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 004
“아니, 잠깐만요!”
오르디는 내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커다란 열쇠를 꺼내 그것보다 더 커다란 자물쇠에 맞추고 있었다.
마치 안에 들어 있는 것이 남주가 아니라 숲속의 몬스터를 가두어 둔 것 같은 자물쇠와 열쇠였다.
그걸 보고 내가 기겁을 하자, 하인들이 단단하게 내 양팔과 어깨를 붙들었다.
“할 일은 오는 동안 마차에서 설명했던 것과 똑같아.”
철컥.
열쇠가 돌아가고, 자물쇠가 열렸다.
“네가 할 일은 안에 계신 분을 진정시켜 드리는 거야.”
끼이이익.
문이 열리자 지하실 특유의 쿰쿰한 냄새와 한기, 그리고 어둠이 안쪽에서 내 쪽으로 와락 밀려들었다.
“꺄악!”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내가 멍하니 어둠을 응시하는 사이, 하인들이 내 등을 떠밀었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지하실 안쪽으로 들어서고 말았다.
“사람을 이렇게 밀면……!”
뭐라고 한마디 할 생각으로 뒤를 돌아보았을 때는, 이미 문은 닫히고 있었다.
“잠깐만!”
허겁지겁 문으로 달려가 보지만, 문이 닫히는 것이 더 빨랐다.
얼굴 높이 즈음에 있는 조그만 쇠창살 창문을 움켜쥐고 흔들어보지만, 당연히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후다닥 벽에 붙어 서서, 깜깜한 어둠으로 채워진 안쪽을 바라보았다.
꿀꺽.
저절로 목구멍이 조여와 마른침이 넘어갔다. 아랫배 역시 묵직한 통증이 느껴질 정도로 바싹 긴장해있었다.
천천히 어둠을 응시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였다. 한쪽 귀퉁이에서 뭔가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눈으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뭔가가 움직인다는 기척이 확실히 전해졌다.
“아……!”
그리고 보였다.
어둠 속에서 붉게 빛나는 한 쌍의 무언가였다.
마법사가 심어놓은 빛나는 마법석같기도 했고, 야생의 짐승이 암흑의 숲속에서 먹잇감을 발견하고 눈을 빛내는 것 같기도 한 두 개의 그것.
보통 사람이라면 그것이 뭔지 몰랐을 테지만, 나는 알았다.
‘테오도르 드 카르오!’
그것은 소설 속 남자 주인공이자, 카르오 대공 가를 이어받을 후계자이며, 현재 광증으로 미쳐있는 남자였다.
‘으아아아! 잠시만!’
속으로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내 뒤로는 그저 차가운 벽돌만이 등에 닿을 뿐이었다.
그 대신, 어둠 속에 적응한 눈이 이제는 깜깜한 어둠만이 아니라 어렴풋하긴 해도 뭔가의 형상을 내게 보여주고 있었다.
창살의 빛이 비치는 지점까지 온다면 더 확연하게 보이겠지만, 그는 여전히 어둠 속이었다.
‘크다!’
그 어슴푸레한 형상은 내 생각보다 컸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서 가장 큰 것 같았다.
긴장감에 주먹을 꽉 쥐고, 나는 테오도르를 주시했다. 그를 온전히 보고 싶은 마음과 광증의 상태인 테오도르를 온전히 보기에는 무서운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소설에서는 이다음에 어떻게 됐었지?’
테오도르와 처음에 마주한 아스텔라는 테오도르의 잘생긴 얼굴과 그에 어울리지 않는 광기 어린 붉은 눈이 주는 기묘함에 홀렸었다.
그러다가 테오도르가 아스텔라에게 다가왔고, 테오도르는…….
‘그대로 덮쳤잖아!’
그랬다.
테오도르는 19금 피폐물의 남자 주인공답게 아무것도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아스텔라를 덮쳤다.
그것이 모든 비극의 시작이었다.
갑자기 낯선 곳에 오게 돼서, 미친놈이 자신을 덮치는데, 심지어 날카로운 이빨로 자신의 목에 상처를 내서 피를 쭉쭉 빨아먹기까지 하는데, 그 미친놈한테 호감을 느낄 사람이 어딨겠는가?
당연히 소설 속 아스텔라는 테오도르를 무서워했고, 같은 운명에 처할 위기인 지금의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비로소 나는 테오도르가 잘생겼다는 이야기를 10페이지마다 한 번씩 서술했던 작가의 의도를 깨달았다.
“껍데기는 죄가 없지.”
나는 <카르오의 인형>을 보았을 독자에게 빙의해서 중얼거렸다.
“크흣…….”
내 중얼거림을 들어서일까?
가만히 있던 테오도르의 붉은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그리고 그의 고개가 살짝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단…… 냄새가 나…….”
중얼거리는 목소리는 잔뜩 쉬어 있었고, 갈라져 있었다.
마치 어두운 지하 감옥에 갇혀 몇 날 며칠을 혼자 괴로움에 몸부림치고, 소리를 지른 사람처럼.
스르륵 테오도르의 손이 올라갔고, 내가 그것을 홀린 듯이 쳐다보고 있는 사이 그는 어느새 내 곁에 다가와 있었다.
창살의 그림자를 드리운 그의 얼굴이 보였다.
소설에서 말한 것처럼 그의 눈은 붉었다.
그저 눈동자만 붉은 것만이 아니라, 흰자 역시도 실핏줄이 터져서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야말로 붉은 눈이었다.
그 아래에 있는 코 역시 소설에서 말한 것처럼 높고, 오뚝했다.
다만, 반듯한 코 아래에 있는 입술은 허옇게 마르고 갈라진데다가 괴로움에 못 이겨 자신의 입술을 물어뜯은 듯이 성긴 피딱지가 맺혀있어서 입술까지 잘생겼는지는 내가 판단할 수 없었다.
