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필드의 괴물 러닝백-236화 (236/258)

< 외전 5. 덜 푸른 심장 (5) >

맨시티가 하위권을 전전하던 시절부터 팬인 폴 스미스는 근래 기분이 좋지 못했다. 그가 응원하는 맨시티 때문이다.

팀의 성적이 나쁜 건 아니다.

매번 리그 2위, 또는 3위를 기록했다.

챔피언스리그나 FA컵 같은 토너먼트에서도 늘 대회 막바지까지 열심히 싸웠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우승 타이틀은 얻지 못했다.

아무리 한 시즌 동안 좋은 성적을 거두면 뭐 하겠는가.

시즌이 끝나고 트로피가 없다면, 그들이 혐오하는 라이벌 팀, 맨유와 다를 바가 없지 않나.

"아니지. 맨유 놈들은 작년에 유로파라도 우승했지."

비록 유로파리그라지만, 명백히 유럽 대회의 트로피.

맨체스터 시내에서 카퍼레이드를 벌이는 꼴을 보고 가슴이 답답해졌었다.

그 때문일까?

덕택에 건강하던 신체에 이상이 생겼다.

"아무래도 축구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에 일시적으로 증상이 나타난 것 같군요. 잠시만요."

폴 스미스는 의사의 말에 고개를 떨어뜨렸다.

스트레스로 머리가 빠지는 축구팬은 몇 봤다.

그만큼 축구에 몰입할수록 건강에 이상이 생기는 팬들이 꽤 많았다.

한데 자신은 좀 달랐다.

"발기부전은 심리 탓이 큽니다. 부디 스트레스 받을 일은 멀리하세요. 우선 약을 처방해 드릴게요. 기다려 주세요."

"알겠수."

나이가 적진 않지만, 그래도 나름 건강하다고 자부하던 폴 스미스였건만.

설마 축구 스트레스로 인해 이렇게 될 줄이야.

"그놈의 축구가 뭔지! 에잉! 다시 이 개같은 맨시티놈들 축구는 보지도 않겠다!"

그는 발기부전이라는 치명적인 증상 앞에서는 축구를 멀리하기로 했다.

한데 그 결심은 곧 깨질 수밖에 없었다.

처방전을 준비하던 의사가 잔뜩 상기된 얼굴로 들어왔다.

"오. 폴. 소식 들었어요? 엄청난 소식인데요?"

"무슨 소리요?"

"이거 보세요. 기사가 하나 떴는데, 허 참. 믿기지가 않네."

미간을 좁혔던 스미스의 눈동자가 순간 찢어질 듯이 부릅떠졌다.

BBC에서 올라온 따끈따끈한 기사.

기사 제목을 보고 그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스미스는 두 눈을 끔뻑거리고 다시 헤드라인을 확인했다.

사람이 너무 당황스러운 일을 맞이하면, 오히려 말을 잃는다던가.

스미스의 상태가 딱 그러했다.

그는 한 차례 호흡을 고른 뒤에야 벌떡 일어났다.

"헉!"

[OFFICIAL]

제퍼슨 리, 맨체스터 시티로 3년 계약 이적 확정!

"엄청난 뉴스죠? 허! 세상에! 그 캡틴 아메리카가 맨시티로 온다니? 이거야 원. 맨체스터로 오면 나도 사인 하나 받으려고 돌아다녀야겠습니다."

잔뜩 흥분한 폴 스미스의 귓가에 의사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스미스는 당장 외투를 입었다.

"의사 양반! 약은 필요 없소!"

"네? 아뇨. 받아가세요. 꾸준히 복용해야······"

"거참! 필요 없대도! 다 치료됐수다!"

"네?"

의사는 벌떡 일어난 스미스의 허리춤에 시선이 향했다.

이내 눈을 크게 뜨며 믿기지 않는 듯한 목소리를 흘렸다.

"What the······."

***

제퍼슨 리의 이적!

이번 시즌 가장 충격적인 이적 뉴스였다.

아니, 이번 시즌이 아니라 2020년 이후로 가장 충격적인 뉴스 중 하나가 분명했다.

제퍼슨과 첼시의 갈등이 표면화 된 이후.

직접적으로 접촉했다고 알려진 클럽은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파리 생제르맹뿐.

