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의 유일한 조향사가 되었습니다-137화 (137/153)

〈138화〉

‘ 응?’

나는 웃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내가 무슨 소릴 들은 거지?

“너무 그렇게 놀랄 것 없어요. 추 궁하려는 게 아니랍니다.”

나는 슬며시 대신관의 눈치를 보았 다.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지?’

다른 세계에 지구라는 행성이 있 고, 내가 거기서 왔다는 것까지 구 체적으로 아는 건 아니겠지?

아니면 날 이세계에서 온 사악한 존재 취급하거나 정신병동 같은 곳 에 가두려는 건 아니겠지!

내 눈빛에 담긴 경계를 읽었는지 대신관이 쓰게 웃었다.

“이런. 걱정하게 만들었군요. 괜찮 습니다, 아리엘 양. 아리엘 양 같은 경우를 이전에도 두어 번 본 적이 있거든요.”

“네? 정말인가요?”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대신관 이 인자하게 웃었다.

“평생 두 번 본 것이니 흔한 일이 라고 할 수는 없지만…… 가끔 영혼 의 시공간이 뒤틀리는 일이 일어나 기도 한다는 이야기예요.”

“저 말고도, 다른 세계에서 온 사 람들이 있다니……/

나는 충격에 젖어 중얼거렸다.

“그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 있죠?”

“놀랍게도 다들 잘 적응해서 살고 있답니다. 지금의 아리엘 양처럼요.”

“아……,”

“처음엔 두 사람 다 이런저런 소동 을 많이 일으켰지만, 결국은 다들 바뀐 삶을 인정하고 받아들였어요. 아리엘 양은 그 두 사람보다도 훨씬 적응이 빨랐던 것 같군요.”

“하하.”

멋쩍게 웃던 나는 문득 물었다.

“그런데 제가 다른 세상에서 왔다 는 건 어떻게 아신 건가요?”

“성흔이 없더군요.”

“성흔이 없는 사람들은 전부 다른 세상에서 온 건가요?”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분명 선 천적으로 성흔을 갖지 않고 태어나 는 사람들도 있다고 알고 있었는데!

“ 아뇨.”

대신관이 빙그레 웃었다.

“아리엘 양의 영혼이 이 세계 사람 들의 기운과는 조금 다르기에, 혹시 나 해서 물어본 거랍니다.”

그 말인즉…… 찍어 보셨다는 뜻?

나는 입을 딱 벌렸다. 대신관이 내 머릿속을 읽은 듯 후후 웃었다.

“놀라게 해서 미안하네요.”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혼란스러운 머릿속에서 질문을 끄집어냈다.

“그럼…… 제가 원래 살던 세계의 이야기도 이 세계 어딘가에 책으로 적혀 있는 건가요?”

“글쎄요.”

대신관이 미소를 지었다.

“세계들은 무수히 많고, 그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우연들은 존재하는 세계들의 곱절만큼 많지요. 그런 우 연이 없으리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 만, 있다고 확신할 수도 없습니다.”

알쏭달쏭한 대답이었다. 대신관의 대답을 곱씹던 나는 문득 깜짝 놀라 외쳤다.

“잠깐, 설마!”

나는 고개를 홱 들었다.

세드릭도 눈치챈 건가요? 그래서

절 이리로 데려온 건가요!”

“음? 아니에요. 아마 짐작도 못 하 고 있지 않을까요? 에반스 공작이 그대를 이리로 데려온 건 그런 이유 가 아니랍니다.”

“정말요? 다행이네요.”

살짝 안도의 한숨을 내쉰 나는 곧 미간을 좁혔다.

“그럼 절 여기까지 데려온 이유가 도대체 뭐죠?”

세드릭이 구태여 이유를 먼저 설명

하지 않기에, 나도 묻지 않았었다.

직원들은 분명 로맨틱한 무언가를 계획하고 있어서 숨기고 있는 거라 고 추측했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기 보단 그냥 세드릭에 대한 믿음이 있 었던 것 같다.

평소였다면 당연히 행선지와 이유 먼저 말했을 그가 언급을 꺼린다는 건,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테 니까.

