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 013
“테, 테오도르 님?”
당황해서 눈을 깜박이자 눈에 맺혀 있던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앗! 지금 물통에 받아야 하는데! 하지만 테오도르가 저기서 날 보고 있는데 그래도 될까?
그걸 거기다 받아서 뭐 할 거냐고 물어보면, 너 먹이려고 내 눈물을 고이고이 받는 중이라고 대답하면…….
‘죽일 거야.’
왜일까? 갑자기 스기엔의 말이 떠올랐다. 아마도 지금의 테오도르가 그때의 스기엔처럼 나를 노려보고 있어서인 것 같았다.
정말 아깝지만, 아까워 죽을 것 같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옷소매로 겨우 흘린 눈물을 닦아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문을 연 사람이 테오도르라는 것을 알아차리자마자 내가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그의 눈 색깔이었다.
광기의 붉은 눈이 아니라 신비롭고 오묘한 보라였다.
하지만 혹시 몰랐다. 눈 색이 변하기 전에 다른 전조증상이 먼저 오는 것인지도. 호흡이 가빠진다거나, 심장이 빨리 뛴다거나, 머리에 꽃을 달고 싶다거나?
“……아니. 별일이 있는 것은 아니야.”
한 박자 느리게 그가 대답했다. 다행이었다. 적어도 지금 당장 테오도르가 내 팔을 물어뜯지는 않는다는 이야기였으니까.
“휴우~. 다행이네요!”
저절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방긋 웃음까지 나왔다. 그저 아무 일이 없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할 줄이야.
“…….”
의아한 표정으로 테오도르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이해 못 할 생물을 만났다는 듯이.
“왜 그러세요?”
“뭐가?”
“제가 뭔가 이상한가요?”
재빨리 나를 훑어보지만, 이상한 점은 없었다.
혹여, 잘은 모르지만, 슬라임의 냄새 같은 거라도 나는 걸까 싶어서 테오도르 모르게 살짝 킁킁거려봤지만, 약간의 사과 향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응.”
하지만 내 생각과는 달리, 테오도르의 대답은 단호했다.
“어디가 이상한데요?”
얼른 다시 나를 훑어보았지만, 별다른 점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 내 눈에 안 보이는 곳이 이상한 건가? 얼굴? 뺨? 정수리? 앗! 혹시 뒤통수?
“머리.”
역시나. 내 시선이 안 닿는 곳에 뭐가 있나 봐.
“제 머리에 뭐가 묻었나요?”
“아니. 머릿속이 이상하다고.”
“…….”
머릿속이라……. 그래. 분명 거기도 눈에 안 보이는 곳이긴 한데…….
광증이 있는 미친놈에게 머리가 이상하다는 말을 듣는 기분은 참으로 오묘했다. 지금 네가 남한테 그런 말을 할 처지가 아니시지 않나요?
“오르디에게 네 옷이 못 쓰게 되었다고 들었어. 고쳐 입을 거라고 했다던데?”
할 말이 없어 내가 가만히 있자, 테오도르가 질문을 던졌다. 아마도 그게 나를 찾은 이유인 것 같았다.
“네. 맞아요.”
“옷은 고쳤나?”
“아니요. 아직…….”
물론 나도 고치고 싶었다. 언니가 준 소중한 선물이니까.
의욕을 담아서 몇 번이나 박박 문질러 빨았더니 다행히 핏자국은 어느 정도 지워졌지만, 바느질이라는 것은 의욕으로 될 문제가 아니었다.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내 엉성한 바느질 솜씨로는 치마 밑단도 가지런하게 만들 수 없었다.
“나 때문에 그렇게 된 건데, 보상해주고 싶군.”
갑작스러운 테오도르의 제안에 놀란 나는 눈을 끔벅였다. 분명 그 말이 옳기는 했다.