잠잠했던 맨시티의 이름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그것도 오피셜을 터뜨리며.

제퍼슨이 맨체스터로 온다는 소식에 맨시티 팬들은 난리가 났다.

[제퍼슨 리, 역대 최고 대우 조건으로 맨체스터 행.]

ㄴ진짜야? 이게 진짜라고? 믿기지 않는 소식인 걸.

ㄴ찌라시는 아니겠지?

ㄴBBC에서 나온 뉴스라고. 맙소사! 제퍼슨 리가 맨체스터로 온다고!

ㄴ이봐 친구들. 제퍼슨이 온다는 뉴스를 보고 발기부전이 치료가 됐어.

ㄴ그저 좋은 소식인데. 축하해 친구.

ㄴWhat the Fuck! 제프가 온다면 맨유는 이제 유로파가 아니라 챔스 우승을 할 수 있다고!

ㄴ이런.

ㄴ저 불쌍한 친구.

ㄴ맨유가 아니라 맨시티라고.

ㄴ무슨 소리야? 맨체스터 행이라고 하면, 당연히 맨유지?

ㄴ이젠 슬슬 동정심이 생기는데.

ㄴ안쓰러워.

대부분의 맨시티 팬은 당황했다.

너무 갑작스럽고, 생각지도 않았던 빅사이닝(Big Signing : 큰 금액을 지불해 인기 선수를 영입하는 계약)이 아닌가.

단순한 빅사이닝이 아니다. 애시당초 영입이 '불가능한' 선수가 아니었던가.

ㄴ조금 당황스러운데. 난 어젯밤까지만 해도 우리에게 우승컵을 빼앗아 간 제퍼슨을 개자식이라고 욕했는걸.

ㄴ괜찮아. 이제 우리 개자식이니까.

ㄴHoly Shit! 아직도 그 자식이 우릴 보고 리얼 블루스는 첼시라고 조롱하던 게 기억나는데?

ㄴ이젠 리얼 블루스는 우리가 아닐까.

ㄴ제기랄. 내 아들에겐 제퍼슨은 세상에서 가장 나쁜 쓰레기 악당이라고 말했는데. 이젠 뭐라고 말해야 해?

ㄴ알고 보니 다크히어로였다고 말해.

ㄴ너무 기뻐서 오늘 엄마를 껴안고 엉엉 울었어! 그랬더니 취업 성공한 줄 알고 같이 우시더라고.

미친 듯이 기뻐하는 팬들이 대다수였다.

사실 사람 심리라는 게 그렇다. 프리미어리그의 구단 중 제퍼슨을 가장 싫어하던 팬들이 바로 맨시티였다. 하나 막상 제퍼슨이 자기네 팀 선수가 되자 기쁜 마음은 배가 될 수밖에 없었다.

몇 년 동안 욕했던 선수. 하지만 너무 잘해서 차마 인정할 수밖에 없던 선수.

그런 선수가 이제는 우리 팀이 된다?

맨시티 서포터즈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못해 폭발적이었다.

물론, 걱정하는 일부 반응도 있었다.

-이번 시즌 쓰지도 못할 선수를 겨울에 3천억이나 주고 데리고 온다고?

-그 돈이면 좋은 선수 세네 명은 영입할 수 있어.

-챔피언스리그가 있는데 말이지.

-또 부상에서 돌아온다고 해도, 우리가 아는 제퍼슨일지는 어떻게 확신해?

당연히 나올 만한 반응이었지만, 제퍼슨 영입에 기뻐하는 목소리가 더 커서 소수의 반응은 묻히는 감이 있었다.

오히려 이런 현실적인 반응은 기뻐하는 팬들에겐 일종의 '분탕'으로 취급받았다.

제퍼슨의 영입을 부러워하는 라이벌 팀들이 저런 이유로 평가 절하했으니까.

[EPL의 지각 변동. 펩 과르디올라와 제퍼슨 리가 만난다.]

리그 팬들은 맨시티를 부러워했고,

맨시티는 기뻐했으며.

첼시는 분통을 터뜨렸다.

"개자식들!"

"빌어먹을 자식들아! 제퍼슨을 판다고?"

"미친 새끼들! 제퍼슨을 다른 팀도 아닌 맨시티로?"

