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필드의 괴물 러닝백-237화 (237/258)

< 외전 6. 블루문의 러닝백 (1) >

맨시티는 직전 리그 경기인 맨유와의 지역더비에서 패배했다.

한데도 훈련장의 분위기는 처지거나 암울하지 않았다.

패배감보단 알 수 없는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정작 훈련에 임하는 선수나 스태프, 모두 딴 곳에 정신이 팔린 듯했다.

알게 모르게 모두가 계속 훈련장 밖을 힐끔거렸다.

훈련장 펜스에는 엄청난 인파가 몰렸다.

기자, 방송국, 지역 시민들과 맨시티의 팬들.

심지어 훈련장엔 잘 나오지 않는 단장 휘하의 보드진까지.

많은 사람이 몰렸건만, 시장통처럼 시끄럽지 않았다. 한곳에 모이기 힘든 인파가 몰려 묘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휘유. 대단하긴 대단하네."

"우리 챔스 4강 갔을 때도 이렇게까지 기자들이 훈련장에 찾아오지 않았던 것 같은데."

"대단한 놈이니까."

스톤스는 케빈 데 브라이너의 말에 마른 침을 삼켰다. 이만한 인파가 훈련장에 몰렸던 적이 있었나.

끼이익!

그때였다.

고급 세단이 훈련장 밖으로 들어왔다. 팽팽했던 긴장감이 일순 거짓말처럼 환호성과 비명으로 터졌다. 기자들이 일제히 소리치며 몰려갔다.

"왔다!"

"왔다아아! 제퍼슨 리다!"

"제퍼슨이 왔다!"

"왕이 맨체스터에 왔다!"

기자, 팬, 방송국 카메라 가리지 않고 차량 주위로 모여들었다. 경호원들이 급히 몸으로 막아섰다. 그 사이로 문이 열렸다. 누군가 비명을 쥐어짜내듯이 소리쳤다.

"제퍼슨 리다! 제퍼슨 리가 왔다!"

파파파파파팟!

"제퍼슨 리! 맨체스터 시티 이적을 결심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요?"

"제프! 축구선수 역대 최고 이적료로 맨체스터로 이적했습니다. 부담되지는 않으신가요?"

"지금 몸 상태는 어떤가요?"

"첼시의 감독 교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제프! 제프!"

이만한 광경이 또 있을까. 훈련장 안에서 지켜보던 선수들도 모두 그저 혀를 내두르는 사이. 어마어마한 인파를 뚫고 제퍼슨은 훈련장 안으로 들어섰다.

맨 먼저 과르디올라가 양팔을 벌리며 반겼다.

"제프!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이야."

"반가워요, 보스."

"뭐라고? 그 말 다시 한 번 해 줄 수 있어요?"

"어떤 말요? 보스?"

"맙소사! 들었어? 어이! 치프! 들었냐고! 제프가 보스라고 했다고. 응? 경기장에서 만나면 한심한 눈빛으로 내려다보던 그 제프가 나한테! Fuck! 내가 제퍼슨의 보스가 됐다니!"

과르디올라의 반응에 제퍼슨이 쓰게 웃었다.

너무 낯 뜨거운 반응이라 인터뷰에서 뻔뻔한 모습을 보여 줬던 제퍼슨도 차마 고개를 쉽게 들 수가 없었다.

한편 과르디올라의 낯선 반응을 본 건 그의 오랜 제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감독이 원래 저렇게 살가웠었나?'

'글쎄. 나는 저번에 두 골 넣고도 전술 지시 어겼다고 불려 가서 십 분 동안 훈계 들었는데.'

'내가 언제 칭찬받아 봤었나.'

'우리는 늘 보스라고 부르는데 말이지.'

선수들이 과르디올라의 낯선 모습에 경악하는 한편.

제퍼슨은 단장과 보드진들의 열렬한 환대를 받았다.

"맨시티에 온 걸 환영해."

"드디어 우리 짝사랑이 이뤄졌어!"

"젠장! 감독님! 이제 첼시전 준비할 때 제퍼슨을 막을 비책을 준비하라는 개같은 미션은 없는 거죠?"

