전부 별채로 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델마는 안정을 되찾았다.

그녀가 별채를 가는 일은 전혀 없었다. 테오도르가 공적인 일로 본채에 와야할 때는 그녀가 자리를 비웠다.

하지만 때때로, 오늘처럼 대외적으로 함께 해야 할 때, 혹은 지금처럼 예기치 못하게 마주치게 될 때는, 델마도 어쩔 수 없었다.

기분 나쁘다는 듯이 자신을 쳐다보는 델마의 시선에 테오도르는 슬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그 순간, 델마의 드러난 손등에서 닭살이 오소소 돋아나는 것을 테오도르는 놓치지 않았다.

“제 소식을 들으셨을 텐데 안부도 묻지 않으시다니, 섭섭하네요.”

“…….”

소식이야 당연히 들었다. 드디어 테오도르가 괴물이 되어버렸다는!

델마는 당장 친정으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카르오 대공이 선수를 쳐 먼저 저택을 떠나버렸다.

대공비 내외가 둘 다 저택을 비운다면 뒷말이 나올 것이 뻔해, 델마는 두려움에 떨면서도 본채를 지켰다.

“저는 지하 감옥에서 바싹바싹 말라갔는데, 어머니께선 참 얼굴이 좋아 보입니다.”

테오도르의 말에 델마가 흠칫했다. 그 모습을 보며 테오도로는 그래도 그녀에게 양심은 있었나보다 생각했다.

제 아들이 지하 감옥에서 미쳐가는 동안, 한 번도 찾아오지 않은 것에 대해 미안함이 조금은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자신이 델마를 한껏 비웃어 준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사뿐히 그에게 다가온 델마가 조용히 귓가에 속삭인 소리를 들은 순간, 테오도르는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아직 괴물이 건재해서, 그리 좋지는 않아. 이 어미의 얼굴이 활짝 필 수 있도록, 네가 효도를 좀 하면 좋으련만.”

감정적이던 젊을 때와는 달리 남의 이목과 자신의 평판을 훨씬 중요시하게 된 카르오 대공비는 더는 큰소리를 내지 않았다.

남들 앞에서 흠잡힐 행동이나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제 아들에게 죽음을 종용할 따름이었다.

굳은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아들을 보며, 그녀는 그저 부채를 살랑거리며 우아한 미소를 띨 뿐이었다.

“물론입니다. 효도는 자식된 자의 마땅한 도리 아니겠습니까? 제가 아주 오래오래, 어머니께서 벽에 황칠을 하실 때까지 아주 오래오래, 정성껏 효도하며 모시겠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테오도르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엄마를 찾던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자신을 뿌리치는 어머니의 치마에 애처롭게 매달리는 아이도 아니었다.

비릿한 웃음과 함께 절대로 당신이 바라는 대로 죽어주지 않겠노라고 말하는 남자였다.

건조하고 메마르게 카르오는 카르오를 싫어했다.

질척한 증오로 뒤엉켜, 카르오는 카르오를 증오했다.

속고, 속아, 서로에 대한 불신만 남은 카르오는 카르오를 혐오했다.

모든 카르오는, 모든 카르오를 미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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