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남편의 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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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남편의 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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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남편의 취향
2022.07.22.
소유의 반짝이는 눈망울은 때론 태오에게 너무 가혹했다.
대표적인 예로 지금이 그러하다.
아이처럼 동그랗고 순한 눈망울, 그 속에 보석처럼 박힌 반짝이는 눈동자, 자연스럽게 위로 치솟은 속눈썹까지.
모든 게 태오를 자극했다.
“내가 다 허락해 줄게!”
소유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선언했다.
“뭘. 뭘 다 허락해 준다는 건데.”
내가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악의 없는 소유의 말에 태오의 머릿속으로는 수없이 많은 불순한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냥 다. 네가 하고 싶은 거.”
소유의 손이 꼼지락대며 태오의 성난 등 근육을 만지작댔다.
자그마한 손가락이 열꽃을 만들어 냈다.
“오늘은 내가 음흉해지고 싶은 날이니까.”
얘, 지금 혹시 아까 당한 거 나한테 복수하고 있는 건가.
태오는 무척 복잡한 심경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소유는 발꿈치를 들어 태오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맞댔다.
어설프게 키스를 하던 소유가 사뭇 심각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태오야. 너 이렇게 섹시한데, 다른 여자들이 넘보면 어떡하지? 내 눈에만 이렇게 섹시하진 않을 거 아니야. 다들 눈이 있는데.”
제가 할 법한 대사를 소유에게 들으니 그것도 그것대로 기분이 새로웠다.
“조금만 더 해 봐.”
“뭘?”
“나한테 조금만 더 집착해 봐.”
특이한 취향의 태오를 보고 소유가 배시시 웃었다.
그러다 그의 얼굴을 감싸 쥐고 엄하게 말했다.
“꽁꽁 가리고 다녀. 다른 여자한텐 이런 모습 보여 주면 안 돼. 그럼 내가 팔다리를, 팔다리를…… 다 꺾어 버릴 거야.”
차마 ‘분지르겠다.’라는 잔혹한 단어를 쓸 순 없었던 건지 소유가 살짝 순화시켰다.
“그런데 너 이런 거 좋아해? 막 속박하고, 구속하고 그런 거.”
“몰랐어? 그래서 싫어?”
“아, 그렇구나. 싫지는 않아. 존중해.”
좀 당황스럽긴 하지만 그런 게 남편의 취향이라면 맞춰 줘야지.
“마음 같아서는 손목끼리 묶고 하루 종일 같이 있고 싶어.”
어머.
직설적인 태오의 말에 소유가 부끄러운지 입을 가렸다.
놀리는 재미가 있는 소유를 보며 픽 웃던 태오가 그녀의 손을 떼어 내고, 그녀에게 입을 맞췄다.
어찌나 몰아붙였던지 두 사람은 그대로 넓은 욕조에 퐁당 빠져 버렸다.
본의 아니게 옷을 입은 채로 욕조에 들어가 버린 소유가 키득 웃었다.
“이게 뭐야. 엉망진창이야.”
물에 젖은 옷이 딱 붙어 소유의 몸매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태오는 굳이 감추지 않고 그것을 대놓고 빤히 바라보았다.
“너무 그렇게 쳐다보진 마. 민망하게.”
소유가 무릎을 끌어안았다.
태오는 그런 소유를 제 다리 사이에 놓고 뒤에서 꽉 끌어안았다.
욕조에서의 백허그도 나쁘진 않네.
소유가 거품을 가지고 손장난을 쳤다.
그러자 거품이 슝 날아가 태오의 앞머리에 묻었다.
뭐가 그리 웃긴 건지 소유는 연신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따뜻한 물에 들어오니까 좀 살 것 같아.”
하루 동안 적립된 고단함이 사르르 녹는다.
태오는 소유의 가느다란 목에 짧게 입을 맞추고는 소유의 팔을 안마하듯 주물렀다.
“내일 근육통 있을지도 몰라.”
“응.”
“아프면 바로 병원 가자.”
“……응.”
그런데 어째 대답이 점점 느려진다.
소유의 뒷모습만 보고 있는 탓에 전혀 몰랐던 태오가 설마, 하며 소유를 불렀다.
“정소유.”
“…….”
“Hazel?”
“…….”
급기야는 소유의 고개가 까딱까딱하기 시작했다.
“너 혹시 조는 거 아니지?”
자꾸만 앞으로 고꾸라지는 고개 때문에 물에 빠지기 직전인 소유의 얼굴을 겨우 건져 낸 태오가 허탈하게 말했다.
“야, 하고 싶은 거 다 하라며.”
“…….”
그러나 야속한 그대는 대답이 없다.
씁쓸하게 수면 아래를 내려다보던 태오가 한숨을 쉬었다.
가끔 보면 소유에게 조련을 당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얘 사실 나보다 고단수 아닐까.
