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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드의 괴물 러닝백-247화 (247/258)

< 외전 16. 되찾으러 왔단다. (1) >

"축하해."

런던에서 만난 전 동료들은 팀 성적과 상관없이 유쾌한 모습이었다.

뭐, 아예 영향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오랜만에 만나는 자리에서 기분 나쁜 티를 내진 않았다.

"뭘 축하한다는 거야?"

"리그 우승 말이야. 우리에게서 빼앗아 갔잖아?"

올리버가 눈을 샐쭉하게 뜬다.

음. 사실 빼앗아 갔다기보단······.

"너희가 뺏긴 거지. 토트넘한테 무승부만 해도 우승은 너희 거였잖아?"

사실 토트넘의 승리를 예상한 전문가는 별로 없었다.

그런 예측의 이유는 여럿 있다.

첫째, 첼시는 홈에서 극강의 경기력을 보여 줬다. 그리고 마지막 라운드가 홈경기였다.

둘째, 토트넘은 원정에서 성적이 가장 안 좋다.

첼시가 최소한 무승부를 거둘 수 있으리란 게 일반적인 예상이었다.

하지만 첼시는 처참하게 패배했다.

많은 전문가가 그 원인을 분석했다.

"생각해 보면 첼시가 토트넘에게 압도적인 전적을 유지한 게 제퍼슨이 온 이후부터다!"

"토트넘 상대로 제퍼슨이 터뜨린 골이 최근 10년간 60% 이상을 차지한다!"

"그 말인즉슨, 제퍼슨이 없는 첼시는 토트넘에게 절대적 우세를 유지할 수 없다!"

"제퍼슨이 맨시티로 간 순간부터, 이미 예견된 결과였다!"

이게 그렇게까지 해석이 되나 싶긴 하지만······원래 사람들은 믿고 싶은 것만 믿을 뿐이다.

끝내 시즌을 '무관'으로 끝난 첼시의 분위기는 흉흉했다.

제크 팀장에게 듣기론, 첼시를 떠나기로 한 선수들이 한둘이 아니란다.

"젠장. 올리버, 제프하고 얘기하면 안 된다니까?"

같이 온 산티아고가 툴툴댔다.

잔뜩 성이 난 듯한 산티아고를 좀 달래야겠다.

난 은근한 목소리로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어때? 시즌 최우수 선수에, 득점왕에, 선수들의 올해의 선수상에······4관왕이던가?"

"기자 노조가 뽑은 것까지 5관왕이야, 제프!"

"캬, 산티. 멋진데?"

"그거 놀리는 거지?"

"응?"

"사람들이 그러더라. 제프 없는 첼시는 산티아고가 왕이라고."

"그게 왜?"

"네가 있다면 그 상들을 내가 다 받을 수 있었을까?"

말은 저렇게 해도 악의는 없었다.

산티아고의 눈동자는 그저 승부욕으로 불타올랐다.

"다음 시즌은 몸 관리 잘해. 풀컨디션의 너하고 경쟁할 거니까."

"첼시에 남아서?"

"그건······ 고민이야."

산티아고가 한숨을 내쉬었다.

비단 산티아고뿐만 아니라 이곳에 같이 온 션 올리버, 카이 하베르츠, 마크 우트, 풀리시치들도 다 똑같았다.

거짓말처럼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 침묵을 깬 건 카이 하베르츠였다.

"난 레알 마드리드로 가."

"······!"

"필마르크 감독이 그쪽으로 간다고 날 불렀어."

"사실은, 나한테도 연락이 왔지."

산티아고가 동조했다.

그 말에 옆에 있던 마크 우트와 풀리시치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너희도?"

"뭐야? 너도?"

"잠깐만. 필마르크 감독, 너무하네. 첼시 선수 다 빼가려고 하네?"

잠깐만.

필마르크 감독님이 레알 마드리드로 간다고?

하긴······ 현재 무직 감독 중에 필마르크만큼 명성 높은 감독이 있을까.

3연속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두 번의 유로피언 트레블까지.

그래도 레알 마드리드는 독이 든 성배인데.

뭐, 그래서 첼시 선수들을 데리고 가는 거겠지.

원래 자신이 지휘하던 제자들을 영입하는 건 축구계에서 흔한 일이다.

산티아고, 카이 하베르츠, 마크 우트, 풀리시치까지.

여기 안 온 친구 중에 또 몇이 더 있을지도 모른다.