상처가 있는 것은 입술만이 아니었다.
벽을 치기라도 한 것인지 그의 손도 상처투성이였고, 손톱 역시 부러지고 갈라져 있었다.
“저기…….”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혹시라도 말이 통하려나 싶어서였다.
“…….”
내 말에 대답이라도 하는 것처럼 테오도르의 입술이 열리자, 순간 웃을 뻔했다.
말이 통하잖아!
“그…… 테오도르 님? 우리 앉아서 잠시 지성인답게 이야기를 나눠보…… 으아아악!”
침착하게 대화를 시도했던 나는 이내 비명을 질렀다.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것은 속임수였던 건지, 테오도르가 입을 크게 벌리고 도저히 사람이라고는 볼 수 없는 날카로운 이빨을 나를 향해 들이댔기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나를 물어뜯으려는 테오도르의 행동에 나는 기겁했다. 그리고 본능처럼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나를 잡으려고 했던 테오도르의 손은 허공을 가로질렀고, 틀림없이 나를 물어뜯으려고 했던 입은 허공만 베어 물었다.
“너…….”
기분 탓인지 아까보다 더욱 붉어진 눈으로 그가 눈을 깔고 나를 노려보았다. 마치 내가 도망간 것이 잘못이라는 듯이.
이 사람아! 아니, 이 미친 사람아!
누가 자기를 물어뜯으려고 하는데 가만히 있는 사람이 어딨냐고요!!
“으아아아아!”
테오도르가 내 쪽으로 손을 뻗자, 나는 후닥닥 네발로 기며 그의 사정거리 밖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좁은 지하 감옥 안에서 도망칠 장소는 그리 많지 않았다. 테오도르 역시 그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천천히, 마치 작은 동물을 사냥하듯이 나를 구석의 모퉁이로 몰아넣었다.
“흐으…… 읏…….”
신음 같은 것을 흘리며 테오도르는 나를 향해서 팔을 뻗었다.
“으아아아!”
그리고 나는 반사적으로 비명을 지르며 그의 팔을 막아냈다. 자신의 팔이 튕겨 나가자 분명한 당황의 빛이 테오도르의 붉은 눈에 스쳐 지나갔다.
오? 미친 사람도 당황은 하는구나?
미친 사람에 대해서 하나의 깨달음을 얻은 나는, 곧이어 두 번째 깨달음을 얻었다.
“……!”
미친 사람도 화를 낸다는 것이었다.
테오도르는 입을 굳게 다물고는 아까보다 더 힘을 실은 팔을 내게 뻗었다. 이번에는 그 팔을 쳐낼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내가 택한 것은.
“으아악!”
그의 팔을 붙잡는 것이었다.
“……!”
팔이 붙잡힌 테오도르의 인상이 찌푸려지는 것이 확실히 내 눈에 보였다. 가녀린 아스텔라 언니라면 어림도 없을 일이었지만, 나는 가능했다.
이게 바로 카르오 대공 가에 언니 대신 내가 오려고 했던 또 다른 이유였다.
나는 우리 마을에서 제일 힘이 셌다. 웬만한 오빠들이나 아저씨들보다도 더.
무거운 짐도 거뜬히 들었고, 무거운 수레를 끄는 것도 문제없었다.
내가 어릴 때부터 언니를 따라다니며 일을 다니고, 꼬맹이 주제에 일당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힘 덕분이었다.
‘좋아!’
미친 사람은 힘이 세다는 말을 들어서 혹시나 테오도르에게는 내 힘이 먹히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하지만 다행히 그의 힘이 내가 만난 누구보다도 힘이 세긴 했지만, 팔 하나도 못 막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럼 이다음에는…….’
남주를 처음 만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여러 가지 계획은 세워두었었다. 다만, 뭘 먼저 시도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읏!”
갑작스러운 통증에 나는 신음을 흘렸다.
뚝.
테오도르의 붉은 눈만큼이나 붉은 피가 내 팔에서 흘러내려 지하 감옥의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붉은 피를 거슬러 올라가자 내 팔뚝에 박힌 날카로운 이빨이 보였다. 결코 사람의 이라고는 볼 수 없는, 짐승의 이빨이었다.
그 이빨의 주인은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테오도르였다.
그리고 당황스럽게도 나와 눈이 마주친 순간, 테오도르의 붉은 눈이 흔들리고 있었다.
제가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이, 지금 이 상황이 혼란스럽다는 듯이, 혹은 내 눈앞의 너는 대체 누구냐는 듯이.
복잡한 시장통에서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같이 흔들리는 눈빛을 보며, 처음에는 내가 잘못 본 것이리라 생각했다.
상대는 광증을 앓고 있는 남자 주인공이었다.
소설 속에서 여자 주인공을 보자마자 그대로 덮쳐버린, 제 욕심과 본능을 채우는 데만 급급했던, 그 짐승 같은 남자 주인공이었다.
고작 처음 보는 여자의 팔을 좀 물었다고 해서 저렇게 당황하고, 눈빛이 흔들릴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보고 있는 테오도르의 눈빛은 분명 흔들리고 있었다.
처음 봤을 때 짐승처럼 선연히 빛나던 붉은 눈의 색이 조금 가라앉아 보이는 것 역시 내 착각이 아니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테오도르’는 소설 속 ‘테오도르’와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괜찮아.”
나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온 말이었다.
마치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의 눈빛에 홀려버린 듯, 조그만 아이를 어르고 달래는 것 같은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그것에만 그치지 않고 자유로운 손 하나를 들어 내 팔에 이를 박아 넣고 있는 테오도르의 머리에 얹었다.
“…….”
그러자 붉은 눈이 더욱 흔들렸다.
지금 상황을 더욱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나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