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화〉
“맙소사.”
마담 로잘린이 입을 가렸다.
“이건…… 이건, 제가 상상했던 그 대로군요.”
짝, 짝, 짝. 그녀가 박수까지 쳤다.
나는 다소 호들갑스러운 반응에 웃 으며 거울 속 스스로를 돌아보았다.
‘흠.’
괜찮네.
나는 마담 로잘린을 돌아보았다. ‘봄의 제전’때문에 괜찮은 디자이너 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명성이 알려진 디자이너들은 죄다 다른 영애의 드레스를 만들기 바빴 다.
고민 끝에 나는 아직 이름이 알려
지지 않은 신예 디자이너를 택했다. 포트폴리오만 보고 내 감을 믿으며 고용한 디자이너인데, 결과물을 보 니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마담 로잘린이 감격스레 제 뺨을 감쌌다.
“실험적인 색상이라 걱정했는데, 웬걸요. 레이디의 선택이 탁월했군 요. 이건 정말 레이디가 아니면 소 화할 수 없는 색깔이에요!”
마담 로잘린이 계속해서 자신의 작 품에 찬탄을 금치 못했다.
자기 자신에게 자부심 넘치는 장인 은 언제나 귀여운 구석이 있다. 나 는 픽 웃으며 그녀에게 인사했다.
“고마워요, 마담. 제 주문을 확실히 들어 주셨네요.”
“실례지만, 레이디! 어느 파티에 참석하시려는 건지 알 수 있을까 요?”
나는 속눈썹을 팔랑이며 웃었다.
“봄의 제전이요.”
마담 로잘린의 눈이 커다래졌다.
“봄의 제전에 초대받으셨군요! 굉 장해요. 그해 사교계에서 가장 주목 받을 만한 레이디들만 초대받는 곳 이잖아요?”
“하하, 운이 좋았죠.”
“에이. 운으로 드나들 수 있는 곳 이 아니잖아요? 겸손하기도 하시지! 아, 그래서 이렇게 파격적인 색상의 드레스를 주문하신 거로군요?”
로잘린이 내 드레스를 가리키며 말 했다.
나는 전신거울 속 내 모습을 바라 보았다.
드레스는 전체적으로 뒤집은 꽃봉 오리 모양을 하고 있었다. 최신 유 행을 완벽히 반영한 디자인이었다.
유행을 따르지 않은 건 딱 하나. 드레스의 색깔이었다.
푸른색과 보라색의 오묘한 조화. 강렬한 청자색에는 시선을 한눈에 잡아끄는 매력이 있었다.
“색이 참 잘 나왔어요. 아이리스 염료는 거의 사용해본 적이 없어서 걱정했는데, 이렇게까지 선명히 나
올 줄이야.”
로잘린이 흐뭇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참 우리가 드레스에 대한 칭찬을 주고받을 때였다.
“아리엘 아가씨! 손님이 오셨어 요.”
리나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 다. 손님? 가게 문은 닫아 두었을텐 데?
“아가씨께 배송된 물건이 있나 봐
요.”
“응? 물건을 주문한 적이 없는 데……
나는 의아한 표정을 짓곤 로잘린에 게 잠시 양해를 구했다.
현관문을 나서자, 의외의 손님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실례합니다. 아리엘 윈스턴 님이 맞으신지요?”
“네, 제가 아리엘 윈스턴입니다만.”
“안녕하십니까, 아리엘 님.”
깔끔하게 정복을 차려입은 남자가 정중히 인사했다. 마주 인사하면서 도 얼떨떨했다. 대체 누구지?
의문은 곧 풀렸다.
“레이너 백화점에서 주문하셨던 물 건을 전달 드립니다.”
“네? 주문한 물건이라쇼?”
나는 눈을 깜빡거렸다. 그때 산 건 고급 와인 한 병뿐이었고, 그마저도 에른이 직접 에반스 저로 가지고 갔 다. 목걸이에 예약을 걸어두기는 했 지만 아직까지 따로 연락이 온 건
없었다.
내가 의아해하는 동안 남자가 가지 고 온 물건의 포장을 풀었다.
