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강아지가 바닥으로 떨어지려고 하기에, 나는 재빨리 고것의 몸을 낚아챘다. 왕자로 변한 강아지…가 아니라 강아지로 변한 왕자는 허둥지둥 발버둥을 치며 내 품을 벗어나려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고작해야 바르작거리는 것에 불과했다. 강아지는 앙앙 짖어 대며 성질을 부려 내 고막을 끊임없이 공격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재빨리 침실을 벗어나 계단을 내려갔다. 중간에 누군가를 마주칠 위험은 아예 없었지만, 강아지가 내 품을 탈출했다간 큰 사달이 날 것 같아 거의 뛰다시피 했다.
그렇게 달리고 달린 내가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내 방이었다. 나는 허겁지겁 문을 닫고 강아지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이제 어떡하죠, 왕자님? 난생처음 침실 밖에 나와 버리고 말았어요.”
“…….”
강아지는 비틀비틀거리며 조용히 바닥에 주저앉았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대충 엄청난 충격에 휩싸인 것쯤은 알겠다.
축 처진 꼬리를 깔고 앉은 강아지가 그대로 몸을 숙여 엎드렸다. 그러더니 마치 안 보면 그만이라는 듯 고개를 숙여 더 이상 깜찍한 얼굴을 보여 주지 않았다.
“계속 그러고 계시면 다시 안아 버릴 거예요. 아니다, 안는 게 뭐야. 뽀뽀도 해 줄 테다.”
“왕!”
강아지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새하얀 털 뭉치는 뭐가 그렇게 불만인지 새까만 코를 찡긋거리며 열심히 궁시렁궁시렁댔다.
사람일 적에는 말도 잘 하지 않더니, 강아지가 되니까 수다쟁이가 따로 없다. 나는 강아지의 앞에 주저앉아 누구 하나 빗겨 준 적이 없어 제멋대로 엉켜 있는 머리털을 쓰다듬었다.
“아구, 예뻐. 착하지, 착하지.”
“왕! 왕왕!”
“하지 말라는 뜻인가요? 하지만 왕자님이 먼저 귀여웠잖아요.”
강아지는 내 손을 물어뜯을 기세로 으르렁대며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입을 쫘악 벌렸다. 쬐끄만 게 성깔이 장난이 아니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사람일 적에는 눈도 제대로 맞추질 못하더니, 강아지가 되니까 양아치가 따로 없었다.
“왕왕! 크르릉!”
게다가 이제는 이를 드러내며 위협하기까지. 안 되겠다. 어떻게든 화를 풀어 줘야 할 것 같다.
곰곰이 생각하던 나는 어젯밤에 빨지 않고 구석에 처박아 둔 스타킹을 꺼내 공처럼 둘둘 말아 강아지에게 내보였다. 그러자 이게 뭔가 싶었는지 흰자위를 드러내던 두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던져 줄까요? 던져 줄까요? 누가 이런 거 던져 준 적 있어요?”
3초 만에 만든 스타킹 공에 시선을 빼앗긴 강아지는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우쭐해진 나는 코를 쓱 문지르며 공을 벽 쪽으로 던졌다.
벽을 맞고 튕겨 나간 공이 바닥을 구르자, 강아지는 날아가듯 달려가 공을 물고 돌아왔다. 그러고는 보랏빛 눈을 반짝이며 무언가를 기대하는 것처럼 나를 쳐다봤다.
“재밌으신가요? 침실 밖을 빠져나온 건 벌써 잊으셨나 본데.”
“…….”
충격에 빠진 강아지가 공을 툭 떨어뜨렸다. 공놀이에 한창 빠져 있는 와중에 내가 초를 친 것이 틀림없었다.
그냥 아무 말 하지 말고 몇 번 더 던져 줄 걸 그랬나. 의기소침해진 털 뭉치가 터덜터덜 닫힌 문가를 향해 다가갔다.
내가 공을 다시 주워 던져 보아도 이제는 더 이상 반응이 없다. 강아지는 끼잉, 하는 소리를 내며 앞발로 문을 건드렸다.
나는 강아지를 쫓아가 털썩 엉덩이를 붙여 앉았다.
“죄, 죄송해요. 너무 귀여워서 그만.”
“…….”
“하지만 침실로 돌아가는 건 조금만 참아 주세요. 거긴 진짜, 위생적으로 별로 좋지 않은 곳이에요.”
“끼이잉. 끼이잉.”
“아뇨, 낑낑대지 말고 말로 해 주세요. 알아들을 수가 없어요.”
