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필드의 괴물 러닝백-242화 (242/258)

< 외전 11. 제프를 건드려? (3) >

"모두 집중하자고."

라커룸에 들어온 뤼디거가 손뼉을 치며 선수들을 모았다.

선수들은 미묘한 얼굴로 모였다.

외적으로 잡음이 심했다.

바로 어제에는 단장 이하 보드진이 총사퇴했다.

듣기로는 구단의 후원 계약이 갑자기 우수수 끊겼다고 했다.

쉬쉬하지만 이 모든 게 어떻게 흘러가는지 선수들은 알고 있었다.

"제프, 그 자식이라면 이 정도도 약과야."

올리버의 말에 산티아고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국인들이 좀 과격해. 제프가 한 건 뭐 없어. 그냥 기소만 했을 뿐인데. 일을 크게 만든 건 다 제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지."

"후우. 어떻게 되려나."

"자자. 그런 외적인 이야기는 내버려 두자고."

뤼디거가 애써 대화의 흐름을 돌렸다.

사실 여기에 있는 선수들도 다 제퍼슨의 편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팀 내 제퍼슨의 입지는 그 누구도 건들 수 없었다.

단순한 입지뿐만 아니라 제퍼슨은 선수들과의 친화력에서도 압도적이었다.

새로 팀에 들어온 선수들은 제퍼슨과 같이 뛸 수 있단 생각에 들어온 이들이 가득했다.

유스 선수는 모두 제퍼슨에게 한 번이라도 가르침을 받고 싶어 했다.

녹취록까지 터지면서, 제퍼슨이 받은 부당한 대우에 분노한 건 오히려 선수단이었다.

급한 이들 몇몇, 특히 션 올리버와 산티아고는 구단주실을 쳐들어가겠다고 바락바락 소리 지르기도 했다.

하나 모두 프로의식이 투철한 선수들.

수년간 유럽의 절대강자로 군림하며, 프로의식이 철저한 선수들이었다.

애써 참고, 다음 경기를 준비했다.

"여기는 필드고, 우리 유니폼에 달린 건 첼시 엠블럼이야. 제프, 우리의 친구고 동료야. 그건 맨시티로 떠난 지금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필드 안에서는 적으로 만났다."

뤼디거는 단호하게 소리쳤다.

"우리는 첼시를 위해 뛴다. 그게 싫다고? 그럴 수 있어. 그러면 저기서 고통스러워하는 첼시 팬들을 위해 뛰자고. 기억해! 할리 할아버지 같은 사람들이 관중석에 있다고!"

"좋아! 역전극? 그거 우리가 잘하는 거잖아?"

"제프가 없으면 역전할 수 없다고? 누가 그래?"

"보여 주자고! 제프가 없으면 우승 못하는 팀? 개소리야! 우린 빅이어를 향해 간다!"

"걱정 마! 제프는 내가 막을게!"

"······."

마지막 올리버의 말에 순간 라커룸에 침묵이 흘렀다.

하베르츠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올리버. 하나도 안 믿음직한 거 알아? 게다가 오늘 너 교체잖아. 선발은 캉테야."

"꺼져, 올리버."

"너희들 왜 나한테만 이래?"

올리버가 억울한 표정을 지었지만, 선수들은 모두 무시했다.

***

[첼시의 공격이 매섭습니다! 카이 하베르츠의 패스는 언제나 예술적입니다! 산티아고! 산티아고! 산티아고! 리그 득점왕답습니다! 기회를 놓치지 않습니다!]

[첼시! 맨시티 원정에서 빠르게 추격골을 터뜨립니다! 제퍼슨이 없는 첼시지만, 첼시는 강력한 팀이 틀림없습니다!]

[맨시티, 시작부터 과격한 첼시의 공격에 흔들리고 있습니다!]

아무리 제퍼슨이 빠졌다고 한들.

제퍼슨이 빠진 상태에서 챔스 4강, 리그 1위, FA컵 결승전에 오른 팀이 바로 첼시였다.

홈에서 적으로 만난 제퍼슨에 당황해 무참하게 패배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간 그들의 DNA에 새겨진 위닝 멘탈리티.

그것이 화려하게 빛을 발했다.

초반부터 적극적으로 공격하는 첼시.

산티아고가 빠르게 선제골을 터뜨렸다.

그래도 총합스코어 4대 1.

먼 길이지만, 필드에서 제퍼슨은 분명 알 수 있었다.

'분위기다.'

익숙한 분위기와 냄새다.

'승리를 향한 욕망.'

필드에서 들끓고 있는 건 바로 저거다.

자신이 함께 뛰던 그 열기.

간혹 지고 있을 때 터져 나오는 특유의 감정.

역전은 언제나 짜릿하다.

