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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나쁜 손 (67/95)


67. 나쁜 손
2022.11.18.



 


“나…….”

부부 사이에 비장함과 긴장감이 흘렀다.

심호흡을 한 소유가 마침내 눈을 질끈 감고 외쳤다.


“나, 목걸이 잃어버렸어!”

생각보다 크게 내질러진 소리에 놀랐지만, 소유는 눈을 뜨지 않았다.

태오의 화난 모습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

그런데 어쩐지 태오에게선 아무런 말도 돌아오지 않았다.

멀어서 못 들었나?


“나 목걸이 잃어버렸다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소유가 다시 외쳤다.


“네가 생일선물로 준 거.”

“…….”

그럼에도 여전히 태오는 말이 없었다.

소유가 슬그머니 실눈을 떴다. 그러자 어리둥절한 표정의 태오가 보였다.


“내 말 안 들려?”

“들려.”

뭐지, 이건.

여태껏 태오가 화를 내는 패턴과 달랐다.

새로운 프로세스인가. 곤란한데.

소유도, 태오도 이 상황이 그저 얼떨떨하기만 했다.


“나 목걸이 잃어버렸다니까?”

세 번째 고백이었다.


“알아.”

애타게 기다리던 태오의 반응은 겨우 그것이었다.

소유가 눈을 제대로 떴다.


“알고 있다고?”

“응. 알아. 너 지금, 겨우 그거 때문에 그런 거야?”

“‘겨우’라니. 네가 처음으로 준 생일선물이잖아!”

점심시간이 되었을 때쯤 알았다.

목이 허전하다는 걸.

있어야 할 목걸이가 사라졌다는 걸.

그때부터 소유는 하루 종일 초조하고 마음이 불편했다. 심지어 도진에게 말해 조퇴까지 하고, 자신의 차와 집을 한참 뒤졌다.

태오에 대한 미안함과 바보 같은 스스로를 향한 자책의 눈물이 터질 즈음, 태오가 퇴근을 한 것이다.

그런데 ‘겨우’라니?


“나 화 안 났는데, 이제 내려가도 되나?”

주인의 말을 잘 듣는 강아지처럼 기다리고 있던 태오가 물었다.

소유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태오가 발걸음을 옮겼다.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태오의 얼굴을 보자니 정말 화가 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태오야. 너 정말 화 안 난 것 맞아?”

태오는 대답 대신 소유를 끌어안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끌어안으려던 건 아니었다.


“좀 떨어져 봐. 포옹은 이따 해 줄게.”

당연한 순서처럼 소유가 제 품으로 파고들자 태오가 그렇게 말했다.

머쓱해진 소유가 뒤로 한걸음 물러나자 태오의 손이 소유의 목 뒤로 향했다.

그리고 찰랑거리는 무언가를 채워 줬다.

소유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토록 찾았던 ‘Noah’ 목걸이가 그곳에 있었다.


“이게 왜 여기에…….”

“내 차에 있더라. 아침에 차에서 내리면서 빠진 모양이야.”

기나긴 마음고생이 허무해져 소유가 털썩 주저앉았다.

긴장이 풀리자 몸에 힘도 풀려 버렸다.


“그런데 왜 말을 안 했어! 얼마나 찾았는데.”

괜한 원망을 태오에게 쏟아 냈다.


“퇴근하자마자 주려고 했는데 네가 잔뜩 수상한 기운 내뿜으면서 나를 속였잖아.”

“내가 이걸 얼마나 찾았는데.”

소유가 투정을 부리는 아이처럼 앙앙거렸다.

태오가 한쪽 무릎을 꿇고 소유와 눈높이를 맞췄다.


“이깟 목걸이, 잃어버리면 하나 더 사면 되지. 뭘 그렇게 안절부절못했어.”

“그래도 네 선물이잖아. 그것도 직접 제작 주문한.”

“그래봤자 물건이야. 또 사면 되고. 이게 없어진다고 우리의 마음까지 없어지는 게 아니잖아.”

사랑의 증표는 그저 말 그대로 사랑의 증명일 뿐이다.

그게 사랑의 본질이 될 순 없었다.


“내가 진짜로 화가 나는 건 네가 내게 비밀을 만들었다는 거야. 그게 내겐 훨씬 더 심각하고 서운한 부분이라고.”

앞으로 소유는 많은 변화를 겪을 텐데, 저에게 말도 안 하고 숨기면 정말 슬플 것 같았다.


“그러니까 약속 말고 맹세해. 어길 수 없는 맹세. 너한테 무슨 일이 생기든 무조건 나한테 먼저 말하겠다고.”

목걸이는 다시 살 수 있지만, 서로를 향한 믿음은 다시 살 수 없었다.

태오의 말을 듣고서야 소유도 진짜 소중한 게 무엇인지 깨달았다.

소유가 입술을 앙 깨물다 말했다.


“미안해. 다시는 안 그럴게.”

