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화〉
“네?”
세드릭이 놀란 듯 눈을 깜빡거리며 물었다.
‘저러니까 더 어려 보이네.’
아니, 이럴 때가 아니지. 나는 쓸 데없는 생각을 지우고 곧게 고개를
쳐들었다.
“살롱에 저도 함께 데려가 주세요, 전하.”
내 요구에 당황한 듯 세드릭이 설 득을 시도했다.
“음…… 지루하실 겁니다. 새로 발 견된 광산 개발권에 대한 지지부진 한 공방만 한 시간은 이어질 텐데 요.”
“너무 흥미로울 것 같아요.”
나는 그가 말을 끝내자마자 얼른 대답했다. 어떻게든 세드릭이 나를 데려가도록 설득해야 했으니까.
그러자, 세드릭이 더욱 놀란 얼굴 을 했다.
“광업에 흥미가 있으셨습니까?”
“그럼요. 굉장히 흥미가 많아요. 아, 혹시 제가 들으면 곤란한 대화 인가요? 그렇다면 전 그냥 입구만 지키고 있을게요.”
세드릭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그냥 제 옆에 앉아 계셔도 됩니다.”
“정말요? 그럼 저도 따라가도 되는 거죠?”
세드릭은 여전히 의아한 얼굴이었 지만,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레이디께서 정 원하신다면……,”
“원해요!”
“……알겠습니다.”
세드릭이 이번에야말로 두 손을 들
었다.
세드릭에게 기다리라고 말한 뒤 먼 저 일 층으로 내려갔다.
직원들이 불안한 얼굴로 옹기종기 모여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잠깐 밖에 볼일이 있어서 세드릭 전하와 나갔다 올게요. 배웅하실 필 요는 없어요.”
“저, 사장님. 공작님께도 죄송하단 말씀을 드리고 싶은데……,”
“아뇨, 다음에요. 지금은 사과받을 기분이 아니라고 하시는군요. 휴게
실로 들어가 반성하고 계시는 게 좋 겠어요, 플렉 씨.”
“네…… 정말 죄송합니다.”
플렉이 죽 처진 어깨를 하곤 휴게 실로 들어갔다.
나는 아직 남아 있는 직원들에게도 말했다.
“자, 두 분도 들어가 계세요.”
모든 직원들을 안전히 휴게실 안에 수납한 나는 그제야 다시 이 층으로 올라갔다.
“이제 내려오셔도 돼요.”
“……예.”
세드릭은 미심쩍은 눈으로 잠시 나 를 응시하다가 순순히 계단을 내려 왔다.
‘휴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것도 보통 일이 아니네.’
세드릭 전담 경호원이 된 기분이었다.
세네타 광장에는 사람이 엄청 많을 텐데. 그곳에서도 계속 이렇게 주변 을 경계해야 한다니 벌써부터 진땀 이 났다.
‘어쩔 수 없지. 내 직원의 실수니 까 내가 수습하는 수밖에.’
세드릭과 함께 마차에 오르자, 머 지않아 마차가 세네타 광장에 도착 했다.
나는 경계 어린 눈으로 주위를 둘 러보았다.
마차에서 내린 나와 세드릭을 행인 들이 흘끔거렸다.
맞은편에서 다가오던 귀부인의 얼굴 에 멍하니 풀리는 게 보였다.
레모네이드 노점판에서 일하고 있 던 소녀도 입을 벌린 채로 세드릭을 돌아보았다.
‘이런.’
나는 얼른 세드릭의 옆에 딱 붙어 걸었다.
아쉽게도 내 키가 세드릭보다 머리 하나는 더 작은 탓에 완벽한 가드는
불가능했다.
‘살롱까지는 얼마나 남은 거야?’
초조한 마음으로 광장을 가로지를 때였다.
“응?”
기묘한 냄새가 한 가닥 코끝을 간 지럽 혔다.
세네타 광장은 사람으로 북적이는 만큼 다양한 냄새로 가득했다.
길거리 음식의 달콤한 냄새, 다양 한 향신료 냄새.
하지만 이 냄새는 그런 일상의 향 기와는 어딘가가 달랐다.
가슴이 덜컥일 만큼 위험한 냄새였다.
“……전하.”
나는 이마를 찌푸린 채로 속삭였 다.
“어디선가 이상한 냄새, 나지 않아 요?”
“ 냄새요?”
세드릭이 고개를 기울였다.