"속이 후련하네!"

전력분석팀과 코치진은 유난히 좋아했다.

매 시즌 제퍼슨을 막을 비책을 짜내느라 머리카락이 빠지고 흰머리가 나날이 늘어나던 이들이 아닌가.

그렇게 고생하고도 결국엔 실패하고 좌절하고 낙담했었다.

한데는 이제 그럴 필요가 없다.

제퍼슨이 같은 팀이니까!

과르디올라는 제퍼슨의 어깨를 꽉 쥐고 선수들 앞으로 이끌었다.

"이제 선수단하고 인사를 나눠야지."

제퍼슨은 모여든 선수단 앞에 섰다.

"······."

묘한 침묵. 어색한 정적. 제퍼슨이 쓴 웃음을 지었다.

사실 서로 소개를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다 아는 얼굴들이다.

아직 1군에 데뷔하지 못한 유스나 이적생들만 모를 뿐.

그간 필드에서 수없이 부딪치지 않았나.

제퍼슨은 모두와 눈을 마주쳤다.

누군가는 호기심을 갖고, 누구는 약간의 적의와 반가움이 섞인 눈빛이었으며, 또는 감동에 찬 눈동자를 하고 있기도 했다.

"뭐, 다들 진정해. 필드에서 만났을 땐 다 나에게 쥐어 터져서 경계하는 건 이해하지만. 봐봐. 지금 맨시티 유니폼을 입고 있잖아?"

"허!"

"줘 터지긴 누가······"

가벼운 농담에 흐르던 긴장감과 경계심이 옅어졌다. 제퍼슨은 이내 자세를 바로 하고 말했다.

"아시다시피 저는 제퍼슨 리입니다. 매번 필드에서 만날 때 맨시티는 상대하기 가장 어려운 팀이었죠. 이런 팀에 올 수 있게 되어서 무척이나 영광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휘유우!"

"Wheeeeeeeeel!"

"Welcome!"

지금껏 필드에서 마주쳤던 모습과는 달리 정중한 표정과 어조. 경계하던 선수들도 그 모습에 뭐라 할 수는 없기 때문인지 손뼉을 쳤다.

물론 다 경계하는 건 아니다. 제퍼슨을 반기는 부류가 더 많았다.

"헤이. 제프! 뭐 포부 같은 건 없어?"

"우리가 아는 제프라면 이 정도로 끝나면 안 되는데?"

"저번에 우리 팀을 박살 내 놓곤 유스팀 상대한 것 같아서 땀도 나지 않았다고 인터뷰 하지 않았었나?"

제퍼슨은 피식 웃었다.

"누군데 쫌생이처럼 그 말을 기억하고 있던 거야? 난 기억도 안 나는데."

"Holy Shit!"

"저 개자식 보라고! 하하하!"

"뭐, 하여간. 사실 이젠 포부라고 할 것도 없어. 우승은 늘 하는 거니까 굳이 말할 필요도 없잖아?"

제퍼슨이 그 말을 마치는 순간.

달아오르던 선수단 분위기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제퍼슨이 알만하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미안, 미안. 난 늘 우승을 해 봐서. 너희들 심정을 이해 못했군. 하지만 이건 확실해. 이젠 우승은 늘 당연한 팀이 되어야 하는 거야. 그리고 지금 내게 중요한 건, 그 흔한 우승이 아니야. 너희들, 첼시 싫어하잖아?"

"그야 그렇지."

"그렇긴 하지."

"정확히는 첼시가 아니라 너지."

"너였지."

"됐고. 지금 내 포부는 딱 하나야. 첼시를 박살 내는 것."

제퍼슨의 선언에 선수들은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몇 년 간 고생해서 FA컵 타이틀을 겨우 하나 따냈지만.

제퍼슨은 그런 우승을 당연한 것처럼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친정팀 상대로는 각오를 밝혔다. 이제는 첼시 소속이 아니라 맨시티 소속이란 점을 확실하게 전달한 것이다.

"자. 이제 리얼 블루스는 어디지?"