“그래. 나도 삐져서 미안해.”

소유가 태오의 목을 꼭 끌어안았다.


“바닥 차. 일어나.”

카펫이 깔려 있긴 했지만, 바닥에 앉은 소유가 내심 신경 쓰이는지 태오가 소유를 일으켜 세웠다.

소유가 태오에게 대롱대롱 매달려 배시시 웃었다.


“울다 웃어서 못난 거 봐.”

“뭐어?”

태오가 소유의 빨개진 코를 두드리며 놀렸다.

소유가 태오를 노려보았다.

하나도 무섭진 않았지만.


“그리고 너 거짓말 진짜로 못 해. 알아? 얼굴에 다 티 나.”

“그래?”

나름대로 연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 그러니까 다시는 거짓말하지 마.”

“알았어.”

“순진한 내 새끼는 거짓말 같은 건 하면 안 돼.”

뭐, 아무튼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든 결과는 좋았다.

태오와 화해했고, 목걸이는 되찾았다.

그거면 됐다.

금세 기분이 풀어진 소유가 배시시 웃었다.


“우리 드라이브 갈래, 태오야?”

“지금?”

“응. 오늘은 왠지 야경이 보고 싶은 날이야.”

내내 이어진 격무에 태오는 살짝 피곤한 상태였지만, 소유의 애교에 금방 넘어가 버렸다.


“그래. 좋아. 대신 따뜻한 옷으로 갈아입고 가자.”

“응. 알았어.”

태오가 소유에게 손을 내밀었다.

소유가 그의 손을 잡고 함께 계단을 올랐다.

야경 명소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그 순간, 소유의 휴대폰이 짧게 울렸다.


[목걸이는 찾았어? 강 서방한텐 안 들켰고?]

도진에게서 온 걱정스러운 문자였다.

그걸 보고서 태오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렇게 안 봤는데 이 형님도 한 패였네.”

태오의 심술궂은 목소리에 소유가 킥킥 웃었다.


“오빠는 항상 내 편이지.”

“아니야. 형님은 나도 좋아하실걸?”

“그래도 나를 더 좋아할걸?”

“너랑 이런 걸로 싸우자니 자존심 상하는데, 남자끼리 통하는 그런 게 있어.”

애꿎은 부부 사이에 낀 도진은 지금쯤 귀가 간지러울지도 모르겠다.


“정 씨끼리만 통하는 것도 있지.”

“와, 이렇게 나온다고? 어디 강 씨는 서러워서 살겠나.”

 

* * *

작정하고 나온 것도 아니고, 즉흥적으로 나온 것인데 마침 보름달이 뜨는 날이었다.

게다가 구름도 한 점 없어 달이 오롯이 보였다.

도시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높은 곳에 차를 댄 부부는 홀린 듯 달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소유가 조심스럽게 부탁했다.


“내려서 보면 안 돼?”

“추워.”

예상대로 태오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딱 10분만. 응? 여기까지 왔는데, 차 안에서만 보고 돌아간다는 건 너무하잖아.”

“그러다 감기 들면.”

“우리 태랑이도 보고 싶을걸?”

태랑이의 핑계를 대니 단박에 태오의 마음이 약해지는 게 보였다.


“봐. 나 모자도 썼고, 목도리도 했어.”

쐐기를 박듯 소유가 털모자와 목도리를 과시했다.


“조금만 기다려.”

잠시 고민하던 태오는 차에서 내렸다.

그러고는 뒷좌석에서 무언가를 잔뜩 꺼내 조수석 문을 열었다.

영문을 모르던 소유는 곧 난감한 웃음을 지었다.


“이거 다 입으면 딱 10분만 내려서 볼 수 있게 해 줄게.”

이걸 또 언제 다 챙겼어.

태오가 들고 있는 것은 롱 패딩, 어그부츠, 장갑 등 추위가 근처에도 못 올 방한복들이었다.

저걸 다 걸치면 춥기는커녕 오히려 더울 것 같았지만 소유는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였다.

포기하기 힘든 야경이었고, 또 제가 감기에 걸리면 태랑이에게 안 좋을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그와 동시에 소유는 태오에게 몸을 맡겼다.

태오는 소유의 패딩 위에 자신의 롱 패딩을 겹쳐 입혔다.

예쁜 털모자는 벗겨 내고, 오로지 기능에 충실한 투박한 모자를 씌웠다.

몇 겹의 장갑에, 어그부츠까지 신고 나자 소유는 본래의 몸보다 몇 배는 부풀어 있었다.


 


“태오야. 나 눈사람 같아.”

소유가 뒤뚱뒤뚱 걸었다.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아 태오의 도움 없이는 똑바로 걷기도 힘들었다.

그러나 태오는 만족스러운 듯 씩 웃었다.


“따뜻해?”

“더워.”

“그럼 됐어.”

뭐가 됐다는 거니.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입을 막는 목도리 때문에 꾹 참아야 했다.