대신관이 음, 하며 말을 골랐다.

“건강 검진

“……네?”

이랄까요.”

“아리엘 양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확신을 갖고 있는 것 같더군요. 제 게 직접 검사해 달라 요청했어요.”

“제 건강이요?”

나는 눈을 끔뻑거렸다.

이전 삶에서 불치병에 걸려 죽어갔 던 건 사실이었지만, 이번 생에서 나는 건강 빼면 시체인 사람이었다.

“네. 그대를 아주, 아주 많이 걱정 하고 있더군요.”

“허……

나는 이마를 문질렀다. 세드릭이 가끔 내 건강에 대해 과민 반응한다 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날 대성당까 지 끌고 와 ‘건강 검진’을 받게 할 정도인 줄은 몰랐다.

‘대성당이 동네 병원이냐고

나는 조심스러운 눈으로 대신관을 올려다보았다.

“저, 그런데 대신관님, 세드릭 전하 께 제 정체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을게요. 걱정하지 말아요.”

나는 휴, 한숨을 내쉬었다.

불치병에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것 도 믿기 힘든 이야긴데, 심지어 모 르는 세계 속 몸으로 영혼이 옮겨갔 다니. 내가 세드릭이라도 이런 얘길 들으면 몹시 혼란스러울 터였다.

언젠가 내가 직접 이야기한다면 몰 라도, 다른 사람의 입으로 듣게 하 고 싶진 않았다.

“나 정도 되는 신성력을 지닌 게

아니라면 다른 사람들은 눈치챌

도 없을 테니, 그 점도 걱정하지 말

고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누가 또 나를 찔러본다 해도 그땐 절대 유도신문에 넘어가지 말아야지.

깜짝 놀라서인지 목이 탔다. 나는 나도 모르게 주변을 살짝 둘러보았 다.

“목이 마른가요?”

헉, 이 대신관님은 독심술도 할 줄 아시는 걸까. 내가 민망하게 웃으며 끄덕이자, 대신관이 바로 음료를 컵

에 한 잔 따라주었다.

“영광입니다.”

어른에게서 술을 받듯 공손히 물컵 을 쥔 나는 곧 그것을 쭉 들이켰다. 곧 내 눈이 동그래졌다.

‘엄청 맛있어!’

음료는 시원하고 향긋했다. 다시 보니, 위에 띄워진 잎사귀는 셀레스 틴의 잎인 듯했다. 성수 위에서도 본 적 있어서 단박에 알아볼 수 있

었다.

대신관님, 서비스가 최고시네요. 나 는 민트처럼 시원한 음료를 단숨에 꿀꺽꿀꺽 비웠다.

‘아, 시원하……’

“콜록, 콜록!”

일 초 뒤 나는 격렬하게 기침을 시작했다.

콜록!”

급하게 마시다 제대로 사레가 들린 것이다. 나는 벽을 짚고 주르르 미 끄러졌다. 설상가상으로 음료가 역 류했는지 코까지 매웠다. 눈물이 쏙 빠졌다.

“아리엘 양! 괜찮아요?”

대신관이 깜짝 놀라 물었다.

그때 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가 들 렸다.

“아리엘!”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곧장 내게로 달려왔다. 단단한 팔이 나를 끌어안 았다.

“아리엘, 아리엘! 괜찮습니까?”

“콜록, 콜록……

나는 여전히 콜록거리면서도 고개 를 저었다.

안 괜찮으니 등이나 좀 두드려 달 라는 뜻이었는데, 어떻게 오해한 건 지 세드릭이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0서리엘……|”

“쿨럭, 쿨럭!”

아니, 안지 말고 등 좀 두드려 달 라니까!

세드릭이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 했다.

“대신관님! 아리엘이, 아리엘이 왜 이러는 겁니까?”

“내가 볼게요.”

대신관이 내 앞에 앉아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곧 따스한 기운이 몸 속을 감도는 것이 느껴졌다.

‘사레들려서 신성력으로 치유받다 니, 창피하다……/

기침하는 와중에도 그런 생각이 들 었다.

