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의 유일한 조향사가 되었습니다-153화 (153/153)

〈외전 7화〉

“더 자세히 봐 드릴까요? 저도 좋

은 소식을 전해드려 기쁘니

얼마든

지 더 봐 드릴 수 있어요.”

“아뇨, 괜찮아요. 충분합니다. 정말 로.”

아직 뇌가 충격적인 뉴스를 소화하 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나는 고 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 이상 또 뒤통수를 맞으면 감당할 자신이 없

었다.

“그래요? 아쉽군요. 저는 제도에 자주 들르니까 다음에 또 찾아주세 요.”

“네…… 그럴게요. 벌써 두 번이나 우연히 만났으니, 저희도 인연은 인 연인가 봐요.”

“저번에도 우연히 만난 적이 있으 십니까?”

세드릭의 물음에 나는 웃으며 고개 를 끄덕였다.

“축제 때 이분 천막에서 점을 봤었 거든요. 그때 점괘도 참 재밌었던 기억이 나네요. 뭐였더라……? 아, 그래.”

새록새록 떠오르는 기억에 나는 웃 음을 터뜨렸다.

“세드릭, 전에 말했던 것 기억나 요? 제 운명의 상대가 할아버지로 나왔다는 점괘, 그것도 이분이 봐주 셨던 거예요.”

“ 예?”

세드릭이 경계심 어린 얼굴로 점술 사를 쳐다보았다.

“제가 그런 점괘를 냈나요?”

점술사도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 다. 나는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 보니 제 옛 운명의 상대께 선 이제 건강해지셨을지 궁금하네 요. 혹시 카드 한 장만 뽑아주시면 안 되나요?”

“아하, 물론이지요.”

점술가가 흔쾌히 카드를 펼치며 세 장을 고르라고 말했다.

나는 신중히 카드를 골랐다. 세드 릭이 옆에서 탐탁잖은 표정으로 지 켜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으으음…… 이거요! 이게 느낌이 와요.”

“좋습니다. 어디 보자.”

점술가가 카드를 뒤집었다. 나온 것은 순서대로 아까 봤던 태양 그림 과 수레바퀴 그리고 웬 여자 주위를 커다란 월계수가 둘러싸고 있는 그

림이 나왔다.

“두 개나 겹치네요? 무슨 뜻인가 요?”

“으흠, 아주 정정하신 것 같군요.”

“정말요‘?”

“네. 건강엔 아무 이상도 없는 분 인 것 같습니다. 아니, 아예 문제가 없는 건 아닌데, 해결책을 찾아서 앞으로는 순조롭게 회복된다고 하는 군요.”

“오호, 그렇군요.”

좋은 의사라도 찾으셨나 보다. 모

르는 사람이지만 건강해지고 있다니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술가가 살짝 세드릭의 눈치를 보 았다. 아무래도 내내 못마땅한 표정 을 짓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하하, 아무튼 지금 천생연분은 두 분이시니까요. 두 분 인연이야말로 둘도 없이 완벽한 결합이라고 아까 점괘에 나왔습니다.”

“그렇습니까?”

세드릭이 점잖은 얼굴로 대답했다. 하지만 내 눈에는 살짝 입가에 흐뭇

함이 번진 것이 보였다.

우리는 그쯤에서 점술가와 인사를 나눴다.

“제도에 오시면 꼭 또 뵈어요.”

“물론입니다, 아리엘 님. 마침 근처 에서 샀던 향수가 마음에 안 들어 아리엘 님 생각이 났던지라 더 반가 웠습니다.”

어머, 지금 공기 중을 떠도는 자스 민 향기도 참 좋은데. 내 것과는 역 시 느낌이 좀 다르긴 하지.

나는 못내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점술가와 악수를 했다. 나와 세드릭 은 점술가의 배웅을 받으며 천막을 나섰다.

“점이라는 것도 꽤 재밌군요.”

세드릭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 덕였다.

“아까 꼬마에겐 조금도 관심 없다 고 차갑게 말했었잖아요?”

“지금이라도 철회하겠습니다. 나름 대로 유익한 시간이었거든요. 그나 저나……/

세드릭이 돌연 심각한 표정을 했 다.

“쌍둥이가 와 준다면 저는 두 배로 행복하겠지만, 역시 아리엘이 너무 힘들지 않겠습니까?”