테오도르가 아니었으면 망가지지 않았을 옷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따로 보상해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나한테는 소중한 옷이었지만, 객관적으로는 보상을 바랄 옷은 아니었다. 비싸지도 않은 옷인데다가 너무 낡은 옷이었다. 언제 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이 정도면, 옷 한 벌 정도는 살 수 있겠지.”‘
라고 말하면서 테오도르가 내민 돈은 무려 200만 루나였다!
지금 내 월급의 절반 이상 되는 금액이었고, 시장에 가면 망가진 것과 비슷한 옷을 20벌 정도는 살 수 있는 금액이었다.
그저 낡은 옷을 망친 것에 대한 보상으로는 과했다. 아마도 테오도르는 비싼 옷만 사봐서 서민의 옷 가격이 얼마나 하는지 모르는 것이 분명했다.
그게 아니라면 아예 옷을 사본 적도 없어서 옷이라는 물건의 가격을 모르거나.
“이렇게 비싼 옷은 아니었는데요.”
“하지만 소중한 것이라고 들었는데?”
“네. 소중한 것이기는 해요. 하지만 저한테만 소중한 거지, 비싼 물건은 아니거든요.”
“소중한 것은 값으로 따질 수 없는 법이지.”
갑자기 테오도르가 멋있는 말을 내뱉었다. 뭔가 현학적이고, 굉장히 멋있고, 도덕적이며, 책에 나올 법한 깨달음 같은 말.
아마도 부잣집 도련님이라 책을 많이 읽은 모양이었다.
“네.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렇게나 보상을 해주고 싶다는데 그냥 받지, 뭐.
나는 테오도르가 주는 돈을 냉큼 받았다.
내가 치맛단이 삐뚤어지고 소매가 짝짝이인 옷을 입고 다니는 것 보다, 이 돈으로 새 옷을 사 입는 것을 언니도 더 좋아할 것이다.
물론 언니가 선물한 옷을 버리지는 않을 거지만, 가끔은 망가진 물건을 망가진 채로 두는 게 나을 수도 있었다.
손대면 더 망가질 것 같은 상황이면 특히나 그랬다.
헤헷! 이 돈도 열심히 저축해서 나중에 집 사야지! 그래서 언니랑 오손도손 행복하게 살아야지. 아, 에뮬 오빠랑 미래의 내 남편님도 빼먹지 말아야지.
갑자기 나의 행복한 미래 설계에 지대한 도움을 준 테오도르에 대한 충성심이 샘솟았다.
“혹시 몸은 어떠세요? 무슨 증상이 있거나 하지는 않으신가요?”
볼일이 끝났으니 칼같이 가려는 테오도르에게 물었다.
“괜찮아.”
“혹시나 갑자기 막 미칠 것 같은 기분이 느껴지면 바로 저 부르세요. 아니면 이렇게 바로 오셔도 되시고요.”
“그러지.”
“혹시 이 방이 테오도르 님 방에서 멀진 않죠? 오시는 데 불편하시다거나 하시지는 않으시죠? 제가 오르디 님에게 더 가까운 방이 있는지 물어볼까요?”
“…….”
“감기도 초반에 확 잡아야 빨리 낫는다잖아요. 광증도 일단은 병 같은 거니까 증상이 심해지기 전에 얼른…….”
“입이 무거운 것 아니었나?”
내 말을 싹둑 잘라먹으며 테오도르가 질문했다.
“저요?”
“여기 너 말고 다른 사람이 또 있나?”
물론 다른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내가 저런 질문을 받은 적이 없어서 되물었을 뿐이었다.
“아뇨. 저 입 엄청 싼데요.”
나는 활짝 웃으면서 대답해주었다. 마을의 소문을 다 주워다가 언니한테 열심히 퍼 나른 게 나였다.
찰스 아저씨가 모자를 쓰는 이유는 아저씨의 정수리가 벗겨져서 그렇다는 사실이나, 콧대 높은 캐리가 사실은 에뮬 오빠에게 차였다거나, 우물가 방귀 사건의 범인이 데이라 아줌마라는 이야기도 전부 언니에게 말해주었다.
