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폐왕자 길들이기 (3)화 (3/123)

3화

“…강아지, 네요?!”

“왕!”

“강아지.”

“왕!”

왕자가 있어야 할 곳에 자리한 하얀 털 뭉치의 크기는 내 팔뚝보다도 작았다. 고것은 나를 보며 바짝 세운 꼬리로 열심히 붕붕 허공을 휘젓고 있었다.

뭐야, 왜 이렇게 귀여워. 설마 이게 바로 소문에 가려져 있던 저주받은 왕자의 실체인가?! 나는 꼬리를 흔들어 대면서도 슬쩍슬쩍 뒷걸음질을 치며 나를 경계하는 강아지를 단숨에 안아 들었다.

“어디 보자, 아무래도 왕자님은 안에 계시지 않은 것 같고.”

나는 일부러 강아지가 들으라는 듯 중얼거렸다. 그러면서 꼭대기 층의 내부에 처음으로 발을 내디뎠다.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간 왕자의 침실은 층 전체를 쓰는 만큼 아주 넓었다. 거기다 먼지가 잔뜩 쌓여 있는 푹신한 쿠션들이며 아기들이 좋아할 법한 장난감들이 넘쳐 날 정도로 많았다.

세상과 차단된 왕자의 세계는 예상했던 것보다 다채로웠다. 갇혀 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는 당연히 이곳이 어두컴컴한 지하 감옥보다도 못한 곳이라고 상상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밖에 없네요. 귀여운 강아지야, 역시 네가 아셰라드렌 왕자님인 거니?!”

“…….”

“조금 전까지는 잘만 짖더니 갑자기 또 조용하네. 세상에, 발바닥은 또 왜 이렇게 작지.”

꼬순내가 나는 듯한 발바닥이 새카맸다.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이곳을 발발거리며 돌아다니느라 더러워진 것이 분명했다.

그나저나 이 눅진눅진한 곰팡이 같은 냄새는 또 무슨 일인지. 꼭대기 층에는 사람 얼굴만 한 작은 창문이 겨우 하나 붙어 있을 뿐, 그곳을 제외하고는 햇볕을 쬘 만한 장소가 아예 없다시피 했다.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이런 곳에서 한 달을 채 버티지 못하고 중증 우울증에 걸리고 말 것이다.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어스름한 빛 사이로 허공을 떠다니는 먼지가 뿌옜다.

“감옥만도 못한 곳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보다 나은 곳도 아니네요.”

“…….”

“그런데 언제쯤 사람으로 돌아오시나요?”

“…….”

“혹시 왕자님이 아니신 건가. 하지만 성별이 수컷이라면?”

“왕! 왕!”

나는 품에서 덜덜 떨고 있는 강아지를 양손으로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연한 분홍색의 통통한 뱃살 아래를 확인하려는데, 강아지가 사납게 이를 드러내며 내게 짖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내가 빠르게 성별을 확인한 후였다. 그리고 이 강아지는 100퍼센트 수컷이었다.

그런데 소설 속에선 끔찍한 괴생명체라더니, 직접 보니 무해한 동물 친구에 불과하지 않은가.

소설 속에 표현된 왕자의 실체와는 너무나도 간극이 큰 것 같아 혹시나 싶었건만, 역시나 이 강아지가 왕비가 낳은 괴생명체가 맞나 보다.

“물론 귀엽고 사랑스럽긴 한데, 말이 안 통하니까 이제 그만 사람으로 변해 주실 수 있나요?”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세상을 잃은 듯한 표정을 하고 있는 강아지에게 물었다. 설마 언젠가 봤던 동화에서처럼 키스를 하면 변신에서 풀려난다던가 그런 건 아니겠지.

만약 그런 조건이 걸려 있다 해도 대상은 어느 나라의 공주님 정도지, 나 같은 메이드는 아닐 것이다. 나는 강아지의 보드라운 머리통을 쓰다듬다 뒤늦게 문가에 널브러진 왕자의 옷가지들을 발견했다.

아까 왕자가 나를 보자마자 엉덩방아를 찧었을 때 입고 있던 옷들이었다.

