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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드의 괴물 러닝백-258화 (에필로그) (258/258)

< 에필로그 >

에필로그

미국에서 미네소타는 꽤 유명했다.

'1만 호수의 땅'이란 별명처럼 공식적으로 집계된 호수가 1만 개가 넘는다.

또 미국 50개 주에서 4번째로 평균기온이 낮을 정도로 무척 추운 곳이기도 했다.

아이스하키가 가장 인기 있는 주로도 유명했다.

그러나, 지금에 있어 미네소타를 부르는 별명은 딱 하나다.

"미국 축구의 시작점"

미국 역사상 최초로 월드컵 우승을 이룩한 세대.

제퍼슨 리, 산티아고 차베즈, 제임스 로드릭이 동시에 출현한 장소였다.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도 미스테리한 일이다.

"제퍼슨 리라는 선수가 갑자기 출현한 것도 불가사의한 일이야."

"그런데 발롱도르 2위만 8번을 한 산티아고도 같이 나왔고, 맨유의 레전드 제임스 로드릭도 나왔지."

"더 놀라운 건, 미네소타는 90%가 백인이야. 10% 중에 히스패닉과 아시아계는 얼마 없단 말이지. 하필 얼마 없는 비율 중에 제퍼슨과 산티아고가 나타났어!"

그야말로 기적과 우연이 겹쳐진 일이다.

하지만 훗날 전문가들은 이렇게 분석했다.

"세 명의 재능을 모두 발견하고, 그걸 끌어낸 사람이 있으므로 그렇다!"

세명이 갑자기 나타나는 건 불가능한 일이란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결국엔 숨겨진 재능을 찾아내고 키워낸 사람이 있다는 게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누구인가?

"가장 위대한 불독!"

"Great bulldog!"

미네소타의 한 하이스쿨의 무명 감독.

불독, 질리먼 코치.

그가 주목받을 수밖에 없었다.

고등학교의 보잘것없는 축구팀에서,

제임스 로드릭을 발굴했고.

풋볼팀에 있던 제퍼슨 리를 찾아냈으며, 이민자 가정이라 기죽어 있던 산티아고를 직접 불러온 위대한 감독.

그래서 그의 별명이 위대한 불독이었다.

실제로 얼마전 개봉한 제퍼슨 리의 할리우드 전기 영화 'No.9'가 공전의 히트를 했다.

영화 초반에는 제퍼슨이 축구를 시작하는 부분이 있는데,

축구에는 전혀 관심도 없던 제퍼슨을 질리먼 코치가 숨겨진 재능을 파악하고 그를 어떻게든 축구로 이끄는 모습이 나온다.

이 영화는 워낙 대단한 히트를 쳐서, 대다수의 미국 시민들이 그것을 진실로 받아들였다.

물론 이 같은 내용을 본 제퍼슨은 그저 웃음을 터뜨리며 이렇게 말했다.

"질리먼 코치는 은사중에 최고입니다."

어찌 됐든 그게 사실이든 진실이든 간에.

많은 사람이 질리먼 코치가 제퍼슨의 축구 시작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걸 부정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제퍼슨 리, 산티아고, 로드릭을 키워냈다. 그가 없었다면 월드컵 우승도 없었을테고, 지금의 미국축구도 없다!"

"위대한 불독! 그가 미국 축구의 아버지다!"

미국 축구의 아버지.

질리먼 코치는 실제로 이 말을 부담스러워 했으나,

그 영화 때문에 그는 실제로 그런 대접을 받았다.

그리고 오늘날.

'미국 축구의 아버지, 이곳에 잠들다.'

노령의 나이에 그는 세상을 떠났다.

"제퍼슨이다!"

"산티아고도 왔어. 오, 로드릭도!"

"정말 위대한 불독이 맞나보군. 저 셋을 한자리에서 볼 줄이야."

장례식장에 참석한 사람들은 눈을 빛냈다.

50대에 접어든 제퍼슨은 여자축구계에서도 은퇴한 로렌과 함께, 아장거리는 작은 아이의 손을 잡고 장례식에 참석했다.

그뿐만 아니라 산티아고와 로드릭도 조용히 참가했다.

"안녕, 주니어!"

산티아고와 로드릭이 제퍼슨의 손을 잡은 아이를 보며 빙긋 웃었다.

아이는 쑥스러운 듯 제퍼슨의 다리 뒤로 숨었다.

"애가 부끄럼이 많아."

"그러네. 아빠 안 닮았는데?"

"뭐, 나중에 올리버라도 불러서 능청떠는 것좀 배우게 해야 하나봐."

"그거 위험하다."

"응?"

산티아고의 말에 제퍼슨이 고개를 갸웃했다.

"자칫 이상한 물 들라."

"아냐. 우리 아기 착해서 올리버처럼은 못 돼."

"일단 너무 잘생겼잖아! 애기인데도 이런데, 더 크면 얼마나 잘생기겠어!"

산티아고의 창찬에 제퍼슨과 로렌은 그저 웃었다.

아이는 확실히 귀여웠다.

로렌이 은퇴할때쯤, 제퍼슨이 40대에 접어든 뒤에야 가진 아이이기 때문에.

아이는 제퍼슨 부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잘 크고 있었다.

뭘 해도 귀여운 나이지만, 실제로 진짜 귀엽고 잘생겼다. 더 크면 인기도 꽤 많을 게 분명했다.

아무튼, 제퍼슨과 친구들은 장례식장에서 조의를 표했다.