합리적인 의심을 하며 태오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소유가 감기에 걸리기 전에 그녀를 씻기기 시작했다.
뽀송뽀송한 상태로 큰 가운에 싸인 채 침대에 눕혀질 때까지도 소유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그동안 내가 애국가를 몇 번이나 불러 댔는지 넌 절대 모르겠지.
덕분에 애국자가 됐어.
“미워할 수도 없게 만드네.”
태오가 아기처럼 몸을 웅크린 소유의 뽀얀 볼에 입을 맞췄다.
“쓸데없이 예뻐가지고.”
너만 편하다면, 나는 됐어. 그래.
태오의 잠 못 드는 밤은 시작되고 있었다.
* * *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다음 날, 소유는 심한 몸살에 걸렸다.
열이 높이 오르고, 병든 강아지처럼 끙끙 앓기에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른다.
주치의를 불러 링거 주사를 맞고, 약을 먹고 나서야 조금씩 안정이 되기 시작했다.
주치의가 돌아가고 나서도 태오는 계속 소유의 옆에 붙어 있었다.
괴로워하는 모습이 어찌나 가엾던지.
차라리 제가 아픈 게 더 나을 듯했다.
태오는 뜨끈해진 수건을 다시 차가운 물에 담그고 쭉 짰다.
소유가 아플 때마다 태오는 초조해지곤 했다.
이렇게 간호하는 게 맞나.
내가 더 아프게 하는 건 아닌가.
한참 고민하던 태오는 결국 다 때려치우고 침대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늘 하던 대로 소유에게 팔베개를 해 주고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그러자 소유가 자연스럽게 태오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색색 힘겨운 호흡이 태오의 가슴께에 닿았다.
“아프지 마라. 아프지 마라.”
태오가 주문을 걸듯 중얼거렸다.
“으응…….”
그러자 놀랍게도 대답 비스름한 것이 들려왔다.
태오가 차가운 손으로 뜨거운 소유의 얼굴을 식혀 주며 물었다.
“뭐라고?”
“응.”
더 이야기하지 못하고 소유는 그대로 잠들었지만, 태오에겐 더할 나위 없는 안심이 되었다.
아프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 준 것만 같아서.
제 허리를 끌어안는 미약한 힘을 느끼고서 태오도 스르르 눈을 감았다.
그에게도 무척 지친 이틀이었으니.
* * *
태오의 주문이 통하기라도 한 듯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안색이 한층 좋아진 소유가 저를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었다.
사랑스러운 눈동자가 보이자 무어라 말로 표현 못 할 감격이 몰려왔다.
“강태오 잠꾸러기. 얼마나 자는 거야.”
목소리에 평소보다 기운이 없긴 했지만, 그래도 확실히 몸살기는 사라진 것으로 보였다.
“고마워.”
태오가 진심이 담긴 목소리로 소유를 꽉 끌어안았다.
소유가 태오의 귓가에 속삭였다.
“고맙긴 내가 고맙지. 너 나 간호하느라 고생했잖아.”
꼼짝없이 누워 있어야 했지만 사실 소유도 다 느끼고 있었다.
주치의와 이야기를 나누는 태오의 걱정스러운 목소리, 차가운 수건을 연신 제 이마에 올려 주던 서툰 손길, 아프지 말라고 주문을 걸어 주던 따뜻한 품.
덕분에 힘을 내서 더 빨리 나을 수 있었다.
“나 너무 감동이야. 이렇게까지 사랑받는다는 기분, 오랜만이야. 가끔은 아픈 것도 나쁘지 않겠다.”
“너 그런 소리 하면 나한테 혼나, 진짜.”
태오가 심각하게 말했다.
내게 지난밤이 얼마나 지옥 같았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아프지 마. 절대 아프지 마. 나 죽는 꼴 보고 싶지 않으면.”
“알았어. 농담이야.”
소유가 태오를 진정시키듯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있잖아, 태오야. 나 원래 아프면 엄마나 아빠 생각난다?”
꿈인지, 환각인지 알 수 없는 부모님의 존재가 나타나 소유를 안아 주었다.
그 안에서 소유는 마음껏 어리광을 부리고, 아이처럼 굴었다.
그것이 홀로 아픔을 이겨 내는 소유만의 방법이었다.
“그런데 나 어제 엄마 한 번도 안 불렀지?”
하지만 어제는 달랐다.
어제는 정말 신기하게도 부모님은 없었다.
오로지 태오만 있을 뿐.
꿈속의 태오의 얼굴과 현실의 태오의 목소리가 합쳐져 소유를 포근하게 안아 주었다.
풍만한 온기가 소유의 아픈 몸을 데웠다.
“내가 널 부모님만큼 사랑하나 봐.”
그건 소유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사랑 고백이었다.
“넌 무슨 아침 댓바람부터 그런 말을 하고 그래. 심장 터지게.”
