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의 유일한 조향사가 되었습니다-152화 (152/153)

〈외전 6화〉

“다음은 저기요!”

나는 젤리 꼬치 든 손으로 우측 전방을 가리켰다. 미니 서커스단이 화려한 불쇼를 벌이고 있었다.

세드릭은 착실히 내가 가리킨 곳으 로 걸음을 옮겼다.

세드릭이 움직일 때마다 두둥실 시 야가 위아래로 울렁였다. 나는 세드 릭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혹시 힘들어요?”

별 질문을 다 한다는 듯 세드릭이 나를 돌아보았다.

“전혀 안 힘듭니다.”

“그렇구나. 다행이네요.”

현재 나는 세드릭의 등에 업힌 채

해변 축제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축제 구경은 하고 싶은데, 걷긴 힘 들다고 우는 소릴 하던 날 위해 세 드릭이 생각해낸 조치였다.

평소보다 훨씬 높은 곳에서 맡는 공기라 그런가, 짭짤하면서도 시원 한 공기가 가슴을 채웠다.

해변의 저녁은 도시의 저녁보다 서 늘했다. 하지만 축제가 한창인 거리 의 열기는 밤바람의 서늘함조차도 이겼다.

업힌 채로 이리저리 방향을 지시하 는 여자와 그녀를 업은 남자. 조금 은 독특한 조합에 행인들이 계속해 서 우리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나와

세드릭이 누군지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좀 색다른 기분이네.’

제도에서는 어딜 가든 시선이 뒤따 랐으니까.

이곳에선 우리 이름을 수군거리는 소리도 듣지 않을 수 있었고, 다음 날 신문에 파파라치가 찍은 사진이 실려 있을까 염려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세드릭에게 업힌 채로 발을 달랑달랑 흔들었다.

“ 편하다.”

헤헤 웃으며 말하자 세드릭이 픽 웃음을 돌려주었다.

“이대로 제도까지 돌아갈까요?”

“진짜요? 오붓하고 좋겠다.”

시답지 않은 소리를 주고받으며 우 리는 축제를 실컷 구경했다.

다트 던지기 천막에서 경품으로 커 다란 인형을 타기도 했고, 온갖 길 거리 음식도 잔뜩 먹었다.

지금 멈춰선 곳은 캠프파이어 근처 였다. 캠프파이어를 중심으로 사람 들이 빙글빙글 돌며 포크 댄스를 추 고 있었다.

따스한 불의 열기에, 흥겨운 음악 과 줌까지 더해지니 마음이 나른하 게 풀어졌다.

최고의 여행이었다.

현실감이 들지 않을 만큼 행복했 다.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완벽한 순간을 만끽하던 때였다.

“진짜 용하다. 나 온몸에 소름 돋

았어.”

“나도, 나도. 점술가님, 괜히 유명 하신 게 아니구나?”

‘점술가님?’

문득 아까 낮에 꼬마에게서 받았던 쿠폰이 떠올랐다.

미래 엿보기 1회 무료 쿠폰…… 이었지, 아마.

점술가 천막이 이 근처에 있나?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나는 순간 깜 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와, 세드릭. 저기 줄 선 것 봐요!”

저 멀리 인파가 뱀처럼 길게 늘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설마 저기가 점술가 천막인가?”

저렇게 많은 사람이 찾을 정도로 용하단 말이야?

나는 미신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돌아가서 리나에게 점괘를 본 이야기를 들려주면 무척 좋아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가볼까……?”

나는 품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다행히 아까 대충 쑤셔 넣어 놓았던 쿠폰이 아직 그 자리에 있었다.

쪽지를 꺼낸 나는 그것을 다시 한 번 꼼꼼히 읽어 보였다.

[미래 엿보기 1회 무료 쿠폰!]

쪽지 위로 발랄하게 쓰인 글씨가 눈을 사로잡았다.

“이거 분명, 줄도 무시할 수 있는 쿠폰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어! 또 뵙네요!”

그때 해맑은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 다.

고개를 돌리자 낮에 보았던 그 꼬 마가 거기 서 있었다.

“찾아주셨군요! 잘 생각하셨습니 다!”