“글쎄요. 저는 레이디처럼 후각이 뛰어나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만……,”
거기까지 말한 세드릭이 문득 미간 을 굳혔다.
“어쩐지 불쾌한 기분이 들긴 하는군 요.”
까득, 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흠칫 놀라 세드릭을 올려다보 았다.
그는 어느새 나를 보고 있지 않았 다. 허공 어딘가를 주시하는 붉은 눈동자가 위험하게 번득였다.
“……전하?”
그 순간, 기분 나쁜 냄새가 더 강 해졌다.
‘매캐한 화약 냄새
그리고 그것이 방아쇠가 된 듯, 머 릿속에서 옛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 냄새는 화약처럼 매캐하고 타 르처럼 질척거렸다. 다른 냄새와는 전혀 섞이지 않는, 이질적이고 낯선 냄새.]
그건 원작에서 읽었던 문장 한 구 절이었다.
[누구든 그 냄새를 맡는 순간 깨달 을 수 있을 것이다. 인간 세계의 냄 새가 아니라는 것을.]
인간계와는 다른 세계 즉, 마계의 것.
나는 반사적으로 세드릭을 돌아보 았다.
“세드릭!”
일단 세드릭을 데리고 이 자리를 피해야 했다.
이 냄새는 세드릭에게 치명적이었다. 오래 맡았다간 통제를 잃고 날뛰게 될지도 몰랐다.
원작에서 그랬던 것처럼.
‘누가 거리에 마계 향을 푼 거지?’
우연일 리는 없었다. 누군가 악의 를 가지고 세드릭을 공격한 것이 틀 림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적이 누군지, 무슨 의도인지 고민할 겨를이 없었다. 세 드릭을 보호하는 게 우선이었으니까.
내가 황급히 세드릭의 손목을 붙잡 아 끌어당긴 순간이었다.
내 의도를 알아챈 듯, 순식간에 냄 새가 지독하리만치 강해졌다.
매캐한 향이 기도에 가득 들어찼
다. 나는 코를 가리고 기침했다.
“아리엘!”
옆에서 세드릭이 다급히 부르는 소 리가 들렸다.
“괜찮습니까?”
“전하, 무언가 낌새가 이상합니다. 자리를 피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휴고의 외침까지. 하지만 세드릭은 나를 두고 갈 수 없다는 듯 다시금 내 이름을 다급히
외쳤다.
“아리엘!”
평소와 달리 그의 목소리는 무척 떨리고 있었다.
‘이럴 때가 아닌데.’
지금 위험한 건 내가 아니라 세드 릭, 당신인데.
그는 이번에도 자신이 아닌,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
나는 흐릿해지는 정신을 다잡고 주 위를 둘러보았다.
무언가 이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해결책이 있을 것이다. 당장 그걸 생각해내야 했다.
내 시선이 다급히 주변을 훑었다. 곧 무언가가 눈에 띄었다.
‘아, 저건.’
아까 지나쳤던 레모네이드를 파는 가판대 였다.
나는 가판대로 달려가며 외쳤다.
“레몬 하나만 빌릴게요!”
“네? 잠깐…… 콜록!”
가판대를 지키던 소녀가 나를 막으 려다가 기침했다.
다시 뒤를 돌아본 나는 그새 가까 이 다가온 세드릭과 마주했다.
“레이디!”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부르는 세 드릭의 상태는 나보다 훨씬 심각해 보였다.
그의 얼굴은 시체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고, 목덜미에는 형형하게 핏줄 이 돋아 있었다. 누가 봐도 그는 남 을 걱정할 상태가 아니었다.
나는 이를 질끈 악물고 레몬을 두 손으로 두 동강 냈다. 레몬 과육이 이리저리 튀었다.
그 광경을 세드릭이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레이디?!”
“숨 크게 들이쉬세요!”
그렇게 외치며 나는 세드릭의 얼굴
로 레몬을 들이밀었다.
손에 너무 힘이 들어간 걸까. 세드 릭의 잘생긴 코가 레몬에 파묻혔다.
세드릭의 미간이 파르르 떨렸다.
레몬은 원래 신 과일이다. 그런데 이 세계의 레몬은 원래 내가 알던 것 보다도 두 배는 더 셨다.
그리고 후각은 인간의 감각 기능 중 가장 예민한 기관이다.
잔뜩 미간을 찌푸린 세드릭이 레몬 즙이 가득 묻은 코를 훔쳤다.