“혹시, 여기서 사람이 되면… 나체로….”

내가 더듬더듬 조심스럽게 강아지에게 묻는 순간이었다. 품 안의 작은 생물에게서 연기가 피피어오르더니 그 사이로 길쭉한 팔 하나가 튀어나왔다.

무슨, 마술이라도 보는 것 같았다. 눈 깜짝할 새 강아지가 순식간에 왕자로 변하는 마술.

이게 뭔가 싶어 눈을 감았다 떴을 때, 나는 묵직한 무게감에 눌려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런 내 위로 보이는 것은 널따란 어깨를 가진 당황한 얼굴의 장발 미소년이었다.

“…….”

“…….”

“…아, 안녕하세요. 아셰라드렌 왕자님.”

“나, 날… 어, 어떻게 하려는 거야.”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큼직한 손이 내 양 손목을 단숨에 잡아 머리 위로 결박시켰다. 남은 한 손으로 바닥을 짚은 왕자의 보랏빛 눈동자에 가득 찬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건장한 어깨를 빳빳하게 굳힌 그는 차마 내 눈을 마주하지 못하고 어쩔 줄 몰라 했다.

왕자는 내가 제 밑에 깔려 있는 상황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이 장면을 남들이 봤다면 왕자가 날 어떻게 하려는 것처럼 보였을 텐데.

“너, 너는 여기 들어오면 안 돼. 여긴 금지된 구역이야.”

“오….”

“게다가… 넌 괴물이 된 내 모습을 봤어. 이 사실을 들켰다간.”

“어떻게 되는데요?”

“…처형당한다고, 예전에 왔던 유모가.”

말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 유모는 내가 알기로 10년도 전에 발길을 끊었다.

국왕 부부도 그랬지만, 아무래도 사람이 동물로 변하는 건 좀처럼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개념인가 보다. 유모가 떠난 뒤로 왕자는 버려진 짐승처럼 홀로 남아 주기적으로 바뀌는 이름 모를 메이드들이 가져다주는 음식을 먹고 살았다.

“그러면 저는 이제 죽은 목숨인 건가요?”

“모, 몰라. 그치만 나를 본 사람들은 모두 죽게 된다고 했는걸.”

“누가 그래요?”

“…그것도 예전에 왔던 유모가.”

그 유모라는 사람 참, 말하는 본새하고는. 국왕은 왕비의 출산을 도왔던 산파만을 죽였지, 그 이후로 왕자를 돌봤던 유모나 메이드들을 처형시키지는 않았다.

이 세계는 왕자가 상상하는 것만큼 잔혹하지는 않않다. 물론 태어나서 단 한 번도 꼭대기 층을 벗어난 적이 없는 왕자에게는 충분히 잔인한 곳이긴 했지만.

“그런데 왕자님, 아까부터 팔이 좀 아픈데요. 그리고 무례인 줄은 알지만 솔직히 조금 많이 무거우세요.”

“미, 미안.”

인간으로 변하자마자 위협적으로 나를 붙든 것치고, 왕자는 놀라울 만큼 소심했다. 내가 고개를 살짝 들고 말하자 그는 파드득 몸을 떨며 얼른 뒤로 물러났다.

나는 몸을 일으켜 앉아 근처에 있던 쿠션으로 절묘하게 아래를 가린 왕자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 대고 있었고, 허리를 넘실대는 긴 은발은 아무렇게나 흐트러져 있었다.

그래도 유모가 최소한의 예절 교육 정도는 시켜 준 게 분명했다. 유폐된 왕자가 벗은 몸을 부끄러워할 줄은 예상치 못했다.

나는 무릎걸음으로 문가에 다가가 왕자의 셔츠와 바지를 주웠다.

“우선은 이거라도 입고 계세요. 바닥이 너무 더러워서 옷도 더러워지긴 했지만, 저는 왕자님의 새 옷이 어디에 있는 줄 몰라서.”

“네, 네가 오기 전에 있던 메이드가 문 앞에 가져다줬었어. 저쪽 침대에 쌓아 두긴 했는데….”