태오는 소유를 조심스럽게 안내해 보닛 위에 앉혔다.


“예쁘다.”

그래도 눈으로 직접 보는 달은 정말 아름다웠다.


“완전 슈퍼문 아니야?”

태오는 달이 아닌 달을 보는 소유의 모습에 푹 빠졌다.

그러고는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찰칵찰칵 찍기 시작했다.


“그만해. 뭘 찍는 거야.”

“움직이는 눈사람.”

태오는 태연하게 말하고서 자신의 휴대폰 배경 화면을 교체했다.

원래 배경 화면은 드레스를 입은 소유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바뀐 눈사람 소유 사진은 그것과 괴리감이 있었다.


“야아. 이왕이면 예쁜 사진으로 해 줘.”

“내 눈엔 이것도 예쁜데?”

“거짓말하지 마. 다시 결혼사진으로 바꿔.”

“싫어. 너도 저번에 나 웃긴 모습 찍어서 배경 화면으로 했잖아.”

“그건 귀여웠지.”

“이것도 엄청 귀여워.”

“…….”

말을 말자.

말싸움이라면 일가견이 있는 태오였으니.

그나저나 남들이 우리 휴대폰 보면 아주 웃긴 부부라고 생각하는 거 아닌가, 몰라.


“너 이만큼 살쪘으면 좋겠다.”

“말도 안 돼!”

“동글동글한 게 매일 안고 있게.”

태오가 몸이 커진 소유를 폭 끌어안았다.

그제야 소유의 눈에 추위로 인해 시뻘게진 태오의 손이 들어왔다.

저는 이토록 완전 무장을 시켜 놓고, 정작 태오는 얇은 코트 차림에 장갑도 끼고 있지 않았다.


“근데 넌 안 추워?”

“너 안고 있잖아. 따뜻해.”

“그래도 장갑이라도 끼지.”

소유가 태오의 손을 끌어와 호호 불어 녹였다.

속상하게 꽁꽁 얼어 있었다.


“내 주머니에 손 넣을래?”

“음.”

소유를 짓궂게 보던 태오가 주머니가 아닌 패딩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태오의 손이 소유의 깊숙한 곳을 훑고 다녔다.


“역시 네 체온이 제일 따뜻해.”

“야. 어딜 만져.”

소유는 기겁하며 태오의 나쁜 손을 퇴치하기 바빴다.


“아, 미안. 습관이 돼서.”

“이 나쁜 손. 나쁜 손.”

발버둥을 치느라 보닛에서 내려와 아직 녹지 않은 눈을 밟았다.

뽀드득.

그 소리조차 겨울밤의 정취를 한껏 격앙시켰다.

여름의 태오도 참 멋졌는데, 겨울의 태오도 참 멋졌다.

태오의 사계절은 모두 아름다웠다.

네가 보는 나의 사계절도 그랬으면 하는데.


“나 진짜 더워.”

한참 동안 장난을 치다가 소유가 헥헥 대며 먼저 휴전 선언을 했다.

이러다 10분 다 가겠다.

그리고 남은 2분 남짓은 달구경에 집중하기로 했다.


“저런 달이면 진짜 토끼가 살 수도 있겠다.”

태오가 천진난만한 소리를 하는 소유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달의 노르스름한 빛이 반사된 소유의 얼굴은 자꾸만 태오를 유혹했다.


“나 키스해도 돼?”

“지금?”

“응.”

허락을 하지도 않았는데, 태오가 소유의 목도리를 아래로 내렸다.

고개를 꺾은 채 태오는 그대로 소유에게 입을 맞춰 왔다.

아까 목걸이 소동으로 냉각되었던 사이라곤 믿어지지 않을 만큼 뜨겁고 열정적인 키스였다.

소유는 결국 달을 포기하고 남편에게 집중했다.

이 찬란한 순간에 집중하지 않는 것은 유죄다.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 사람과의 입맞춤에 집중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마땅히 그래야만 했다.

설령 달이 자신들을 음흉하게 훔쳐보고 있다고 하더라도.

아무렴 어때.

그런 것을 신경 쓰기엔 둘의 사랑은 너무 무르익었다.

환한 달빛에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태오는 소유가 뒤로 밀릴 만큼 몰아붙였다.

소유는 태오로 가득 차 가는 자신의 내부를 느꼈다.

너의 내부도 나로 가득 차 가고 있을까.

속으로 질문을 건넸다.

그러자 놀랍게도 태오가 격렬하게 퍼붓던 키스를 일순 멈췄다.

그가 빨갛게 변한 입술로 대답했다.


“응.”

무엇에 대한 대답인지 듣지도 못하고 키스는 다시 시작되었다.

소유는 웃으며 눈을 감았다.

달과 우리.

눈과 자동차.

마지막으로 태랑이까지.

감히 완벽하다고 말할 수 있는 로맨틱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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