레알 마드리드의 자금력이라면 다 데리고 올 수 있을 테고.

그렇게 이적 얘기로 한창 떠들 때.

어울리지 않게 침묵하고 있는 선수가 있었다.

"······왜 나한테 연락이 없었지?"

순간 정적이 가라앉았다.

살짝 넋을 놓은 올리버의 얼굴이 눈에 밟혔다. 순간 선수들은 서로 눈치를 봤다.

음.

좀 불쌍한데.

하나 하베르츠는 별 대수롭지 않게 툭 던졌다.

"실력이 모자라서 그렇지."

"뭐!"

"아마 캉테를 데리고 가려고 할걸. 포지션 겹치는 널 택하겠어? 다 네가 부족해서지."

"너······어디 한번 해보자는 거냐?"

"귀찮아. 꺼져, 올리버."

어우. 말 심하게 하는 거 봐라.

그래도 서로 사이가 나쁘지 않다. 하베르츠의 성격이 원래 저렇다. 올리버도 장난스럽게 받아들이고 있고.

그리고 이제 다 서른 줄인데 뭘 이런 거로 유치하게 싸우겠나.

올리버도 부들부들 떨다가 휴우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애써 당당하게 가슴을 쫙 폈다.

"그래, 다들 런던에서 꺼져! 내가 첼시를 지킬 테니까. 보라고. 내가 첼시를 데리고 우승할 테니까."

사실 올리버에게도 여러 구단에서 오퍼가 왔다.

어떻게 아냐면, 에이전시가 나랑 같은 곳이니까.

한데 올리버는 첼시를 떠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이미 결혼까지 하고 자리 잡았으니까. 부인이 런던에서 사업하고 있으니 쉽사리 첼시를 떠나기 어려우리라.

그리고 본인이 첼시에 대한 충성심도 크다.

아마 특별한 변수가 없다면 첼시에 오랫동안 남아 있으리라.

그런데 우승이라······.

저 태연한 척하려는 올리버의 표정을 보면, 놀려 주고 싶다. 이제 서른 줄을 넘긴 선수인데도 말이지.

"첼시가 계속 우승할 수 있을까?"

"응?"

"음. 그냥. 내가 없는 첼시는 영원히 우승 못 하지 않을까 싶어서."

내 말에 모두 입을 쩍 벌렸다.

좀 과한 반응에 나는 급히 말을 덧붙였다.

"아니. 뭐 그냥 농담이야."

"······제프, 그거 끔찍한 저주가 될지도 몰라."

"저주?"

"그래. 네가 하는 말은 지금까지 다 이뤄졌다고."

"에이, 뭘 저주까지야."

내가 별 대수롭지 않게 넘기자, 올리버는 떨떠름한 얼굴로 맥주를 들이켰다.

에이 설마.

내가 이 한마디 했다고, 첼시가 우승을 한 번도 못 하겠나?

메이저리그 시카코 컵스의 '염소의 저주'도 아니고.

벤피카의 '구트만의 저주'도 아니고 말이지.

설마, '제퍼슨의 저주' 같은 게 일어나겠어?

***

맨시티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준비는 비밀리에 이뤄지지 않았다.

물론 자세한 훈련은 비공개였지만, 사실 어떤 포메이션, 베스트 라인업이 어떨지는 다 예측 가능했다.

"제퍼슨 원톱에 프리롤!"

과르디올라 감독은 그렇게 선언했다.

일단 맨시티에 나를 제외하고 파괴력 있는 스트라이커가 없는 게 컸다.

내 파괴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술이 준비됐다.

양쪽 날개에는 베르나르드 실바, 라힘 스털링.

중앙에는 케빈 데 브라이너, 필 포덴.

홀딩형 미드필더에는 로드리.

수비라인은 벤자민 멘디, 라포르테, 에릭 가르시아, 주앙 칸셀루.

골키퍼 장갑은 에데르손이 낀다.

물론 경기가 다가오면 여기서 몇 개의 자리가 바뀔지도 모른다.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힌 선수들은 선발 자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그리고 벤치 선수들은 선발 자리를 쟁취하기 위해 훈련에서 땀을 흘렸다.

훈련은 맨체스터에서 이뤄졌다.

어차피 결승전 경기는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리니까.

선수들은 비장하면서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다.

리그 마지막 라운드는 자력 우승이 불가능한 구조였다.