‘세상에. 점에 관심이 없긴 무슨.’

이제보니 세드릭은 리나보다 더한 맹신자였다.

“됐어요. 어차피 이런 건 반은 재 미로 보는 것 아닌가요?”

“역시 그럴까요

늘어지는 말꼬리가 조금 시무룩하 게 들렸다.

나는 씩 웃으며 세드릭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제 돌아갈까요?”

세드릭은 내가 내민 손을 잡지 않 고, 잠시 동안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거 압니까?”

“ 뭘요‘?”

“아리엘이 함께 돌아가자고 말할 때마다, 가슴이 이상할 정도로 설렌 다는 것.”

“아하하. 뭐예요.”

나는 눈꼬리까지 접고 시원하게 웃 음을 터뜨렸다.

세드릭이 그런 내 손을 꼭 잡았다. 이내 함께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 자, 정말 우리가 같은 곳을 향해 걷 고 있다는 실감이 들었다.

돌아갈 곳이 같다는 것은 놀랍도록 따스한 기분이었다.

우리는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진 않았다.

하지만 다른 곳을 향해 나아가더라 도, 하루가 끝나면 우리는 결국 같 은 집을 향해 돌아올 것이다.

서로가 있는 집으로.

나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온갖 냄새들이 한데 뒤섞여 폐부를 적셨다.

이국적인 야자수의 향과 짭짤한 바 닷바람 냄새. 곁에 있는 사람에게서 흘러나오는 침엽수와 사향 냄새.

나는 이 냄새를 잘 기억해 두기로 했다.

# # 호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 나는 잠시 멈춰 고개를 꺾고 위를 올려다보았 다.

흡족한 미소가 입가에 떠올랐다. 언제 봐도 참 웅장하면서도 세련된 건물이었다.

커다란 매장은 휴일을 맞아 손님 없이 적막해 보였다.

나는 가게 문을 밀었다. 은종이 찰 랑, 아름다운 소리를 울렸다.

“아가씨!”

뒤를 돌아본 리나가 만면 가득히 화색을 띠고 내게 달려들었다.

나는 보름 만에 보는 리나의 양 뺨을 붙잡고 이리저리 살펴 보았다.

“잘 지냈어? 어디 보자, 살이 조금 빠진 것 같기도 하고?”

“에이, 그대로예요. 아가씨는 그동 안, 어어……『

내 얼굴을 올려다보며 리나가 말을 더듬거렸다. 나는 리나 대신 말을

끝맺어주었다.

“많이 탔지?”

“네. 정말 알찬 휴가를 보내셨나 봐요.”

“사장님! 돌아오셨습니까?”

“매장은 저희가 완벽히 지키고 있 었…… 헉, 사장님 맞으시죠?”

“화끈하게 태우셨네요!”

직원들이 속속들이 나타나 내 그을 린 얼굴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매 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물론, 작업 장 건물에서 일하고 있는 조향 직원

들도 이 자리에 있었다.

나 역시 깜짝 놀라 직원들을 돌아 보았다.

“다들 반가워요. 그런데 휴일에 매 장엔 어쩐 일이에요?”

“사장님께서 일찍 돌아오신다기에 급하게나마 축하 파티를 열기로 했 죠.”

“어머나.”

나는 못내 감동 받았다.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매장에 출근 해 나를 환영해 주다니, 이건 정말

감격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마님, 즐거운 여행 되셨습니까?”

멜른이 아직은 익숙지 않은 호칭으 로 나를 불렀다.

나는 멜른과 에른, 그리고 다른 기 사들에게도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네 기사 중 둘은 모르는 얼굴이었 다. 이제부터 내 호위는 에반스 기 사단에서 돌아가며 맡기로 했는데, 오늘 순번은 여기 있는 네 명인 듯 했다.

호위 같은 건 부담스럽다며 거부

의사를 표한 적도 있었지만, 공작 부인에게 이 정도 호위는 당연하다 며 완강한 세드릭을 이길 수는 없었 다.

“그동안 잘 지냈나요? 내가 자릴 너무 오래 비워서 고생하셨죠, 다 드 ” 흐.

“예정보다 훨씬 일찍 돌아오셨는걸 요, 뭐.”