꼬마가 싹싹하게 웃으며 우리에게 로 다다닥 달려왔다.

“쿠폰 갖고 계시죠? 보여주시면 바 로 입장하실 수 있어요.”

나는 세드릭을 돌아보았다.

“보고 갈래요? 몇 달 전에 한 번 타로를 본 적이 있는데, 결과는 영 꽝이었지만 재미는 있었거든요.”

“가시죠.”

세드릭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꼬마의 안내를 받아 사이좋 게 천막 안에 들어갔다. 줄을 서 있 던 사람들이 질시와 선망의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뭐야, 뭐야. 왜 그냥 들어가?”

“그거 아냐? 뽑기에서 쿠폰 뽑은 거!”

“와, 진짜 운 좋다.”

수군거림을 한몸에 받으며 우리는 점술가를 찾았다.

천막 안은 고요한 분위기였다. 바 깥은 밝고 시끌벅적한데, 고작 한 꺼풀 안에 들어왔다고 빛과 소음이 완벽히 차단된다는 것이 신기했다.

테이블 위에는 오묘한 빛을 띤 수 정구슬이 놓여 있었고, 그 주위로 희미한 향을 피워 놓았다. 나는 코 를 찡그렸다.

‘자스민 향기.’

심신을 진정시켜주는 냄새였다. 손 님을 향한 적절한 애티튜드에 기분 이 좋아졌다.

“어서 오십시오.”

낮게 내리깔린 목소리가 귀에 익었 다.

점술가의 얼굴을 흘긋거린 나는 곧 눈을 커다랗게 떴다.

“엇, 당신은?”

“……아리엘 님?!”

점술가 역시 나를 알아본 듯 자리 에서 벌떡 일어났다.

“와아, 여기서 또 뵙네요! 이렇게 먼 곳까지는 어쩐 일이세요?”

“원래 방랑하는 것이 취미인지 라…… 아리엘 님이야말로 유페리아 섬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신혼여행 왔어요.”

“ 예?”

점술가가 눈을 커다랗게 떴다.

우리의 결혼 소식을 모르다니, 최 근 제도를 떠나 있었던 게 맞긴 한 모양이었다.

나는 내 곁에 서 있는 세드릭을

가리켜 보였다.

“제 남편이에요.”

남편이라니. 언제 말해도 간지럽고 이상한 어감이었다.

세드릭이 점술가에게 악수를 청했 다.

“제 아내의 지인이십니까?”

“예? 예, 그렇다고 할 수 있…… 아, 아니, 그런데 혹시 공작 전하 아니신가요?”

점술가가 허둥지둥 세드릭의 손을 붙잡으며 물었다. 세드릭이 빙긋 웃 으며 자기소개를 했다.

“세드릭 레이너 에반스입니다. 아 리엘의 남편이죠.”

뿌듯한 미소가 세드릭의 얼굴을 밝 혔다.

그 미소를 멍한 눈으로 바라보며 점술가가 입술을 더듬거렸다.

“아, 그, 그러시군요……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공작 전하……!”

세드릭과 악수를 한 점술가가 나를 슬며시 쳐다보았다. 마치 ‘해내셨군 요, 아리엘 님!’ 하고 외치고 있는 듯 그녀의 눈이 반짝거렸다.

‘아리엘 윈스턴’이 오랜 기간 세드 릭을 짝사랑해왔다는 것은 제도의 공공연한 가십거리였으니, 우리의 결혼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종종 이 런 식으로 나를 죽하해주곤 했다.

어린 영애들 사이에는 ‘기다림은 승리한다!’면서 포기하려던 짝사랑 을 이어가는 유행이 번지고 있다고 들었다. 좋은 영향인지 나쁜 영향인 지는 모르겠다.

나는 그저 방긋 미소를 짓곤 자리 에 앉았다. 점술가가 흥분한 것이 역력한 손짓으로 카드 뭉치를 꺼냈 다.

“이렇게 아름다운 신혼부부께서 저 를 찾아주시다니 영광이네요. 애정 운으로 보시나요?”

“네!”

활짝 웃으며 끄덕이자 점술가가 검 은 천 위로 카드를 주르륵 펼쳤다.