엄청난 대승보다도, 도저히 이길 수 없는 경기에서 만들어 낸 역전극은 어떤 쾌감보다 짜릿하다.

제퍼슨은 간혹 첼시에서 그걸 느꼈고, 지금이 그 순간임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산티아고 저놈. 아주 눈에 불을 켜네.'

터널에서 산티아고가 말했다.

자신은 비록 10번이지만, 9번의 역할을 하겠다고.

그 말은 자신의 빈자리를 메우겠단 의미가 아닌가.

산티아고의 말에 제퍼슨은 웃었다.

하나 그렇다고 해도.

"모두 정신 차리고 집중해!"

제퍼슨은 결코, 친정팀을 위해 봐줄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

만일 올리버가 나왔다면 나는 좀 더 웃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잉글랜드 국가대표가 된 훌륭한 선수지만, 그래도 눈앞의 캉테만큼은 아니다.

집착에 가까운 집중력. 마킹. 천재적인 수비 능력. 엄청난 활동량과 커버 능력.

그 모든 것을 적으로 만나 상대하는 건, 나로서도 꽤 힘들다.

왼발, 오른발.

공을 좌우로 흔들며 팬텀드리블로 벗어났으나, 끈질기게 달라붙는다.

공간을 만들어 패스를 찔러주려고 하니, 귀신처럼 각도를 틀어막는다.

측면으로 있는 힘껏 내달리려니 그 작은 몸으로 부딪쳐 오면서 방해한다.

나에게 부딪쳐 넘어지더라도 온몸으로 내 앞을 막는다.

태클 능력마저 눈부시다.

오늘 캉테의 룰은 오로지 나만 막는 역할.

모든 경기 조율과 공격, 패스는 카이 하베르츠에게 맡긴다.

모든 걸 동원해 '수비'만 하는 캉테는, 월드컵 우승국 프랑스의 핵심 멤버다.

또한 수년간 나와 같이 뛰었다.

연습에서도 늘 날 힘들게 했던 친구다.

캉테는 내 생각을 완벽하게 읽는다.

작은 덩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부리부리한 시선은 내 발끝을 끝까지 노려본다.

"캉테, 너무 악착같이 뛰는 거 아냐?"

"잡담은 사양할게!"

단호한 어조, 빠르게 들어오는 태클.

캉테는 날 아주 잘 안다. 그래서 내 사소한 습관을 노린다.

하나 그렇다고 해도.

캉테가 날 아는 만큼, 나도 캉테를 잘 안다.

그는 나보다 훨씬 가볍다.

아무리 무게 중심이 좋고 의외로 단단해도, 그건 일반 선수와 비교해서다.

나와 비교하면?

빠악!

"컥!"

우악스럽게 어깨를 밀쳐 내며 뿌리쳤다. 캉테는 단발마의 비명과 나자빠졌다.

캉테를 제치고, 멈추지 않고 공을 차며 쭉쭉 내달린다.

시셀도가 입술을 질끈 깨물며 막는다.

회귀 전의 역사에서 '철조망'이라고 불리던 시셀도는 이제 그 명성에 거의 근접했다.

좋은 태클 실력, 수비 위치 선정. 그리고 집요하게 물어뜯는 수비 방식. 걸레처럼 몸을 날리는 투혼.

사실 적으로 만나면 귀찮은 수비수다.

다만 그의 약점도 명확하다.

약점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노릴 수 있는 스트라이커는 세상에서 나뿐이다.

투욱!

"!"

공에 대한 집중력이 집착 수준에 가깝다는 것.

역설적으로, 사람보단 공만 바라본다는 증거였다.

그리고 공이란, 어디로 튈지, 어디로 향하는지 누구도 알 수 없다.

아니.

지금은 오로지 나만 안다.

툿!

발뒤꿈치로 공을 살짝 긁으면서, 동시에 찍는다.

지면과 맞닿은 부분에서 공이 튕겨나간다.

공이 튄다는 건.

방향을 쉬이 예측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시셀도의 눈동자가 동그래졌다. 시선이 오락가락하고 몸이 허둥지둥 움직인다.

바닥에 튕긴 공은 살짝 뒤로, 내 다리사이로 빠진다. 놀란 시셀도가 몸을 날린다.

"어설퍼."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고, 시셀도는 순간 아차한 표정을 지었다.

맞다.

이게 시셀도의 단점이다.

공에 대한 과도한 집착. 이것이 패착이다.

몸을 날려 태클을 한다는 건, 통한다면 나이스 태클이다.

실패한다면?

'수비가 태클을 실패하는 건, 공간을 내주는 거야, 시셀도. 태클엔 신중해야 해.'

과거 내가 했던 조언을 시셀도가 잊은 건 아니리라.