“…….”
방금 테오도르가 나한테 눈으로 말한 것 같았다.
‘멍청이.’라고.
왜, 왜지?
* * *
테오도르가 첫 번째 맞닥뜨린 당황스러움은 레나티스의 눈물이었다.
그저 그녀의 방에 잠깐 들러서 할 말만 하고, 줄 것만 줄 생각이었다. 딱 볼일만 보고 돌아오리라고.
하지만 갑작스럽게 목격해버린 눈물에 테오도르는 제 볼일도 잊어버렸다. 정확하게는 사고가 정지해버렸다는 것이 옳을 것이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얼른 눈물을 닦고 자신에게 묻는 레나티스를 보며, 테오도르는 목구멍까지 차올랐던 질문을 삼켰다.
자신이 왜 울었냐고 물어보면, 그녀가 그쳤던 울음을 다시 터트릴 것 같았다.
거기다가 저렇게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는데, 괜히 아는 척을 하면 안 될 것 같기도 했다.
결국 테오도르는 아무 일도 없다고 대답했다.
“휴우~. 다행이네요!”
그 순간, 테오도르는 두 번째 당황스러움을 맞이했다.
‘왜 웃지?’
분명 조금 전에 울고 있었던 레나티스가 방긋 웃었다. 아직도 눈가는 붉었고, 소매에는 눈물 자국이 남은 채.
테오도르가 문밖에서 울먹거리는 목소리를 듣고, 뺨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두 눈으로 목격한 것이 불과 1분 전이었다.
하지만 지금 레나티스는 분명히 웃었다.
삽시간에 바뀌어 버린 레나티스의 표정과 감정을 테오도르는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저 당황스러웠다.
“왜 그러세요?”
심지어 레나티스는 자신이 그랬다는 자각마저 없는 것 같았다.
‘울었다, 웃었다,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군.’
이상한 여자였고, 신기한 여자였다. 그리고 궁금한 여자이기도 했다.
테오도르는 눈앞에 있는 여자가 이다음에는 무슨 표정을 지을지 예측할 수 없었고, 어떤 말을 할지 알 수 없었다.
울었다가 웃었고, 테오도르에게 귀엽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 감히 고용인 주제에 그에게 위로를 건네기도 했다.
“옷은 고쳤나?”
하지만 하녀에게 차마 네가 건넨 위로가 내게는 퍽 감동이었다고 말할 수 없었다. 내 걱정을 해준 사람은 네가 처음이라고도 말을 할 수도 없었다.
그저 자신이 찾아온 용건을 말할 뿐이었다.
“소중한 것은 값으로 따질 수 없는 법이지.”
착하게도 과한 돈을 받지 않으려는 것이 기특했다. 자신이 한마디를 하자 멍하니 바라보는 표정은 아주 조금 귀여웠다.
냉큼 돈을 받고 슬며시 올라가는 레나티스의 입꼬리를 보며, 테오도르의 입꼬리도 슬쩍 올라갈 뻔했다.
딱, 그게 끝이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아뇨. 저 입 엄청 싼데요.”
활짝 웃으며, 제 입으로 제가 입이 싸다고 말하는 레나티스를 보며 테오도르는 얼굴을 굳혔다.
조금 전까지 그녀를 귀엽다, 사랑스럽다, 어쩐다 생각했던 마음이 그 말 한마디에 몽땅 날아가 버렸다.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는 여자였다. 동시에, 그 비밀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했다.
그런 여자가 아무렇지도 않게 제 입은 가볍다고 말하고 있었다.
테오도르는 세 번째 당황스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협박인가?’
저렇게 순진한 얼굴로?
‘아무 생각이 없는 건가?’
설마 이렇게까지 아무 생각이 없을 수가 있나?
“…….”
고개를 살짝 갸우뚱한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레나티스의 순진무구한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어쩌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테오도르는 레나티스에 관한 판단을 조금 보류하기로 했다. 일단은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