오묘한 문양의 카드에 시선이 쏠려 있는데, 점술가가 세 장을 고르라고

속삭였다.

“음. 이거, 이거. 그리고 이거요.”

거침없이 카드를 고르자, 점술가가 즉시 내가 고른 카드들을 펼쳤다.

‘ 오.’

펼쳐진 카드들은 척 보기에도 희망 차 보였다.

첫 카드에는 찬란한 태양이 그려져 있었고, 두 번째 카드에서는 연인이 서로의 팔로 하트를 그리고 있었다.

웬 수레바퀴가 그려져 있는 마지막 카드가 가장 애매했는데, 장식이 화 려하고 아름다운 걸로 보아 나쁜 카 드는 아닌 듯했다.

오, 이것은.”

점술가가 입술을 동그랗게 말았다.

“으흠, 오호라

카드를 찬찬히 살피며 점술가가 계 속해서 감탄했다.

이거 은근히 조바심이 드네.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점술가의 입술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잠시 뒤 점술가가 환한 얼굴로 고 개를 들었다.

“이것, 참. 두 분, 천생연분이시군 요!”

“와! 그렇대요?”

나는 눈을 빠르게 깜빡이며 기뻐했 다. 점술가가 흐뭇한 표정으로 카드 들을 설명해 주었다.

“여기 태양 카드를 보세요. 두 분 의 앞날에 환한 빛만 가득하리라는 걸 암시하고 있어요. 운명을 만난 두 사람 앞에서는 곤경이 나타나더 라도 금세 기가 죽을 거라는군요.”

“어머나.”

나는 흥미진진하게 설명을 들었다. 미신은 믿지 않는다고 콧대 높게 말 해왔던 나지만, 좋은 이야길 해 주 니 기분이 좋았다.

태양 카드와 수레바퀴 카드를 번갈 아 짚으며 설명하던 점술가가, 이번 엔 가운데에 있는 연인 카드를 짚었 다.

“그리고 여기 이 카드는

나는 또 다른 덕담을 기대하며 눈 을 빛냈다.

연인이 그려진 카드는 애정운을 보 고 있는 지금, 누가 봐도 최상급 카 드임이 분명했다.

한껏 기대를 끌어올리며 점술가의 입술에 집중하던 때였다.

“두 아기 천사님들이 찾아오리라는 징조군요.”

“아기 천사?”

나는 기대하는 눈 그대로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좋은 소리 같기는 한데 아직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점술가가 활짝 웃으며 나와 세드릭 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축하드립니다.”

“쌍둥이세요.”

나는 눈을 깜빡거렸다.

“네?”

갑작스러운 단어를 뇌가 이해하지 못했다.

점술가가 만면 가득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일 년 안에 두 아기님이 찾아올 겁니다. 제가 장담하죠.”

“아니, 갑자기 그게 무슨…… 네?”

나는 여전히 당혹에 빠져 더듬거리

며 세드릭을 돌아보았다.

세드릭은 나만큼이나 충격을 받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쌍둥이라니……/

세드릭이 황망히 중얼거렸다.

“큰일이군요. 모체에 부담이 클 텐 데…… 정말 큰일입니다. 실력 좋다 는 산파와 마법사는 모두 불러야겠 군요.”

점 보는 거 관심 없다고 하지

않았어요?”

관심이 없긴커녕 철석같이 믿고 있 는데?

나는 아직도 멍한 머리를 문지르며 다시 연인 카드를 쳐다보았다.

상상치도 못했던 대답이라 아찔하 기 그지없었다. 세드릭과 내가 얼마 나 천생연분인지 덕담이나 기대하고 있던 와중이라 더 그랬다.

‘어,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건가?’

만약 점술가의 말이 사실이라면

물론 나는 미신은 믿지 않는 편이 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 점술가가 정말 용해서 진짜 미래를 예언한 거 라면.

나는 잠시 두 아기를 끌어안고 있 는 세드릭을 떠올려 보았다.

‘나쁘지 않…… 나?’

나는 나도 모르는 새에 입가에 미 소가 떠올라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 다. 점술가가 더없이 흐뭇한 표정으 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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