굉장히 아름다운 포장지였다. 남자 의 손에 해체되는 것이 아까울 정도 로.
그 예쁜 포장지 아래에서, 의외의 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건?”
짙은 군청색의 벨벳 상자.
나는 더 어리둥절한 기분이 되었 다. 척 봐도 안에 값비싼 것을 담고
있을 것처럼 생긴, 아주 고급스러워 보이는 상자였다.
남자는 친절히도 상자를 직접 개봉 해 주었다.
상자가 입을 벌리고 그 안의 어둠 이 햇빛 아래 드러난 순간, 나는 살 짝 숨을 삼켰다.
“……아.”
나는 벨벳 상자 속에 얌전히 담긴 목걸이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사흘 만의 재회였다.
연자수정 목걸이는 유리 상자 안에
갇혀 있을 때만큼이나 아름답게 빛 을 발하고 있었다.
나는 홀린듯 목걸이로 손을 뻗었 다. 꽃향기를 머금은 듯 아름다운 보석이 내 손 안에 담겼다.
목걸이 중앙의 보석을 들추자, 그 아래 있던 쪽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영수증인가? 아니면 가격표?’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작은 쪽지 를 펴 보았다.
깎아낸 듯 유려한 필체가 그 안에 적혀있었다. 내용은 단 두 단어였다.
‘도움이 되기를.’
발신인은 적혀있지 않았다.
하지만 이 깎아지른 듯한 필체는 내게 지문이나 마찬가지였다.
의심할 필요 없는 세드릭의 것이었 으니까.
나는 다시 한 번 목걸이를 내려다 보았다. 세드릭 에반스의 깜짝 선물 을.
“어머나!”
어느새 내 뒤로 다가온 로잘린이 외쳤다.
“이건 레이너 백화점에서 전시 중 이던 목걸이잖아요? 제가 아무리 팔 라고 사정을 해도 전시 중이라고 거 절해서 기억하고 있어요!”
로잘린의 발랄한 목소리가 지금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쪽지를 앞뒤로 뒤집어 보았 다. 적혀있는 건 분명 ‘도움이 되기 를’이란 짤막한 문구가 전부였다.
어떤 생색도, 과시도 없었다.
쪽지를 살펴보는 동안에도 연자수 정은 계속해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쓰 # 호
“음, 아니야.”
미간을 찌푸린 채로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건 아니야. 조금 더 보랏빛이 짙게 도는 건 없나요?”
“아, 예! 물론 있습지요.”
보석상이 얼른 들고 온 거대한 가 방을 뒤졌다. 리나가 다가와 속삭였 다.
“아가씨, 아가씨가 이렇게 공들여 보석을 고르시는 건 처음 봐요.”
“중요하니까, 이번 기회는.”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동시에 저 멀리서 통신용 수정구가 빛을 발했 다.
‘ 샤를로트?’
먼 남쪽 나라로 휴양을 간 샤를로 트와 나는 요즘 며칠에 한 번씩 꼭 수정구로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다.
나는 보석상이 새로 건넨 반지를 들고 수정구 앞으로 향했다.
[아리엘 양!]
“샤를로트 양. 잘 지냈어요?”
그렇게 물으며 나는 반지를 흔들어 보였다. 샤를로트가 얼른 눈을 빛냈 다.
[뭔가요, 새 장신구? 예쁘네요. 가 운데 보석은 탄자나이트 아닌가요?]
“맞아요.”
나는 반지를 내려다보았다. 기다란 동그라미 모양으로 세팅된 탄자나이 트는, 푸른색과 보라색 사이의 오묘 한 빛깔을 내뿜고 있었다.
[예쁘네요, 독특하고! 아리엘 양이 랑도 잘 어울려요』
안목 좋은 샤를로트에게 통과를 받
았으니 더 볼 필요는 없었다. 나는 보석상을 돌아보고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아, 그나저나 아리엘 양. 이번 봄 의 제전에 참여하신다고 하셨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내내 진이 빠지도록 드레스와 보석을 고 른 이유는 오직 그 연회 때문이었으 니까.