“맞아요. 원래는 보름 뒤에 돌아오 시는 일정이었잖아요?”

“그랬죠.”

나는 슬쩍 웃으며 뺨을 긁적였다.

“하고 싶은 일이 생겨서요.”

“하고 싶은 일? 그게 뭔데요, 아가 씨‘?”

리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수 줍게 웃으며 선언했다.

“오늘부터 신상품 연구에 돌입할 거야.”

“네에?”

놀란 얼굴로 리나가 외쳤다.

“새 향수를 출시하신 지 한 달도 안 지났잖아요!”

“으응, 그렇지. 그런데 꼭 만들고 싶은 향수가 생겼거든.”

“저희가 빈틈없이 보조하겠습니 다.”

조향 직원 라비가 비장한 얼굴로 나섰다.

“든든하네요.”

나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조향 직원들은 모두 잘 성장하고 있었다.

모두 성실했으며 향기에 대한 각자 의 철학도 존재했다. 조향사로서는 필수적인 두 자질이었다. 특히 라비 는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머지않아 훌륭한 조향사가 될 것이 분명해 보 였다.

“오랜만에 사장님이 돌아오셨는데 샴페인을 빠뜨릴 수 없죠!”

어디서 가져왔는지 루카가 샴페인 병을 치켜들고 외쳤다. 한바탕 환호 성이 울렸다.

파티는 즐거웠다. 우리는 먹고 마 시며 오랜만에 만난 회포를 풀었다.

개중엔 신혼여행에 대해 지나치게 자세히 알고 싶어하는 앙큼한 사람 들도 있었다.

그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새빨갛게 얼굴을 붉히는 날 놀리기 위해서인 것도 같았다.

파티가 끝난 뒤, 나는 에반스 저택 대신 작업장으로 향했다.

머릿속을 달구고 있던 아이디어를

쏟아낼 시간이었다.

나는 조향 기구 앞에 서서 잠시 눈을 감고, 세드릭과 함께 해변 축 제를 거닐던 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바닷바람 냄새, 야자수와 이국의 과일 냄새. 그리고 사향과 침엽수 냄새.

몰두하다 보니 어느새 새벽 별이 떠 있었다. 그제야 시계를 확인한 나는 화들짝 놀랐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다고?’

큰일이었다.

나는 허둥지둥 앞치마를 벗어던지 고 조향실 문으로 향했다. 얼른 연 락용 수정구를 찾아야 했다.

조향실 문을 연 순간, 나는 그 자 리에서 홀린 듯 굳어버렸다.

새벽 달빛을 맞으며 창가에 기대어 있던 남자가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멍하니 입을 열어 그의 이름 을 불렀다.

“세드릭?”

세드릭이 빙긋 웃으며 내게로 걸어 왔다.

“집중하고 계시더군요. 방해하지 않았습니다.”

“언제부터 기다린 거예요? 방해를 하셨어야죠!”

“몹시 집중하시는 것 같아서 그럴 수 없었습니다. 사실은 꽤 오래 작 업하시는 모습을 구경하다가 나온 참입니다.”

“정말요? 전혀 몰랐는데……!

나는 살짝 얼굴을 붉혔다. 몰두하 는 동안 이상한 소릴 한 건 아니겠 지, 나?

“그래서.”

가까이 다가온 세드릭이 미소 지으 며 내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 주었 다.

“작업은 순조로우셨습니까?”

“네! 무척요.”

나는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 다.

기억 속의 그 향기가 점점 흡사하

게 재현되고 있었다. 나는 참지 못 하고 세드릭을 조향실로 들였다.

“맡아 보세요.”

세드릭에게 시향지를 내밀자, 그가 진지한 표정으로 그것을 가져갔다.

나는 한껏 긴장한 채로 세드릭의 평을 기다렸다.

한 시간 같은 몇 초가 흐른 뒤, 드 디어 그가 입술을 열었다.

이건

세드릭이 설마 싶은 눈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어딘가 익숙한데…… 유페리아 섬 에서 나던 과일 냄새 아닙니까?”

다시 시향지에 코를 가져다 대며 세드릭이 천천히 중얼거렸다.

“야자수…… 도 섞인 것 같고……/,

“맞아요!”