강아지가 구슬프게 울었다. 그 와중에도 시선은 문가에 고정되어 있어, 나는 괜히 주인 있는 강아지를 납치해 온 괴한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 대체 왜 그렇게 나가고 싶어 하시는데요? 꼭대기 층에 꿀이라도 발라 놓으셨나요?”
“…그런 건 아니지만, 난 거기서 나가면 안 돼.”
“엄마야, 깜짝이야.”
왕자는 매번 깜빡이도 켜지 않고 사람으로 돌아왔다. 이 방은 왕자의 침실처럼 어둡지가 않아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도 몰랐는데.
혹시나 내 눈이 실례를 범할 수도 있었으므로, 나는 재빨리 눈을 감고 에이프런을 벗어 왕자에게 내밀었다. 왕자에게선 별말이 없었지만 금세 손이 비어 버린 걸 보면 그도 내 의도를 알아차린 게 분명했다.
“왜, 왜 날 이런 곳으로 데리고 온 거야? 왜…?”
다시 눈을 떴을 때, 왕자는 헐벗은 상반신에 아래를 에이프런으로 겨우 가리고 있는 상태였다. 끝에만 살짝 올라간 눈꼬리며, 은빛 머리칼에 반쯤 가려진 귓바퀴가 붉어져 있었다.
따지듯 묻는 그는 화가 난 말투와는 다르게 내 어깨 부근만 겨우 쳐다보고 있었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내리깐 은빛 속눈썹만은 꿈속에서 봤던 것과 같이 길고 곧았다.
“말씀드렸잖아요. 너무 더러워서 그랬어요.”
“그, 그렇게 더럽진 않아…! 나, 나름대로 정리도 되어 있고….”
“탁자 뒤집어 놓고 침대에 옷가지 쌓아 둔 게 정리인가요…?”
“나, 나는 매일매일 목욕도 하고 있어…! 아바마마께서 짐승 냄새가 나선 안 된다고 하셔서, 매일매일 머리도 감고 몸도 씻고….”
“저 욕조에서 말이에요? 왕자님만 깨끗하면 뭐 해요. 거미랑 동거하고 계시던데….”
더 이상 받아칠 변명거리도 없었는지 왕자가 시무룩하게 입을 다물었다. 방 한 가운데 덩그러니 놓여있는 욕조도 그리 청결해보이진 않았다. 그나저나 짐승 냄새라니, 물론 강아지 상태일 땐 강아지 특유의 꼬순내가 나긴 했지만 막 불쾌한 냄새가 나진 않았는데.
저 말도 아마 옛날 옛적에 유모에게 들은 소리 중 하나일 테지. 왕자는 내 눈치를 보며 제 팔을 들어 코를 킁킁거렸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잘못한 것을 들킨 아이처럼 어깨를 동그랗게 말았다. 그래 봤자 골격이 커서 별로 말리지도 않았지만.
“아무튼, 당분간은 여기 계시면 안 될까요? 싫다면 옆방을 청소해 둘게요. 꼭대기 층은 너무 넓어서… 솔직히 하루 만에 다 치우는 건 불가능해요.”
“아, 안 돼. 싫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다른 메이드들처럼 내버려 두면 좋잖아.”
“그건 이제 불가능해요. 아마 다른 메이드들도 왕자님의 침실을 봤다면 가만히 있진 못했을걸요.”
“…내 방이 그렇게 더러워? 하, 하지만 유모는….”
“네, 유모는요.”
“지, 짐승이 살기 좋은 우리 같으니 상관없다고.”
“그 유모, 제 눈에 띄면 아구창을 한 대 갈기고 싶네요.”
왕족을 돌보는 유모들은 최소 귀족 계급 이상이다. 원래대로라면 평민인 나는 그들에게도 머리를 조아려야 하는 위치였다.
하지만 나는 레르베 라예트 왕국이 머지않아 멸망하게 될 것이라는 걸 안다. 어차피 레티스 공주 빼고는 죄다 몰살인데, 그 전에 못된 유모한테 한 방 먹이는 것쯤은 할 수 있으리라.
“아, 아구창?”
“왕자님. 왕자님은 짐승이라기보단 그냥 귀엽고 사랑스러운 강아지던데요.”
“…내, 내가? 아, 아니야. 난 인간의 배를 빌어 태어난 사악한 짐승….”
세기의 미소년 같은 외모를 하고도 왕자의 자존감은 바닥을 뚫고 내려갔다. 이래서 가스라이팅이 무서운 법이다.
