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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5화 (5/169)

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 005

“별로 안 아파.”

테오도르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나는 거짓말을 속삭였다.

사실은 아팠다. 야생동물같이 날카로운 이빨로 나를 물었는데, 아프지 않을 리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말했다.

아프지 않다고.

나는 괜찮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이 술술 흘러나왔다.

“괜찮아.”

“…….”

다시 한번 거짓말을 속삭이며 테오도르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자, 그의 눈꺼풀이 스르륵 아래로 내려왔다.

마치 주인의 손길에 안온함을 느끼는 커다랗고 순한 짐승처럼.

“아!”

닫혔던 테오도르의 눈꺼풀이 다시 열렸을 때, 나는 깜짝 놀라서 외마디의 탄성을 질렀다.

보라색이었다.

툭툭 붉어진 실핏줄은 아직 그대로였지만 그 안에 자리 잡고 있던 새빨간 눈동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그곳에 있는 것은 오묘하게 빛나는 보라색의 눈동자였다.

그것은 테오도르의 원래 눈동자 색이었고, 그의 광증이 가라앉았다는 증거였다.

‘아직 한참 더 체액을 마셔야 했을 텐데?’

분명 소설 속에서 테오도르는 아스텔라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가 새벽녘에 기절할 때까지 괴롭혔었다. 물론, 19금적인 괴롭힘이었다.

다음날, 저택을 찾은 의사가 아스텔라의 상태를 보고 혀를 찼고, 저녁 무렵에야 겨우 깨어났으며, 어지러움으로 그날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 아스텔라였다.

‘겨우 몇 모금 빨아 먹은 것 같은데, 벌써 진정했다고?’

믿을 수 없는 변화였지만, 실제로 내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었다.

“어, 어엇!”

어느새 테오도르의 눈꺼풀이 다시 닫히고 있었다. 그리고 마치 기절이라도 하듯 그의 몸이 뒤로 넘어가고 있었다.

테오도르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반사적으로 뻗어 그의 목덜미의 아래로 받히자, 묵직한 무게감이 내 손에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테오도르는 자신의 몸을 온전히 내게 맡긴 채, 기절해버렸다.

“이게 뭐야?”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는 수밖에 없었다.

깜깜한 지하 감옥 안에서, 내 품 안에서 기절한 테오도르를 안고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거밖에 없었으니까.

* * *

“이봐요! 거기 아무도 없어요?”

힘껏 소리쳐보지만, 아까와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나를 여기 넣은 뒤에 그들은 지상으로 올라가 버린 모양이었다.

“내일 아침까지 꼼짝없이 여기 갇혀 있어야 하는 걸까?”

일단 소설 속에서 다른 사람들이 테오도르와 아스텔라를 데리러 온 것은 다음 날 아침이었다. 그러니 나도 그때까지 기다려야 할지도 몰랐다.

“흐음…….”

처음부터 이럴 계획이었던 것인지, 저택에 다 와 가기 직전 오르디가 큼지막한 빵을 줬던지라 배가 고프지는 않았다.

배가 고프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지만, 나머지는 전부 문제였다.

테오도르가 기절하며 이를 뺀 뒤에도 물린 팔뚝에서는 피가 퐁퐁 솟아났다.

급한 대로 치마를 찢어서 상처를 꽁꽁 싸매자 피도 멎고 아픔도 덜해졌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충분한지 알 수 없었다.

미친개……는 아니지만, 미친 사람은 확실하니까 혹시 모르잖아?

거기다가 차갑고 딱딱한 바닥에서 누워 자려니까, 불편함은 둘째치고 한기가 들어서 도저히 잠이 들 수가 없었다.

“저 사람은 아닌 것 같지만.”

바닥에 누워서 새근새근 잘 자는 테오도르를 보자, 한숨과 함께 중얼거림이 새어 나왔다.

“잠깐! 저러다가 입 돌아가는 것 아니야?”