나는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

다. 역시 세드릭은 코가 좋았다. 내 남편다운 재능이었다.

“그리고 또 어떤 향이 섞인 것 같 은데.”

세드릭이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속으로 몰래 웃으며 대답은 숨겼다.

꽤 열심히 재현했다고 생각하는데, 세드릭은 몇 번 더 시향지 냄새를 맡으면서도 마지막 냄새의 정체는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역시 스스로에게서 무슨 냄새가 나

는지 본인은 모르는 법이었다.

“그래서, 이번 향수의 이름은 뭡니 까?”

그 질문에 나는 방긋 웃으며 대답 했다.

“‘행복’이요.”

“ 행복?”

“네. 실은 시리즈예요. 이건 첫 번 째.”

그날 해변에서 나는 한 가지 중대 한 프로젝트를 계획했다.

행복이 가슴을 벅차도록 간질이는 순간이 오면, 그때마다 그 순간을 향기로 박제하겠다는 계획을.

아주 원대한 프로젝트였다. 이제 겨우 한 걸음을 내디뎠을 뿐인.

“첫 번째라. 몇 번째까지 있습니 까?”

“글쎄요.”

나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어쩌면 영원히 이어질지도요.”

“ 영원히……?”

세드릭이 살며시 고개를 기울였다.

“굉장한 장기 프로젝트군요.”

“맞아요.”

“잘은 모르겠지만 저도 물심양면으 로 돕겠습니다.”

기특한 소리를 하며 세드릭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럼 돌아갈까요?”

“네. 좋아요.”

나는 흔쾌히 그 손을 맞잡았다.

달빛이 흐드러지도록 내리는 밤.

나의 첫 프로젝트 향수, ‘행복의 기록, 그 첫 번째’가 탄생한 밤은 그런 날이었다.

후각은 오감 중 가장 예민한 감각 이다. 냄새는 많은 정보를 가져다준 다.

매캐한 연기의 냄새는 위험경보를 울리고, 공기 중에 떠도는 물의 냄 새는 뱃사람들에게 날씨의 이정표가

되어주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냄새는 그 자체로 사 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내 목표는 언제나 그런 향수를 만 드는 것이었다.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향은 어떤 것일까?

벌과 나비를 유혹하는 꽃의 향기?

들이키는 순간 산이나 바다에 온 것 같은 상쾌한 자연의 향기?

오랜 시간을 고민했지만, 이제는 알았다.

나는 방문 앞에서 멈춰 서서 세드 릭을 돌아보았다.

세드릭은 잠시 의아한 표정을 하였 으나, 내가 팔을 조금 끌어당기는 것만으로 내 의도를 이해하곤 나를 꼭 끌어안았다.

나는 숨을 흠뻑 들이마셨다. 기도 를 타고 이젠 익숙해진 체향이 몸속 을 가득 적셨다.

소나무 숲 한가운데에 서 있는 듯, 더없이 마음이 깨끗해지는 향기.

“아리엘에게서는 언제나 기분 좋은 냄새가 납니다.”

세드릭이 내 마음의 소리를 그대로

말했다.

나는 빙긋이 웃었다.

내가 그토록 알고 싶어 했던 행복 의 냄새는 바로 사람의 향기였다.

어떤 향기로운 꽃과 값비싼 향료를 가져온대도, 사랑하는 사람의 살 내 음을 이길 수는 없다.

세드릭은 나에게. 그리고 나는 세 드릭에게.

이제는 아닉시아 향수도 필요 없어 진 세드릭에게, 진정제가 되어주는 건 바로 나였다.

당신의 유일한.

〈외전〉끝.

지금까지〈폭군의 유일한 조향사가 되었습니다〉를 사랑해주셔 서 감사드립 니 다.

폭군의 유일한 조향사가 되었습니다

지은이 요정용

펴낸이 최재호

펴낸곳 에이템포미디어

편집 노기민

전자책 제작 김민이

출판등록 2017년 6월 5일

전자우편 이00자)[email protected]뽀171)001》3,(:001

홈페이지 ①://게0111으0111에거.00111

※홈페이지를 통해 신작 정보 및 작가님의 완결 후기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본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를 받는 저작물 이므로 본사와 저자의 허락 없이는 어떠한 형태나 수단으로도 내용을 이용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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