선수들은 반쯤 비운 마음으로 경기에 임했고, 행운이 따라 줘서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은, 오로지 우리 힘으로만 얻어야 한다.

놀라운 사실은 월드 클래스가 모인 맨시티에 챔스 우승 경험자가 없다는 사실이다.

"다 자네 덕분이지, 제프."

과르디올라의 말에 난 머쓱했다.

오랫동안 번번이 결승 문턱에서 우승을 놓친 선수들.

알게 모르게, 이들에게 결승전이란 자리가 엄청난 부담으로 자리 잡게 됐다.

마치 일종의 트라우마처럼.

내가 끼친 영향력은 두말할 필요 없다.

내가 여기 오기 전까지, 맨시티의 선수들에게 나는······.

"악몽이었지. 지독한 악몽."

과르디올라가 씁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내가 아무리 전술을 쥐어짜 내도, 선수들이 미친 듯이 땀을 흘리고 발을 맞춰도, 끝내는 막지 못했어. 내 제자들이 널 악몽 같은 놈이라고 불렀지."

"음."

"뭐, 이젠 아무렇지 않아. 그 악몽이 같은 팀이 됐으니까, 그치 제프?"

과르디올라는 내 어깨에 힘을 꽉 줬다.

이게 그가 표현하는 신뢰의 방식이었다.

하면 신뢰에 보답해 줘야지.

아무튼, 우리는 결승전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이 와중에 선수들은 잔뜩 긴장했는데, 그러면서 사소한 부상도 발생했다.

이렇다 보니 프론트에서는 무언가 수를 썼다.

"아들!"

"오빠!"

"혀엉!"

그것은 바로 훈련장에 선수들 가족을 초대한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선수, 코치진과 인사했다.

우리 가족뿐 아니라 선수들의 가족이 다 왔다.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이뤄지는 자유로운 훈련.

아이들이 많았는데, 아이들끼리 공 차는 걸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다 선수들의 애들이다. 귀여웠다. 물론 가장 귀여운 건 내 쌍둥이 동생들이고.

선수들의 얼굴에 슬며시 웃음이 떠오르고 긴장감이 사라졌다.

흠.

이런 분위기를 아주 잘 안다.

첼시에서, 우승을 앞두고 느꼈던 분위기.

그 분위기가 다시 한번 느껴지자, 난 확신했다.

'유럽 챔피언, 가능해.'

충분히.

***

율리아겐은 제퍼슨의 '매니저'와 같은 존재였다.

훈련장, 경기장 어디든 따라다녔다.

최근 그런 경향이 더 짙어졌다.

부상 재발을 위해서였다.

물론 그로 얻어지는 데이터도 율리아겐에겐 큰 축복이었다. 그의 지적 욕심을 채워 주는 방대한 데이터.

그것들을 바탕으로 율리아겐은 또 한번 새로운 트레이닝 방식을 연구하고, 짜낼 수 있었다.

"아저씨!"

"응?"

바지 밑단을 쭉 잡아당기는 조그마한 느낌에 율리아겐은 고개를 내리뜨렸다.

바로 제퍼슨의 막냇동생 클라라였다.

제퍼슨의 부상 회복을 위해 미국의 자택에서 같이 지냈던 율리아긴이기에, 클라라도 거부감 없이 그에게 다가왔다.

늘 담담한 얼굴이었던 율리아겐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래, 무슨 일이니?"

"우리 오빠, 이제 아프지 않아요?"

"그럼. 오빠 지금 건강해. 아저씨가 옆에서 도와주고, 오빠도 열심히 운동하거든."

클라라는 배꼽에 손을 올리고 허리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그 모습에 끝내 율리아겐은 웃음을 터뜨렸다.

제퍼슨의 가족은 모두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제퍼슨의 쌍둥이 동생 둘은, 비혼주의자인 율리아겐의 생각마저 흔들 정도로 귀여웠다.

'제프가 막내만 보면 정신을 못 차리는 이유가 있다니까.'

그렇게 흐뭇한 얼굴로 클라라를 바라볼 때.

클라라가 불쑥 말했다.

"나도! 커서 아저씨처럼 될래요!"

"응?"

"아저씨처럼 또또케져서! 울 오빠 안 아프게 해 줄 거에여!"

율리아겐은 저도 모르게 웃었다.

이 귀여운 꼬마는 정말 착했다. 귀엽기도 하고.

"그래? 그럼 아저씨가 하는 거 옆에서 볼래?"