다행히 곧 몸이 편안해졌다. 과연 대신관의 신성력은 뭔가 다른지, 성 흔이 없는 내게도 얼마간의 영향력 을 행사하는 듯했다. 기침이 순식간 에 잦아들었다.

나는 눈꼬리에 맺힌 눈물을 훔치며 세드릭의 품속으로 주르르 미끄러졌 다.

“하아

기침을 너무 격렬하게 했더니 온몸 에서 힘이 쏙 빠져나갔다. 나는 창 피함도 잊고 세드릭의 품속에서 힘 없이 늘어졌다. 솔직히 안락하고 좋 았다.

“아리엘.’,

세드릭이 입술을 꾹 깨물며 내 어 깨를 감싸안았다.

“죄송합니다. 제가…… 제가, 더 빨 리 조치했어야 했는데.”

제 잘못입니다.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 아요.”

기침의 여파로 목소리에 힘이 없었 다. 나는 살짝 쉰 목소리를 가다듬 기 위해 또 한 번 살짝 기침을 했 다.

“콜록.”

“아리엘……

세드릭이 하얗게 질린 손으로 내 어깨를 부여잡았다.

“대신관님, 신성력을 한 번 더 부 탁드립니다!”

나는 세드릭의 소매를 잡고 고개를 저었다. 이런 일로 대신관의 신성력 을 두 번이나 사용하는 건 인류의 낭비 였다.

“이젠 정말, 괜찮아요.”

세드릭은 다 좋은데, 가끔 지나치 게 오버하는 경향이 있다니까. 특히 내 건강에 대해서라면.

고맙긴 했지만, 지금은 민망함이 더 컸다.

나는 대신관을 슬쩍 바라보았다. 대신관은 오묘한 눈으로 우릴 내려 다보고 있었다. 어쩐지 조금 재미있 어 보이기도 했다.

‘대신관님 앞에서 이게 웬 소란이 람.’

정말 과보호도 이런 과보호가 없 다. 나는 세드릭을 밀어내며 몸을 일으켰다.

“이젠 괜찮으니까 세드릭, 잠시 자 리를 비켜줄래요?”

아직 대신관과 못다 한 이야기가 남아 있었다.

그런데 세드릭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오, 아리엘!”

깜짝이 야.

나는 세드릭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 았다.

세드릭은, 고통스럽게 들렸던 목소 리보다도 훨씬 더 괴로운 표정을 짓 고 있었다.

“왜 항상……,”

세드릭이 입술을 아프도록 깨물었 다.

“왜 항상, 제게 숨기려고만 하시는 겁니까?”

무엇을?’

나는 어안이 벙벙해서 눈만 끔뻑였 다. 세드릭이 떨리는 손으로 내 손 을 부여잡았다.

“저는 의지가 안 되시는 겁니까?”

아니, 방금 당신 품에 늘어져서 실 컷 쉬었는데……,

“왜 항상…… 혼자 삭이려고만 하

시는 겁니까?”

세드릭이 간절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여전히 이 대화가 이해되지 않아 눈을 깜빡거렸다.

세드릭은 대답 없는 나를 기다리다 가, 곧 힘겹게 다시 입을 열었다.

“제게 의지하셔도 됩니다. 제가 아 리엘 옆에서 안식을 취했던 것처 럼…… 아리엘도 얼마든지, 날 이용 해도 되는데.”

그건 참 듣기 고마운 말이긴 한

데……느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솔직히 말해 세드릭의 말이 하나도 이해되지 않았다.

마치 세드릭과 내가 서로 다른 차 원에서 대화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세드릭?”

“예, 아리엘. 말씀하십시오.”

“뭔가 저희 사이에 단단히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요?”

“예……?”

세드릭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으 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다시 대신관을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입까지 가리고 눈을 휘고 있 었다. 아무래도 웃음을 참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답답함에 이마를 박박 문지르 며 말했다.

“세드릭 에반스 전하.”

드물게 성까지 붙여 부르자 세드릭 이 놀란 눈을 했다.

“예, 아리엘……?”

“저희 대화를 좀 해 보죠?”

세드릭의 눈에 혼란스러운 빛이 가 득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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