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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드의 괴물 러닝백-251화 (251/258)

< 외전 20. 제퍼슨 연대기 (2) >

미국에서 축구의 인기는 날이 갈수록 상승 곡선을 그렸다.

꾸준히 관중과 시청률이 향상되더니, 2022 카타르 월드컵 우승을 기점으로 폭발적 성장을 이뤘다.

거기에 곧장 4년 후 안방에서 북중미 월드컵이 개최됐다. 성적은 8강에 그쳤지만, 이미 미국 사회가 축구에 흠뻑 매료되기엔 충분했다.

팬들의 관심의 시작은 당연히 제퍼슨의 첼시였다.

하지만 제퍼슨이 맨시티로 이적한 이후 변화가 나타났다.

해외축구를 즐기는 축구팬들이 늘어났다.

유럽 축구까지 챙겨 볼 정도로 열정적인 팬이 생긴다는 것.

'매니아'들이 대거 나타나고 있단 의미다.

그들은 곧 유럽 축구로 만족하지 못했다. 관심은 주위로 향했다. 직접 경기를 관람할 수 있는 미국 리그, MLS의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바로 이 순간이, MLS가 유럽 4대 리그에 이은 축구 리그로 성장하는 시기였다.

실제로 MLS는 질적, 양적으로 성장했다.

"샐러리캡? 이런 건 버려야 합니다!"

"드래프트제도요? 아닙니다. 유럽 축구를 벤치마킹 해야죠!"

"전 세계의 축구 리그는 기본적인 뼈대가 비슷합니다. 우리만 조금 튀죠."

"미식축구, 농구, 야구처럼 우리가 주도하는 스포츠가 아니에요."

"미국 축구가 발전하기 위해선, 유럽 축구를 모태로 삼아야 합니다!"

우선 질적인 개선이 이뤄졌다.

MLS만의 독특한 규칙.

샐러리캡(연봉제한)과 드래프트 제도는 유럽 축구를 보던 축구팬들에겐 영 재미가 없는 시스템이었다.

미식축구, 야구, 농구는 미국이 최강이라 궤를 달리한다. 미국의 축구가 세계로 나가기 위해선 변화가 필요했다.

미국 프로축구 협회는 지금 인기가 오르고 있는 시점에서 개선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고, 곧장 개혁에 돌입했다.

"유럽에서 자문관들을 데리고 와!"

"유럽 각 리그 협회 사람들을 고용하자고!"

"이왕이면 코치들이나 감독들, 전문가들 다 데리고 오자!"

그렇게 유럽의 전문 인력들이 우수수 미국으로 수혈됐다.

이들은 곧바로 개선 방향을 정했다.

"샐러리캡 폐지!"

"드래프트제도 폐지!"

"유럽 축구와 유사한 이적 정책 추진!"

일단 축구 분야에서는 유럽이 선진국임을 부정할 수 없다.

미국은 유럽 축구의 시스템을 벤치마킹해서 미국 프로리그에 도입했다.

드래프트 제도와 샐러리캡이 폐지되면서, 미국의 자본가들은 두 눈을 빛냈다.

"돈 많은 축구 클럽? 중국이 최고라고?"

"PSG가 오일 머니로 선수들 휩쓴다는데?"

"중동이 뭐가 메리트가 있어? 돈? 돈은 여기도 많아!"

"뭐 그 정도로 미치진 않지만, 자본력이라면 우리도 만만치 않지!"

애당초 프로 스포츠에 엄청난 돈이 오가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축구의 인기 상승과 더불어, 중장년층에게 인기 있던 메이저리그가 점차 몰락하는 시점.

NBA를 제치고 메이저리그까지 제치면서 MLS는 자본가들에게도 상당히 매력적인 시장이 됐다.

바로 '양적인 성장'이 시작된 것이다.

아직 유럽처럼 FFP룰이 논의되지 않은 시점.

미국리그의 큰손들은 순식간에 세계 축구계에 태풍을 불러왔다.

"뭐? 그 녀석이 미국으로 간다고?"

"아직 24살, 한창인데?"

"바이에른 뮌헨을 거절하고 뉴욕에 간다는데?"

유럽에서 내로라하는 스타들이 미국으로 향한 것이다.

지금까진 은퇴를 앞둔 베테랑, 황혼기에 접어든 스타만 왔던 과거와는 달랐다.