"네! 어······ 부상 직후 근육 조밀도에관한 분석······?"

"뭐? 클라라, 이 단어 읽을 줄 알아?"

"알아요! 뜻은 잘 모르겠지만!"

율리아겐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또래보다 유난히 명석해 보이긴 했지만.

어려운 단어들도 그냥 술술 읽어 낼 줄이야.

율리아겐은 늘그막에 재밌는 취미 생활이라도 생긴 기분으로, 클라라를 곁에 뒀다.

훈련장에 놀러 온 클라라가 율리아겐에게 찰싹 달라붙은 사이.

둘째 유진은 선수들의 자식들과 공을 차며 놀았다.

"우와아앙!"

물론 그 와중에 가장 압도적인 건 유진이었다.

또래보다 훨씬 큰 덩치.

단단한 종아리. 순식간에 파고드는 스피드.

"······쟤 지금 손 쓴 거지?"

"방금은 어깨로 제대로 막았는데?"

"······공을 지키면서 선수의 경로를 어깨로 막았어! 몸을 저렇게 잘 쓴다고? 아니 잘 쓰는 걸 떠나서, 왜 이렇게 애들이 죽을 못 쒀?"

그저 흐뭇한 얼굴로 애기들이 공 차던 걸 보던 선수들의 표정이 점점 딱딱하게 굳었다.

자기 자식들이 유진과 부딪칠 때마다 픽픽 날아가니, 어찌 웃겠는가.

처음엔 장난처럼 보였지만, 상대가 되지 않았다.

보통 애들은 공만 보면 우르르 달려들기 마련이다.

유진은 거의 혼자서 공을 독차지했고, 욕심이 난 애들이 몰려들었다.

마치······.

"저거 우리가 제퍼슨 막을 때랑 비슷하지 않아?"

"그리고 다 튕겨 나오는 것까지 비슷해."

어린아이라고 보기 힘든 단단함.

선수들이 혀를 내둘렀다. 진짜 기가 막힌 건 발기술이었다.

"방금 라 크로케타 쓴 거야?"

"맙소사! 공이 발끝에 붙어 있어!"

"아니, 저 녀석 공을 갖고 노는데?"

어린아이라고 보기 힘든 화려한 기술이 펼쳐져 나왔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브라질의 축구 신동이 아닐까 오해할 정도로.

그 이유는 유진의 주위환경이었다.

유진은 제퍼슨을 가장 좋아했다. 아버지는 제퍼슨의 모든 경기를 다운받아 온종일 TV로 틀어놨다.

애니메이션, 만화, 히어로 영화 그런 거 하나도 안 보고.

아버지가 보는 제퍼슨을 보며 늘 제퍼슨처럼 되고 싶어 했다. 그렇게 혼자서 공을 갖고 놀면서 형이 하는 움직임을 따라 했고, 그게 어느새 발에 붙은 것이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선수들과 코치진은 웅성거렸다.

특히 유소년 담당자는 유진을 보곤 기함해 과르디올라에게 달려갔다.

"저, 저 친구! 우리 유소년팀으로 데리고 옵시다!"

"······안 돼."

"네? 아니. 보십쇼! 저거 재능입니다! 재능! 피지컬, 힘, 그리고 기술까지! 제프가 저기 있잖아요?"

과르디올라가 한숨을 쉬었다.

"아직 3살짜리 어린이를 유소년팀에 어떻게 데리고 오나?"

"······네?"

유소년 담당자는 말을 잃었다. 머릿속에서 회로가 순간 멈췄다. 그는 잠시 당황했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또래, 그러니까 일고여덟 살이 모인, 심지어 열 살이 넘은 애들도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큰 덩치를 자랑하는 놈이.

"세 살이라고요? 지금 저 꼬마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넋 나간 표정을 짓던 유소년 담당자는 이내 시선을 옮겼다.

190cm가 넘고 덩치도 현역 축구선수들에게 밀리지 않는 제퍼슨의 아버지 이성학.

그리고 한쪽에서 흐뭇한 얼굴로 쌍둥이 동생들을 바라보는 제퍼슨 리.

또 날렵하지만 한눈에 봐도 탄탄해 보이는 어머니, 앨런 여사까지.

그제야 유소년 담당자는 탄식을 터뜨렸다.

"미친······ 유전자가 이래도 되는 거야?"

< 외전 16. 되찾으러 왔단다.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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