"Blue MOON!"

"젠장. 좀 어색하긴 해. 앞으로 잘 부탁한다고, 레이디들."

소개가 끝나고.

제퍼슨의 모습을 바라보며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던 데 브라이너가 고개를 돌렸다.

"역시. 난놈은 난놈이야. 맨시티에 와서 저딴 식으로 말을 하다······ 헤이? 스톤스? 왜 울고 있어?"

고개를 돌린 데 브라이너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존 스톤스가 눈물을 끅끅 대며 억누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선수들이 깜짝 놀라 모여들었다.

"뭐야? 누가 스톤스를 울린 거야?"

"무슨 일이야?"

웅성거리는 사이.

존 스톤스는 모든 회한이 다 풀린 사람마냥 소리쳤다.

"젠장. 드디어, 드디어 저 개자식을 필드에서 막을 필요가 없게 됐다고! 드디어!"

선수단과 소개를 끝낸 제퍼슨은 감독에게 다가갔다.

"보스."

"음? 아. 좋아요. 어, 이제 내가 좀 말을 편히 할게요."

"네. 그러세요. 다름이 아니라, 이건 꼭 말씀드리고 싶어서요."

"무얼?"

"4월까지 반드시 복귀하겠습니다."

과르디올라는 싱글벙글했던 표정을 지우고, 이내 진지하게 물었다.

"가능하겠나?"

"모든 이들이 그랬죠. 제 플레이는 불가능한 거라고요. 이게 제 답변입니다."

"하하하! 좋아. 좋아. 4월. 그때까지 구단 자체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건 모두 하도록 하지!"

"음. 그건 괜찮아요. 그저 음, 충분한 시간과 공간, 훈련장과 피트니스 센터만 지원해 주시면 되요."

"응? 그것만?"

"나머지는, 이미 진행 중이니까요."

제퍼슨의 진한 웃음의 의미를 깨닫게 된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

맨체스터 시내 호화 주택.

이곳으로 끊임없는 화물차 행렬이 이어졌다.

화물차뿐만이 아니다.

정장 차림, 또는 트레이닝 복 차림의 사람들이 끊임없이 들락날락했다.

이중에는 2년 전쯤 제퍼슨의 트레이닝 팀을 떠나 PSG로 갔던 디 파코도 있었다.

"제프! 이게 얼마만이에요?"

"반가워요. 디 파코. 오실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하하하! 제프가 도움이 필요하다면, 당연히 와야죠."

율리아겐이 옆에서 웃으며 그를 반겼다.

"어떻게 온 거죠?"

"휴가를 냈죠."

"한창 시즌 중인데요?"

"안 보내 줄려기에 때려치운다고 협박하다가 휴가를 받아 냈습니다."

디파코는 여전히 능글거리는 웃음이었다.

디 파코뿐만이 아니다.

제퍼슨은 이번 시즌 반드시 복귀하겠단 의지를 천명했다.

그리고 후원사와 미 축구협회를 통해 도움을 요청했다.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제퍼슨 리의 재활에 필요하다고?"

"그깟 장비들 얼만데? 뭐? 얼마? 으음. 그냥 질러! 질러서 맨체스터로 보내!"

"우리가 후원하는 스포츠팀들 있지? 거기에서 실력 있는 피지컬 트레이너들 한 명씩만 보내 달라고 해!"

"저,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왜?"

"이미 자기들이 제퍼슨에게 가겠다고 난리입니다! 이젠 제퍼슨이 골라야 할 정도예요!"

"뭐라고? 허어!"

사실 후원사가 나설 필요도 없었다.

제퍼슨의 개인 트레이닝 팀은 그간 월드컵, 첼시 다큐를 통해 세계 최고의 트레이닝 팀으로 알려져 있었다.

임시지만 그 트레이닝 팀에 들어갈 기회였고, 스포츠 선수 중 가장 불가사의한 제퍼슨의 신체를 확인할 기회가 아닌가.

물론 이건 수많은 이유 중 하나에 불과했다.