레이디? 이게, 무슨
캐
그렇게 말하는 세드릭의 얼굴엔, 방 금 전보단 조금 혈색이 돌아와 있었 다.
마계의 냄새를 맡은 게 문제라면, 후각을 마비시켜버리면 되는 거 아닐 까?
무식하리만치 단순한 생각이 당장은 효험을 발휘한 듯했다.
“이제 여길 벗어나요!”
나는 세드릭의 손목을 붙잡고 달렸 다.
다행히 세드릭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내가 이끄는 대로 따라와 주었다.
그리고 나와 세드릭 뒤로 수행원들
과 기사들이 뒤따랐다.
‘어떤 자식이 이딴 수작을 부린 건 지, 찾아내서 죽여 버릴 거야!’
나는 세드릭의 손목을 잡아끌며 속 으로 험한 욕설을 씹어뱉었다.
# # 개
“……허.”
망원경에서 눈을 뗀 남자가 헛웃음
을 내뱉었다.
완벽한 계획이었다. 파비에 백작을 이용해 세드릭 에반스를 유인하고, 세네타 광장에 마계 물질을 푼다.
마계의 냄새라곤 기껏해야 아닉시 아 향에만 익숙할 세드릭은 순식간 에 이성에 대한 제어를 잃고 말 터 였다.
그리고 그 뒤엔 끔찍한 학살극. 남 자는 다음날 신문 헤드라인까지 미 리 정해둔 상태였다.
[에반스 공작, 피로 물든 살인귀가
되다!]
백성을 마구잡이로 죽인 공작은 순 식간에 인망을 잃을 터였다.
완벽한 계획이었는데.
남자는 다시 망원경에 눈을 가져다 댔다. 저 멀리 길바닥에 처참히 널 브러진 레몬의 잔해가 보였다.
“짜증 나네……『
남자가 성가신 듯 제 머리를 헝클 어뜨렸다. 적갈색 머리칼이 이마 위 로 어지럽게 흩어졌다.
“아리엘 윈스턴
남자는 세드릭 에반스의 손목을 쥔 채 정신없이 달려가는 여자의 뒷모 습을 바라보았다.
어찌나 격렬히 달리고 있는지 화사 한 금발이 허공에서 휘날리고 있었 다.
“가르시아.”
“네, 단장님.”
“십 년 전, 아버지가 실험체들을 납치했을 때. 아리엘 윈스턴은 포함 되어있지 않았던 게 확실하지?”
“그렇습니다.”
“그럼 더더욱 이상하네. 성흔이 없 는 거야 그냥 우연이라 치고…… 어 떻게 마계 향을 맡자마자 바로 알아 챌 수 있었던 거지?”
물론 마계 향 자체가 인간에게 불 쾌하게 이질적인 냄새긴 했다.
하지만 아리엘 윈스턴은 마치 마계 향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냄새 를 맡자마자 곧장 세드릭의 코에 레 몬을 들이댔다. 그리곤 세드릭의 손 을 붙잡은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났다.
그건 그녀가 마계 향이 그에게 어 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것을 뜻했다.
“이상하네…… 음. 이상한 여자야.”
남자가 고개를 갸웃했다.
“의뢰인에게는 어떻게 보고할까 요‘?”
가르시아의 물음에 남자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더 기다리라고 해.”
“알겠습니다, 단장님. 하지만 이미 의뢰인의 재촉이 상당합니다.”
“뭐? 돈 냈으면 가만히 기다리면 되지 왜 재촉질이야? 정신 사납게. 다음에도 그러면 그냥 죽여버려.”
“하지만, 의뢰인은……,”
남자가 귀찮다는 듯 가르시아의 말 을 끊었다.
“뭐 어때. 제국엔 황자가 일곱 명 이나 있잖아. 한 명쯤 죽여버려도
대체품은 많다고.”
안 그래?
되물은 남자가 킥킥거리고 웃었다.
“황자는 대체할 수 있는 물건이 아 닙니다, 단장님. 후환이 클 겁니다.”
“으, 그래. 그래. 그냥 해본 말이 야. 고지식하긴.”
성가시다는 듯 중얼거린 남자가 어 깨를 으쓱였다.
“좋아. 우리 고객님께 전해. 재촉하 지 않아도 세드릭 에반스는 반드시 파멸할 거라고.”
“예. 단장님.”
가르시아가 정중히 고개를 조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