산티아고와 로드릭은 고등학교때 친했던 친구를 만났는지 따로 떨어져 나갔다.

그때, 제퍼슨에게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제프! 오랜만이야!"

제퍼슨이 사람을 올려다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이번에는 천하의 제퍼슨도 고개를 올렸다.

2m가 훨씬 넘는 신장. 육중한 덩치. 흡사 코디악 베어를 보는듯한 인상.

제퍼슨은 나이든 얼굴을 보고 겨우 기억에서 그의 이름을 찾아냈다.

"조세프!"

"하하하. 기억하네? 이게 몇 년만이지?"

수십년만이다.

제퍼슨은 그의 손을 꽉 잡았다.

그러니까 제퍼슨이 축구로 전향하기 전.

러닝백으로 뛰던 미식축구팀의 주장이자 쿼터백, 조세프였다.

물론 현재의 제퍼슨은 그때의 기억이 아주 짧고, 추억이 많지 않긴 했지만.

그가 축구로 전향할 때 경기장까지 찾아와 응원해주던 친구가 조세프였다.

때문에 제퍼슨도 그를 기억해냈다.

"아, 잠깐 얘기하고 있어요. 저 애기랑 산책 좀 하고 올게요."

로렌이 눈치껏 아이의 손을 잡고 자리를 피해줬다.

"호. 훌륭한 와이프인데."

"아름답기도 하지."

"하하하. 잘 지냈지?"

"물론이야, 조세프. 네가 불독의 장례식장에 올 줄은 몰랐는데. 풋볼팀은 축구팀 싫어했잖아?"

"그것도 네가 떠났을때만 그랬지. 이후로는 우리도 좋아했어."

"좋아했다고?"

"불독이 많이 유명해지고, 여기저기서 후원이 들어왔거든. 근데 그걸 독점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다른 스포츠 팀에게 지원해주더라고. 풋볼, 야구, 농구, 아이스하키. 우리쪽도 불독 덕분에 장학금 받은 친구도 있고. 그래서 다 그를 좋아했어."

"아, 그랬군."

제퍼슨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험상궂은 외모와는 달리, 질리먼 코치는 훌륭한 사람이었다.

제퍼슨은 한동안 조세프와 얘기를 나눴다.

그러다가 문득, 조세프 뒤에 한 사람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저 양반이 여길 왜?"

제퍼슨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 조세프가 '아'하고 소리를 냈다.

"저 사람, 그 사람이잖아. 메이저리그의 갓질라(GODZilla)."

제퍼슨의 말에 조세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메이저리그의 갓질라(GOD+Gojirea)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역대 최고의 투수.

제퍼슨이 그의 얼굴을 잘 아는 이유는, 그가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한국인 출신으로 메이저리그를 지배한 사실에, 야구는 전혀 모르는 제퍼슨도 꽤 관심을 가진적이 있었다.

"아하. 쟤도 우리 학교 출신이잖아."

"뭐?"

"정확히는 풋볼팀 출신이지."

"응?"

"너 토론토로 가고. 쟤가 입학하고 풋볼팀에 왔어. 아시안 최초로 슈퍼볼의 쿼터백이 되겠다고 포부를 밝힌 녀석이었고, 실력도, 피지컬도 괴물이었지."

제퍼슨이 떠난 후 일이기에 전혀 몰랐던 사실이다.

"그러고보니 풋볼팀의 괴물 두명을 다 뺐겼군. 축구팀엔 너를, 야구팀엔 저 녀석을."

"왜 빼앗겼어? 슈퍼볼에서 뛰고 싶다면서?"

"글쎄. 좀 이상하긴 한데. 쟤가 오토바이를 타다가 손목 부상을 당했거든."

"끔찍하군."

"그렇지. 공을 잘 던져야하는 쿼터백이 손목 부상이라니. 아무튼, 그래서 한동안 낙담했다가 기도를 간절히 했나봐."

제퍼슨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본인도 부상을 당하면 신께 늘 간절히 기도했으니까.

"그런데 어느날 얘기하더라고. 손목이 다 나았다고."

"응?"

"근데 이상한 말을 해. 자기가 기도할 때, 손목 낫게 해주고, 공 잘 던지게 해달라고 기도했대. 쿼터백에게 그것만큼 중요한 능력이 어디있어?"

"응."

"근데 신이 기도를 이상하게 들어줬다나. 뭐,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 능력이 투수할 때 제대로 써먹을 수 있는 능력이라고. 신이 미쳤다고 욕을 하더니, 야구팀으로 가버렸어. 그 녀석도 참 또라이 같았다니까."

"······."

조세프는 말을 끝내고 제퍼슨의 표정을 보고 순간 멈칫했다.

그 어느 때보다 굳은 얼굴의 제퍼슨.

조세프는 순간 자신이 무슨 말실수를 했나 생각했지만, 제퍼슨이 기분 나빠할 만한 소리는 없었다.

기껏해야 또라이 정도?

"조세프. 얘기 좀 더 해봐."

"으응?"

"갓질라에 대해서 말이야."

"으음. 갑자기 왜?"

"그냥, 궁금해서."

"뭐······하여튼. 갓질라라고 메이저리그에선 불리는데, 사실 그 전에 데뷔하기 전에 불리던 별명이 있었지."

조세프는 제퍼슨과 함께 벤치에 앉은 뒤에 말을 이어갔다.

"자. 얘기해줄게. '마운드의 괴물 쿼터백'이 메이저리그를 지배하게 된 이야기 말이야."

< 에필로그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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