북미 전역의 스포츠 트레이너, 재활의 등이 모여드는 가장 큰 이유는 하나였다.

"제퍼슨이니까!"

"제퍼슨 리가 부상으로 팀에서 내쳐졌다고?"

"우리가 제퍼슨을 도와야지!"

"그냥 제퍼슨이니까! 그 제퍼슨이 필요하니까!"

"무급도 괜찮아! 돈 따윈 필요 없어! 제퍼슨 재활에 참여만 하게 해 주세요!"

그뿐만이 아니다. 후원사와 축구협회의 지원으로 각종 재활 장비들이 지원됐다.

그렇게 맨체스터로 모여든 '드림팀'은 오로지 제퍼슨의 회복 목표로 두고 미친 듯이 일했다.

제퍼슨과 친해지기 위해 제퍼슨의 저택에 방문했던 스톤스와 선수들은 저택의 모습을 보곤 아연실색했다.

"여기가 무슨 어디 연구소야?"

"51구역이야 뭐야?"

"무슨 나사(NASA)도 아니고."

"어디 첨단기업의 비밀 연구소 같은데?"

그 소문을 들은 과르디올라도 제퍼슨의 저택을 방문했고, 제퍼슨의 재활 과정을 두 눈 똑바로 지켜봤다. 그리고 곧바로 만수르 구단주에게 달려가 소리쳤다.

"우리 팀도 저런 체계적인 재활 시스템을 도입해야 합니다!"

"음. 직원들에게 보고서 만들어 올려 주세요."

"그럴 줄 알고 준비해 왔습니다! 여기 있습니다! 당장 해 주십시오!"

"······."

맨체스터 시티가 '선수 재활 공장'이란 명성을 얻게 되는 시작점이었다.

***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사람이 어디 하나에 집중하면 그런 것 같다.

진짜 다른 곳엔 신경도 쓰지 않고 재활에만 힘쓰니 벌써 4월이다.

그간 우리 팀, 그러니까 맨시티는 챔피언스리그 4강, 리그 2위 자리를 지키며 순항했다.

드디어 오늘.

챔피언스리그 4강 매치업이 결정됐다.

[첼시 VS 맨체스터 시티]

"기가 막히네."

그나마 다행이라면 결승전이 아니라는 거다.

만일 결승전이었으면 정말 말도 안 되게 치열했겠지.

뭐 어쨌거나.

맨시티는 그간 리그와 FA컵에서 첼시를 두 번 만났다.

리그에서는 2대 1로 패배.

현재 리그 득점 36골로 득점 1위를 달리는 산티아고가 비수를 제대로 꽂더라.

FA컵에선 내 대체자로 영입된 라우티네스가 골을 넣으며 맨시티가 탈락했다.

한마디로.

지금 맨시티의 상태는······.

"첼시 개자식들! 반드시 죽여 버린다!"

"다른 팀에 져도 첼시한테는 져서는 안 돼!"

"그 자식들이 우리에게 빼앗아간 트로피가 도대체 몇 개야!"

"음. 정확히는 제프가 아닐까?"

"닥쳐! 우리 제프는 이제 우리 팀이니까!"

뭐, 하여간 이런 반응이다.

정확히는 6년 동안.

내가 첼시의 에이스로 맨시티를 박살 내던 시절부터 억눌러 왔던 감정.

이제는 그 감정을 더 이상 억누르지 못하고 터지기 일보 직전이란 사실이다.

언론에서도 이 같은 대립을 메인 뉴스로 내보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첼시와 맨시티, 친정팀을 만나게 된 제퍼슨 리. 복귀 가능성은?]

이적 시장 이후 언론을 피해 있던 나에게 포커스가 맞혀졌다.

훈련장에 복귀한 지는 오래 됐다.

재활은 거의 끝났고, 이젠 컨디션과 경기 감각이 중요했다.

과르디올라 감독이 내게 다가와 말했다.

"어이, 제프. 준비 됐나?

그리고 내 답변은······.

"맨체스터에 온 순간부터 준비되어 있었죠. 보스."

< 외전 6. 블루문의 러닝백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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