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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7화 (7/169)

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 007

“아니, 아니, 아니! 테오도르 님이 토끼라는 것이 아니라, 붉은 눈이 그렇게 막 흉측한 것은 아니라는 거죠.”

허둥지둥 내가 뱉은 말을 수습하려 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여전히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테오도르의 표정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붉은 눈도 아니시고요.”

“…….”

“몸도 괜찮아 보이시네요. 다친 것도 많이 나은 것 같고.”

확실히 테오도르는 이전보다 훨씬 상태가 나아 보였다.

일단 허옇게 죽어가고 있던 입술이 깔끔해져 있었고, 얼굴과 손에 나 있던 크고 작은 생채기들 역시 치료된 상태였다.

그리고 테오도르의 눈동자도 원래의 보라색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이렇게 멀끔한 상태의 테오도르를 보자, 그가 정말 잘생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빗어넘긴 검은색 머리카락 아래의 테오도르의 이목구비는 또렷하면서도, 단정했다.

갸름한 턱선과는 달리 굳게 다문 입술은 어딘지 모르게 사나워 보였으며, 곧게 뻗은 콧대는 높지도, 낮지도 않게 딱 적당했다.

적당한 크기의 쌍꺼풀이 진 눈은 지난 며칠 간의 힘겨웠던 흔적으로 움푹 꺼져 있었지만, 그건 오히려 그의 퇴폐미를 돋보이게 만들려는 분장처럼 보일 뿐이었다.

거기다가 나를 쳐다보고 있는 신비로운 보라색의 눈동자까지.

그는 아주 완벽했다.

“그래. 다 네 덕분이지.”

“알아주시니 감사하…….”

“나한테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기억력만 빼고.

“당장 대답해.”

피폐물 남주의 전매특허인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로 테오도르가 말했다.

언니를 살리기 위해 소설의 내용을 되짚으면서 사람이 어떻게 으르렁거리냐고 코웃음을 쳤던 나였다. 하지만 남주라는 생명체는 그게 가능한 모양이었다.

노려보는 눈에서는 짐승의 야생미가 느껴졌고, 목구멍을 긁으며 올라오는 분노의 목소리와 이로 잘근잘근 씹어나오는 단어, 그리고 잇새를 비집고 나온 거친 숨결이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런 모습마저도 잘생겼다는 것이었다.

보통의 여자들이 봤다면, 저도 모르게 애달픈 한숨을 흘리며 그의 으르렁거림을 더 갈구할 만큼.

“제가 무슨 짓을 했다기보다는, 테오도르 님께서 제게 무슨 짓을 하셨다는 표현이 맞지 않을까요?”

하지만, 내 취향은 아니었다. 나는 나에게 으르렁거리는 개보다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충직한 멍멍이가 좋았다. 아, 물론 대형견으로!

내 취향이 아닌 덕분에 그의 모습에 홀리기보다는 내 할 말을 또박또박 할 수 있었다.

거기다 그 말의 근거로 테오도르의 앞에 내 팔을 쑥 내밀었다. 끝이 너덜너덜한 천으로 대충 감아 놓은 이 상처가 바로 당신이 한 짓이니 보라는 뜻이었다.

똑똑한 테오도르는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바로 알아들은 듯, 가만히 내 팔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것뿐인가?”

“네?”

“네가 말하는 내가 한 무슨 짓이 이것뿐이냐고 묻는 거야.”

그는 매우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뿐만 아니라 내 얼굴과 몸을 구석구석 뜯어보기까지 했다. 마치 다른 상처를 찾는 것처럼.

“진짜 기억이 안 나시는 건가요?”

내 질문에 테오도르는 대답 대신 인상을 팍 찌푸렸다. 표정으로 봐선 진짜 기억을 못 하는 것 같았다.

‘광증 당시에는 기억이 없는 건가? 반쯤 정신을 놓은 상태니까?’

어쩌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소설 속에서도 테오도르가 광증을 일으키고, 또 그것을 가라앉히는 과정만이 나왔을 뿐이었다.

딱히 그 후에 테오도르가 그것에 대해서 기억을 떠올린다든가 하는 장면은 없었다.

“일단, 이게 다긴 한데요.”

“그럴 리가 없을 텐데?”

“그런데 진짜 이게 다인데요.”

테오도르는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사람이 덜 다쳤으면 좋아해야 할 텐데, 오히려 그는 내가 별로 다치지 않은 것에 대해서 미심쩍어하고 있었다.

애초에 자기에게 무슨 짓을 했냐는 게, 내가 멀쩡한데 어떻게 자신이 제정신으로 돌아왔냐는 질문인 것 같았다.

그건 나한테 별로 좋은 일이 아니었다.

그가 어떤 의심이라도 한다면, 혹은 내가 미덥지 못하다고 생각한다면, 다른 분홍 머리 마녀를 찾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찾아낼지도 몰랐다. ‘아스텔라 그라티아’라고 하는 아름다운 마녀를.

그건 안 되지! 울 언니는 멀리멀리 도망가서 잘 살아야 한다고!

“아마 취향이 아니시라서 그러셨던 게 아닐까요?”

“취향?”

“네. 원래 음식도 입에 안 맞으면 좀 깨작깨작 먹잖아요.”

물론, 나는 그런 것 없이 다 잘 먹지만.

“제가 테오도르 님의 취향이 아니라서 좀 깨작깨작 드신 게 아닐까요?”

“확실히 내 취향은 아니긴 한데.”

테오도르의 고개가 살짝 갸웃거렸다. 아무래도 나의 편식 이론에 끌리는 모양이었다. 좋아! 이쪽으로 밀어붙이자!

“역시나!”