20대의 젊은 유망주, 이미 완성된 스타, 최전성기의 선수들이 미국으로 향했다.

"흥! 그래 봤자 중국 꼴 나겠지."

"맞아. 중국리그가 그렇게 선수 모았다가 월드컵도 실패하고 망했잖아?"

"중동이나 중국이나, 미국도 똑같은 짓 하는군!"

유럽 축구 관계자들은 부정적인 반응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놓친 점은, 미국이란 무대가 절대 중동과 중국과 비교조차 되지 않는 장소란 곳이다.

"미국이잖아?"

"익숙하지 않은 낯선 아시아의 중국? 사막과 종교도 다른 중동?"

"받는 돈이 엇비슷하면 당연히 미국 가는게 맞지 않아?"

단지 미국이란 무대가 엄청난 메리트였다.

그 때문에 많은 스타가 몰려들었다. 엄청난 연봉은 중동과 중국에 비교해 조금은 적지만, 미국이란 배경 하나만으로 약간의 연봉 차이는 무시할 수 있었다.

단순히 유럽 스타들만 모은 게 아니다.

"아메리칸 드림!"

"너 공 좀 찬다면서? 미국으로 가 봐!"

"유럽으로 가야 하는 거 아니야?"

"유럽도 유럽이지만, 그래도 미국이 낫지 않아?"

바로 중남미 유망주들의 대거 미국 진출이 시작된 것이다.

온갖 유망주가 득실대는 멕시코,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등 기타 국가들.

그들은 유럽으로 향하기보단, 미국으로 가길 더 선호했다.

하물며 돈까지 주지 않는가?

심지어 몇몇 중남미 유망주들은 시민권을 따고 귀화까지 할 정도였다.

이 부분에서 몇몇 비평가들은 중국의 예를 들며 비판했다.

"흥. 중국처럼 국가대표를 브라질 2군으로 채우려고?"

그러나 미국의 반응은 쿨했다.

"뭐? 자기가 노력해서 시민권 따는 건데 뭐가 문제야?"

"미국은 이민자들의 나라야!"

이미 산티아고라는 예가 있으므로 거부감은 적었다.

프로축구 구단은 싹수가 보이는 정도가 아니라 실력이 확실한 선수들이 원하면, 시민권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질적, 양적인 성장을 이루는 가운데.

걱정하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이건 미국 프로축구의 발전이지, 미국 축구 자체가 발전하는 걸까?"

가령 중국처럼 리그 수준은 높아지지만, 국가대표 수준은 오히려 제자리걸음을 걷는 게 아니냐는 뜻이다.

하나 유럽 스타들, 중남미 유망주들을 대거 끌어모은다고 해서, 온통 외국인으로 가득 차는 건 아니었다.

"저는 제퍼슨을 보고 축구를 시작했죠."

2030시즌. 미국 프로축구 MVP를 수상한 마이크의 인터뷰가 현재 미국 추축구의 미래를 보여 줬다.

제퍼슨의 활약을 보고 축구로 전향한 수많은 스포츠 유망주들의 등장.

일명 '제퍼슨 키드'들의 탄생이었다.

"제퍼슨이 첼시에서 활약하기 했을 때, 저도 고등학교 팀의 러닝백이었죠. 그날로 곧바로 축구장으로 달려가 외쳤습니다. 축구가 하고 싶다고요."

비단 마이크뿐만 아니다.

엄청난 스포츠 인재들이 득실거리는 게 미국이다.

단지 그들이 NFL(미식축구), NBA, 메이저리그, 아이스하키로 먼저 빠졌을 뿐.

그런 이들 대다수가 제퍼슨을 보고 감명받아 축구로 향했다.

20년쯤 축구를 시작한 유망주들이 2030년부터 기지개를 켜고 미국리그에서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저 선수를 영입합시다!"

"음! 몸값이 너무 비싸요."

"주급도 장난 아닌데요?"

하루가 다르게 튀어나오는 미국 국적의 유망주. 유럽 구단의 스카우터들이 눈이 벌게질 정도였다.

하나 이미 연봉 체계에서 유럽 리그보다 더 높게 받고, 배경마저 좋은 미국과 이적 경쟁을 펼치긴 힘들었다.

2030년대에 들어서서 미국 프로축구는 유럽 4대 리그에 필적하는 리그로 발전했다.