테오도르가 기절해서 못 느끼는 것뿐이지, 찬 바닥의 한기가 어디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육체는 이 딱딱함과 차가움을 온전히 느끼고 있을 터였다.

“나중에 내 탓이라고 하는 것 아니야? 테오도르가 입 돌아가게 놔뒀다고?”

분명 오르디가 나한테 시킨 것은 테오도르를 진정시키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테오도르는 매우 진정해있었다.

하지만 아침에 오르디가 이곳에 내려왔을 때 테오도르가 진정한 상태긴 하지만 입이 돌아가 있다면, 맡은 바를 훌륭히 수행했다며 칭찬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더불어 우리가 협상했던, 테오도르를 진정시키는 것에 대한 대가인 급여가 온전히 내 것이 되기 어려울 것 같았다.

“별수 없지.”

테오도르의 곁에 털썩 주저앉은 다음, 조심스럽게 그의 머리를 들어 올렸다. 다행히 무거웠던 몸과는 달리 테오도르의 작은 머리는 그리 무겁지는 않았다.

그의 머리를 내 허벅지에 조심스럽게 얹는 과정이 조금 불편했던지, 테오도르의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괜찮아. 별일 아니야.”

나는 잠에서 깨어나려는 어린아이를 달래는 것처럼 그의 가슴을 토닥여 주었다.

예전에 내가 한밤중에 잠에서 깨어나 칭얼거리면 아스텔라 언니가 그렇게 해주었던 것처럼.

테오도르에게도 이것은 먹혔다.

그의 찌푸려졌던 이마가 반듯하게 펴지고, 찡그리고 있던 눈꼬리도 편안하게 내려왔다.

테오도르는 그저 편안하게 내 무릎을 베고 누워서, 다시 잠들어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처럼 잠든 그의 모습에서는 내가 알고 있는 피폐물의 남자 주인공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테오도르는 그저 힘들고 지친 하루 끝에 겨우 편안한 잠을 청하는 평범한 사람으로 보였다.

“아팠겠다…….”

부르트고, 깨문 흔적이 보이는 입술에 눈길이 가자 내 입술도 아파졌다.

주먹으로 벽을 치기라도 한 것인지 멍이 들고 피가 맺힌 손도, 어딘가에 긁힌듯해 보이는 생채기들도 마찬가지였다.

소설에선 이런 말은 안 했었는데…….

“이봐!”

물끄러미 테오도르를 바라보며 상념에 잠겨 있던 나를 현실로 데려온 것은 어린아이가 버럭 소리를 지른 것 같은 새된 목소리였다.

드디어 누가 온 것인가 싶어서 고개를 번쩍 들고 문을 쳐다봤지만, 문은 닫힌 그대로였다.

“어딜 봐! 여기잖아!”

이번에는 문 쪽이 아니라 내 오른쪽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았다. 하지만 고개를 돌리고 그쪽을 쳐다봐도 아무것도 없었다.

“환청이 들리나…….”

“환청이라니! 지금 나 무시하는 거야?”

내 중얼거림에 또 그 새된 목소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확실히 환청은 아닌 것 같았다.

저렇게 성질을 부리는 환청은 없을 테니까.

대체 뭐지 싶어서 눈을 찌푸려가며 목소리가 들리는 쪽을 자세히 쳐다보았다. 그제야 바닥에 뭔가가 있는 것이 보였다.

“응?”

내가 뭔가 잘못 봤나 싶어서 눈을 몇 번 깜박이고 다시 그쪽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내가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뭔가의 덩어리가 거기에 있었다.

“설마 저기서 목소리가 나온다고?”

“설마라니! 지금 나 무시해?”

내 눈은 처음 테오도르를 발견했을 때보다 더 커졌다.

이 화난 어린아이의 목소리는 저 덩어리에서 나오는 것이 확실했다.