다만.

나를 적으로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으리라.

시셀도의 태클이 허공을 가르고.

슈팅하려던 왼발로 낮고 빠르게.

내 슈팅을 뒤늦게 예상하고 몸을 날린 케파였지만.

적어도 내 슈팅은 일반적인 스피드가 아니다.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낮게 깔리는 공.

쫙 찢어진 발끝을 피해 가볍게 깔려 들어가는 슈팅.

"Yeaaaaaaaaaaaaaa!"

"LEE Will, LEE Will Kill you!"

기세 높던 첼시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동점골.

그리고 5대 1로 앞서나가는 골.

원정 온 소수의 첼시팬들 사이에서 비명과 탄식이 터져 나왔다.

지금의 첼시는 분명 강한 팀이다. 캉테도, 시셀도도 이렇게 무너질 선수가 아니다.

다만.

내가 그들을 너무 잘 알고 있을 뿐이다.

"Blues! Blues! Blues!"

"LEE Will, LEE Will Fuck you!"

맨시티 팬들은 조롱하듯이 내 노래를 불러댔다.

목소리라면 작지 않은 첼시 팬이지만,

내 노래를 듣고 점점 목소리가 줄어드는 건 좀 짠하긴 했다.

하지만 어쩔 수 있나.

이게 축구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인데.

***

[첼시 총합스코어 6대 2로 패배! 제퍼슨 리 1골 1도움!]

[첼시를 무너뜨리는 제퍼슨 리. 냉혹한 승부사.]

첼시가 챔피언스리그에서 탈락한 사실은 첼시 구단에 치명적이었다.

최악의 여론.

팬심이 돌아서고 구단주의 사과와 사퇴를 요구하는 시위까지 격화되는 상황.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진출 실패했다.

2년 동안 챔피언스에 실패한 것이다.

"제퍼슨이 없었지!"

"작년엔 제퍼슨이 다쳐서 우승하지 못했고, 올해는 제퍼슨이 우리를 막았어!"

"이젠 더 이상 우리는 우승을 못할지도 몰라!"

만일 성적이 좋았으면 팬들에게 참을 여지를 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3연속 빅이어를 들어 올렸던 팀이 2년 연속 실패했다.

차이점은 너무나 명확했다.

제퍼슨이 있고, 없다.

차라리 정당한 이유로 제퍼슨이 떠났다면, 이렇게 팬들이 고통스러워하지 않았으리라.

팀이 내우외환으로 흔들리는 사이.

새롭게 부임한 단장과 보드진은 벌써 이적 의지를 드러내는 선수들과 미팅 자리를 가지기로 했다.

주급 체계 조정을 위해 선수단 개편은 각오했었다.

"구단주님. 지금 이 상황에서 산티아고나 풀리시치 같은 선수가 떠난다면, 첼시는 팬들의 마음을 완벽하게 잃을 겁니다."

사실 구단주의 본래 계획엔 제퍼슨뿐만 아니라 여러 선수가 있었다.

하나같이 엄청난 주급으로 주급 체계를 확 올려 버린 수준의 선수들.

원래대로라면 스스로 팀을 떠나겠다고 하면 쌍수를 들고 환호했으리라.

하지만 이젠 그럴 수 없다.

최악으로 돌아서 버린 팬심.

여기서 나머지 핵심 선수들마저 놓치고 내보내 준다?

그것만큼 끔찍한 일이 있겠는가!

"······알겠네."

단 며칠 만에 더 푸석해진 얼굴의 구단주가 침음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을 맡은 임시 단장은 곧바로 재계약 자리를 준비했다.

"······."

막상 협상 자리에 나간 임시 단장은 말을 잃었다.

싱글벙글 웃는 얼굴의 제크 팀장이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아니······이 선수는 원래 다른 에이전트······."

"아하. 모르셨군요. 5일 전에 저희 에이전시와 계약을 맺었습니다."

"······!"

임시 단장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럴수록 제크 팀장의 입가에 띤 미소는 더 진해졌다.

"아참. 리스 제임스 선수도 재계약한다고 했죠? 그것도 여기서 얘기하죠."

"예? 그 선수 에이전트는······설마?"

"네. 5일 전에 저희랑 계약했고요. 앗참! 내 정신 좀 봐. 트라오레 선수 재계약도 진행해야 하는데, 오늘 한꺼번에 진행할까요?"

싱글벙글 웃는 제크 팀장과는 달리.

임시 단장의 얼굴은 갈수록 새하얗게 질려갔다.

"자, 우리 얘기를 시작해 봅시다! 아! 녹취는 걱정 마세요! 녹음기 따윈 없으니까요!"

< 외전 11. 제프를 건드려?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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