일부에서는 4대 리그중 하나인 프랑스 리그보단 낫지 않냐는 의견이 종종 튀어나왔다.

"솔직히 말하자고. 프랑스 리그는 파리하고 모나코 빼면 우리가 낫지 않냐?"

"당연하지."

"생각해 보자. 미국리그는 늘 어떤 팀이 우승할지 모르잖아?"

"역사는 짧아도 상향평준화 됐지. 모든 구단이 돈을 풀고 있으니까."

이 같은 자신감은 FIFA 클럽월드컵에서 나타났다.

클럽월드컵은 개편되어, 각 대륙대회 우승팀만 참여하는 이벤트성 대회에서 전 세계 24개 클럽이 참여하는 큰 대회가 됐다.

이 대회에서 북중미 우승팀인 미국 클럽들이 준우승 또는 3위의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이다.

물론 우승은 못 했지만 사실상 우승이나 다름 없지 않나?

"제퍼슨의 맨시티는 빼야지!"

"어차피 우승컵 주고 시작하는 대회인데 뭘."

"그걸 어떻게 이겨?"

"맨시티 빼고 나머지 유럽팀들을 이긴 적은 많잖아?"

이젠 미국 프로축구가 유럽 축구에 필적했다는 건, 더는 거짓이 아니었다.

그런 미국인들의 자부심은 제퍼슨으로 인해 정점에 달했다.

"올해 발롱도르는 누가 탈까?"

"미친 새끼!"

"뭐라고? 왜 욕이야?"

"한심한 놈아! 그걸 질문이라고 해? 당연히 제프잖아!"

2022년부터 2030년까지.

딱 한 번 빼고 발롱도르를 독식한 건 바로 제퍼슨 리였다.

9년 동안 음바페가 1회 수상했던 걸 제외하면, 무려 8번이나 발롱도르를 수상한 기염을 토한 것이다.

하물며 현재 31살.

적어도 3~4년은 충분히 뛸 수 있는 체력과 피지컬을 유지 중인 제퍼슨이니, 앞으로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울 게 분명했다.

미국 축구팬, 아니 시민들은 그런 제퍼슨을 자랑스러워했고, 영웅처럼 아꼈다.

그런 이들이니 2031년 발롱도르 수상을 누가 할 것 같냐는 질문 자체가 멍청한 물음이었다.

그러자 물음을 던진 남자가 억울하단 표정으로 소리쳤다.

"아니, 설마 내가 그걸 물어봤겠어?"

"응?"

"남자 발롱도르 말고 여자 발롱도르!"

"여자?"

"올해 여자 월드컵 미국이 우승했잖아? 그러면 역사상 최초로 우리나라에서 남녀 발롱도르를 다 받을 수 있는 거 아니겠냐고!"

소위 '국뽕'이 터져 나오는 해.

2031년.

미국은 두 명의 발롱도르 수상자를 배출했다.

***

"그거 알아? 이젠 축하한다는 말도 지겨울 정도야."

난 풀리시치의 말에 그저 빙그레 웃었다.

레알 마드리드를 떠나 미국 리그에서 뛰고 있는 풀리시치는, 오늘 단지 축하를 위해 여기까지 와 줬다.

아직 레알 마드리드의 원톱인 산티아고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도 그거 한번 들어보고 싶은데."

"어쩔 수 없지. 산티. 네가 제프랑 동갑인 게 죄야. 차라리 5살만 어렸어도 미래를 노릴 텐데."

"올리버는 안 왔나?"

"지도자 교육받느라 바쁠걸?"

"은퇴하자마자 지도자 교육이라니. 은퇴하고 다시 모델이나 사업할 줄 알았는데, 축구인으로 계속 살 줄이야."

"그게 다 제프 덕택이지."

션 올리버는 올해 은퇴했다.

37살.

다른 동료들이 첼시를 떠날 동안, 올리버는 지독하게 첼시를 지켰다.

램파드를 이은 '푸른 심장'이 되었고 첼시의 캡틴으로 남았다.

한때 바람둥이, 게으름뱅이로 통했던 놈이, 여기서 가장 축구에 열정적인 놈이 될 줄이야.

올리버도 보고 싶네. 1년 전에 아들 낳았을 때 봤었으니까. 못 본 지 꽤 됐다.

"그러고 보니 오늘 파티 올 거지?"

"파티?"