테오도르는 눈이 빨갛긴 했지만, 그리고 좀 제정신이 아닌 것 같긴 했지만, 적어도 사람의 형상이었다.

하지만 저건 그냥 덩어리였다. 매우 긍정적으로 본다고 해도 무언가가 담긴 자루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그게 말을 한다고?

“감히 이 위대하신 마족 스기엔 님을 몰라보고!”

덩어리가 화를 내며 내 쪽으로 통통 튀어왔다.

그것이 내 앞으로 가까이 다가오자, 나는 그것을 좀 더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다.

“슬라임?”

평화로운 시골 마을에서 자란 나는 몬스터의 이름이나 생김새 따위는 몰랐다. 하지만 전생의 내 기억이 말하고 있었다.

내 주먹보다 조금 큰 크기에, 마치 물방울이 위에서 떨어지고 있는 것 같은 형상을 한, 감옥 바닥이 살짝 비치는 반투명의 액체도 아니고 고체도 아닌 기묘한 것은 슬라임이라고 부른다고.

“무엄하다! 감히 고위 마족인 나를 그따위 하급 몬스터의 이름으로 부르다니! 죽고 싶은 게냐!”

슬라임은 말 그대로 그 자리에서 방방 뛰며 화를 냈다. 하지만 그 모습은 무섭기보다는 귀여웠다.

이것 역시 슬라임은 그냥 산과 들을 퐁퐁 뛰어다닐 뿐인 상당히 하찮고 귀여운 몬스터라는 것을 내 전생의 기억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 죄송. 제가 잘 몰라서요. 몬스터, 아니, 아니, 마족을 본 게 오늘 처음이거든요.”

나는 귀엽다는 말을 꾹꾹 참아내며, 슬라임을 진정시키려고 했다.

“그따위 하급 몬스터의 이름으로 다시 한번 나를 부른다면, 용서하지 않겠다.”

“저기, 그럼 종족이 어떻게 되시는데요?”

슬라임이야 워낙 유명해서 알았지만, 내게 그다지 마족이나 몬스터에 대한 지식은 없었다.

애초에 <카르오의 인형>에도 그런 설정은 없었다. 슬라임 같은 몬스터는 물론이고, 마족이나 마법에 대한 설정도 없었다.

카르오 가문이 대대로 광증에 시달리거나, 광증이 발현될 때 눈이 붉어지는 것을 봐선 무슨 저주나 마법 같은 것이 있는 세계관 같기는 했지만, 그런 게 중요한 책은 아니었으니 언급되지 않았다.

<카르오의 인형>에서 중요한 것은 남주와 여주가 언제, 어디에서, 어떤 자세로…….

전생의 나야. 네 독서 취향은 대체 왜 그랬던 거니? 나는 이제 네가 좀 부끄러워지려고 해.

“이 몸의 이름은 스기엔이시다!”

“아, 성함이 그렇게 되시는군요. 그럼 종족은 어떻게 되시는데요?”

“…….”

스기엔은 말이 없었다.

“아!죄송합니다. 제가 예의 없이 질문만 했네요. 저는, 그러니까, 종족은 인간이고, 이름은 레나티스 그라티아입니다. 스기엔 씨의 종족은 어떻게 되시나요?”

“…….”

예의를 갖춰서 질문했지만, 스기엔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의, 혹은 그녀의, 아니면, 흠……. 슬라임이 성별이 있나? 어쨌든, 스기엔의 긴 침묵이 그의 종족을 말해주고 있었다.

“슬라임이네.”

하찮은 슬라임이 분명해지자, 자연스럽게 내 입에서는 반말이 흘러나왔다.

“아니다!”

“그럼 뭔데?”

“이 몸은 위대하신 고위 마족이시다!”

“그러니까 고위 마족이신데, 종족이 어떻게 되시냐고요.”

“…….”

“누가 봐도 슬라임인데.”

“…….”

“슬라임 맞네.”

슬라임이 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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