"억만금을 줘서라도 제퍼슨은 잡았어야지!"

첼시 공식 홈페이지와 SNS는 쏟아지는 비난에 일시적으로 폐쇄했다.

타오르기 시작한 첼시 팬들은 당장 시위라도 벌일 것처럼 날뛰었다. 훌리건 성향이 짙은 과격한 팬들은 구단주 사무실 앞까지 찾아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거기에 기름을 끼얹은 건 필마르크의 사임이었다.

[첼시 필마르크 감독, 구단주와 이견으로 자진 사임]

[필마르크 감독, "제퍼슨을 내보내는 구단주의 행태에 실망했다. 그는 첼시라는 거대하고도 아름다운 축구 클럽을, 그저 하나의 사업체로만 보고 있는 사업가일 뿐이다."]

[첼시 선수단 내부 분위기 흉흉해.]

제퍼슨과 함께 첼시의 역사를 만들어 낸 필마르크 감독의 자진 사임.

이 모든 게 새로 온 구단주로부터 시작됐다는 걸 알게 된 팬들은 당장 피켓을 들고 시위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상황이었으니까.

한데 이어지는 구단의 행보에 뜨겁게 달아오르던 분위기가 조금은 모호해졌다.

[첼시, 인테르의 폭발적인 스트라이커, 라우타로 마르티네스 영입 확정!]

[오피셜, 첼시, 잉글랜드 국대 유망주 타겟맨 키온 에테테 영입]

[제퍼슨으로 인한 이적 수익을 풀기 시작한 첼시.]

제퍼슨의 빈자리를 메꾸진 못하더라도, 충분히 훌륭한 선수인 라우타로 마르티네스와 잉글랜드 쿼터가 적용되는 키온 에테테의 영입.

-그러니까. 나쁘지 않은 이적 시장이란 거죠.

-제퍼슨 리가 떠났는데 나쁘지 않다고요?

-제퍼슨 리는 심각한 부상을 당했습니다. 이번 시즌 복귀도 불확실했고요. 복귀 후에 폼도 확실치 않습니다. 한데 그를 판매함으로써 엄청난 이적료를 확보했고, 주급 체계를 정상화할 수 있었죠.

-그렇긴 하죠.

-심지어 그 돈의 3분의 1도 안 쓴 채 즉시전력감인 마르티네스와 키온 에테레를 영입했어요. 거기에 지금 미드필더 두 명을 더 영입한다고 들었습니다. 이번 시즌 쓰지 못하는 제퍼슨 대신, 선수 네 명을 수급하는 효과죠. 네 명의 주급을 다 합쳐도 제퍼슨의 주급은 안 될 겁니다.

-오호라!

이적 시장을 평가하는 방송에서는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나왔다.

당장 달아오를 것 같던 첼시 팬들의 입장이 조금 묘해졌다.

"하긴, 저 말도 맞지."

"맞다고? 지랄! 네가 처맞는 소리겠지!"

"헤이. 넌 제프의 개인 팬이야? 아니면 첼시의 블루스야?"

"닥쳐! 제프가 곧 블루스야!"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어! 제프가 떠난 건 나도 슬픈 일이지만, 사실 제프는 더 많은 주급을 원해서 떠난 거잖아?"

"이런 개자식이!"

물론 이런 반응은 소수였다.

아직도 절대다수는 제프를 지지했고, 제프를 떠나보낸 구단을 비난했다.

하나 구단의 선택이 그렇게까지 몰상식한 것도 아니고, 이후 이적 시장에서 선수 영입을 보아하니 꽤 합당하다는 의견이 점점 생겨났다.

거기에 필마르크가 떠나 흔들리는 팀에 새로운 감독이 왔다.

[첼시, 사령탑에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 선임.]

첼시에서 더블을 기록했던 안첼로티 감독의 복귀.

현재 무직 감독 중에선 최고의 선택이었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격.

선수 개개인을 존중하고 속 깊은 대화를 나누며 깊은 신뢰를 쌓는 리더십.

덕장 안첼로티의 부임은 꽤 많은 효과를 불러왔다.

필마르크의 사임으로 요동치는 선수단 분위기를 잠시나마 잠재울 수 있는 감독이었으니까.