"응. 첼시에서 같이 뛰었던 친구들도 온다고. 필마르크 감독도 참석한대."

"맨시티 친구들도 초대했어."

뭐, 파티라.

그래도 축하파티인데 참석은 해야지.

난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대화를 더 나누려던 순간.

귓가에 꽂히는 나긋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안녕하세요."

거기에는 약간 냉한 눈매의 여성이 있었다.

먼저 반응한 건 산티아고와 풀리시치다.

"오, 로렌 모건. 발롱도르 수상 축하해요."

"올해 여자 월드컵도 정말 잘 봤습니다. 우승 축하드려요."

로렌 모건.

2031년 FIFA 여자월드컵에서 미국을 우승으로 이끈 국가대표 선수.

올해 발롱도르 시상식에서 여자 부문 발롱도르를 수상한 대단한 선수였다.

그러고 보니, 미국에서 난리가 났겠군.

한해에 남녀 발롱도르 수상자를 모두배출해 버렸으니까.

아직도 은근히 미국 축구를 무시하는 유럽인들 콧대를 잔뜩 눌러 줬다고 기뻐하겠지.

더 놀라운 건, 아마도 계속 남녀 부문 모두 미국 선수가 받을 확률이 높았다.

나야 아직도 몸이 쌩쌩하고, 더구나 로렌 모건은 올해 딱 스무 살이었으니까.

"축하해요. 로렌. 수상 정말 축하해요. 전 30년 월드컵에 실패했는데, 미국을 이끌고 우승하시다니. 감탄스럽네요."

내 말에 로렌은 미소 지었다. 푹 들어가는 보조개가 인상적이었다.

"여자 축구는 원래 미국이 최강이었으니까요. 오히려 부상자가 많은 미국을 이끌고 준우승시킨 제프야말로 대단하죠. 아, 물론 같이 계신 풀리시치, 산티아고도 정말 존경해요."

로렌은 무척이나 정중했고, 듣기 좋은 목소리를 지녔다.

산티아고와 풀리시치는 한참 후배인 로렌의 칭찬에 살짝 미소 지었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러다가 문득 로렌이 말했다.

"제프, 혹시 낯익은 얼굴이라거나, 어디서 본 것 같다거나. 그런 느낌 안 드세요?"

"네?"

갑자기 무슨 소리야?

로렌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날 뚫어지라 쳐다봤다.

"난 알 거 같은데."

어디서 봤나?

사실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내가 미국 여자 대표팀하고 만난 적이 있어야 말이지. 그렇다고 미국에서 활동하는 시간도 휴식기에 잠깐이니, 만날 일이 없을 텐데.

로렌의 표정과 큰 눈동자를 보면, 분명 날 아는 눈치다.

슬쩍 돌아보니 산티아고와 풀리시치는 한걸음 물러섰다.

뭔가 묘한 분위기란 걸 눈치챈 것이다.

"둘이 아는 사인가 본데?"

"근데 제프는 모르는 눈치?"

"로렌만 일방적으로 아는 거면."

"뭐 옛날에 잠깐 만났었나?"

"잠깐 만났다고? 그게 무슨 소리야. 로렌은 이제 스무 살이야. 옛날이면 미성년인데."

"허억! 이거 뉴스 나가면 안 되겠는데?"

······에휴. 쟤들은 나일 먹어도 변하질 않냐.

"음, 미안해요. 언제 만난 적이 있나요? 뭐, 스포츠 스타들이 모였던 파티 자리나······ 제가 기억을 잘 못 해서요."

내가 조심스레 말하자 로렌은 웃으면서 손바닥을 들어 올렸다.

"토론토FC 시절에, 우리 하이파이브를 한 적이 있어요."

"하이파이브?"

"제가 가지고 온 공에 사인도 해 줬고요."

"사인······ 제 팬······."

"네. 그리고 약속했는데."

잠깐만, 토론토 시절이라면 12년 전이다.

그러면 로렌 모건이 8살이던 시절인데.

무언가 머릿속에 기억이 날랑, 말랑하는 기분이었다.

로렌은 발롱도르 트로피를 살짝 흔들어 보이면서 말했다.

"난, 여자 발롱도르, 제프는 남자 발롱도르를 타고. 시상식에서 만나기로 했었죠. 이제, 기억나요?"

< 외전 20. 제퍼슨 연대기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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