“네? 여긴 옷장이 없나요?”

“옷장…. 그게 뭐지?”

답이 없군. 저기 저 구석에 있는 거미줄이 쳐진 옷장의 쓰임새를 왕자는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문은 반쯤 열려 있고, 그 안에는 솜이 다 튀어나온 봉제 인형만 가득한 건가.

왕자의 침실은 유아기 시절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책이며 잉크 따위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고, 한쪽 다리가 부러진 탁자는 무슨 이유에선지 바닥에 뒤집혀 놓여 있었다.

짐승이 이갈이를 하느라 물어뜯은 듯한 베개에, 간간이 허공을 날리는 깃털에, 크기며 색깔이 제멋대로인 양말들은 공처럼 뭉쳐져 바닥을 구르고 있다.

처음 봤을 땐 몰랐는데, 자세히 보니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심하지 않나 싶은 수준의 공간이었다. 왕자는 서툰 손길로 바지를 입고 셔츠의 단추를 잠그며 조심스레 나를 힐끗거렸다.

그러나 절대로 먼저 입을 여는 법은 없었다. 그는 아주 오랜만에 마주한 타인을 못내 불편해하고 있었다.

“옷장은 옷을 넣는 장이에요. 망가진 인형을 숨겨 두는 곳이 아니라.”

“…숨겨 둔 거 아냐. 나중에 갖고 놀려고 넣어 둔 거야.”

“왕자님.”

“…응?”

“몇 살이세요?”

“어… 열아홉 살.”

왕자는 양손을 하나씩 접다 뭔가 모자란다고 판단한 듯 발가락까지 접어 제 나이를 셌다. 큰일이었다. 나는 회귀 전에 날 구해 주고 죽었던 그 다정한 남자가 이 정도로 바보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게 당연한가. 아셰라드렌 왕자는 타인과의 교류도 없이 쭉 어린아이인 상태에 머물러 있었으니까.

“그, 그런데 너 언제까지 여기에 있을 거야. 한 시간 뒤에 온다고 해 놓고, 멋대로 쳐들어오기나 하고….”

나도 모르게 왕자를 한심하게 쳐다본 게 틀림없었다. 왕자는 분한 듯한 얼굴로 내게 따져 물었다. 그러나 덩치만 큰 아이라 그런지 제대로 화를 내지도 못했다.

점점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 하며, 우물쭈물 입술을 달싹이며 자꾸만 내 시선을 피하기나 하고. 나는 한숨을 쉬며 문틈에 낀 대걸레를 집어 들었다.

“침실이 이렇게 더럽다는 걸 알게 된 이상,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어요. 저는 청소를 할 테니 왕자님은 밖에 나가서 식사를 하세요.”

“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내가 어떻게 밖에 나가?”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제 앞섶을 꽉 붙든 왕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소리쳤다. 오늘 당장 세상이 멸망한단 소식을 듣는다 해도 저렇게까지 반응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꿈에서 매일 봤던 아름다운 나의 왕자님과는 너무나도 큰 괴리감이었다. 저 찡찡이가 무슨 수를 써서 겨우 1년 만에 그렇게 성숙해질 수 있었을까?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실망감에 휩싸인 나는 말없이 대걸레만 내려다보았다. 그때까지도 왕자는 부들부들대며 고집스럽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여전히 그가 먼저 입을 여는 일은 없었다. 그렇다면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것은.

“어머나, 세상에! 저게 뭐야?”

“뭐, 뭐가?”

나는 고개를 뒤로 꺾어 천장을 올려다봤다. 순진한 왕자는 나를 따라 천장을 올려다보았지만, 물론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 아무것도 없는… 악!”

보랏빛 시선이 다시 나를 찾을 즈음에, 나는 이미 왕자의 코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나보다 머리 하나하고도 반 정도는 더 큰 그는, 순간 멈칫하며 나를 내려다보더니 까무러치듯 놀라며 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그러고는 공중에 튀어 오른 그대로 펑! 하고 연기를 뿜어내며 다시 강아지로 변해 버렸다.

귀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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