과연 안첼로티의 복귀 이후 요동치던 선수단은 일단 조용해졌다.

물론 다들 제퍼슨의 이적으로 불만을 품고 있지만.

일단은 꾹 눌러놓은 모양새였다.

안첼로티의 복귀까지 이뤄지고, 이어 선수 몇몇을 더 영입하면서 첼시에 대한 날 선 비난은 점점 줄어들었다.

물론 여전히 제퍼슨을 그리워하고 지지하는 목소리가 더 컸지만.

그래도 일단 시즌이 끝날 때까진 지켜보자는 의견이 조금이나마 떠오른 것이다.

***

-맙소사, 제프. 어제 무슨 일을 했는지 알아?

전화 건너편 올리버의 목소리에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감정이 물씬 느껴졌다.

"왜?"

-안첼로티 감독이 와서 파티했다고! 파티를!

"그게 뭐?"

-파티했다니까? 네가 있었으면 꿈에도 못 꿨지! 당장 훈련해야 한다고 피트니스 센터를 갔을 텐데 말이지!

"올리버. 넌 좋지 않아? 파티피플이잖아."

-왜 이래. 나 결혼하고 나서 파티 간다고 하면 난리가 난다고.

"허 참. 결혼이 사람을 바꿔 놓네."

-날 바꿔 놓은 건 너지, 제프.

"느끼한 목소리로 바꾸지 마. 오글거려."

-젠장, 제프. 첼시로 언젠간 다시 올 거지?

그 말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글쎄.

축구에서 확실한 게 어디 있나.

내가 맨시티로 갈 줄은 또 누가 알았겠나.

언젠가 첼시로 돌아갈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확실한 건 하나 있다.

적어도 지금 당장, 그리고 최소한 몇 년 이내에는 갈 일이 없다는 사실.

아무래도 새로 온 구단주가 떠나지 않는 이상 말이다.

"올리버. 괜히 나 떠났다고 파업한다고 그러지 마. 태업한다고 그러지 말라고. 너희는 프로니까. 최선을 다해. 팬들을 위해서 말이지."

-······제기랄 캡틴 같은 소리 하지 마. 아. 그거 알아? 뤼디거가 캡틴이 됐어.

"좋은 소식이군."

선수단 내부는 난리가 났다고 들었다.

특히 우트는 태업을 하자고 할 정도로 극히 분노했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건 아니다.

아무리 불만이 커도, 태업은 아니다.

적어도 팬들이 무슨 잘못이 있나.

팬들에게는 좋은 경기력을 계속해서 보여 줘야지.

어쨌든 첼시의 동료들과 전화로 간단히 인사를 나눈 후, 짐을 챙겼다.

"아. 맨시티와 첼시가 맞붙는 매치업이 언제죠?"

"음. 리그 경기는 2월에 있습니다."

"아쉽네요."

"챔피언스리그에서 만날 수도 있죠."

"챔피언스리그라. 8강에서 만나면 3월쯤일 테고, 4강이면 4월일 테니. 부디 첼시와 맨시티가 높이 올라가길 바라야겠네요."

내 말에 제크 팀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부상 이후 내 곁에서 거의 매니저처럼 활동하는 제크 팀장이었다.

"첼시가 높이 올라가길 바란다고요? 음. 제프는 첼시를 정말 사랑했나 보군요."

"하하. 그것도 맞지만······."

난 말꼬리를 흐리다가 말을 돌렸다.

"참. 사람들 좀 모아 주실 수 있으시겠어요?"

"사람들이요?"

"네. 미국에서 내로라하는 닥터, 트레이너, 재활 치료사들이요."

"네?"

"제가 직접적으로 도움을 바란다고 전해 주세요. 축구협회든, 어디든. 제 후원자들한테든 말이죠."

+

제크 팀장의 눈동자가 커졌다.

"뭐, 첼시가 높이 올라와 4강에서 만난다면. 4월까지 복귀를 해야 하니까요. 제가 첼시를 사랑하냐고요? 물론 사랑하죠."

하지만 말이다.

"당하고는 못 사는 성격이라서 말이죠. 4월까지, 반드시 복귀할 겁니다."

< 외전 5. 덜 푸른 심장 (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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