“사랑해.”
소유가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래. 나도 내 목숨보다 널 더 사랑해.”
태오가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소유를 바라보았다.
웬만한 양봉장 것보다도 진한 천연 꿀이 침실에 흘렀다.
“아, 그런데 오늘 월요일 아니야? 지금 몇 시야?”
“내가 너희 회사에 전화해 뒀어. 너 아파서 병가 낸다고.”
웬만하면 결근은 피하고 싶었지만, 오늘은 도저히 그럴 컨디션이 아니라 소유가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어. 넌?”
“네가 쉬는데 나도 쉬어야지.”
“잘됐다. 우리 어제 하기로 한 데이트 오늘 하자. 영화도 보고, 게임도 하고.”
분명 일요일은 태오를 위해서만 쓰기로 약속했는데, 아픈 나머지 아깝게 그냥 흘려보낸 것이 내심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다.
“그보다 우리 토요일에 욕실에서 하다 만…….”
“야, 강태오.”
눈이 다시 야릇해지려는 태오를 다급하게 손으로 막았다.
“나 온몸이 쑤셔.”
“하고 싶은 거 다 하라며.”
“그건 토요일 이야기고.”
“…….”
지금 당장은 피곤해서 손 하나 까딱하기 싫은 소유가 매정하게 돌아누웠다.
“너 지금 나 가지고 노는 거야?”
“가서 물 좀 떠다 줄래?”
이게 보자 보자 하니까…….
“따뜻한 물? 시원한 물?”
“둘 다 섞어서 미지근한 물.”
천하의 강태오가 물심부름이나 하고 있을 줄이야.
기구한 팔자에 헛웃음이 나오면서도 발은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래. 죽은 듯 누워 있는 정소유보다는 차라리 날 가지고 노는 정소유가 낫지.
게다가 높은 열이 났던 터라 꽤 갈증이 났을 테다.
적당한 비율로 미지근한 물을 만든 태오가 빠르게 돌아왔다.
소유는 그것을 받아 들고 꼴깍꼴깍 물을 마셨다.
“내 새끼, 그렇게 목이 말랐으면 진작 말하지.”
소유는 그 많은 물을 모두 원샷하고 나서야 컵을 내려놓았다.
태오가 소유 입가에 묻은 물방울을 제 입으로 가져갔다.
간지러운지 소유가 키득 웃었다.
소유가 태오의 목을 끌어안은 채로 드러누웠다.
태오는 소유의 위에서 그녀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귀여워라.
“태오야. 우리 영화부터 볼까? 밥부터 먹을까?”
“영화부터 먹자.”
“어?”
딴생각을 하고 있던 태오의 입에서 엉뚱한 대답이 나왔다.
“그게 무슨 말이야?”
“그보다, 전부터 궁금한 게 있었는데 말이야.”
“뭔데?”
왜 사람들이 연애를 하면 결혼을 하고 싶고, 결혼을 하면 꼭 닮은 자식을 가지고 싶어 하는지 태오는 요즘에야 알 것 같았다.
내 새끼도 이렇게 귀여운데, 내 새끼의 내 새끼는 얼마나 더 귀여울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아이가 생기면 소유와는 더욱 지독하게 얽힐 수 있어 만족스러울 것 같았다.
무슨 일이 생기든 쉽사리 헤어질 순 없겠지.
“우리, 애는 언제 낳아?”
태오 입장에서는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온 말이었지만, 소유 입장에서는 청천벽력이나 다름없는 말이었다.
사레가 들린 소유가 캑캑댔다.
“뭘 그렇게 놀라고 그래. 이제 우린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고, 서로를 원하고, 마침 부부고. 2세 생각할 때도 됐잖아.”
“흠. 그, 그렇긴 한데. 갑작스럽잖아.”
“넌 생각해 본 적 없어?”
“응. 나는 없지.”
아직은 태오와 단둘이 지내는 이 신혼 생활이 너무 좋았다.
게다가 아직 회사도 정리가 안 된 상황이고.
솔직히 한 아이의 엄마가 될 자신도 없고.
내 과거가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면 어떡해.
“너 닮은 딸 낳고 싶어.”
그에 비해 태오의 눈은 몹시 반짝반짝했다.
거절하는 게 미안할 정도로.
“일단 우리 생각 좀 해 보자.”
소유의 말에 태오가 풀이 죽었다.
이따금 태오의 속도는 따라잡기 버겁다니까.
항상 생각했던 것보다 저 멀리 있으니까.
“차라리 그냥 나를 묶을래?”
시무룩해진 태오에게 그렇게라도 보상을 해 주고 싶은 소유였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남편의 난감한 취향, 존중해.
“나 지금 농담할 기분 아니야.”
“어제 그거 농담이었어? 너다운 취향이라서 진짠 줄 알았는데.”
“뭐?”
나를 얼마나 변태로 보고 있었던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