나는 손뼉까지 짝! 소리가 나게 치며, 우리가 함께 드디어 답을 찾아낸 것처럼 행동을 취했다.

“저는 매우! 확실히! 테오도르 님의 취향이 전혀 아니군요!”

“왜 웃고 있지?”

“네?”

“방금 네가 내 취향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아주 활짝 웃었잖아.”

내 계획대로 되어가는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웃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테오도르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고.

“그, 그럴 리가요. 지금 속으로 매우 애통해하는 중인데요?”

“네 얼굴은 그렇지 않다만?”

“제가 원래 웃는 상이라서요.”

“…….”

“그, 그리고 한군데밖에 없긴 하지만, 이게 되게 심한 상처거든요!”

아무래도 테오도르가 내 말을 믿지 않는 것 같아 얼른 어제 치마를 찢어서 묶어둔 천을 끌어내렸다.

마치 개에게 물린 것처럼 동그랗게 패인 한 쌍의 상처에는 아직 피딱지가 엉겨 붙어 있었다.

거기다가 내가 한 손으로 대충 묶은 탓에 잘 지혈이 되지 않아 상처에서 피가 배어 나와 마른 피들이 피부에 달라붙어 있었다.

덕분에 원래의 상처보다 훨씬 심해보였다.

“…….”

테오도르는 내 상처를 유심히 쳐다보고 있었다.

“…….”

그가 너무 유심히 쳐다보자 나는 슬슬 불길해지기 시작했다.

이걸로는 부족한 걸까? 그럼 어떻게 하면 아프게 보이는 건데? 난 생전 너무 튼튼해서 그 흔한 감기도 안 걸려봐서 아픈 게 뭔지 잘 모른단 말이야!

소설 속에서 여주가 너무 심하게 체액이 빨리면 어떻게 됐더라?

‘기절!’

번개 같은 답안이 떠올랐다.

여주는 늘, 언제나, 기절했다. 그래야 그 씬이 끝났다. 정력왕인 남주가 먼저 끝을 내는 법은 없었으니까.

“아! 어제 피가 너무 많이 빨려서 그런지, 빈혈이……!”

나는 한 손으로는 이마를 짚고, 비틀거리는 척을 했다. 그리고 쓰려지려는 순간, 그 방향에 벽이 보였다.

이쪽으로 쓰러지면 틀림없이 머리를 벽에 박을 것 같았다.

‘좋아. 그럼 벽이 없는 쪽으로!’

그렇게 결심하고 비틀거리는 척, 몸을 오른쪽으로 돌렸다.

바닥에 부딪히는 순간은 좀 아플 테지만, 지금의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아아! 너무 어지러워!”

아주 가녀린 대사를 남기고 나는 옆으로 풀썩 쓰러졌다.

‘으읏! 내 복사뼈!!’

최선을 다해서 바닥을 손으로 짚어가며 쓰러진 덕분에 다른 곳은 괜찮았지만, 톡 튀어나온 복사뼈가 지하 감옥의 돌바닥에 부딪히자 눈물이 찔끔 나올 만큼 아팠다.

하지만 아프다고 소리 지를 수도, 얼굴을 찡그릴 수도 없었다. 나는 지금 기절한 상태니까.

“…….”

그저 조용했다.

“…….”

테오도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그저 콕콕 찌르는 듯한 시선이 느껴졌을 뿐이었다.

‘혹시 기절한 척하는 걸 들킨 걸까?’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슬그머니 실눈을 뜨고 테오도르가 어쩌고 있는지 보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았다.

하지만 만약에 눈을 딱 떴는데, 테오도르의 보라색 눈동자와 눈이 딱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어휴! 안되지, 안돼.’

눈꺼풀에 힘을 딱! 주고, 이를 꽉! 깨물고, 눈을 뜨고 싶은 마음을 꾹꾹 참았다.

“이 아이를 방으로 데려가라.”

그리고 마침내 그 노력에 대한 보상으로 테오도르의 입에서 합격의 말이 튀어나왔다.

다행이다. 아무래도 테오도르가 내 감쪽같은 연기에 속은 것 같았다.

세상에! 알고 보면 난 연기에 소질이 있는 게 아닐까? 여기서 얌전히 체액이나 빨아 먹히고 있는 것은 사실은 국가적 손실일 수도 있었다.

지금 당장 수도로 달려가 가장 유명한 극단에 들어가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거머쥘 수 있는 배우가 되는 것이 내 운명일 수도 있었다!

“양심이 있으면 눈을 뜨고 일어나서 걸어야 할 텐데, 아무래도 없는 모양이군.”

……는 아니었군.

“죄송합니다. 일어나서 제 발로 걸어가겠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갔다.

초라한 퇴장이었다. 흑흑.

* * *

지하 감옥을 걸어 나가는 레나티스의 뒷모습을 쳐다보는 테오도르의 입꼬리가 비쭉 비쭉 위로 올라갔다.

유랑극단의 엑스트라 같은 작위적인 연기와 넘어지면서 어딘가 부딪혔는지 입술을 꽉 깨물고 부들부들 떨면서 아픔을 참는 것, 그리고 자신이 빤히 쳐다보자 감은 눈꺼풀이 파들파들 떨리는 것까지는 그럭저럭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가짜 기절을 테오도르가 지적하자 순순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갈 때,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새빨개진 레나티스의 얼굴을 생각하면 도저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풋!”

그리고 분홍색 머리카락이 온전히 지하 감옥의 계단을 따라서 사라지자, 테오도르의 입에서는 참았던 웃음이 터져 나오고야 말았다.

물론, 레나티스는 그런 테오도르를 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가 자신 때문에 웃었다는 것도 전혀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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