나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왕자의 자기 비하를 더 이상 참고 들어 줄 수가 없었다. 이름 없는 성에 들어오기 전에 나는 어느 후작가의 메이드 노릇을 했다.
그리고 그곳을 방문하는 수없이 많은 귀족 남성들을 봤고, 나와 함께 일하는 하인들을 봤다. 하지만 개중 어느 누구의 미모도 아셰라드렌 왕자의 발끝조차 따라가질 못했다.
로맨스 소설에 환생하면 주위에는 죄다 미남미녀만 있을 줄 알았건만, 그건 착각에 불과했다. 여기도 결국엔 갖가지 인간 군상이 살아가는 곳이었다.
차라리 진짜 못생겼으면 말이라도 않지, 아니면 몸이 볼품없기라도 했더라면.
그러나 왕자는 타고난 골격마저 수영 선수처럼 완벽했다. 꼭대기 층에 갇혀 하는 일이라곤 강아지로 변해 발발거리며 뛰어다니는 것밖에 없었을 텐데도.
“아, 예. 사악한 짐승 씨. 그런데 사악한 짐승 씨께서는 건국왕 기르시에 대한 전설도 들어 보지 못하셨나요?”
“모, 몰라. 그리고 그런 식으로 부르지 마. 기, 기분 나빠.”
사악한 짐승은 토라져 뺨을 부풀렸다. 나는 순진하게도 고작 그거 한번 놀렸다고 눈시울까지 빨개지는 왕자를 끌어안아 주고 싶다는 충동에 시달렸다.
한낱 메이드인 나를 구하기 위해 평생을 살아왔던 이름 없는 성을 탈출한 남자.
다시 만나게 된다면, 왕자는 영문을 몰라 한다 해도 있는 힘껏 끌어안고 그때는 고마웠다고 속삭여 주고 싶었는데.
하지만 진지하게 생각해 보면 현실적으로 그런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더구나 상대는 유폐되긴 했어도 엄연한 왕족이었다.
게다가 그는 지금 알몸에 에이프런만 겨우 두른 상태였다. 심지어 몸은 다 컸어도 정신은 아직 어린 아이.
나는 길게 숨을 내쉬며 설명을 시작했다.
“지금으로부터 천 년 전의 일이에요. 건국왕 기르시는 신의 아들로, 당시에는 다섯 나라로 나뉘어져 있던 레르베 라예트 왕국에 나타났습니다. 그분은 끊임없이 전쟁이 이어지던 다섯 나라를 통일하기 위해 거대한 늑대로 변해 전쟁터를 누볐고….”
왕자의 두 눈이 스타킹 공을 던져 줬을 때처럼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시선을 마주칠 줄은 모르는 주제에, 그는 내 입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별로 말을 잘하는 편은 아닌데, 왕자가 저렇게 기대 어린 눈을 하고 있으니 뭔가 좀 더 장황하게 설명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든다.
나는 큼큼, 하고 목을 가다듬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때였다.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다프네 양? 여기 있습니까?”
“헉!”
나는 아직 대답도 하지 않았는데, 왕자는 지레 겁을 먹고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러더니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숨을 곳을 찾기 시작했다. 나는 왕자의 그런 새삼스럽지도 않게 한심한 모습을 바라보다 문가를 향해 소리쳤다.
“네, 예니체 경! 무슨 일 있나요?”
“벌써 점심시간인데 다프네 양이 보이지 않아서요. 괜찮으시다면 같이 식사를 할까 했습니다.”
“앗, 그렇군요. 잠시만요. 제가 지금 옷을 갈아입고 있어서….”
“…실례가 많았습니다. 저는 식당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천천히 나오셔도 됩니다.”
예니체 경이 망설이듯 말했다. 갑자기 찾아왔길래 무슨 일이라도 있나 싶었지만 역시나 이름 없는 성에선 언제나 그렇듯 아무 일도 없었다.
그나저나 예니체 경이 내게 먼저 같이 점심을 먹자고 한 적은 난생처음이다. 드디어 차를 끓여 주고 안부를 물어보며 그와 친해지려 했던 내 노력이 빛을 발하는 날이 온 것인가.
그런데 예니체 경과 점심을 먹게 된다면 왕자는 이곳에 홀로 남겨 두어야 하나. 고민하며 뒤를 돌아보자, 별로 방이 크지 않은데도 왕자의 모습이 더는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내 침대 위의 이불이 살짝 솟아올라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로 빼꼼히 삐져나온, 가엽게도 바들바들 떨고 있는 새하얀 꼬리털이 시야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