[그쪽 관련해서 소식을 하나 들었 어요. 이번 참석객에 관련된 건데
요.]
샤를로트가 비밀스레 속닥거렸다. 절로 몸이 수정구 쪽으로 가까워졌 다.
“ 뭔가요?”
[델레이나 황녀께서 참석한다더군 요. 아카데미 수학을 마친 모양이에 요.]
델레이나 황녀라면, 분명 근 몇 년 간 제도를 비우고 있었지. 그게 아 카데미 때문이었나 보다.
“황녀님이 사교계 복귀 무대로 봄 의 제전을 택한 거군요?”
[그런 모양이에요.]
잘 됐어. 나는 눈을 빛냈다.
황녀가 몇 년 만의 사교계 복귀 무대로 봄의 제전을 골랐다면 평소 보다 더 많은 관심과 화제를 불러올 것이다.
:……그렇게 기뻐요? 델레이나 황 녀님과 친분이 있었나요, 아리엘?]
“응? 아뇨. 한 번도 뵌 적 없는 분
이에요.”
[그런데 그렇게 함박웃음을 짓는다 고요?]
아차, 표정 관리.
나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곤 수정구 를 향해 배시시 웃어 보였다.
[뭔가 재밌는 계획을 꾸미고 있는 것 같은데.]
샤를로트가 눈을 가늘게 떴다.
나는 모르는 척 시치미를 뗐다.
“그런 것 없는데요.”
[흐음, 그래요. 옆에서 구경하지 못 하다니 아쉽네요. 벌써 내일이죠? 재밌게 다녀와요, 아리엘. 음, 그나 저나, 황녀님 말인데요.]
아직 델레이나 황녀에 대해 할 말 이 남아 있었던 걸까?
나는 의아한 얼굴로 샤를로트를 바 라보았다. 샤를로트가 고개를 저었 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뭐예요. 말을 하다 끊는 건 아주 잔인한 버릇인데요.”
그러나 그 순간 초인종이 울렸다. 내 향수병을 제작해주는 크리스탈 장인이었다. 내일 있을 봄의 제전을 위해 준비한 향수병이 준비된 모양 이었다.
[잘하고 와요, 내일!]
나는 웃으며 샤를로트에게 손을 흔 들어 보였다.
보 쏘 누
‘봄의 제전’은 매년 그 화려함을 경신하기로 이름이 높았다.
처음엔 제노스 후작 부인이 측근들 과 함께 하는 살롱 파티에 불과했 다. 그러나 제노스 후작 부인은 물 론, 측근들 역시 사교계와 패션계에 서 한가락씩 하는 인물들인 덕분에 파티는 금세 몸집을 불리기 시작했 다. 앙리에타 제노스가 매 해 작년 보다도 뛰어난 파티를 주최할 수 있 었던 이유였다.
그리고 그건 을해 역시 마찬가지였 다.
온갖 희귀한 봄꽃으로 꾸민 홀에 손님들이 감탄을 감추지 못했다. 모 두들 제노스 후작 부인이 올해 역시 역대급 파티를 갱신하는 데 성공했 다며 수군거렸다.
참석하는 귀족들의 리스트 역시 호 화로웠다. 사교계에서 이름이 조금 이라도 났다 싶은 영애라면 모두 빠 짐없이 홀에 모습을 드러냈다.
“어머나. 오늘 눈부시게 아름다우 세요, 베르타 영애.”
“감사해요, 영애야말로 굉장히 아 름다운 드레스를 입으셨군요! 새로 맞추신 거죠?”
영애들이 삼삼오오 모여 사교의 꽃 을 피웠다.
몇몇은 샤를로트의 부재를 아쉬워 했다. 매년 더 아름다워지는 샤를로 트를 구경하는 일은 파티의 즐거움 중 하나였으니까.
“대신 새 얼굴이 참석한다는데요?”
“어머, 정말요? 이번에 데뷔한 영 애인가? 흐음, 제노스 부인께서 초 대장을 보낼 만큼 눈에 띄는 데뷔탕 트가 있었던가?”
“누구일까? 궁금하네요.”
까쓰'4 요정#슈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